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2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재애…하." "그래, 마를 재, 물 하. 네가 이름이라며 그리던 그림이 바로 이 한자란다." "나아는.. 무.. 울이, 마르는 거예요?" "그래. 배우는 속도가 빠르구나. 말도 이제 조금만 더 배우면 또랑또랑 하겠어."
볼품없는 서예를 지켜보던 기녀가 어린 재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같은 방을 쓰는 기녀는 천장을 보고 누워있다 몸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리고 허리를 살짝 들어 팔꿈치를 바닥에 대곤, 양손에 꽃받침을 해 턱을 괴었다. 편하게 누워 다리를 동동 구르던 기녀는 먹 범벅이 된 재하를 보고 킥킥 웃었다. 서예의 현장은 처참하다. 종이는 엉망진창이고, 먹은 재하의 손바닥도 까맣게 물들이더니 이젠 소맷단에도 다 튀었다. 하얀 머리카락 끝은 먹에 젖었다. 얼룩이 진 흰 비단옷을 세탁할 사람은 여간 곤란하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고, 무엇보다 귀엽기 때문이다.
"우리 재하가 이름을 쓸 수 있구나?" "아직 배울 것이 많지." "채연이 요 귀여운 것. 어쩌다 이런 애를 데려왔담?"
채연이라 불린 기녀는 침묵했다. 대신 종이에 개발새발로 적힌 裁河라는 글자를 빤히 쳐다보던 재하에서 시선을 떼고 여지가 담긴 접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채연을 바라보던 기녀는 껍질 까진 여지를 받아먹는 재하를 향해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재하가 처음 온 날을 떠올렸다.
채연이 재하를 데려온 것은 고작 닷새 전이다. 낮에 홑몸으로 나갔던 채연은 기루 불이 다 켜지고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늦은 시간에서야 돌아왔다. 옷 끝단 발치에선 역겨운 냄새가 났고, 가녀린 품에는 처음 보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기루에서 가장 잘나가던 기녀가 귀한 비단옷이 더러워진 채로 나타나는 것도 모자라 꼬질꼬질하니 살도 제대로 오르지 못해 비쩍 곯은 아이를 데려왔으니 기루 안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저 아이 몰골을 보니 동정이라도 해서 데려온 것이 아니냐는 추측부터 시작해 그 채연이가 일전 창기짓 거부했으니 혹여 그 사이 낳고 숨긴 아이는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 제각기 떠드는 소리가 높아졌을 때 루주가 헐레벌떡 달려 나와 호통을 쳤다.
"오늘 지명인 녀석이 왜 이제 와! 이 애는 또 뭐고! 채연아, 채연아!! 어딜 가!! 아직 내 이야기 안 끝났다!!"
채연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점소이가 이러지 말자며 채연을 막아세워도 아이에게 닿을세라 싶으면 거칠게 뿌리쳤고, 패물 잔뜩 쥐여주던 늙은이가 다가와도 무시하며 홀린 듯이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욕조 안에 있던 기녀를 밀어내고 아이를 담가 박박 씻겼다. 루주가 쫓아 들어와 기어이 채연의 뺨을 때려 채연의 손이 멈추고 넘어졌을 때, 루주를 말리러 온 점소이는 구정물 사이로 때가 반쯤 벗겨진 아이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루주도 점소이가 멍하니 지켜보자 고개를 돌려 아이를 보고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잔뜩 더벅진 갈색 머리 가진 꼬마일 줄 알았는데, 씻기고 보니 온통 새하얬다. 커다래서 멀리서도 보일 것 같은 눈 색은 서로 달랐고, 이목구비도 오밀조밀해 잘 빚어놓은 인형처럼 완벽했다. 들어온 루주와 점소이 때문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욕조 뒤에 숨었던 기녀도 아이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쩜 이리 예쁠까! 가장 가까이 있는 건 저기 뺨 부여잡고 루주를 노려보는 채연도 아니고, 문지방에 겨우 서있는 점소이도 아니고, 헛기침을 하더니 잠시 대화 좀 하자며 채연의 멱살 잡고 끌어올리려는 루주도 아니었다. 고성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모든것이 낯설어 불안한 눈치인 아이에게 기녀는 욕조의 가장자리에 손을 올려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얘, 넌 누구니?"
아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구정물 가득한 욕조 안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자르지도 못했는지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자란 긴 머리가 쏟아졌지만 보석을 박아놓은 듯 커다랗고 신묘한 눈동자는 미처 가리지 못했다. 아이가 머리카락만치 새하얀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며 조막만 한 입술을 뻐끔거렸다. 낮말 밤말 다 듣는다는 쥐랑 새도 못 들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기녀는 똑똑히 들었다.
"……재하." "그렇구나, 재하야, 어디서 왔어?" "……새애는 나무 위에서 눈 감고, 나비느은, 꽃 위에 내려앉아 고온히 잠을, 잠을 청하네에. 자장, 자자앙.."
대답 대신 재하는 더듬더듬 노래했다. 애를 데려와서 어쩔 거냐, 당장 갖다 버리라며 윽박지르던 루주도 말을 멈추고 재하를 돌아봤다. 욕실 안을 울리는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탁음 하나 없이 맑았다. 그 목소리에 재하라 불린 아이를 쳐다보던 루주는 채연의 멱살을 내팽개치듯 놓고 "말끔히 씻겨 데려와!" 하고 씩씩대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점소이가 열심히 뒤따라가는 동안 기녀는 따뜻한 물이 더 필요하겠다며 일어서 바가지를 들었다.
"목소리가 정말 예쁘구나. 그것보다 물이 더러우니 새 물로 씻자꾸나. 이리 온."
주변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일어난 재하를 안아올린 기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깔깔 웃었다. "사내 아이네!" 욕심이 뒤룩뒤룩한 루주가 알면 분명 기루가 뒤집어질 거다. 지금쯤 제멋대로 머리를 굴렸을 텐데, 채연이에게 뺨을 때린 값은 이걸로 톡톡히 치를 것 같다.
기녀는 회상에서 빠져나와 재하를 귀여운 동생 보는 눈으로 쳐다봤다. 병아리 부리처럼 톡 튀어나온 도톰한 입술 사이로 여지 즙이 흘렀다. 여지를 아직 다 씹어 삼키지도 못했는데 채연이 또 하나를 깠기 때문이다. 양 볼이 빵빵한 재하는 어쩔 줄 몰라 하다 여지를 주는 곧이곧대로 받아먹었다. 덕분에 제대로 씹지 못하고 여지 즙이 입술 사이로 흘렀다. 기녀가 깔깔 웃으며 소매를 뻗어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품 안에 쏙 안았다.
"요게 어딜 봐서 여덟이람." "여덟 맞, 맞아요." "이그! 이렇게 조그마한 꼬맹이가 누나 나이랑 세 배나 차이 나는 게 말이 되니?"
재하는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여지 즙이 내민 입술에 송골 맺혀있었다. 기녀는 뭐가 좋은지 또 깔깔 웃었다. 채연도 작게 웃으며 여지를 깠다. 그날 루주의 물음에 재라는 더듬더듬 답했다.
"재하라 했지, 네 나이가 어떻게 되냐."
재하는 질문에 허공에 손을 몇 번 그어 보이더니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여덟이 시작될 거라고 답했다. 방 안을 엿보던 점소이 덕분에 소문은 기루 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고작 서너 살 내지 다섯 살 되어 보였는데 곧 여덟이라니! 여러 기녀가 경악했다. 재하는 또래보다 한참 작았다. 이윽고 사내아이라는 사실에 루주가 억 소리를 내며 절망했단 소식엔 킥킥 웃다가도 저 아이를 버리면 어쩌나 제각기 토론했다. 그렇지만 내쫓기엔 또 아까웠는지, 아니면 기녀들의 초롱초롱한 눈길 때문인지 예뻐하게 내버려 뒀다. 최근 재하에게 경극인지 뭔지를 가르치겠다, 최고의 선생을 붙이겠다 하며 으름장 놓는 걸 보면 전자인 것 같다. 하여튼 욕심만 많은 녀석이다.
여러 기녀가 앞다투어 재하가 입을만한 옷을 옷장에서 꺼내 입혔고, 점소이는 자기에게 동년배의 딸이 있는데 재하가 갑절은 작은 것 같다며 이것저것 구해다 먹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인삼즙에 푹 고아 낸 곰 고기에 루주가 차라리 자길 달라며 질색했다. 재하는 이 상황이 낯설었는지 처음엔 전부 거부했다. 그리고 제 마음을 정리하듯 천천히, 아주 느릿느릿 받아들였다. 옷은 아직도 품이 크고 공작 꽁지깃처럼 질질 끌고 다니지만 살이 조금 붙었고, 키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 컸다. 계두 국수를 한 젓가락도 채 못 먹고 구역질을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얼추 네 젓가락은 먹고, 여지도 잘 받아먹는다. 그렇지만 역시 의문이 많았다. 대체 채연이는 왜 이 아이를 데려왔는지, 어디서 데려왔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며 까막눈인 재하가 자장가와 자기 이름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기녀는 오늘 지명이 끝나면 재하를 재우고 꼭 물어보겠다 다짐했다. 재하가 깨어있어 말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꺄아악!! 채, 채연아!!" "루주!! 루주!! 채연이가!"
그렇지만 채연은 죽었다. 유달리 술버릇 고약한 손님의 지명을 받은 채연은 거친 손길에 본능적으로 달아났다. 부서질 듯 문을 열고 뛰쳐나온 채연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우악 진 손길에 잔뜩 찢긴 옷도 그렇고, 머리채라도 잡혔는지 예쁘게 꾸민 머리는 너덜너덜했다. 채연은 어딜 가냐며 쫓아오던 손님을 피하다 2층 난간까지 몰렸다. 지레 겁먹었는지 뒷걸음질하다 그대로 몸의 중심을 잃고 뒤로 기우뚱 넘어갔고, 추락했다. 그리고 채연은 목이 꺾여 그 자리에서 비명 한번 못 지르고 죽었다. 그 장면을 본 사람의 비명소리에 기루가 떠나갈 듯 소란스러워졌다. 재하가 오던 날과는 차원이 다른 소란이었다.
큰 소란에 구석진 방에서 글공부를 하던 재하가 빼꼼 고개를 내밀며 나왔다. 평소 같으면 루주가 너는 지금 나와선 안 된다며 혼을 내고 점소이도 다시 들어가라고 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재하는 한 걸음, 두 걸음 소란의 원인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때 연지 번지고 흐트러진 옷 가짐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기녀가 달려 나와 재하의 얼굴을 덥석 잡아 품에 안더니, 손으로 얼굴의 윤곽을 더듬어 눈을 가렸다.
"누이…?" "안 돼, 재하야. 보면 안 돼. 보면 안 돼……." "저어기, 채연 누이가아…." "아니야, 재하야.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들어가자, 응?"
눈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하고 달달 떨리는 얇은 손가락 틈새로 상황이 어렴풋이 보였다. 재하는 협소한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 눈도 채 감지 못하고 기이하게 목이 틀려 죽은 시체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렇게 재하에 대해 아는 유일한 사람이자 가장 강력했던 보호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2주 남짓 지나 루주에게 온전히 맡겨지기 전, 이제 글귀도 어느 정도 읽을 줄 알고 말도 더듬지 않던 재하는 채연과 같은 방을 쓰던 기녀에게 물었다.
"채연 누이는 어디 갔어요……?" "채연이는… 천마님께서 부르셔서 아주 멀리 선계로 여행을 갔어." "……정말요?" "으응. 채연이는 예쁘고, 당당했잖아. 천마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셔서 데려갔단다. 선녀님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어서 채연이가 여기 있어도 우린 볼 수 없을 거야." "그렇구나." "이리 온, 여지 줄까?" "네에."
***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있남?" "선계는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사와요." "하하, 농도! 재희 네가 있는 이곳이 선계지!" "차암. 부끄러워요."
재하는 술에 진탕 취한 손님의 품에 안겨 수줍게 웃었다. 감찰어사가 된 지금 기루의 일을 해서는 안 되었으나 루주가 된 은야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잠깐, 아무도 모르게 돕는 조건으로 무인이면 술을 먹였을 때 내공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할 사람으로 데려오고, 혹여 급 높은 무인이더라도 취할 만큼 취해 내공조차 제대로 운용하지 못할 자만 데려오라 하였다. 이 사람은 전자였다.
"하지만 재희의 눈에는 선녀님이 보이지 아니하는데.." "이것 참, 내 눈엔 이리도 잘 보이는데! 새하얀 선녀 말이다! 천마님께서 데려오려는 선녀님을 내가 이렇게! 냉큼 데려왔지." "피곤하신가 보아요. 귀인, 주무시지요. 호롱 부울…"
꺼주시어요. 재하는 귓가에 속삭였다. 허리를 주무르는 손길 뒤로 불이 꺼지고 옷자락 스치는 소리 뒤로하며 재하가 낮게 속삭였다. 차암, 이러지 말고 주무시지요. 당연히 들을 리 없어 재하는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피곤하다면서 사람이 지치지도 않나 보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손님은 잠들었다. 잔뜩 취해 무릎에 머리를 뉘고 곯아떨어진 손님을 어두운 방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 사람은 조만간 죄를 찾아 넘기든지 해야겠다. 일단 천마님을 모욕하였으니 그것으로도 무거우나 그에겐 즉결심판권이 없기 때문이다. 기름지고 아무렇게나 자란 머릿결을 손으로 몇 번 쓸어주며 잠든 사람이 언젠가 갖게 될 텅 빈 눈동자를 상상했다. 생명이라곤 일절 내비치지 않는 깨진 보석 같은 눈. 이 사람도 어딘가로 가겠지……. 채연 누이는 잘 지낼까. 재하가 그리운 시선을 내비치다 손님의 목 위에 차가운 손을 올렸다. 맥이 뛰고 따뜻하다. 누이도 그때 이렇게 따뜻했을까? 맥은 뛰지 않았겠지만. 어스름한 새벽빛이 창을 비춰 재하의 등을 타고 천천히 기어오른다. 마지막 작별을 고하듯 노래를 불렀다. 새는 나무 위에서 눈 감고, 나비는 꽃 위에 내려앉아 곤히 잠을 청하네. 자장자장, 잘 자거라. 아프지 말고 푹 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