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했다는 생각을 방금 했다. 사내가 내가 한 말을 중얼거렸을 때였다. 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그 와중에 눈에 닿는 곳마다 있는 꽃이 참 예뻤고, 덕분에 진정할 수 있었다. 으음..하고 늘어지는 소리를 낸 나는 살짝 뒤로 물러서서 상대의 얼굴을 보기 쉽게 하고 입을 열었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내, 제가 사람을 이름보단 꽃으로 먼저 기억하거든요."
그마저도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싶을 때만 그런다고 이어서 말했다. 나도 왜 무화과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의 모습을 보고 곧 납득했다. 몸에 좋고, 무화과의 큰 특징이 몸집이 큰 상대가 잘 어울렸다. 과거의 내 생각은 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이해가 나쁘지 않게 되어주었다. 슬쩍 눈을 올려뜨며 성격 좋은 사람일까 생각했다. 다짜고짜 말을 걸었으니 당황했을테고, 그건 물음에도 꽃잎처럼 붙어나오는 듯 했지만 어조가 꽤 정중했다. 무엇보다 이 공원에 온 것을 보면 꽃을 좋아하지 않을까하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했다.
"네." 그런 갈등을 하는 준혁을 뒤로 한 채로 설거지도 일차적어로 해치웠고. 갈비찜도 조금만 더 하면 되니까.. 두 공기를 퍼면 잘된 거죠. 왜. 뭐. 왜. 그냥 먹으면 될 것이지.. 말은 안하고. 티도 잘 안나서 다행인가.
"아." 뒤져도 상관없다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뒤지는 걸 봅니다. 김치나.. 버섯스튜나.. 닭가슴살 샐러드나.. 제과류를 만드는 이들이 만든 버터바 정도가 있으려나.. 젓가락으로 슬쩍 건드렸을 때 뼈와 분리될 것 같은 갈비찜을 그릇에 덜어서 가져옵니다. 자신은 이정도 먹을 것 같으니. 준혁은 저정도로..
"부족하면 더 가져와서 드십시오." 냄비째 먹으면 그거 세균창궐이잖아. 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그걸 염두에 뒀기에 덜어온거죠.
"버섯스튜는 네트워크에 올라온 거 보니까 웨이 씨랑 라임 씨가 만든 것 같습니다." "닭고기 만두.." 괜찮으려나?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지한은 준혁에게 갈비찜을 퍼줬고.. 지한도 갈비찜을 먹습니다. 부드럽고 양념맛이 잘 밴 갈비가 입 안에서 춤을 춘다.. 오늘 요리는 역시 잘 되었습니다. 당연하지요. 그렇게 예쁘게 색이 났는걸요. 라고 생각하며 뿌듯한 표정을 살짝 짓다가 준혁이 먹는거나 말하는 것에 으음 하는 소리를 내곤
"감이죠 감." 손맛은 없어도(비닐장갑 끼고 함) 감은 있다..!
"그냥 레시피 보고 꺼낼 때가 되면 알 수 있습니다." 대충 다르다라던가. 그런 걸 말하지만 준혁이가 알아듣기엔.. 괴상한 말일 뿐이다.. 그래도 레시피야 검색하면 다 나온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거기에서 더 넣으면 맛있겠다. 싶은 거를 소리가 다르다거나 색이 다르다는 말을 하니까 글렀지만.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다. 편하게 해달라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몸이 크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넓어지는가가 궁금해졌다. 짧은 고민이었지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키도 덩치도 작지만 마음이 넓은 대인배기 때문이다. ..차화헌불이라고, 상대의 장점에 왠지 나를 묻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그 생각은 그만뒀다. 나는 보기보다 속이 좁은 사람이라고 나도 알고 있다. 듣자하니 그는 특별반인 모양이었다. 겉보기에도 강해 보이니 납득이 바로 되었다. 꽃은 목화가 제일이라고, 겉모습 보다는 실속이 중요하다지만 겉모습에서 알 수 있는 실속도 많은 법이다.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열여섯살인 서 윤! 이야!"
홍두깨에 꽃이 핀다는 게 이런 건가보다. 나보다 한 살 많지만 또래가 맞고 같은 반 학생을 이 공원에서 만나게 된다는 건 좋은 느낌이 강했다. 같은 취미가 있다면 대화가 편하고 즐겁다. 1살 차이인데 대체 키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 건지는 생각하기 싫었다. 슬퍼진단 말이다. 올해, 이팔청춘. 어서 자라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저는 저 개인의 배경보다는 저 자체를 좋아해저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가볍게 말하면서(이게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갈비찜을 챙겨가라는 것에 갈비찜을 선호한다는 걸 알면 해드릴 수 있겠군요.라고 말하며 부드러운 갈비를 밥에 얹어서 암냠. 하고 먹습니다.
"오늘은 없습니다." 그쪽은 있어서 그런 겁니까? 라고 물어봅니다.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라고 생각하네요.
돌려 말하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 봤을 때 그에게 어울리는 나이는 이십대 초중반 정도였다. 열일곱살에 벌써 저 키라면 어른이 되었을 때는 도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나는 명진이 형의 3~4년 후가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 키가 정확히 몇인진 모르지만 그 때 쯤이면 2m는 가뿐히 넘을 것 같았다.
"그래? 확실히 거기, 개성 넘치니까 말이야!"
나는 엄청 귀엽고 엄청 멋있지만 항상 눈을 끌지는 않는다고, 검지손가락을 세워서 내 뺨을 쿡 찔렀다. 남자가 이런 말에 이런 행동을 하면 보통 인상은 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 모습은 그런 성벽의 장벽을 무시하는 힘이 있었다. 얼굴이 남자답게 멋있는 게 아니라 귀여운 상인 이유도 있었고.
"상관은 없는데. 음. 형 여기 처음 와?"
주변을 살펴보고서는 머릿속으로 이 곳의 구조를 생각했다. 아까 들어올 때 관리인씨가 새로운 꽃이 있다고 말해줬으니까 나도 보고 싶으니 그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여기서 말하는 옆으로 크다는 건 지방을 뜻하는 게 아니다. 어깨나 팔뚝같은 것을 뜻했다. 저 사람은 베어 허그로 바오밥 나무도 부러뜨릴 수 있을 거 같았다. 듣다보면 명진이 형은 특별반 사람들과 많이 만나본 것 같았다. 나는 아직인데. 너무 조용히 돌아다녔나 싶었다. 학교에서도 후드를 꾹 눌러쓰고 다녀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 같았다. 앞으로는 조금 더 당당하게 다닐까. 조용히 속으로 다짐했다.
"좋아! 그럼 따라와!"
가볍게 발 끝으로 울타리 위에 서서 외쳤다. 방금까지 그가 자신을 빤히 보던 것 같았으나 그런 일은 아주 익숙했어선지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내 일생 십육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적이 더 적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을리는 없지만 가슴을 쭉 펴고 화중군자는 연꽃이 아니라 나라고 외쳐도 될 정도라고는 생각한다.
"그리고, 응. 자주 왔어."
코끝을 간지르는 꽃향기가 좋았다. 향기에 색을 입힐 수 있다면 내 눈과 같은 분홍빛이 아닐까? 장미의 붉은 색도 제비꽃의 보랏빛도 좋았다. 풍성한 수국의 귀여움을 따라갈 수 있는 건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