나는 더럽다. 추악하다. 내게 붙은 평가들이었다. 하룻밤의 여흥으로, 불어터진 몸으로 내 몸을 깔아뭉개던 그들이 내게 잔에 담은 물을 얼굴에 부우며 했던 이야기들은 아직도 날 살아있도록 만들었다. 그들이 내 얼굴과, 몸을 보고, 터진 입술에 흐르는 피를 삼킬 즈음에는 난 그들에게 방긋 웃는 얼굴로 인사해야만 했다. 그게 내 역할이었다. 이름 없는, 단지 누군가에 의해 휘둘리는 인형. 죽는 것도 거부된, 그저 살아야만 하는 인형.
이 세상은 사실 생각보다 불안정하고, 그래서 스포트라이트를 통한 '영웅 만들기'가 만연한 세계이기도 하잖아. 그런 시각 속에 갖혀서 아래에 있는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들에 대해선 못 보고 위에 있는, 스포트라이트가 화려한 사람들만 보다 보니 생긴 문제점이겠지. 유리아 본인도 가족에 비해 재능이 부족하단 얘길 들었을 수도 있고, 의념을 각성했어도 여전히 봤던 사람들은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아, 나는 재능이 어중간하구나.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런 부분은 유리아 본인이 시각이 갖혀있기 때문일 수도 있는거야. 특별반이 소속되어 있는 미리내고만 보더라도 내가 직접 '특별반과 비교할 만한 학생은 미리내고에 학생회와 몇몇을 제외하면 없다.' 고 확언하기도 했고 꾸준히 주위에서 특별반을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도, 유리아 스스로는 그런 부분에 대해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해.
>>137 베로니카는 지금 UGN과 함께 하고 있음. 어쩔 수 없는 게 베로니카의 신분은 일단 범죄자고, 그 범죄자의 권한을 축소하고 있는 게 UGN이란 말이지. 베로니카 본인은 빈센트에게 가고싶더라도 UGN에서의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빈센트와 떨어질 수도 있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단 말이지. 무엇보다 중간에라도 베로니카가 합류하는 순간 영월 기습 작전의 난이도가 확 뛰게 돼.
>>141 마지막줄을 보고 조금 놀라긴 했지만...베로니카의 문제점을 생각해보면 말이 되네요. 베로니카는 피를 보면 날뛰고, 싸우다 보면 누군가는 피를 보게 될 것이고, 영월 기습 작전은 빈센트와 베로니카 둘이 게이트를 도는 게 아니라 여럿이서 함께 참여하는 작전이고 게다가 민간인들까지 휘말릴 수 있으니까...!!
"저들이 아무리 인류의 적이라고 해도, 그들 모두가 악인이라고 단정짓는 건 잘옷된 생각이야. 네가 임무를 받고 움직이는 것처럼, 원치 않는 일을 하는 이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데? 네가 재미삼아 죽인 사람들 모두가 죽어마땅한 이들이라고 확신할 수 있어? 그중에 하나라도 무고한 사람이 있었다면 어떡할래."
고블린의 마을도, 오크 군락도 자세히 들여보면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과 다를 바 없는데. 라임은 지금, 수많은 게이트를 드나들며 그들을 사냥해온 자신의 행적 모두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니었을 뿐이지, 무고한 생명을 무수히도 짓밟아온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란 말이다.
"아니... 내가 왜 저들 편을 들고있는 거야."
라임은 괴로운 듯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 쪼그려앉았다.
"그러니까. 사람을 재미로 죽이는 건, 잘못된 거라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그녀는 자신이 무얼 말하려 했는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139 유리아의 과거사 자체가 그러니까요. 재능이 없어서 일반인 클래스에서 아무리 연주를 잘 해도 감동을 주지 못하고 기억에 각인되는 것 없이 평범한 연주였고, 자신보다 못한 이의 연주도 적어도 심사위원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데 자신은 잊혀져 가니까요. 자신의 아래도, 자신의 위도 모두가 자신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있는 거죠.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잡는 재능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거예요~
그런데 뒷부분은 그다지 공감되지 않는 게... 특별반에 소속되어 있고, 특별반과 비교할 만한 학생은 학생회 몇몇을 제외하면 없다고 하셨는데... 특별반 학생들의 위업이나 얘네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특별반에 소속되었다! 라고 하는 그런 히스토리가 드러나지 않았다보니 저평가 되더라구요...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랑 수준이 비슷하니 이게 평균이겠지." 라는 인식이 깔리다보니 위만 바라보게 되었네요~
그리고 유리아 캐릭터 자체의 입장에선 자신이 바라는 재능은 음악적 재능 같은 걸 말하는 거라... 아무래도 캡틴께서 말씀하신 것과 거리가 있어보여요...
이거 비슷한 경험을 해봤던 한지훈이 옆에 있으니까 걔는 '그거? 나 어릴땐 다 하던건데 뭐.' 해서 그렇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술서 하나 던져주고ㅋㅋ 넌 이거 못배우지? 하는데 충족 조건만 되면 순식간에 배우고ㅋㅋㅋㅋㅋㅋ 아 이거 기술 좋네요 개꿀이네 하면서 튈 수 있단 거니까
빈센트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뻔뻔함이 느껴질 정도로. 빈센트는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빈센트는 자신의 논리가 정당화될 구석을, 아니면 빠져나가고 대충 덮을 구석은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었다.
"인간을 태울 때는 그들이 했던 짓을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판매하는 인신매매 조직은 그게 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는 조직이라는 증거를 수집한 다음에 그랬고, 살인 혐의로 추적받는 이들을 찾았을 때도 그들이 확실히 사람을 죽인 게 맞다는 증거가 없으면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했다고요? 그건 변호가 되지 못합니다."
빈센트는 그러면서, 자신의 윤리관을 설파했다.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실제 행동은 어땠는지,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정말로 사악한 의도를 품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변 사람들을 친절하고 선하게 대했고 그 행동이 좋은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정말로 좋은 의도를 품고, 그의 평생 동안 다른 이들을 고통 속에 빠트리고 파멸로 몰아갔습니다. 여기서 묻습니다. 누가 선합니까? 누군가의 본질이 선하고 나쁜 건 그 사람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데 고려할 사항이 아닙니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주변을 가리킨다.
"어쩔 수 없었대도 그건 우리가 신경 쓸 게 아닙니다. 그들이 여기서 뭘 했는 지를 신경써야지요. 참 멋진 짓만 골라서 저질렀더군요."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