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는 자신이 뒤틀려있음을 깨달았다. 빈센트는 웃기다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웃지 않았다. 깨달음을 주는 유머도, 정치 유머도, 사회비판도. 그리고 천박하고 불쾌한 유머도. 빈센트는 아무것도 재미있지 않았다. 하지만 빈센트가 재미있어하는 것이 있었으니, 불에 무언가 타고, 그 안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오는 게 제일 좋았다. 마약 제조 공장을 태울 때, 마약이 공기 중으로 유출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빈센트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든 것은 마약 따위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이었다.
"증오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감정입니다. 저 녀석들은 인간이 아니다, 죽어도 싼 것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지키죠. 인간의 선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닙니까? 사담이 길었군요."
빈센트는 의념을 끌어모았다. 빈센트의 손에서 불길이 모이고, 빈센트는 저 안에서 일어날 끔찍한 사고를 생각하며 웃었다. 다 죽을까? 분명 그럴 것이다. 고통스러울까? 점칠 필요도 없다. 빈센트는 그저 불길을 모아서, 저 동굴 안으로 밀어넣으면 끝이었다.
"눈 감으시죠."
그리고 그렇게 되고, 눈 앞을 화염의 섬광이 채웠다. 빈센트는 눈을 감고, 눈을 감지 않았다면 눈알을 익혀버렸을 열기를 피부로 느꼈다.
눈을 뜨면, 동굴의 앞은 어둠이 아니라 검댕으로 새카매졌고, 저 안에서는 불에 붙잡힌 오크들의 괴성이 뭉치고 뭉쳐, 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괴물의 그것으로 변했다. //9
인류애로 무장하고 인간성을 끔찍이도 잃지 않으려는 그들과는 달리, 자연을 해치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진 그녀로써는 온전한 인간 앞에서 떳떳지 못하다. 인간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인간은 이로운 동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적지 않다. 인류의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저질렀던 일들을 본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하지만 그 말을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는 건 온전한 인간뿐이겠지. 온전한 인간에게 그녀와 같은 이들은,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편에 서서 싸우고 있더라도,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를 반쪽짜리로 비칠 뿐일 테니까. 그녀는 인간성이니, 인간의 선이니 하는 말에 대꾸를 할 수가 없어 속이 갑갑했다. 이제는 제 입으로 인간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 생각될 지경이니 말이다.
'눈 감으시죠.'
눈을 꾹 감았는데도 눈앞에 해가 비쳤다. 그리고 그 열기를 피부로 느낄 새도 없이 끔찍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화살을 빗맞혀 한 번에 숨통을 끊어놓지 못했을 때에 들려오는 고통 어린 외침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들의 절규는 겹치고 겹치고 겹쳐서 좁고 어두운 동굴을 가득 메웠다. 그것은 귀를 접어 틀어막아도 아프고 괴롭게 귓구멍을 찔러댔다.
체인지 폼(F) 의념을 응용하여 신체의 일부를 변환시키는 기술의 일종. 사용 중에는 수인으로써의 특성이 봉인된다.
결국, 그 비명이 사그라들 때까지, 동굴 바닥에 주저앉아 인간의 것으로 둔갑시킨 귀를 손바닥으로 막고 있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We didn't start the fire 우리가 지핀 불이 아냐. No, we didn't light it, but we tried to fight it 우리가 밝히지는 않았지만, 계속 맞섰지. We didn't start the fire 우리가 지핀 불이 아냐. It was always burning, since the world's been turning 세상이 처음 돌 때부터, 계속 불탔어.
빈센트는 옛날의 노래를 불렀다. 그 때는, 자기 세대가 제일 힘들고 다른 이들은 편하게 지냈다며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무시하는 멍청이들을 비웃는 노래였다. 하지만 지금의 빈센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빈센트는 저 안에서 불타는 이들을 바라보며, 저 안에서 천천히 죽어갈 이들을 생각했다.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타르, 온갖 것이 그들의 폐로 들어갈 것이고, 그들에게 남은 수명은 얼마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 짧은 수명마저도 그들에게는 끔찍한 순간일 것이다.
"이 동굴은 더 이상 볼 것도 없을 겁니다."
괴물의 비명소리는, 오크들이 하나 둘 침묵하며 잦아들었다. 그 안에서는 훌쩍이는 소리만 조금씩 들렸다. 마치 교향곡을 듣듯이, 빈센트는 웃다가 고개를 돌렸다. 빈센트는 거대한 불 뒤에 남는 잿더미처럼, 그의 머릿속에 남는 통증에 이곳까지 화염의 영향이 미쳤음을 깨달았다.
"돌아가시죠. 이 안은 더 이상 죽일 게 없습니다. 여기가 이렇게 산소가 모자라면, 저 안은 말할 것도 없겠죠." //11
그녀는 사람의 살이 타는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그들의 절규가 들려오기 시작할 때부터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숨을 참고 있었다. 낮은 위치에선 공기의 대류로 동굴 바깥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타는 냄새도 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도저히 이곳의 공기를 속에 들일 자신이 없었다. 끔찍한 비명은 곧 잦아들었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그녀는 동굴의 입구를 향해 비척거리며 나아갔다. 머리에 피가 돌지 않아 현기증이 났다. 동굴 입구로 비치는 밝은 빛에 암실에 적응된 눈이 째어질 듯 시렸으나, 바깥의 공기와 빛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살육을 하며 태연히 노랠 흥얼거릴 수가 있을까, 그토록 즐겁던 미소는 대체 뭐였을까. 이 안은 더 이상 죽일 게 없겠다는 저 말까지도 이질적이다.
동굴 입구로 다가설수록 칼창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소리와 우렁찬 함성 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전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손을 들어 눈가에 그림자를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는, 뒤따라오는 제 일행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음... 안 괜찮다기보단 제가 좀 우유부단한 면이 있어서, 일상을 돌릴거면 돌리자! 아니면 아니다! 하고 확실하게 말해주는 편을 좋아해요. 강산주가 같이 일상이 하고 싶으시다면 저도 흔쾌히 일상을 돌렸겠지만, 다른 분을 기다리시겠다면 그것도 물론 좋았겠구요. 제가 뒷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