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하니까 사오긴 했는데.. 그냥 구워 먹기엔.." 다 모이기도 그렇고 구워먹을 판때기도 영...
그래서 갈비찜을 만드려는 지한입니다. 왜냐면 정육식당에서 갈비가 세일을 했기 때문이다... 갈비의 핏물을 빼고, 데쳐서 익힌 뒤 조려내는 정석 방식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중불로 양념이 속까지 잘 배어들 때까지 조려내는 동안 데치는 데 쓴 용기나. 부재료들을 손질한 것을 처리하려는 지한입니다. 표고버섯 남은 건 라면에 넣어먹거나 국물내는 데 쓰라고 비닐봉투에 넣어두기도 하고..
"쓰레기통이랑... 설거지.." 그렇게 설거지를 하는 동안 누군가 들어올 거라는 걸 예상하지는 못했습니다. 음.. 아닌가? 갈비찜 향이 확 퍼질 거니까?
설거지를 하고 있어서 이리오너라. 라는 말은 반쯤 흘려들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건 목소리 덕인지. 아니면 깔 때문인지.. 그건 굳이 말로 하는 게 아니에요. 설거지와 쓰레기 처리가 끝나고 싱크대에서 손을 씻으며 준혁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하십니까." 아. 갈비가 세일을 해서 사왔는데요. 라는 말을 하면서 생갈비로 구워먹기엔 좀.. 그렇잖아요. 라고 말합니까?
"와아. 유능한 부하 취급이군요." 너무하셔라. 라고 말하고는 갈비찜은 조금 더 조려야 합니다. 라고 말하며 그동안 밥이라도 퍼고 계세요. 라고 말하며 전기밥솥을 가리킵니다. 뜸들이기가 막 끝난 모양입니다. 아니면 반찬을 꺼내거나 수저라도 놓으십시오. 라는 제안...아니 일을 시키며 갈비찜을 뒤적거려 조림 정도를 확인하네요.
내일을 기약하며 푸르름을 남기고 사라진 나무도 앙상해진 겨울. 하늘하늘 내려오는 분홍빛 비가 그리워질 무렵이면 들르는 곳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테지만 나는 초봄의 꽃망울보다 인내심이 없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익숙한 공원으로 들어갔다. 안면이 생긴, 떠올려 보면 두 번째 방문부터 알아봤던가 싶은 관리자에게 손인사를 하고 안을 돌아보았다. 어떤 특수한 처리라도 한 것인지 사시사철의 꽃이 바깥의 추위에 지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발을 놀렸다. 어느 구석, 파스텔톤의 비가 내리는 벚꽃구역. 나처럼 봄이 그리운 것인지 들른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닿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냥, 빙긋이 웃어주고는 손을 뻗어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았다. 봄내음은 아직 멀지만 잔향 정도는 느낄 수 있는 공원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알고 있었다. 나쁜 시선이 아니라는 건 알았기에 그냥 웃어주고 넘겼는데, 오늘은 눈에 띄는 게 나 혼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꽤 큰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슬쩍 다가갔는데 원근감이 조금 이상한가 싶었다. 근접했을 때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컸다.
"내가 작긴한데."
그걸 감안해도 이 사람은 너무 크지 않아 싶었다.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치켜들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다시 보니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하고 굵은 나무같은 사내를 보면서 하나 둘 뭔가를 연상시켰다. 목련, 사랑초, 라플레시아, 나무수국. 무화과. 무화과?
실수했다는 생각을 방금 했다. 사내가 내가 한 말을 중얼거렸을 때였다. 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그 와중에 눈에 닿는 곳마다 있는 꽃이 참 예뻤고, 덕분에 진정할 수 있었다. 으음..하고 늘어지는 소리를 낸 나는 살짝 뒤로 물러서서 상대의 얼굴을 보기 쉽게 하고 입을 열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내, 제가 사람을 이름보단 꽃으로 먼저 기억하거든요."
그마저도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싶을 때만 그런다고 이어서 말했다. 나도 왜 무화과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의 모습을 보고 곧 납득했다. 몸에 좋고, 무화과의 큰 특징이 몸집이 큰 상대가 잘 어울렸다. 과거의 내 생각은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이해가 나쁘지 않게 되어주었다. 슬쩍 눈을 올려뜨며 성격 좋은 사람일까 생각했다. 다짜고짜 말을 걸었으니 당황했을테고, 그건 물음에도 꽃잎처럼 붙어나오는 듯 했지만 어조가 꽤 정중했다. 무엇보다 이 공원에 온 것을 보면 꽃을 좋아하지 않을까하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네." 그런 갈등을 하는 준혁을 뒤로 한 채로 설거지도 일차적어로 해치웠고. 갈비찜도 조금만 더 하면 되니까.. 두 공기를 퍼면 잘된 거죠. 왜. 뭐. 왜. 그냥 먹으면 될 것이지.. 말은 안하고. 티도 잘 안나서 다행인가.
"아." 뒤져도 상관없다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뒤지는 걸 봅니다. 김치나.. 버섯스튜나.. 닭가슴살 샐러드나.. 제과류를 만드는 이들이 만든 버터바 정도가 있으려나.. 젓가락으로 슬쩍 건드렸을 때 뼈와 분리될 것 같은 갈비찜을 그릇에 덜어서 가져옵니다. 자신은 이정도 먹을 것 같으니. 준혁은 저정도로..
"부족하면 더 가져와서 드십시오." 냄비째 먹으면 그거 세균창궐이잖아. 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그걸 염두에 뒀기에 덜어온거죠.
"버섯스튜는 네트워크에 올라온 거 보니까 웨이 씨랑 라임 씨가 만든 것 같습니다." "닭고기 만두.." 괜찮으려나?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지한은 준혁에게 갈비찜을 퍼줬고.. 지한도 갈비찜을 먹습니다. 부드럽고 양념맛이 잘 밴 갈비가 입 안에서 춤을 춘다.. 오늘 요리는 역시 잘 되었습니다. 당연하지요. 그렇게 예쁘게 색이 났는걸요. 라고 생각하며 뿌듯한 표정을 살짝 짓다가 준혁이 먹는거나 말하는 것에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곤
"감이죠 감." 손맛은 없어도(비닐장갑 끼고 함) 감은 있다..!
"그냥 레시피 보고 꺼낼 때가 되면 알 수 있습니다." 대충 다르다라던가. 그런 걸 말하지만 준혁이가 알아듣기엔.. 괴상한 말일 뿐이다.. 그래도 레시피야 검색하면 다 나온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거기에서 더 넣으면 맛있겠다. 싶은 거를 소리가 다르다거나 색이 다르다는 말을 하니까 글렀지만.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다. 편하게 해달라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몸이 크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넓어지는가가 궁금해졌다. 짧은 고민이었지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키도 덩치도 작지만 마음이 넓은 대인배기 때문이다. ..차화헌불이라고, 상대의 장점에 왠지 나를 묻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그 생각은 그만뒀다. 나는 보기보다 속이 좁은 사람이라고 나도 알고 있다. 듣자하니 그는 특별반인 모양이었다. 겉보기에도 강해 보이니 납득이 바로 되었다. 꽃은 목화가 제일이라고, 겉모습 보다는 실속이 중요하다지만 겉모습에서 알 수 있는 실속도 많은 법이다.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열여섯살인 서 윤! 이야!"
홍두깨에 꽃이 핀다는 게 이런 건가보다. 나보다 한 살 많지만 또래가 맞고 같은 반 학생을 이 공원에서 만나게 된다는 건 좋은 느낌이 강했다. 같은 취미가 있다면 대화가 편하고 즐겁다. 1살 차이인데 대체 키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 건지는 생각하기 싫었다. 슬퍼진단 말이다. 올해, 이팔청춘. 어서 자라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저는 저 개인의 배경보다는 저 자체를 좋아해저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가볍게 말하면서(이게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갈비찜을 챙겨가라는 것에 갈비찜을 선호한다는 걸 알면 해드릴 수 있겠군요.라고 말하며 부드러운 갈비를 밥에 얹어서 암냠. 하고 먹습니다.
"오늘은 없습니다." 그쪽은 있어서 그런 겁니까? 라고 물어봅니다.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라고 생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