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가장 가까운 역으로 이동해서 경과를 확인하는게 최선 아닐까. 판단을 대충 끝낸 여명의 머릿속에, 멋진 생각 (이라기보다는)이 떠올랐다. "...잠깐만요, 혹시 이 지하철이 지나가는 선로 중에 야외에 인적 드문 구간이 있을까요? 혹시나 좀 상황이 위험하게 흘러가면... 사람 적고 움직이기 편한 곳에서 준비해서 막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혹시 모르니까 그런 구간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 말을 남기고, 여명은 황급히 청해역으로 이동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찍 막을수 있으면 그게 최고니까.
결국 출동이네. 지하철 주변에서 포착된 A급 익스파. 이렇게 A급 익스퍼가 많았나 싶으면서도 몸은 이미 캐비넷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그드라실 팀 제복을 차려입고서 같이 걸려있던 가면을 손에 든다. 출동하기전에 물어볼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바빠보이는 예성씨 앞으로 가서 물었다.
" 혹시, 지하철이 몇량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지하철의 자기장을 조절하는 컴퓨터는 각 차량에 설치되어있는겁니까? 아니면 지하철 선두와 선미의 차량이 전체적으로 조절하는 구성입니까? "
CCTV 화면을 본 사민이 이마를 훔쳤다. 식은땀이 나지 않는데도 그랬다. 분명 저기 안에 내가 있었다면 기절했을거야. 기절했을거야... 흡,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다잡은 사민이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딱히 좋은 머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제기랄... 물리 시간에 집중도 좀 할 걸.
"그럼 저도 지하철쪽으로 갈게요. 익스파 반응이 있다니까..."
슬 눈치를 보며 소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범인을 잡으면 제일 좋고, 여차하면 힘을 써서라도 막아봐야할 터였다. 일단 제가 제일 잘하는 걸 하겠다는 말이었다. 겁 먹은 것치고는 현장을 향하는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확실히 빠른 속도였다. 화면 너머인데도 질풍이 불어와 머리칼을 넘기는 것만 같은 속도다. 브리핑을 전해들은 유우카가 떠올린 것은 '레일건'이었다.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력을 이용하여 철판마저 관통할 정도의 위력과 속도로 발사하는 총이 있다고... 일본에서의 선배에게 들었던 적이 있는 것이었다. 그 선배는 서바이벌 게임에 한창 빠져있어 쏘는 것에 관해서라면 전문가정도로 박식했었다. 자성을 이용하여 쏘는 총이라니. 그런 물건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실감마저 한 적은 없지만. 그런 것이 청해시의 바로 땅 밑에서 버젓이 내달리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둔다면...'
안에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역사(驛舍)자체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떠밀리듯 유우카는 자연히 외투를 몸에 걸치고 현장으로 향했다.
지하철이 뭐가 어쨌는지는 몰라도 익스퍼 짓이면 참 할짓도 없다. 그는 꿀을 탄 미숫가루를 쭉 빨아 마셨다. 듣자하니 돈을 요구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양심이 있는걸까 싶었다. 그는 턱을 괴며 빨대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일하기 싫다. 평소에도 그랬고, 고작 두번째 출동이라고 해도 격하게 싫다. 아파트를 싱크홀에 밀어넣지를 않나, 이젠 인질극을 벌이려는 작정으로 자기부상 이하생략을 뺑뺑이를 치려 들지를 않나..무엇보다 그가 여기서 할 수 있는 폭은 아주 적다. 그는 힘이 강하지도 않고, 대단한 능력도 아니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예성 씨를 따라갈게요. 거기서 뭐 읽을만한게 있으면 알려드릴 테니까 아저씨는 신경쓰지 말고 힘내기?" 하고는 냉큼 짐을 챙겨 밖으로 향하려 했다. 예성 씨..
우선 제복은 갖춰 입었지만 그뿐이다. 신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 나뒀던 음료를 도로 집었다. 쓰디쓴 아메리카노. 다음엔 단 걸로 시킬까? 얼음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카페인 보충하기를 잠깐. 예성이 중앙센터로 향하게 된 싶은 흐름에 눈을 끔벅이고는 손을 반쯤 들어올렸다.
"나 따라가도 되나? 아니, 거, 있잖아요... 혹시 거기가 어두컴컴할지도 모르고(?)? 손전등 하나쯤 필요할지도 모르고? 차예성 씨를 노리는 나쁜 놈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광선검 하나쯤도 필요할지도 모르고?"
아무 말을 던지며 재빠르게 구실을 만들어놓는다. 그래, 이만큼이나 소용을 만드는 것이니 절대로 위험한 임무에서 비겁하게 쏙 빠지는 것이 아니다. 생명수당 삥땅 아니라고.
"안에 사람이 얼마나 타고 있죠? 그리고 조금 전에 전화로 신고가 들어왔는데, 기관사와는 연락이 가능한가요?"
기계 조작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범인이 내부에 있을지도 모르고, 자초지종을 파악할 필요도 있다. 멈추지 않고 가속을 더해가는 지하철, A급 익스파 반응. 중요한 내용들을 집어넣고 출동 준비를 마쳤다. 한시가 바쁘니 별다른 첨언 없이 필요한 말만 하고서 그 역시 서둘러 밖으로 나선다. 소라의 지시대로, 목적지는 청해역이다.
"따라올 사람은 따라와도 좋습니다. 그리고 역으로 향하는 분들은 부디 지하철을 멈추겠다고 맨 몸으로 뛰어들지 마십시오. 시속 220km면 막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죽게 될 겁니다. ...최악의 경우는 애초에 접근이 불가한거지만. 아무튼 정보는 지금 여기서 찾아볼 수가 없으니 중앙센터에서 묻고 답하겠습니다."
그렇게 익스레이버의 모두는 각자 일제히 흩어졌을 것이다. 그 와중에 예성을 애쉬가 찌르려고 했을지도 모르나 예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중에 해달라는 나름의 의사표시였다. 지금은 상당히 급한 상황이었으니.
<중앙센터 쪽> 도시철도공사의 중앙센터쪽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안절부절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이 모두의 눈앞에 들어왔을 것이다. 눈앞의 커다란 모니터에선 유난히 하나의 점이 빠르게 계속 뱅뱅 돌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게 문제의 4호선 열차인 모양이었다.
"청해시 특수 수사본부에서 왔습니다. 지하철이 폭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조사겸 해결을 위해 왔습니다. 일단, 관련으로 물어볼 것이 몇 개 있습니다."
"아. 네! 네! 경찰이로군요! 안 그래도 연락을 했었고 방금 전에도 다른 경찰분들이 왔다갔는데... 아무튼 얼마든지 물어봐주세요!"
이 공사의 사장으로 보이는 60대 정도의 남성이 바로 달려와서는 예성의 말에 대답했다. 붉은색 안경을 끼고 있고, 턱수염이 덥수룩하나 확실하게 예복을 차려입고 있는 그 남성은 곧 들려오는 예성의 물음에 대답했다. 이어 예성은 모두에게 통신을 걸어 전달했다.
"일단 4호선의 노선은 모두 지하로 달리기 때문에 지상으로 올라가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조건은 어디라도 비슷할 겁니다. 지하철은 총 12량. 컴퓨터는 선두에 하나, 선미에 하나씩 달려있는 모양입니다. 덧붙여서 자동운행방식이라서 운전수도 필요없다는 것 같은데, 만일의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관사 하나가 탑승한 모양입니다. 이름은 최경미. 올해 26살의 여성입니다. 일단 알아두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열차는 이론적으로는 최대 시속 1000km까지는 달릴 수 있다는 모양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이니 실제로 그 정도로 달리진 않지만, 만일 그 상대로 방치한다면 그렇게 달릴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안에 탑승한 인원은 총 700명. 그리고 범인이 여기로 연락했다고 합니다. 인원 한 명 당 몸 값 100만원. 즉 총액 7억원을 요구했습니다. 기관사와는 일단 연락은 된다고 합니다. 차후 다른 정보가 필요하면 알아보겠습니다."
이어 예성은 바로 사장을 바라보며 컴퓨터의 제어시스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어 예성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들기며 조작하려고 했다. 자신의 익스파를 알게 모르게 사용하면서 컴퓨터의 기능을 조금 더 확대하긴 했으나 곧 혀를 찼다.
"안돼. 멈출 수 없어. 네트워크가 연결이 되지 않아. ...내부에서 컴퓨터가 꺼져있어. 두 쪽 다!"
<역>
모두가 청해역으로 들어오자 이내 안절부절 못한 표정으로 서 있는 이건우 경장이 빠르게 모두를 맞이했다. 그는 바로 경례 자세를 취하면서 이제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충성! 여러분들도 지하철 사태를 듣고 오신겁니까? 저희도 공사쪽에서 연락이 와서 받고 바로 출동하고 사태를 파악중인데.. 일단 안에는 700명이 타고 있고, 범인이 인당 100만원. 즉 7억원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이런 인질극에 넘어가선 안되기에 경찰도 그렇고 공사도 그렇게 돈을 준비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어 건우는 얼마든지 협조하겠다는 듯이 모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 쪽으로 인도했다. 일단 주변 사람들은 모두 대피시켰는지 여기저기에 폴리스 라인이 쳐져있었다. 이어 계단을 내려가며, 정확히는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곳까지 내려가면서 건우는 이야기했다.
"혹시나 알고 싶은 정보나 그런 것은 없으십니까? 이것도... 익스파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라고 예상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