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 말하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그에게 어울리는 나이는 이십대 초중반 정도였다. 열일곱살에 벌써 저 키라면 어른이 되었을 때는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나는 명진이 형의 3~4년 후가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 키가 정확히 몇인진 모르지만 그 때 쯤이면 2m는 가뿐히 넘을 것 같았다.
"그래? 확실히 거기, 개성 넘치니까 말이야!"
나는 엄청 귀엽고 엄청 멋있지만 항상 눈을 끌지는 않는다고, 검지손가락을 세워서 내 뺨을 쿡 찔렀다. 남자가 이런 말에 이런 행동을 하면 보통 인상은 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 모습은 그런 성벽의 장벽을 무시하는 힘이 있었다. 얼굴이 남자답게 멋있는 게 아니라 귀여운 상인 이유도 있었고.
"상관은 없는데. 음. 형 여기 처음 와?"
주변을 살펴보고서는 머릿속으로 이 곳의 구조를 생각했다. 아까 들어올 때 관리인씨가 새로운 꽃이 있다고 말해줬으니까 나도 보고 싶으니 그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여기서 말하는 옆으로 크다는 건 지방을 뜻하는 게 아니다. 어깨나 팔뚝같은 것을 뜻했다. 저 사람은 베어 허그로 바오밥 나무도 부러뜨릴 수 있을 거 같았다. 듣다보면 명진이 형은 특별반 사람들과 많이 만나본 것 같았다. 나는 아직인데. 너무 조용히 돌아다녔나 싶었다. 학교에서도 후드를 꾹 눌러쓰고 다녀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 같았다. 앞으로는 조금 더 당당하게 다닐까. 조용히 속으로 다짐했다.
"좋아! 그럼 따라와!"
가볍게 발 끝으로 울타리 위에 서서 외쳤다. 방금까지 그가 자신을 빤히 보던 것 같았으나 그런 일은 아주 익숙했어선지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내 일생 십육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적이 더 적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을리는 없지만 가슴을 쭉 펴고 화중군자는 연꽃이 아니라 나라고 외쳐도 될 정도라고는 생각한다.
"그리고, 응. 자주 왔어."
코끝을 간지르는 꽃향기가 좋았다. 향기에 색을 입힐 수 있다면 내 눈과 같은 분홍빛이 아닐까? 장미의 붉은 색도 제비꽃의 보랏빛도 좋았다. 풍성한 수국의 귀여움을 따라갈 수 있는 건 드물다.
맞다...그리고 상태창 하니까 생각난 건데...강산이 상태창의 망념치가 이상하네요...? 제가 알고 있는 거랑 많이 다른데 이건 진행 때 말씀드려야 할 것 같고... 정산스레에 정리용 스프레드시트 링크가 여러개 있던데, 내용이 다르더라고요. 제일 밑의 걸 보면 되는 게 맞는 거겠죠?
정확히 20cm만 더 커졌으면 좋겠다. 아니 거기서 5cm만 더. 나도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시야를 가지고 싶었다.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올려다 볼 일이 훨씬 많았다. 연꽃과 같은 아름다움도 좋지만, 장미 같은 성숙함은 누구나 동경해보는 일이 아닐까. 예전 친구 중 한 명은 나보고 벚꽃이라 했다. 좋은 느낌이라 생각했는데 꽃이 작아서 그렇다는 말 듣고 걷어찼다. 영 좋지 않은 과거사에 순간 부글거리던 심정은 흐드러지는 꽃들로 진정되었다. 이 공원은 꽃이 잠 잘 배치되어 있어서 좋았다. 관리도 잘 되어있고. 어쩌면 여기 관리자도 의념 각성자가 아닐까? 상당히 가능성 있는 추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칭하길 호랑이 같은, 남들이 말하길 고양이 같은 움직임으로 공원을 돌아다니며 눈을 빛냈다. 내 눈을 지금 못 보지만 분명 빛나고 있을 거라 생각해. 꽃들에게 시선이 팔리고 있는데 명진이 형이 질문을 했다. 아아. 보통 잘 안쓰는 말이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 화천월지는 꽃 피는 봄날의 달밤 풍경, 화홍유록은 인공미 없는 자연 그대로를 뜻해. "
꽃에 관련된 이야기를 찾다보니 저절로 알게된 말들이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사용했던 게 지금은 버릇이 되었다. 다소 어리고 괜한 버릇같지만 마음에 들었다. 중2병이라고? 나는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 흑역사는 미래의 내가 부끄러워 해줄 것이다.
오늘의 주강산은...평소처럼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특별 수련관 쪽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대략 저런 내용으로 특별반 단톡방에 호들갑을 떨었고, 다행히 그걸 보고 다가오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강산은 지한, 라임과 함께 호박기사에게 첫 타를 날리게 된 것이었다.
"와 줘서 고맙다. 준비들은 됐어? 처음이니까 무리들은 하지 말고!"
게이트에 돌입하며 강산은 스태프를 꺼내들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창을 쓰는 지한과...궁수인 라임. 이 상황에서는 강산이 전열에 서야 할 것 같다.
"빠르게 시전 가능한 것 위주로 가야겠군."
호박 기사가 그에게 무기를 겨누자,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의념을 끌어올려 자주 애용하던 주문을 외웠다. 스태프에 의념의 불길이 깃들자 그는 먼저 호박기사에게 덤벼들어 스태프를 휘두른다.
이건 진지하게 하는 말이었다. 너무 크면 시설 사용도 불편할 듯 했다. 지금도 천장에 잘 닿을 것 같은데. 대신 앞으로 자랄 키를 나에게 주면 좋겠다. 반이라도 좋으니까. 의미를 듣고 좋아하는 형을 보면, 그래도 크다고 다 무서운 건 아니라는 감상을 하게 되었다. 인상이 순박한 것도 이유였다. 생각보다 목련이 어울리는 사람인가. 하지만 역시 무화과가 맞았다. 꽃이 없기에 무화과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로는 그 열매가 꽃이라는 무화과. 꽃은 목화가 제일이라고, 겉보다 실속이 중요한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 그건 이 공원 관리자에게 맞는 말이야.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면 이 신비로운 화원을 만든 사람이 저 너머에서 보였다. 나는 이런건 못 만든다. 꽃을 좋아할 뿐, 피워낼 수 있을 뿐. 척척박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과유불급이란 말은 괜한 게 아니다. 옛 성현의 말 중에 틀린 건 아마 과반수를 넘긴 할테지만 적어도 이 말은 틀리지 않은 쪽에 속하리라 생각했다. 돈이랑 강함 같은 거 빼고는 대체로 잘 맞지 않을까. 가만히 형이 하는 말을 듣다보면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걸 직접 말로 건네는 게 좋을지 아닐지 잠깐동안 고민이 들었다. 물론 내가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잘 아는 건 당연했고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나름 겸손을 떤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명진이 형이 하는 말은 뭔가 썩 좋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싫었다는 게 아니다. 상대에게 신경이 쓰였다. 나는 잠깐동안 고민하다가 말을 던졌다.
" 형은 좋아하는 거 없어? "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걸 알아가는 것. 형의 말처럼 이건 굉장한 일이지만 그만큼 흔한 일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그걸 알아가는 건 보통이지 싶다. 하다못해 게임도, 좋아하니 공략을 찾아보고 지식을 늘린다. 그래서 궁금했다. 저 사람은 좋아하는 게 없는걸까? 정확히는 취미같은 게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