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말을 듣는 것인지 듣지 않는 것인지, 레오는 그저 신이 난 것처럼 웃다가 천천히 웃음을 잃었고 목소리도 점차 작아지며 소강상태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푸- 하고 술냄새가 가득 배어있는 숨을 쉰 레오는 그래? 하고 건성으로 답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가만히 바라보았다. 술은 신기했다. 감정의 통제를 사라지게 만들고 하고 싶은 말이던, 그렇지 않았던 말이던 전부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가지고 있는 감정을 증폭시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 ...하지만 너는 지금도 네 주인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잖아. 그 사람이 먼저인거잖아. "
이 말이 신경을 거슬리게 할 것은 알고있다. 싫어할만한 말이라는 것 또한 알고있다. 그래서 뭐, 레오는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잔에 와인을 가득 따르고 더운 날 물을 마시듯 마구 들이켰다. 크하아~ 하고 숨을 쉬곤 입을 닦았다. 눈이 잔뜩 풀리고 얼굴이 빨개진 레오는 가만히 버니를 바라만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그래! 맘에 안든다고! 너! 맘에 안들어! 정작 널 위해서 구른건 난데! 네 그 주인님보다 널 더 생각하는건 난데! 네 주인님이 널 위해서 목숨을 걸었을까? 난 걸었거든! 학교생활이 끝나는 정도가 아니야! 이대로 아즈카반에 끌려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고! 알기나해? "
조금 화가 난 듯 언성을 높인 레오는 속에 있는 것을 전부 토해냈다는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 말이 어떻게 작용할지, 기분을 어떻게 만들지는 잘 알고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 들어갔으니 그 힘을 빌려서 하고싶은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가만히 노려보던 레오는 쓰러지듯이 털썩 하고 다시 자리에 앉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곤 들리지 않을 모기같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감정이 터지는 느낌. 제어가 되지 않는 느낌.
" ...무섭다고. 나도 무서웠다고. 나는 아직도 그 때 그 날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짐승에게 죽은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추모비를 지날때면 가끔씩 거기 내 이름이 적혀있는걸봐. 학교의 모든 사람이 한 통속이라는 생각도 들어. 진실을 아는 것은 나 뿐이니까 그 사람들이 전부 손을 잡고 내 목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 그 뿐이게? 갑자기 오러들이 내 방문을 부수고 들어와선 너는 탈과 어울렸고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썼다면서 날 체포하는 꿈을 꾼 적도 있어. "
몸이 옅게 떨렸다. 그만큼 무서웠다. 더 이상 사람들을 이전과 같은 눈으로 보지 못했다. 좋아하는데, 정말 좋아하는데 함께 있을 수 조차 없고 만난다는 사실 조차 범죄가 될 수도 있다. 레오는 에이씨, 하고 다시 술을 들이키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눈망울이 촉촉해졌고 눈에 난 길고 긴 흉터를 따라서 눈물이 흘렀다.
" 그런데!!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 나는 매일매일 무서워서 죽을 것 같은데!! 누가 알아줘! 누구한테 말해! 나 무섭다고, 나는 아직도 그 때 그 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누구한테 말해! "
술에 잔뜩 취하면 주정을 부리고 그 모습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있다. 알고있지만, 그게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늘에야 알았다. 레오는 후- 후- 하고 거칠게 숨을 뱉으며 심호흡을 하는듯 하다가 금새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당신이 오만해지길 바란다. 오로지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도 좋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신의 오만함과 이기심을 받아줄 능력이 있다 자부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오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바란다면 그가 이루어주리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러니 당신이 지금처럼 의견을 더욱 내주길 바랄 뿐이다. 그는 고양이 같단 언급에 과연 그럴까 싶은 눈치다. 생각해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제 사람임을 은근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알고 있단다."
당신의 시선을 따라 내려간 곳엔 백정탈이 있다. 당신의 일생을 함께하던 것이다. 한순간의 비극으로 백정이란 이름을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던 날을 그는 알고있다. 백정을 놓는다는게 무슨 의미인지도 안다. 그럼에도 망설이지 않는다. 무릎 꿇은 당신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눈물을 흘리며 올려다보는 시선이 마음을 요동케 했으나 그는 인내한다. 그리고 짧게 입술을 뗀다.
"내 언제고 허락할 것이다. 네 주인도 필히 받아줄 것이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모습에 그가 시선을 같이하며 미소를 짓는다. 그의 미소는 눈에서 시작되어 입가로 퍼져나가고, 더이상 예민하지 않다. 당신에게만 오로지 온화한 미소를 보인다. 숫제 한 사람을 위해 지금껏 준비해온 것처럼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아무도 죽지 않는 삶이지. 죽이지 않아도 되는 삶. 아가, 마노야. 나는 누군가를 대하는 것에 서투르나 교수가 될 생각이란다. 나 또한 배울 것이 아직 많지. 네가 없으면 온전치 않으니 나와 함께 해주렴. 나와 같이 모르는 것을 배워가지 않으련."
그는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잡아주려 한다. 어느 날 그가 앙상한 손으로 반지를 끼워주었던 날과는 달리, 이번엔 배려있고 상냥한 손길로. 온정어린 손길이 손등을 토닥이며 눈가를 천천히 휘어간다.
"네가 백정이 아니라 마노라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바라. 나와 함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떠한지, 네가 응당 받아야 할 온정은 무엇인지, 감정이란 무엇인지, 내가 너를 얼마나 절애하는지..모두 알았으면 좋겠고 배워가길 바랄 뿐이야."
모두 당신을 사랑하기에 그렇다. 당신이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고, 백정이 아니라도 사랑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조곤거린다. "부디 내 곁에 있어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