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게이트를 공략하기 위해 대구에 들린 적 있어. 그곳의 게이트는 언데드가 컨셉이었던 모양인데 파티에 위관급 가디언 셋이 포함되어선 생각 이상으로 게이트를 빠르게 공략해나갔지. 그러다가 게이트의 보스를 마주하게 되었는데 보스가 좀비였던 거 있지? 좀비가 왕관을 쓴 채로 근엄하게 왕좌에 앉아있는 거야. 그 장면을 보곤 웃음이 나와서 경배하듯 손을 들어올리고 말했지.
화창한 날씨다. 하늘에는 한점의 구름도 없어 맑고 적당하다. 사람들또한 오늘만큼은 다들 편안한 마음으로 일과를 시작하겠지. 지금은 그저 적당한 곳에서 끼니를 때우고 다음 할 일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수많은 인파속에서 홀로 서있는 아이를 봤다. 처음에는 부모를 기다리고 있나-하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려 했다. ...도저히 신경이 쓰여서 그러지 못했지만,
"...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여자 아이가 이쪽을 바라봤다. 멀리서 봤을 때도 엄청 커다란 인형을 들고있구나 했건만. 곰인형이었나. 나잇대답구만. ...솔직히 귀엽긴 하지만. 들고다니기엔 부담스러운 크기가 아닌가싶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자.
"무슨 일이 있던건데? 나한테 애기해봐."
도대체가 말야. 부모는 어디서 뭘하고 있길래 아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냐고? ...어라? 조금 울려고 하고 있지않아? 어라-? 아차...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보고 놀랐을지도. 으음. 어떡하면 좋지...아, 뭡니까. 거기 지나가는 사람 쳐다보지마시고 그냥 가시죠.
수련도 했고, 수업도 들어야 하지만... 나중에 듣지요. 지한은 이 수업을 복습하지 않았던 걸 태호와 함께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지만 그건 나중의 일. 수많은 인파가 움직이는 것이 마치 커다란 강물이 흘러가는 듯한 물결이 보이는 것처럼 일렁거리는 것에 피로감을 느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면 명백히 이질적인 소리가 들립니다.
"우는 소린데요.." 그것도 어린애. 라고 생각하면서 그 쪽으로 물살을 거슬러올라가는 것처럼 사람들의 소리를 헤쳐나가면 갈색 머리카락의 여성과 아이가 보입니다. 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보는 데에 무리는 없었고.. 특별반 입학식에서 본 것 같은 사람입니다.(*특별반 입학식은 전원 참석했다는 걸 들었음)
"길을 잃어버렸나요?" 아이에게 고개를 숙여 나름 다정하게 말해보는 지한입니다. 지한의 눈매나 외형은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기엔 괜찮은 느낌이니까요. 섬세한 속눈썹이 살짝 처진 눈매로 아이를 달래듯 말하고는 말없이 진정하는 걸 기다리는 동안 연희를 흘깃 보고는 특별반이죠? 라고 입모양으로 물어보려 하네요.
누군가가 다가온다. 머리카락은 특이한 것이, 흑색이였지만 끄뜨머리가 하얗게 점차 물들여져 있는 것이다. 별개로 풍기는 분위기는 편안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 여성이 아이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태도또한, 자신과는 다르게 어느정도 요령이 있었다. 요령이랄까, 그저 다가와서 남들에게 하듯이 뭘하고 있냐 물어보던 나와는 다르게 달래는 모습이 놀라웠달까. 나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 특별반이었나.'
나는 전혀 몰랐지만 상대방은 자신에 대해서 알고있던 모양이다. 입학식이야 하긴 했었지만, 딱히 주변 얼굴을 기억하진 않았는데 말이지. 아이는 조금 진정했는지 눈물을 뚝 멈추곤 힘겹게 길을 잃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다.
"너 굉장하네.."
순수한 감탄사였다. 진정시키기는 커녕 울려버렸는데, 이 사람은 한번 말을 걸자마자 달라졌다.
아마 머리카락을 자른다면 흰 부분이 사라지겠지만. 머리카락이 더 긴다고 해서 흰 부분이 늘어나지도 않겠지요. 언뜻 본 것 같은 느낌이라서요. 라는 말을 입모양으로 천천히 말하머 아이를 마저 달랩니다. 입모양으로 대충 통성명도 했을 듯.
"굉장하다고 하기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좀 진정하자. 연희가 하는 말에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부인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이를 울리신 건가요. 라고 물어오는 목소리는 느릿했지만 아이는 아직도 좀 무서워하는 것처럼 눈을 피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언니는 언니의 일행이에요." "정말이에요. 그렇죠?" 최소한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여자아이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려 합니다. 눈치를 주는 듯 힐끗 바라봅니다. 길을 잃어버렸으니. 경찰서로 가는 거에요. 라고 말하려 하네요. 그치만 이 근처에 경찰서가 조금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으니. 가벼운 음료수라도 먹이고 데려가는 게 좋으려나.
"아-응...뭐...보다시피 인상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서," 자각은 하고있는 편이다. 게다가 자주 얼굴을 찡그리는 편이라 오해를 산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은 타이밍이 좋았다. 나 혼자였음 울음을 그치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혹여나 주변에서 오해하고 이쪽을 나쁘게 바라보고 일이 커졌을지도 모르니까, 응. 정말 다행이구만.
"그으..래. 같은 학교 동창이니까 말이지."
방금 안 사실이지만 말이야. 거짓말은 하지않았다. 그 말에 아이는 동창의 얼굴을 바라보곤, 다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찡그리지않는다...찡그리지마라...휴, 또 울상이 되진 않았다. 뭐 이럴땐 상식적으로 행동하는게 좋겠지. 경찰서로 가도록 할까... 정말이지. 나도 너무 생각없이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럴때만은 머리가 냉정하게 돌아가지않았다.
"그렇게 저도 인상이 좋다고 하긴 그러니까요." 거짓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안 좋은 것도 아닌데.. 지금 연희 앞에서 그런 말을 하기엔 기만이라고 보일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그 얘기는 지한은 그만뒀고. 아이를 조금 더 진정시키고. 경찰서로 데려가려고 하려면..
"그렇죠.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니까요?" 연희의 말에 맞장구치듯이 말하며 연희에게 조금 가까이 섭니다. 팔짱이나 손을 잡는 건 지한에게는 아직 레벨이 부족하고요. 그래도 같은 일행이라는 신뢰성을 주려면 가까이는 서야 하니까요.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나요? 라고 물어보는 지한입니다. 헌팅 네트워크 쪽에서 지도를 검색하면 경찰서의 위치가 보일 거라고 생각해서..
"경찰서를 한번 검색해주실 수 있나요?" 연희에게 물어봅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라는 말을 꽤 진정되었는지 하는 여자아이의 손을 붙잡은 지한입니다.
하하하, 농담도. 그러면 나는 얼마나 안좋은거야? ..라는 걸 굳이 입밖으로 내진 않는다. 지금은 아이가 있으니깐. 사실 인상은 그리 신경쓰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헌터 사회에선 첫인상으로 사람 판단하면 큰일나니까 말야. 겁나게 잘생긴 사람들이 실은 연쇄살인마라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된다. 물론 아이들은 예외다. 그런 것을 구분하기엔 아직 너무 순수하니까.
그런 의미에서지만 저 여성은 인상도 좋은 편인데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첫인상은 좋다고 할 수 있다. 말없이 아이의 손을 잡았는데도 별다른 저항은 없었으니까, 나는 그걸 보며 양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핸드폰을 꺼내 경찰서를 검색하기 위해서였다.
하긴.. 헌터 사회에서 첫인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능력과 인맥이 좀 더 비중을 두게 되는 것으로 옮겨가는 게 아닐까요. 갑질하는 헌터도 있을 거고.. 그런 면에서는 지한이나. 연희나. 매우 뛰어난 능력으로 경계받기엔 충분합니다. 아이야 그런 사정은 모르니까 첫인상으로 판단했겠지만.
"자. 그러면 다녀올까요? 바로 저기 있네요." gp를 넣고 음료수를 뽑아주는 게 바로 근처에서 보여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연희가 검색할 무렵에는 곁으로 돌아왔고요.
"그런가요? 어디 대중교통을 타고 가야 할 거리였다면 힘들었을 텐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뭘 좋아할 지 몰라서 이온음료로 사왔어요. 라고 말하면서 아이에게 여아에게 인기인 애니메이션 그림이 그려진 음료수를 쥐여준 지한이 연희에게 이온음료를 내밉니다. 본인 건.. 없네요. 딱히 목마르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이는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이 그려진 음료수를 마시며 달달하고 맛있는 것에 표정이 풀립니다. 눈물자국을 물티슈로 살짝 닦아주고는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그런가요.." 공평하다는 말에 맞다고 긍정하고는 받습니다. 그것을 부담스러워한다면 그걸 존중하는 겁니다. 길잃음이나 길치라... 불행히도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나는 게 세상이지만(ex:게이트 터졌으여!, 수많은 사람들의 인파에 휩쓸려 떨어져버림, 졸아버려서 내릴 곳을 까먹음 등등등) 적어도 이 셋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 의념 각성자고, 걸어서 갈 정도니까요.
"미아를..데려왔으니까요.. 들어가야 하는 거 맞지요.." 길을 잃었으니까 미아 맞지.. 경찰서에 들어가야죠. 그치만 어쩐지 미묘하게 들어가기엔 거부감이 있는 건. 지한이 그런 곳에 들어갈 일이 적었던 거나. UHN에 등록하지 않았다면 가출소녀였다는 것도 영향이 있을지도.
경찰서와는 인연이라고 해야할까... 초등학교때 의념을 각성한 줄도 모르고 친구를 크게 다치게 만들어서, 그와 관련된 일로 부모와 함께 찾아갔던 적이 있다. 뭐어 친구에게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같은 건 없었으니 정말 천만다행이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쪽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어머니였었다. 먼저 경찰서에 가서 아이를 찾으려하던 모양이다. 정말 다행이라며 안심하는 순간, 부모의 기색이 조금 이상하단 걸 깨달았다.
"정말이지 도대체 어디로 갔던 거니? 항상 틈만 나면 딴 길로 새고...!"
그건 걱정한다기보단, 어쩐지 화를 내는듯한 태도였다. 아무래도 평소에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났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꾸중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부모의 말을 듣는 아이의 모습도 익숙한 듯 하였다. 하지만...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있게 만들면 안되잖아. 아이의 표정이 보이지않는거야?
"...저기요. 먼저 멀쩡한지 확인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상대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다. 그렇기에 예의상 존댓말을 한다. 물론, 상대에 대한 '존중'을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저희가 경찰서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줘서 다행이지. 무방비한 아이에게 누군가 해를 끼쳤어도 그런 말이 나왔을까 싶네요."
최근에는 뉴스에서도 범죄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그런만큼 더더욱 아이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런데..어째서, 이 부모라는 사람은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거지? 내 말을 들은 여성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되려 화를 내는듯 하였다.
"...아이를 찾아주신건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지 말아주셨으면 하는데요."
하아? 남의 가정사? 그러니까 아이의 표정이 안 보이는거야? 지금도 저렇게 어깨를 움츠리고 있잖아? 무슨 말을...하는거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