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레오는 유명해졌다.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궁의 투견이라는 이름은 날이 갈수록 유명해졌다. 눈에 흉터가 있는 아이를 조심하라던가, 주궁에 키는 보통에 머리가 새카만 여자아이와 시비가 걸리면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빠지라던가 하는 이야기들. 좋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푹 꽂고 앞에 누가 있던 신경쓰지않고 걸어가면 알아서 길이 비켜졌으니까.
엇차- 하는 소리와 함께 레오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않았다. 졸업식이라. 레오는 언젠가 자신도 저 자리에 서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서있을지 않을지도 모르지. 자신이 이 학교를 졸업하는 날 따위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학교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킥킥대고 웃던 레오는 잔을 들고 술...은 아니고 음료수를 채웠다.
" 야야, 잔 채워라. "
술이라도 되는 것마냥 음료수 병을 들고 직접 나서서 다른 이들의 잔이 넘치기 전까지 마구마구 부어대던 레오는 제 주변 사람들의 잔이 다 채워진걸 확인하곤 큰 소리로 '마셔라~!!' 하고 소리쳤다. 꺄하하하! 소리치며 원샷을 때리곤 대표는 앞으로 나와서 선서를 하라는 말에 시선을 돌렸다. 아, 저 녀석은.
드디어 졸업식 날이 왔다. 이는 현 6학년들을 위한 졸업식이었지만, 올해로 학원을 그만둘 그녀에게도 얼추 해당되기는 했다. 자퇴하는 거니까 제대로 된 졸업장은 못 받겠지만. 그래도 간접적으로나마 식에 참여하고 나간다는 의미는 둘 수 있는거 아니겠는가.
일단 전체 행사니까 나름대로 잘 차려입고 정전으로 향했다. 아, 여기서 입학식을 하고 개학식을 한 것도 어제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마지막으로 떠나갈 사람들을 배웅하고 자신도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됐다. 감회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새롭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백궁의 한 자리에 앉았다. 다소곳이 앉은 그녀의 머리엔 석산을 본뜬 은장식이 반짝였다.
단상 앞에선 교장이 선서할 학생을 부르며 물러나는게 보였다. 그러고보니 올해 졸업 선서는 누가 한다고 했더라. 미리 들은게 없는 그녀였기에 나름 기대 반 궁금함 반을 갖고 앞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주궁 쪽에서 소란이 일어나 그쪽을 흘끔 보긴 했다. 아주 잠깐.
입학식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는 그간 여러 모습을 보였다. 비밀 가득한 언더테이커의 자제, 현궁의 검은 고양이, 이후 대표가 되어 청궁킬러와 현궁의 사신이라는 별호에 도달한다. 그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았기에 그는 변했다. 정전에 모여있는 모습에 그는 결국 끝났구나 생각한다. 오래도 걸렸다. 미래도 없던 나날을 뒤로 어둠에 암약하리라 생각했건만 어느새 빛무리가 그를 비추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는 지금 누구도 남지 않았으나 누구보다 많은 것을 얻었으며, 한껏 차려입었다.
언더테이커 가문의 가주임을 밝히듯 그는 가문의 문양이 그려진 브로치를 달았고, 어깨에 품이 넓은 코트를 걸쳤다. 그 안의 정장은 긴 다리를 부각시킨다. 검은 머리는 올려 묶었으며, 두 눈은 온전히 드러낸다. 그의 양 어깨에는 여전히 두마리의 짐승이 있다. 앞으로 걸어나오는 모습에서 그의 눈빛이 결연하다. 많은 것이 그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이후 선서를 읊기 전 심호흡 하던 그는 익숙한 목소리에 돌린 등을 바르르 떨곤 외쳤다.
"..레오파르트 로아나!"
저게 진짜! 그런 의미였다가도 입술을 꾸욱 다문다. 참자. 참아야 한다. 이후 그가 다시 심호흡 하곤 선서를 왼다.
"나, 발렌타인 샬럿 언더테이커와 모든 졸업생들은 나의 생애를 돌아보건대 가장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위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며 자신의 목표와 비전을 위해 더욱 정진할 것이다. 이후 후배, 더 나아가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될 것이니, 자신의 발자취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 제각기의 명예를 받드노라."
레오는 아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면서 쓰러지듯 자리에 앉았다. 첫 졸업식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졸업식에는 먹는것에 집중했다. 세 번째 졸업식때는 싸움이 벌어져 거기에 뛰어들었고 이번 졸업식에는 선서를 하려는 사람에게 소리를 쳤다. 다음 졸업식이 있다면 토마토를 던져야지. 주의를 받은 레오는 붸- 하고 혀를 삐죽 내밀어보였다.
" 쟤네는 뭐에 돈을 걸었대? 하여튼 이상한 녀석들이야.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
분명 술이 아닌 음료수일뿐인데 무언가 취한듯한 기분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분위기에 취한 것이겠지. 자기가 한 말을 들었는지 이 쪽으로 시선이 꽂히자 레오는 이대로 한 판 붙겠다는 생각인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뭐, 어쩔건데' 하고 말했다. 두 세걸음 나아갔을때 제 친구들이 말리고 저 쪽에서도 눈에 흉터가 있는 그 녀석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수그러들자 레오는 '싱겁긴' 하며 또 웃을 뿐이었다.
" 자자, 일어서라신다. "
잔을 들고 일어선 레오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더 높은 자리에 섰다. 한 손엔 음료수 병을 들고 있던 레오는 자기 잔에 흘리던 말던, 넘치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콸콸콸 붇고는 잔이 비어있는 사람을 찾아 의자를 밟고, 테이블을 밟으며 다가가 또 그 잔에 음료수를 부었다.
" 자~ 주궁! 잔 들어라! "
이렇게 말하는 레오파르트 로아나는 6학년 학생대표 따위가 아닌 일개 4학년 학생일 뿐이다.
선서를 마쳤다. 머리를 쥐어짜내 쓰고, 어딘가의 위대한 참치신에게 계시를 받아 덧붙여 인용한 것이 제법 잘 먹힌 모양이다. 그는 교감의 인도를 받아 주어진 자리로 향하려 했다. 그간 고개를 돌려 보였던 광경은 많은 인파에서도 그를 향한 내기가 있었다는 것과, 원내는 평화로운 것이다. 그는 예의 굳어진 그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걸로 됐다. 이제 많은 것이 변했으니 지켜야 할 때다. 봄날이 보고 싶고, 내가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했으면 하며, 조금이라도 유해졌으면 하고 중얼거리던 네 얼굴이 그립다.
— 사람들이 도련님을 조금 더 사랑해주면 좋을 텐데요. — 어림도 없는 소리. — 박수라도 받았으면! —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 아, 박수만이라도요! 제발!
그는 작게 실소한다. 네가 바라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넌 알까. 답지않은 생각을 하며 돌아가면 널 화장하여 창공으로 보내주리 다짐한다. 너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이제 네 한을 풀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