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여정의 끝이다. 그는 어깨에 날아드는 달링을 쓸어주며 주변을 둘러본다. 분명 1학년이 되어 입학하던 날 언제 졸업하는지, 사람과 계속 있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이내 끔찍한 나날이라며 몸서리를 쳤던 걸로 기억한다. 타니아는 그에게 아직 5년이나 더 남았다며 장난을 쳤다. 그랬던 것이 5년 전이다. 시간은 흐르고 어느덧 6학년이 되었다. 타니아는 떠났고, 그는 사람과 계속 있고 싶은 마음에 교수직을 얻기 위해 준비중이다. 어둠의 마법사를 양성하는 과정을 막아내는 것은 교육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1학년의 자신에게 이 사실을 말해주면 과연 믿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졸업식 당일 찾아올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 지도 의문이다. 그는 진지하게 고민해본다. 일단 어머니는 아편 중독이 심해 치료중이다. 고통 때문에 올 수 있을지 의문이고, 그렇다고 캐서린은 그가 신나게 굴려먹을 것 같으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머리 새하얀 지팡이 세공가를 떠올린다. 눈 덮인 숲속에서 신비한 동물과 같이 사는 그의 괴팍한 벗 후부키 이로하다. 분명 그놈의 성격대로라면..
— 아빠!!!!
하며 어린 아이의 모습 취하여 달려올 것이 뻔하다. 이로하는 그가 각시를 죽이기 이전 지팡이를 날카롭게 세공할 적 언질도 없이 새벽 4시에 찾았던 것을 아직도 마음에 담기 때문이다. 오해라며 절하고 빌어야 하는 불상사는 피해야 한다.
그는 리 사감의 호출에 상념에서 벗어나고 자리를 뜨려 했다. 어디로 데려가는 건지, 알긴 어려우나 일단 시키는 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낡고 지쳤던 리 사감이 오늘따라 멀끔해보인다. 그나마 멀끔하다는 뜻이지 정상인은 아니라는 걸 그도 알고 있다. 오늘은 백호님께서 굴리지 않으셨는지, 졸업하고 혹 이 학교로 교수 배정이 된다 했을 때 여전히 계시고 굴려지는 건 아닐지 안타까움 뿐이다.
그는 예행연습 언급에 이전 졸업식을 떠올린다. 그때 어땠더라. 선서 하는 학생, 마법을 준비하던 학생도 있었나? 잘 모르겠다. 졸업식은 관심있게 본 기억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번쯤 유심히 볼 걸 그랬다. 그는 리 사감의 지친 목소리에 알겠다 대답하려다 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자네가 아니고 내가?"
원내를 습격하도록 지시한 매구에게 선서를 넘긴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그는 현재 제갈 윤이라는 사람으로 살지 않은가. 교내의 제갈 윤은 바른 성품으로 지금껏 타 학생을 통솔하였던 것과 더불어 평판으로 보듯 선서를 읊어도 되겠으나 그는 현궁의 사신이라 불리던 자다. 어린 학생은 선배의 말만 믿고 그가 무자비하게 점수를 깎으려 드는 것을 두려워 하고, 그의 동년배는 그 예민한 성격이 어떠한지 잘 안다. 그런 자신이 해도 괜찮겠냐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괜히 현궁의 사신놈 추천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하며.
어떻게 된 것이 졸업식에서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인지. 현혹 되면 돌아올 수 없게 된다는 당신의 말을 들으며 스베타는 손에 들린 부적들을 살핀다. 시한폭탄을 손에 들고 있는듯한 불안을 느끼고, 이내 체념의 한숨을 내쉰다. 고개를 들어 저희를 바라보던 당신을 물끄레 보다가는 불만 없이 그저 알겠다는 뜻으로 가벼이 목례한다.
따라 걸음을 옮기려 할 때 당신이 저를 불러 세웠을까. 달리 시킬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다가, 본능적인 위험이라는 말에 MA님의 장난을 겪었을 때를 떠올린다. 얼굴빛이 어두워지며 스베타는 주머니 속에 든 것의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하다, 속에 담긴 것이 '대역인형'이라는 당신의 설명에 휙 고개를 들며 당신을 올려다본다. 면담 때, 당신이 화를 피할 수 잇께 접어두라던 국화꽃을 아직 품에 지니고 있던가. 아니 기숙사에 두었던 것을 떠올린다. 늘 품에 지니고 다닐 것을 오늘은 왜 두고 온 것인지.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기린궁으로 향한다.
후회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그는 시선을 따라 옮겨 어깨 위의 마노를 가만히 바라본다. 오늘도 그의 양 어깨는 두 조류로 가득 차있다. 둘다 균등하게 사랑하나 인간이기에 조금 더 정을 주는 존재다. 그는 윤의 관심을 경계하지 않는다. 아무리 매구라 해도 제 사람을 품게 된 이상 그가 두려워 할 이유도 없다. 대신 다른 의미로 매구를 공격하게 된 듯 싶다. 그는 제법 인간다워졌고, 교수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 무슨 뜻이겠는가.
"야생의 존재와 맹수를 패밀리어로 길들였으니 말입세.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 허나 패밀리어가 진정 패밀리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까? 들어보게, 같이 사회를 살아가며 사회성을 습득한 영특한 녀석들이지 않은가! 주인과 동물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를 적용하며 마법사는 교육을 통해 유년부터 그 중요성을 일깨운다면 더 효율적인 유대감과 정서적 안정을 가지겠지. 잠깐, 이건 맨드레이크를 비롯한 신비한 동식물에도 적용이 되나?"
혜향 교수가 신비한 동물에 집착하듯, 러빗 교수가 맨드레이크에 집착하듯. 그도 어딘가 돌아있다는 뜻이다. 이미 그의 머리에서 패밀리어와 마법사의 유대를 통한 정서적 안정에 대한 주제가 떠오르고 가설까지 몇가지 만들어둔 상태다. 그는 잠시 말이 과했는지 헛기침을 한다. 교수가 되면 학생에게 보일 광기의 일면이었다..
"어머니라..그래. 자네 뜻이 그렇다면."
아무리 싫다고 해도 어머니 언급에서 탈룰라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해야한다.. 그는 흔쾌히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