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단호하게 틀렸다를 말할 수 있어야 옳은 집단이라고 했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완전히 틀린 것은 없다. 잘못된 문장 속에도 옳은 단어가 있고 옳은 단어들로 고쳐나가면 결국 문장은 맞는 문장이 된다. 물론 그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겠고, 상대가 참지 못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틀린 것과 다른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공감할 가치도 없는 이야기와, 공감하되. 다른 의견의 차이는 극명하다.
루시우스 퀸튼을 이르는 이름은 수없이 많지만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기리며 '속성의 군주'라는 이명으로 부릅니다. 그는 의념시대에 있어 수많은 의념 학자들의 스승이었고, 최초로 의념 속성이라는 개념을 발견했으며 의념의 활용 능력을 주로 갈고닦은 2세대 각성자들의 시발점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의념을 각성함과 동시에 의념의 응용과 활용, 변칙적인 능력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지에 대해 정리했고 의념 속성이라는 존재를 밝혀내어 그 활용법에 대해 서술하였으며, 그의 서적 '루시우스 퀸튼의 사대원소론'은 현재까지도 남아 의념 연구가들에게 억만금의 가치를 지닌 서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는 의념의 변화를 넘어, 의념 역시도 성장한다는 '속성의 개화'라는 개념을 밝혀냈습니다. 불이라는 속성이 사용자의 여러 면모와 결합되어 개화라는 의념 속성으로 변화하는 이 과정에 대해 밝히고 정리하였으며 의념 학자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대현자 셀린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지금의 아내를 만나 의념이 주는 전성기의 유지를 포기함으로 아내와 같이 늙어가길 선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말년에 들어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지식과 속성 개화에 대한 방법을 모두 전수하여 은퇴했지만 그의 아들은 현재까지도 아버지의 뒤를 이은 의념 학자로 활동중입니다.
의념 시대에 접어들며 생명의 가치는 떨어지게 되었고,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풍조마저 생겨난 적 있었지만 인류는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게이트에서 나타난 생명체들은 그들이 바라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고, 고대의 인류가 그러했듯 게이트 초기의 신앙은 몬스터 그 자체에 믿음을 두곤 했습니다. 그들이 누군가를 죽인다면 그들을 신의 말씀을 무시한 어리석은 자라고 욕했고 자신들이 죽으면 순교라는 말을 내뱉곤 하였죠. 그러나 세계에 점차 의념의 힘이 가득 차오르게 되었고 의념이라는 힘을 매개체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먼 고대부터 믿음이 쌓여 점차 의지와 힘을 가지게 되었던 존재들. 그러나 믿음이 쇠퇴함에 따라 그 표현을 잃었던 것들. 바로 신이었습니다. 신의 존재가 확인되며 그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안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죽음 뒤의 미래, 그들이 바라는 죽음에 대한 무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후세계와 심판에 대한 이야기에 따라, 그들의 죽음 뒤에 심판이 기다리게 될 것이라는 문제에 따라 신의 말씀, 또는 선지자의 말에 따라 정해진 '계명' 등이 쓰이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의념 시대 초기에 존재했던 기본적인 '윤리'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개중에는 지구에서 가장 강한 세를 누리던 기독교 역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신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인간의 종교라 비웃음당했으나 바티칸에서 나타났던 '백색의 배' 게이트에서 수천년 전에 사망했다 알려진 사도 베드로가 모습을 드러내어 자신의 신이 존재하며, 자신의 역사가 사실이라는 것을 선언하며 그 위상이 반전되었습니다. 현세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신들은 신으로써의 힘이나 권능이 부족하여 완전한 신앙을 얻지 못한 존재들이지만 수천년에 가까운 신앙이 쌓이며 마침내 하나로 존재하게 된 그들의 신은 의념이라는 창으로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너무나도 강하여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말이 사실임을 인증했고 그 결과 현 지구의 대중적 종교는 여전히 기독교가 자릴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 전체를 이 지구에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신도들에게 자신의 권능을 일부 드러내곤 합니다.
오늘 알아볼 것은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기독교의 장례식은 어떻게 진행되는가입니다.
기독교에서 장례는 죽은 자의 육신은 신이 창조한 이 지구에 남고, 혼은 빛의 인도를 따라 심판대에 서서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남은 육신은 어떻게 하는가 하면, 바로 그 육신을 위한 예배를 집도합니다. 집도하는 것은 신앙을 인증한 신도, 또는 사제라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죽은 시체에 생전의 모습을 불어넣고, 그 모습을 유족들의 눈으로 보게 합니다. 그를 통해 이 육신에 남은 것은 비어버린 몸 뿐이며, 그의 혼은 심판대로 향했음을 알립니다. 그가 심판대에서 자신의 죄 외에도, 자신의 선업을 무엇을 쌓았는지. 그의 삶을 변호하고 신께 기도하는 예배를 마친 뒤. 장례의 집행자는 그의 시체에 서서 기도를 올립니다. 이때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최초의 낙원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우리들을 창조하시던 때에 흙으로 육신을 빚으시고 숨으로 영혼을 불어넣으셨으뭬, 아버지의 숨결이 때가 되어 하늘로 향하며 흙은 땅에 남았더라. 우리의 아버지이시여, 죽은 이의 혼이 안식을 취하도록 하시며 그의 육신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긴 휴식을 취함에 아버지의 날에 찬미하지 못함을 용서하소서. 이 날에 우리는 한 사람의 혼이 아버지에게 떠남을 알리나니, 아버지께서 그의 혼을 반겨주사. 그가 거짓된 곳에 떠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아버지의 길로 향하게 함을 허락하소서. 그가 재판을 받을 때에 두려움 없이 용기로 자신의 삶을 연호하게 하사, 그의 말에 거짓이 없게 하시고, 그가 선하건 악하건 아버지의 자손이었음을 부디 알아주소서. 이 땅에 묶인 육신을 부디 창조의 때에 있었던 흙으로 돌아가게 하사, 그의 자손들이 지탱할 공간이 되게 하소서. 모든 것에 마지막이 있으메 아버지의 뜻이 이 곳에 있음을 아나이다. 그의 마지막을 탄식하며, 떠나보내며, 아버지께 그 소식을 알리나니. 이들의 슬픔과 힘듦을 이해하소서. 아버지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천자 OOO의 숨이 하늘로 향하였음을 알리나이다. 언젠가 하늘에서 만날 때에, 부디 천국의 땅을 밟으며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나이다. 아멘. "
이때 죽은 이의 시체에는 신의 빛이 내리게 되어, 그 시체가 찬찬히 흩어지고 그 자리에 한 줌의 흙이 남습니다. 그 흙을 모아 유족에게 건네는 것으로 장례가 마무리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빛은 장례를 집도하는 이가 의념 각성자이던, 비각성자이던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장례를 집도한 이들은 사술이나 악신의 권능으로도 그 혼을 불러들일 수 없게 되며 완전히 안식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