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이 왔고 분명히 위키 관리자가 있는데, 개인 사정으로 접속을 못하신다거나 작업이 늦어지신다거나 그런 언급 없이 위키 페이지를 3일씩이나 안 만들어주시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싶어서 일단 준혁이 위키 페이지는 제가 만들었습니다. 저였으면 제 위키 페이지만 이렇게 제작이 늦어지게 되면 솔직히 조금 서운할 것 같아요.
편지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보낼 것도 아니었으니까. 토오루의 방 서랍에는 이런 편지가 수십 개는 더 쌓여 있었다. 내용도 전부 비슷했다. 자신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뭘 했는지, 얼마나 만나고 싶은지... 편지지에 찍힌 발자국을 보던 토오루는 편지를 찢어버렸다. 이런 건 서랍에도 못 넣지.
>>257 이래저래 말했지만 결국 학교의 흔한 아무거나 집어다 쓰는 친구..! >>258 10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그리고 10이랑 14라니, 어느쪽이 좋은 수고 어느쪽이 나쁜 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14라니까 자군야포가 생각난ㄷ >>260 멋진.. 가...? (머릿속의 중학생 태호 : 우우 볼펜가지고 쩨쩨하게 굴지마라~~) >>261 성장했구나, 가루몬 (노리고 있는 필살 대사)
"다행입니다." 편지를 다 읽지않은 것도 다행이고. 언젠가의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자신의 중2함을 발산하는 종이가 아닌 것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구겨지고 발자국이 있어서 보내기 곤란래 보입니다.." 하긴 그런 걸 보내는 것보다는 그냥 다시 쓰는 게 맞겠다 싶긴 하지만 이렇게 바로 찢어버리는건 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가? 라고 생각하는 지한입니다.
"음.. 네. 그렇습니다." 아. 입학식 때 대부분 본인보다 키가 큰 탓에 제대로 모르긴 하지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같은 특별반인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하며 저는 신지한이라고 합니다. 라는 가벼운 소개를 말합니다. 그쪽은요? 라고 말하는 듯한 반사광 하나 없는 새카만 눈이 토오루를 향합니다. 물론 의념을 발휘한다면 저 새카만 것은 거울이 되겠지만.
그러니까 알아서 무리하지 말고 잘 하라고 하는 은근한 걱정을 최대한 돌려서 말한 토오루는 일단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명진의 상식 수준을 간단하게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안에 들어가면 이런 걸 설명할 시간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고. 최소한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정도는 체크해둬야 행동방침을 정할 때 참고할 수 있으니까.
"그 다윈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머저리들, 그 스토커한테도 갔답니다. 그래놓고 거기서 했다는 말이... 안 오면 절 죽인다고 했다더군요."
빈센트는 그 다음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공포에 질린 부두의 하역 노동자들, 민간인들을 죽였다가는 빈센트가 뒷수습을 못할까봐, 벌벌 떨면서 광증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는 베레니케, 그리고 몸이 위아래로 절단된 채 기어다니는 "자연선택"당한 멍청이들. 다행히도 베레니체가 민간인들은 내버려두는 최후의 이성은 있었기에 망정이지...
빈센트는 그 다음에 일어난 일들을 담담히 말한다.
"그 미친 친구가, 그새 제 버릇 못 버리고 그 녀석들 등에다가 제 이름을 새겨놨다더군요. 제 딴에는 그게 연애편지인 줄 알았나 본데... 제기랄. 그거 수습하느라고 고생 좀 했습니다."
동명이인 아니고 본인 맞아. 여태 비슷한 질문에 꽤 시달려왔던 터라 지한이 물을 틈도 주지 않고 말이 이어졌다. 오비히로 그 새끼 맞다고. 같은 특별반인데다 편지도 주워주고 했으니 지한에게 간단하게라도 답례를 하고 싶었지만 지한이 자신과 같이 있고 싶지 않다면 그걸로 끝이었기 때문에, 토오루는 일단 지한의 반응을 기다리기로 했다. 싫다면 보내주고. 아니면 밥이나 한 끼 먹는 거고.
토오루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지한은 오비히로.. 아 그런 것도 있었지. 라는 것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신문을 봐도 그다지 주의 깊게 보지 않았을 거고요. 아 물론 신 한국 쪽이었다면 세상 흉흉하네. 정도는 말했겠지만.
"그렇군요." 그럼 토오루씨라고 부르면 됩니까? 라고 물어보는 지한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일이라도 있다면 보내드려야지. 같은 생각을 하며 기다립니다. 둘의 생각이 표현은 조금 달라도 비슷하게 흐르고 있어서 둘 다 떠나지 않은 채로 기다리는데. 너네들 계속 그렇게 있으면 부담시러워하는 일반반 길 막는 거 아니니.
그렇다면 게이트 안에서 개별행동을 하게 됐을 때의 지침을 정해놓는 게 나을까. 토오루는 벽에 몸을 파묻다시피 하며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80년 전이었다면 척추수술 1800만원 소리 듣기 딱 좋은 자세였다.
"만약 게이트 안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흩어지게 되거나, 혼자 이상한 곳에 떨어졌거나, 뭐 그런 상황이라면 너무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면서 근처에서 제일 발전한 도심가나, 어쨌건 유동인구가 많은 쪽에 있어. 그런 곳이 소문이나 정보를 듣기도 편하고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수상하게 보이지도 않을테고... 이렇게 만날 곳을 정해둬야 비상사태에 대비할 수 있으니까."
의념 때문에 학생들 대부분이 머리색 눈색 할 것 없이 휘황찬란했던지라 지한의 검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오히려 특이한 느낌이었다. 토오루는 가만히 지한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가 토오루 씨, 라는 호칭에 또 휘청거렸다. 저번에 명진도 그러더니 대체 왜? 이름 부르는 게 그렇게 좋은 건가?
"토오루 씨 말고 키사라기 씨."
너무 당황해서 밥을 먹었냐고는 묻지도 못하고 있는 와중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빈센트도 이야기할 부분이 있다고 느껴서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어차피 빈센트는 이곳에서 일주일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하는 처지고, 태명진은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1시간 내로 당장 일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피차 시간은 보내야 되겠다, 빈센트도 자기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그러면 뭐... 저도 자세히 이야기하면. 망념을 쓸 필요도 없는 잔챙이 여럿이랑, 그나마 붙어볼만한 놈 하나였습니다."
빈센트는 벌벌 떨리는 한쪽 손을 들어, 손가락을 딱, 딱, 튕긴다. 그러자 불꽃이 일어났다. 빈센트는 그 불꽃이, 더 커졌을 때 그들에게 무엇을 했는지 설명했다.
"그 때 정말 짜릿했죠. 온 몸에 불이 붙어서 도망치는 놈, 흔적 없이 사라진 놈, 순식간에 사라진 양 팔을 찾아다니던 놈. 그런데... 더 큰 재미가 있더군요. 태명진 씨라면, 은신해서 아예 볼 수 없는 적을 어떻게 상대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