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스레는 에반게리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스레입니다. ◉ 설정 및 스토리는 완전 창작이 아니며, 스토리 분기에 따라 TVA+EoE / 신극장판 기반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 스토리는 총 4개의 페이즈로 나뉘어있으며, 페이즈4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나면 엔딩입니다. ◉ 진행은 평일과 주말 모두 밤 10시~11시부터 12시~01시까지 진행되며, 진행이 없는 날이 될경우 미리 스레에 공지드릴 예정입니다. ◉ 당신의 캐릭터가 사망 및 부상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본 스레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 규정(17금)을 준수합니다. 기준 등급은 2-2-3-2 입니다.
오른켠에 방 두개, 왼켠에 방 하나, 현관쪽에 보이는 화장실 하나. 좁은 현관으로 들어서면 다음과 같은 풍경이 반겨주고 있습니다. 베이지톤의 벽과 가구로 꾸며진, 혼자 지내기에는 확실히 넓은 집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명이 모여 놀기엔 적합해보이는 공간입니다. 비교적 넓은,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은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었기에 이제 막 정리하였는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현관쪽에 놓인 쓰레기봉투로 보아 아마 사실인 것 같습니다.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유즈키 사오리는 여러분들에게로 손을 흔듭니다. 잠시 자리를 비울 것이라는 듯, 그러나 오래는 걸리지 않을 것처럼.
"금방 버리고 올게~! 잘 놀고 있으렴 얘들아! "
쾅, 하고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유즈키 사오리는 모습을 감춥니다...
오늘, 여러분들께서는 전술작전부 부장의 연락을 받고 이곳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첫 사도와의 전투를 기념하는 뒤풀이파티라면서 오게 된 곳은 유즈키 대령의 집이었는데, 추측컨대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평소에는 잘 모이지 않을 파일럿들 전원을 모이게 하다니 그것만은 대단하다 할 법합니다. 연결고리라고는 에바에 탄다는 사실 하나뿐인 이들이 모였으니까요. 오늘은 또 평소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을 사람도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벽에 넓게 깔린 베이지색 소파에 타치바나 아유미가 앉아 졸고 있는 게 보입니다. 상당히 곤히 자고 있으니 지금은 깨우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때가 되면 알아서 깨어날 겁니다.
거실 중앙에 놓인 넓은 탁자에는 갖가지 과자류나 빵, 쇼트케이크 등이 정돈되어 올려져 있습니다. 감자칩이나 쿠키류, 비스킷류 등 비교적 다양한 종류입니다. 개최자가 아이들 입맛을 생각하여 고민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음료수는 탄산음료, 이온음료, 그냥 주스 등 알코올류를 제외한 다양한 종류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냉장고를 열어 꺼내가시면 됩니다. 이상한 곳을 열었다간 수상한 맥주캔이 다량으로 숨겨져 있는걸 발견할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이번엔 정말로 가족처럼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희망은 보기 좋게 끊어졌다. 또 누군가에게 넘겨진다. 이번엔 안면도 없는 생판 남인 사람에게 넘겨졌다. 거기에 내 의지는 요만큼도 들어있지 않았다. 나는 그저 위에서 내려온 결정에 따라 이리저리 넘겨질 뿐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화가 나고, 비참하고, 우울하고, 분해서... 방에 며칠 정도 틀어박혀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보호자 대리가 된 이 사람이 뭘 하든 어떻게 하든 아무 상관없이 신경쓰지 않고 말이다. 앞으로 거처가 될 곳에 도착하면 넉넉잡아 일주일 정도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기도 했었다. 그래. 그랬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너무나도 굉장한 집이었다. 주로 위생적인 쪽에서.
...아니, 이걸 집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솔직히 집보다는 쓰레기 집하장이라던가 매각지라는 말이 좀 더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이었다. 실례가 될 것이 확실해서 차마 말로 꺼내진 못했지만 내가 유즈키 씨의 얼굴을 보며 지은 표정에서 50% 정도는 묻어나왔을 것이 확실했다. 그.. 아무튼 보자마자 부정적인 감정마저 사라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살았던 거야? 잠은 잘 수 있었던건가? 밥은 어디서 먹었던거지? 벌레는 안 나오는 건가?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하나? 틀어박히고 자시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청소가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큰 스케일로. 아니, 틀어박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치워야한다. 얼떨결에 에바라는 것에 탔을 때보다 더 비장한 자세로,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라는 것이 어제까지의 이야기. 치우고 나니까 확실히 알겠다. 이 집은 진짜 넓은 집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정도의 공간이 이제는 확실하게 드러나 있었다. 오늘 모이는 사람들-파일럿들은 아마 이 집의 첫 모습을 상상도 못하겠지... 태평하게 소파에 앉아 졸고 있는 한 사람을 슬쩍 보면서 콜라를 홀짝였다. 푸른 머리카락. 어디선가 본 기억이... ...그래, 역에서 나왔을 때 봤던 것 같은데. 하지만 금방 사라졌었고, 잘못 봤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땡볕과 새까만 아스팔트 위에서 선명하게 보이던 푸른 머리카락의 소녀가, 그냥 착각이었다고 하기엔... ...뭐였을까, 그건. ...이 아이랑 관계가 있는 걸까나. 본인이 일어나면 그때 물어봐야겠다. 혹시 그 날 역에 갔었는지. 한참 나중의 일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 겨우 과자파티? 외식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정말...“
약간의 불평을 담아 중얼거리면서 과자로 손을 뻗었다. 불평하는 것 치고 잘 먹네라는 말을 들으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왜 뭐 왜. 불평이랑 과자가 맛있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그리고 그렇게 거대한 적하고 싸워서, 나름대로 좋은 성과도 낸 것 같은데 좀 더 대단한 걸 받을 줄 알았단 말이야. 그리고 난 청소까지 했으니까 더 고생했는데! 선객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소파의 반대편에 앉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뭐, 혼자 불평해도 아무 소용 없으니까.
가족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리사는 먼저 나갔다. 대학 공부로 도서관에 틀어박혀 바쁘다고는 하는데, 무슨 공부를 하느라 그렇게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지는 부모에게도 미츠루에게도 잘 말해 주지 않았다. 오늘은 자신도 늦게 돌아올 것 같다고 그녀에게 알려주려 했으나 역시 그만두었다. 의례적인 대답만 돌아올 것이 뻔했으니까.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카시마 미츠루는 유즈키 사오리의 아파트에 감자칩 한 봉지를 들고 들어와 있다. 지금 보니 정말로 다종다양한 과자와 음료수가 있어, 굳이 자기 것을 안 들고 왔어도 될 뻔했다. 뭐, 준비한 양을 알았어도 신세 지기만 하는 건 조금 불편하니 어차피 뭐라도 챙겨 왔겠지만. 과자를 먹으며 집안을 둘러본다.
"집안이 확실히 혼자 살긴 넓네."
방금 막 치웠다고 해도 꽤나 괜찮게 정리된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졸고 있는 타치바나 아유미와, 과자를 먹는 초호기 파일럿 카시와자키 나츠키를 보며 미츠루는 음료수를 빨대로 마시고 있었다. 배가 그리 고픈 건 아니었지만 집주인이 열심히 준비했으니 어느 정도 먹긴 해야지.
"......."
사오리 씨가 나갔더니 할 말은 없어졌다. 업무 이야기, 작전 이야기, 에바 이야기 외의 개인적인 말들을 섣불리 꺼내기 어려웠다(고 쓰고 그냥 내키지 않았다고 읽는다). 타치바나를 깨우는 것은 어려워 보이고, 카시와자키에게 말을 거는 것도 지금의 자신에겐 아주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만,
>>804 음악은 안 틀어? 라는 말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악이라. 나름대로 파티니까 트는 쪽이 좋겠네. 테이블에 콜라를 내려놓고 MP3를 꺼냈다. 나름대로 승전 축하 파티니까 좀 밝은 분위기가 좋겠지? 적당히 고른 곡을 반복으로 해놓고 스피커에 연결하자 밝은 곡조가 흘러나왔다. 자고 있는 사람을 배려해서 낮은 볼륨이긴 하지만, 흥을 돋구기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쪽 맘에 들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트니까 분위기가 좀 사는 것 같네.“
나쁘지 않은데? 살짝 웃었다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꽉 잡았다. 뭐, 음악 하나 튼 걸로 들뜬 건 아니니까...
>>812
"...하긴 그렇네. 밖에서 얘기하기엔 곤란한 것도 있고.“
에반게리온이라던가, 사도라던가. 외부에서 떠들기엔 곤란한 주제긴 하지. 그래서 이쪽으로 모이라고 한 걸까? 어쩌면 그런 걸수도 있겠다. 뒤늦게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수제라고?
"신기하네. 직접 만든다니. 번거롭지 않아?“
청소만으로도 기가 빠지는데, 요리는 또 얼마나 귀찮고 힘든 작업일까. 살짝 흐린눈을 하고 어제까지의 여정을 상기하자 진절머리가 난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아예 본인 몫을 채비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 뻔했다는 미츠루의 생각은 요리미치의 간식을 보고 또다시 점화되었다. 만쥬를 두 상자 챙겨 온 녀석에 비하면 자신이 가져온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이거 다 먹을 수는 있는 걸까? 남은 음식은 어떻게 하느냐는... 자신이 상관할 바는 확실히 아니다.
"그럼 초코만쥬 하나 먹을게."
초콜릿색 상자를 열고 만쥬 하나의 포장을 까서 한 입 베어문다. 단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도, 맛있게 달다. 남은 부분도 입에 넣고는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온다. 그리고 거실로 돌아오면서 냉장고를 지나치는데, 마침 그것을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
"음료수는, 안 마셔?"
상대를 보면 어쩐지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 같아서 무심코 그리 말해 버린다. 괜한 말을 꺼낸 것일까. 물론 안 마신다고 해도 미츠루 본인 것만 가지고 오면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