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단호하게 틀렸다를 말할 수 있어야 옳은 집단이라고 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완전히 틀린 것은 없다. 잘못된 문장 속에도 옳은 단어가 있고 옳은 단어들로 고쳐나가면 결국 문장은 맞는 문장이 된다. 물론 그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겠고, 상대가 참지 못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틀린 것과 다른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공감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와, 공감하되. 다른 의견의 차이는 극명하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정석으로도 가능하겠지만요. 어쩌려나요? 저는 재능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교양있게 웃어봐요.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쉬웠으면 제가 여기에 있을까요? 라고 묻고 싶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지 않겠죠? 동전을 던져서 백이면 백 앞면과 뒷면만 나오면 재미 없으니 바닥에 꽂혀서 세로면이 나오는 게 재미있다! 라고 뒤라님께서 생각하실 것 같아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죠. 역시 뒤라님처럼 확 와닿는 말이 아니네요...
"그렇죠?"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신성모독인걸까요? 뒤라님... 신자 수가 적은 건 이래서일지도 몰라요... 묘기 정도는 부릴 수 있는 어엿한 신자로 거듭나지 않으면...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군요...
"전공이 음악이었으니까요. 지금은 취미로 하는 수준이예요. 트럼펫을 조금 할 줄 아는 정도예요."
"재능이 없다..?" 재능이 없다는 말에는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누가 봐도 재능있어 보이는데요. 어중간한 재능인 지한의 눈에는 재능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지한의 기준과 유리아의 기준이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어긋난 것을 바로잡을 생각도. 바로잡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지한입니다. 교양있게 웃는 걸 보면 지한도 의례적으로 교양에 가까운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 나쁜 건 아니니까요" 이렇게 또 말을 돌리고는 취미가 되었다는 말에
"그렇군요." 음악 전공을 했다는 건 좀 이런저런 걸 경험했다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트럼펫을 한다는 것은 처음 듣습니다. 의외로 주위에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은 어릴 적 건드려보는 비율이 있지만. 트럼펫은 드물잖아요?
"언젠가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말이에요. 라고 덧붙입니다.
창대로 후려치는 것보다. 창을 찔러넣었다면 더 확실했겠지만. 아무리 실전같아도 대련은 대련입니다. 찔러넣었으면 헬프를 쳤을거라고요? 지한도 서 있기는 하지만 거친 숨을 들이쉬는 걸 보면 크게 체력을 소모한 모양입니다.
"그렇네요." 낮은 자세에서 보인 그 발걸음을 피하지 못했다면 구르고 있었을 것은 자신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한끗차이의 승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심박이 뛰게 만듭니다. 서둘러서 주위에 있는 자판기에서 차가운 이온음료 두 개를 뽑아 라임에게 건네려 합니다.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랬으니까요. 라는 말을 하지 않으며 그이지 않은 손을 내밉니다.
"맞아요. 결정적인 재능이 없어서 말이죠. 예체능계는 99%의 노력을 하더라도 1%의 재능이 없으면 잘 나가다가도 퇴물이 된다고요?"
제가 한 말이지만 어째서인지 제가 더 많은 피해를 입었네요... 누굴 노리고 한 말도 아니었지만요. 혀를 씹은 기분이네요. 자학 개그는 좋지 않고 뒤라님도 그건 질린다고 말씀하실 터이니 이제 화제를 바꿔볼까요? 연주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마침 말씀하시네요. 하지만 아직 쓸만한 트럼펫도 구하지 못했고... 돈을 구해서 물건을 사고 싶군요.
태호가 말을 건 것은 수업도 끝났으니 나갈 채비를 하던 검은 머리 소년이었습니다. 보통 이 정도로 검지는 않지 않나, 싶을 정도로 검은 머리카락과 눈은 자칫 잘못하단 공허하게 보일듯도 합니다만, 소년은 부드러운 웃음과 표정, 말씨로 포용력 있는 느낌을 줍니다. 물론 이에 대한 판단은 개개인 별로 다릅니다만. 소년은 몸을 돌려서 태호를 바라보고 웃으며 대답합니다. 활기찬 인사에 답은 호의가 담긴 목소리의 인사였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소년은 태호를 보았습니다. 키는 자신과 비슷해보이고, 황갈색 머리카락에 연두색 눈이 나무를 떠오르게 합니다. 해맑은 인상과 밝은 목소리 덕분인지 아직 어린 나무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아침에는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괜찮아지셨나요?"
고개를 까딱 기울인 소년이 웃는 낯으로 물었습니다. 소년이 등교하고 가장 먼저 하는 건 학생들의 기분 파악입니다. 사실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한 명 한 명 관심을 두다 보니 조금씩 알게 되는 류의 것입니다. 물론 하교시간 쯤 되면 기억나는 건 적습니다만, 평소 밝은 태호가 가라앉은 게 기억에 박힌 모양입니다.
"...예체능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에 온전한 이해는 힘듭니다." "다만.. 그래도 퇴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깨진 느낌을 받았지만 그게 날 것으로 나오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들어서 답지 않게 참견조로 말하고는 조금 참견이었네요. 라는 말을 합니다.
"언젠가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권해주신다면 응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다 시간이 된 모양인지 알람이 울리자 고개를 퍼뜩 들고는 이만 나가봐야겠네요. 라는 말을 하며 짐을 조금 챙기기 시작합니다.
"유리아 씨도 좋은 하루 되기를." 저는 이만 나가겠습니다. 라면서 돌아나가는 머리카락이 나풀나풀거립니다.
"좋은 경험이었다니 다행입니다." 나쁜 경험으로 남는 것은 두려운 것일까? 지한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몸을 격하게 움직였으니. 보건실에 가서 피를 닦고 소독한 다음. 샤워를 해야죠. 찝찝한 건 곤란합니다. 그러다가 많이 아프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프냐고 물음받아야 할 쪽은..
"라임 씨도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목은 급소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라는 시선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고는 잡아끄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는. 같이 보건실로 갔겠지요. 치료를 마치고 헤어지거나... 식사를 같이 하러 갔을 수도 있을까?
학교 생활이 두근거리고 익숙해지며 즐거운 것과 별개로, 공부는 마냥 즐거울 수 없는 일입니다. 소년은 지금까지 꽤 열심히 집중하고 듣기는 합니다만 재밌어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대체로, 수업의 내용이나 교관님들의 방식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참고로 인성 교육은 관심 있는 내용이라 잘 듣고 있는 소년입니다. 푹 찔러들어가는 질문에 머쓱한 듯 볼을 긁는 태호를 보며 소년은 마냥 웃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던 소년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입니다.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소년은 눈을 접으며 웃었습니다. 웃음으로 인상이 더 유해졌습니다. 푹 찌르면 말랑거리지 않을까요? 농담입니다. 잠시 말을 고르는 듯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까딱거리던 소년은 천천히,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습니다.
"아마, 먼 미래에 하는 실패는 더 위험할거에요."
거기까지 말하고 한 쪽 눈만 슬쩍 뜹니다.
"평생에 한 번 있을 실패를 이른 시기에 해서 다행이네요. 그렇죠?"
이렇게 마무리한 소년의 표정은 살짝 장난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부드럽고 따뜻한 빛을 띄었습니다. 별로 대화를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품는 호의치고는 대단합니다.
이해한다는 듯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공부가 좋아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분명... 그나마, 이 곳에서 배우는 건 헌터로써의 교육이라 보통의 교육보다는 흥미롭다는 점이 다행입니다..만. 소년은 그런 보통의 교육을 경험한 적이 그리 많지 않으며 학교란 장소는 이번이 처음이므로 비교군은 없습니다.
"빙 돌려서, 그렇죠."
소년은 가볍게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의미였습니다. 당신의 앞날에 빛이 가득하길. 그런 이야기입니다. 태호가 생각하는 특별반에 대한 소문은, 아마 거짓은 아닐겁니다. 실력은 좋지만 사람들의 무리인 만큼 성격이 안 맞는 사람도 있긴 할 겁니다. 메타적인 이유로 크게 문제되는 성격은 없는 걸로 압니다만.
"네. 물론."
소년은 그 귀여운 별명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한 태호 씨죠? 기억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좋아하신다는 것까지요."
그리고 소년은 잠시 자신이 아는 게임을 떠올려봅니다. 딱히 신세대 답지 않은 것들만 떠오릅니다. 방랑 생활이 긴 소년에게 현대의 컴퓨터 게임은 꽤 먼 이야기였습니다.
파피. 파피. 소년은 왠지 이 애칭이 꽤 강아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ㅏ만 ㅓ로 바꾸면, 보시는대로 퍼피가 되니까 말입니다. 소년은 아주 잠깐 자신이 강아지상인가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잘 못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고양이상이란 말도 잘 못들었습니다. 같이 생활하던 사람을 떠올리곤 그럴만 하다고 납득했습니다.
"네. 아무래도, 게임과 접하기 힘든 생활을 했으니 말입니다."
늘상 모르는 곳으로 걷고 걷고. 개인용 기기를 가질만한 상황은 아니었고 그다지 필요하단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에서야 제대로 된 문명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방에 개인용 컴퓨터도 하나 가지고 있으니 슬슬 흥미를 부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새삼 꽤, 아뇨. 아닙니다.
"아는 게임이 대체로..보드 게임과 카드 게임이네요."
사실 대체로란 말은 틀렸습니다. 빼버려도 괜찮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에 대해 알음알음 듣긴 했습니다만. 소년은 컴퓨터치에 가깝습니다. 배우면 잘하겠지만 말입니다.
3년인가 빼고 어느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문적이 없으니 길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겠습니다. 분명 문명을 스쳐간 적도 많은데 그 이기는 잘 누리지 못했었습니다. 다만 소년은, 그 기억이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힘들 때도 있었고 지치기도 했었습니다만, 그건 분명 꽤 괜찮은 '추억'이란 이름이 붙을만한 것입니다.
"네에. 그러니, 후에 잘 부탁드립니다."
소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소년이라면 그가 지뢰찾기를 알려주면 여기에 게임이 있었군요..하고 흥미로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곧 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년의 영성은 장식이 아닙니다.
"그건 꽤 기대하게 만들어주는 별명이군요."
소년은 주먹쥔 손을 자신의 턱에 대며 말했습니다. 상당히 좋은 게임 선생님이 되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스파르타거나? 태호의 성격은 스파르타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긴 합니다.
"그럼, 음. 그래요. 저를 도와주신다면, 저도 당신을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소년은 웃었습니다.
"어디서 듣기로, 무언가를 부탁했으면 그 대가를 치르는 게 맞다고 하더군요. 헌터라면 특히."
게임에 대해서 모르고 태호에 대해서도 모르는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태호의 실체(?)를 알게 되어도 소년은 나쁜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어느 정도 친해지지 않고서야 말이죠.
"..후후. 태호 씨는 무척 좋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소년은 꽤 유쾌한 대가를 바라는 태호를 보며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그 표정은 부드럽기 그지없으며, 사람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사람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을 더 낫게 만드는 건 재능이나 요령보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짤랑이는 금전보다 사람에게 웃어줄 줄 아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벌써 늦었네요."
소년은 가방을 마저 챙기고서 말했습니다. 확실히 바깥이 더 어둑해졌습니다. 황혼의 시간입니다. 아름답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