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웨이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백 년쯤 전에는 저렇게 끊어서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띄어쓰기 하나만 틀려도 완전히 다른 뜻으로 번역됐다던데. 수많은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대화에 문제가 없다는 건 참 다행인 일이었다. 이런 생각에 정신이 팔려서 두 번 연속으로 웨이한테 다시 말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다행이고. 토오루는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먹고 있어."
웨이의 표정이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저 웨이가 원래 다정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묻는 것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뭐어...학생으로선 나이가 많은 편이다 쉽게 결정할만한 사항은 아니였을텐데. 어떤 목적으로 특별반에 오게되었을까...궁금하지만, 나로선 물어볼 만한 이유가 없었다. 나또한 공부를 목적으로 미리내고에 온건 아니니까. 남들에게 이유를 말하지않는 것처럼, 태식에게도 말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캐묻는 것은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 아닐까.
만일 더 추궁했다면 진짜로 장난 많이 쳐버렸을지도 몰라요? 그야말로 그렇게 여긴다면 그렇게 되어주마. 의 전형.
"그렇죠.. 그럼 제가 마지막이면 불 다 끄고 가겠습니다." 혹시 어디 이상한 거 켰을 때가 있나. 라고 생각해보나요? 사실 지한은 성현이 입 대고 마신 것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건 자신이 또 입을 대고 마셨을 경우에 문제될 수도 있는 사안이지. 자신이 입을 안 댔으니까 상관없다는 마음일 겁니다. 아니 내가 말 안했으니까 괜찮다구(?)
"그럼.. 저는 스트레칭 좀 하겠습니다." 잘 돌아가세요. 라고 말하면서 깔개를 깔고는 그 위에서 쭉 몸을 펼칩니다. 손을 흔들어줄 순 있군요.
"하하! 이렇게 관심받는 거 나쁘지 않네. 나는 내가 그닥 특별하지 않은 줄 알았거든.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미리내고에는 특별반 생긴다길래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모이나 보고 싶어서 온 것도 있어. 그땐 진짜로 나까지 특별반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웨이를 따라 웃는 강산, 오늘따라 더욱 솔직하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가네. 좋다. 나중에 연주도 들려주고, 너희 고향에도 가보자. 그리고 우리 고향에도 와라. 특별반 애들 집에 데려오면 오마니께서 뭐라고 하시려나?"
떡볶이를 집어먹으면서 말한다. 가볍게 친구를 초대하고 싶고, 친구 집에 놀러가고 싶은 마음은 이쪽도 비슷했다...다만 이쪽도 명가의 자제라는 특이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평범하지 않은 방문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내가 친구가 많진 않아서. 마지막으로 집에 친구 데려온 게 언제더라? 초등학교 때던가?"
학교 근처에서 떡볶이를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왠지 잠시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라서, 그는 개구지게 웃어댄다.
미심쩍기 그지없는 눈초리였다. 특별반에는 왜 이렇게 마른 친구들이 많은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웨이는 토오루를 살폈다. 과한 의심의 배경에는 시골의 넉넉한 인심에 둘러싸여 정말 많이 먹으며 자란 웨이의 기준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것도 있었다. 하지만 뭐, 본인이 그렇다면야...
"난 의사도 뭐도 아니니까 잘 모르지만, 너무 말라 보였는걸."
달리 무슨 말을 더 해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이야기해 두고 아차 싶었는지 웨이의 입가에 미미한 당혹이 번졌다. 이런 말, 막 해도 되나?
감옥에 있는 동안 10kg 넘게 빠진 체중을 겨우 복구하는 중이었으니 말라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마른 것이 맞았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유지하는 중인 척 할 필요가 있었지만 감옥에선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괜히 이런 말을 꺼내서 웨이를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65kg까지 간 적이 있었네 어쩌네 하는 얘기는 속으로만 넘겼다.
"그런 말은 뭐라도 먹여주면서 하는 건 어때?"
토오루는 잠시 고민하다가 매점에서 파는 치킨버거가 좋겠는데, 하고 가볍게 덧붙였다. 애한테 밥을 얻어먹는 취미는 없었지만 이러는 편이 웨이의 당혹감과 미안함을 줄일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 싶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강산을 포함한 특별반의 모두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는 웨이의 말을 듣자, 강산은 떡볶이를 먹다 말고 폼을 잡으며 말한다.
"그럴지도. 뭐...어머니께서 허락해주셔야 되겠지만, 같은 특별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강산 또한, 웨이에게 악의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말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크게 불편하게 여기진 않는 것 같았다. 정말 본가로 갈 때 친구를 데려가도 되는지는 역시 물어봐야 알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컵을 다시 보니 떡볶이가 얼마 남지 않아서, 강산은 남은 떡 서너개를 입에 털어넣었다. 입 안 가득 떡볶이를 문 탓에 떡볶이를 우물거리는 양 볼이 볼록 튀어나온다. 다시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입 안의 떡볶이를 목구멍으로 넘겨야 할 듯 했다... 그렇다고 대화할 수단이 아주 없냐면 건 또 아니었지만. 입에 문 떡볶이를 우물대면서 강산은 칩으로 홀로그램 창을 열어 타자를 쳐서 웨이에게 보여준다.
[야 우리 그냥 저녁 좀 일찍 먹는다 치고 여기서 음식 좀 사다가 기숙사에서 같이 먹자. 생각해보니 장보기 귀찮다.]
많이 먹으면 저녁 못 먹는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대로면 분식이 저녁밥이 될 모양이다.
토오루의 일생에서 매점에서 무언가를 사본 경험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다른 학생들이 매점에 간식을 사러 다녀올 시간에 문제 하나를 더 푸는 것이 일상이었지. 애초에 가봤자 살 것도 없었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근처 편의점에 몇 번 끌려가본 적이 있지만 그건 매점이라고 할 수 없었으므로 이렇게 친구와(라고 하기엔 나이 차이가 좀 있었지만 어쨌건 같은 반이니 친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이 매점에 오는 건 거의 1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릴 때는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 와보니 이런 것도 괜찮긴 하네. 토오루는 옆에서 고민하는 웨이를 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