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손길을 따라 번지듯 미소가 떠오른다. 곱게 휜 눈과 호선을 그린 입술이 말하지 않아도 그 말이 진심이었음을 내보인다. 진심으로, 그가 도술을 얻지 못 해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머- 무서워라- 뭘 하려고 그러나아."
이제 놓치지 않을, 놓아주지 않을 그를 안고서 그녀도 키득거렸다. 굳었다 풀리는 그의 등을 길게 쓸어내려주고, 그녀의 자퇴를 기꺼이 그러라고 해주는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애초부터 마법부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녀의 인생은 그만 있으면 되었다. 무얼 하든 그와 함께라면.
"흐응. 나 파셀텅은 못 알아듣는데."
뱀을 닮은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빤히 바라본다. 알아듣지 못 해도 어쩐지 의미는 알 것 같았다.
그녀는 한 손을 움직여 천천히 옷 위를 쓸며 그의 목까지 들어올렸다. 손끝으로 그의 턱선을 따라 어루만지고 그대로 목줄로 옮겨가, 가운데 달린 고리에 손가락을 걸어 살짝 당긴다. 투욱, 하고 서로의 이마를 맞대고, 시선을 맞추고서, 곧 겹쳐질 듯 가까운 입술로 소곤소곤 한다.
"있지, 내 사랑. 우리 졸업 전에 추억 하나 만들지 않을래요? 여기 말구, 방에 가서."
단 둘이서만. 이라며 발칙한 말을 해놓고 후후... 웃는다. 과연 그녀의 제안에 그가 따라주었을까. 대답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웃으며 덧붙인 말에 같은 마음이라는 건 어쩐지 알 것 같기도.
참 팔자 좋은 말이다. 레오는 그냥, 이라는 한 마디로 일축하고 이히히 하고 웃을 뿐이었다. 술을 마셔본 적이 없냐고 묻는다면 없는건 아니다. 부모님이 있는 자리에서 몰래 홀짝여본다던가 하는 것으로 맛은 봤었으니까. 취하면 훅 간다는건 맘에드네. 레오는 '응.' 하고 답하며 가마닣 술잔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일이겠지. 레오는 좋아! 간다! 하고 기합을 넣는가 싶더니 그대로 한 잔을 쭉 들이켰다.
" 윽.. 으으으윽.... 포도맛이 나기는.. 하는데.. 으윽.. 상한 포도주스맛.. "
목이 화끈거려, 라는 말과함께 레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안주는 이런 때를 위해서 있는거였나. 레오는 안주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곤 잠시간 우물거렸다. 아무 말 없이 또 한 잔을 한 번에 넘기고 다시 고통스러운 시간. 안주 하나를 삼키고, 또 다시 한 잔을 들이켠다. 이렇게 마시면 취할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있다. 취하고 난 다음에 뭐가 오는지, 그게 궁금하기도 했고 그 힘이 필요하기도 했으니까.
" .... "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금새 취해버렸다. 레오는 눈이 조금 풀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술기운에 볼이 빨갛게 상기됐고 이따금씩 작게 딸국질을 하기도 했다. 그리곤 뭐가 우스운지 버니를 보고 손가락질을 한 번 하곤 파하하! 하고 웃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나면 또 다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감정의 기복이 엄청나게 심해졌다.
" 취했나. 이게 취한거야? 아하하! 내가 취했대! 이게 취한건가봐! 아하하하! "
엄청난 감정의 기복. 기분이 좋아지고 머리가 어지럽다. 세상이 빙글빙글도는 느낌에 말이 필터를 거치지 않고 마구마구 나오는 느낌. 레오는 뭔가 더 하고싶은 말이 있는지 '잠깐잠깐' 하고 이목을 집중시키며 다시 한 잔을 넘겼다. 크으으으... 하고 고개를 푹 숙인 레오는 순간 휙 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당신이 여과없이 소유욕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곁에 있을 시간이 적을 지, 아니면 많을 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나 적어도 같이 있을 그 기간동안 당신을 그 빛무리 가득한 곳으로 올리고싶다. 눈을 감자 내리깔린 속눈썹이 그리도 아름다울 수 없어 눈꺼풀에 입을 맞추려다 겨우내 참아낸다. 혹여나 당신이 부서질까 조심스러운 태도다.
어쩔줄 몰라하던 그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 것은 당신의 질문 때문이다. 드디어 제 주장 펼칠 줄 알기에. 그는 한걸음 다가온다. 조금 더 가까이, 목가를 가볍게 끌어안으려 하며. 이윽고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본 그가 입술을 달싹인다. "물론." 하고는 입을 맞춰오자 눈을 내리감는다. 잠에서 깨 이성이 모두 차지하고 있기에 잠드는 불상사는 없다. 짧은 입맞춤 사이에서 그의 목가는 가르랑 하는 소리 한번 낸다. 낮은 울림을 뒤로 짧은 숨 내쉬며 만족스레 웃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등을 말없이 쓸었을 것이다. 생각할 시간을 주듯 침묵하며 눈을 굴리는 모습을 가만히 담는다. 더없이 혼란스러울 말일 테다. 일생을 백정으로 살아온 당신을 활자 너머로 알고 있다. 본 것과 겪은 것은 다르기에 쉬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천천히, 당신에게 앉으라 종용한다. 뒤돌아 침대 가장자리에 앉힌다면 팔을 뻗어 당신을 안았을 것이다. 꽉 달라붙어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네가 원하는 선택을 하렴, 아가. 혹 네가 선택한다면 죄를 씻지 못한다 하여도 좋다. 허락하지 않는다면 내 허락하도록 만들어주마."
이미 한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아봤으며, 허무와 대화도 하였다. 두번이라 못할까. 영혼인들 바치지 못할까. 그는 당신에게 속삭인다. 숨 섞인 나지막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아가, 이미 나와 살아가고 있지 않더니. 새로운 삶을 배우자꾸나. 그러니 부디 마노야. 나와 같이 일생을 살아가주지 않으련. 너를 절애하기에 네가 없는 삶을 감히 상상하기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