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림이 자신의 농담를 듣고 웃자 화연도 마음편히 웃었다. 농담은 역시 티키타카가 잘 되어야 농담하는 맛이 난다. 청림이 느릿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화연도 똑같이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편하다. 찬찬히 웃음이 멎어들고 짧은 정적이 있자 화연은 어색함을 못이기고 컵의 냉수를 들이킨다.
"대단하네요. 사실 전 스카웃 되었거든요. 돈 많이 준다고 해서 왔어요!"
참으로 불순한 이유. 그러나 가장 확실하게 쐐기를 박은 이유. 죽은 동료들을 위해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 같은 거창한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망설이던 화연을 움직인 것은 결국 돈이었다. 돈은 어쩌면 그 어떤 익스퍼보다도 더 강력한 능력이다. 돈 자체를 두려워해야할 것이 아닌 돈을 가진 자를 두려워해야하는 것도 익스파와 비슷하다.
화연은 너무 속물적인 이유를 당당하게 이야기했나며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이다. 돈을 많이 준다고 안했으면 굳이 동료들과 헤어지면서까지 이곳으로 오진 않았을 테니까. . "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군요. 역시 경위는 아무나 되는 건 아니군요. "
청림을 칭찬하여 물을 마시며 많은 말로 말라버린 목을 축인다.
" 경찰이라... "
화연은 음...하며 고민하다 대답한다.
"좋은 직업 같아요!"
왜냐하면이라고 덧붙이며 조금 더 고민한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직업이니까요!"
어린아이들에게는 이놈아저씨가 되고 10대들에게는 잔소리꾼이 되고 2,30대들에게는 친구가 되고 40대들에게는 자식들이 된다. 선한 이들에게는 민중의 지팡이가 되며 악인에게는 심판하는 검이 된다. 세상에 경찰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진 직업이 몇이나 될까?
상대의 솔직한 대답에, 청림은 괜히 거창한 말만 늘어놨나 살며시 후회가 들더란다. 솔직히 특수 수사대라는 삐까번쩍한 네임택과 두둑한 보수가… 음,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현대 사회에 중요한 게 돈 말고 더 있던가. 옛말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다고들 했지만 요즘 세상에는 아니다. 오히려 돈이 없으면 가지고 있던 것도 잃고 마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돈으로는 추억도, 사랑도, 우정도, 편안한 인생도 살 수 있다. 돈이 없다면 모두 잃어버리고 마리라.
" …아니, 뭔가 오글거리네… 그냥 뭐, 그렇지 않나~ 하고 해본 말이에요. 나 그렇게 막 직업 정신 투철한 사람 아닌데… 사람들 안 볼 때는 무단횡단도 하고, 어, 농땡이도 치고 그래요. "
어째 대답이 횡설수설하다. 아무래도 너무 폼을 잡은 거 같아 얼굴이 화끈이는 모양이다. 이래서 가식이 나쁜거라니까. 꼭 후회를 해요 후회를. 발그레해진 얼굴이 부끄러움 때문인지, 술기운 때문인지. 괜히 머쓱한 마음에 그녀가 술잔을 쥐고 한 입에 털어넣었다. 으, 잠시 표정을 구기던 그녀가 다시금 냉수를 벌컥인다.
" 그렇네요. 합법적으로 사람을 팰 수 있는 직업이죠. "
…농담이겠지? 청림이 짓궂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 보람이 없으면 못 할 일인 거 같아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말야. "
청림이 제 술잔을 채웠다. 언뜻 보니 상대는 술을 마시지 않는 듯 했다. 그래도 예의상, 술잔을 슬쩍 들어보며 마시겠냐는 의사를 묻는다. 청림이 후, 숨을 내쉬었다. 짙은 향수 냄새보다 알코올 향이 더 강하게 올라오는 것만 같다. 다른 사람들은 뭐들 하고 있나. 주위를 둘러보지만, 제법 오른 술기운에 주변이 잘 눈에 들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랬다. 업무 중의 적당한 휴식은 능률을 크게 올려준다고. 누가 말했냐고? 잘 모르겠다만, 기억이 안나면 오늘부터 내가 말했다고 기억해두면 좋겠다. 어쨌든 새로운 근무지로 오고나서 한동안은 일반적인 경찰 업무만 수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관할구역 순찰을 다녀오고서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서 순찰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크게 특이사항은 없었기에 금방 끝나버린 보고서를 저장해두고서 나는 휴게실로 향했다. 그야, 일하다가 잠깐쯤 쉴 수 있는거잖아?
휴게실에 들어가자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니, 익숙하다고는 못하려나. 다들 만난지 얼마 안되었으니까. 그래도 며칠동안 봐왔으니까 뒷모습 정도로 누가 누구인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분명 이름이 .. 연우, 아연우였던 것 같다. 이름 외우는건 좀 서툴렀지만 그래도 같이 일할 동료들 이름은 빨리 외우자는 생각에 열심히 외운 보람이 있다.
" 안녕하세요, 연우씨? "
역시나 사무실에선 가면을 안쓰기로 해서, 가면은 벗은채로 그녀의 반대편 소파에 걸터앉는다. 이 소파 푹신푹신하네. 정부에서 돈을 많이 주니까 가구들도 고급진걸 쓰는건가. 그렇게 소파의 푹신함에 감탄하고 있으니 주머니에 무언가 들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사둔 음료수였는데, 1+1 으로 구입한 것이라 하나는 주머니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마 재킷주머니라서 몰랐던 것 같은데.
" 이거 드시겠어요? "
상대방에게 음료수를 보여주며 물었다. 엄청 차갑지는 않지만 먹을만한 온도였고 애초에 이온음료니까 너무 차가운건 몸에 좋지 않다. 짬처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나중에 먹으려고 주머니에 넣어둔거니까 짬처리는 절대 아니다. 절대,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