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법.. 으로 가장 유명한 건 역시 옌 리오 씨가 제일 나을 거에요. 소싯적엔 황서비고에서 권법을 가르쳤다고 들었거든요. "
>>753 분명 바람도 들지 않는 창문이 맞을텐데, 거기에 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연기는 흐르고 흘러 천천히 라임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괜히 눈을 감고, 그 추억들을 떠올리고, 그려내고, 찢어지기 전에 다시금. 마음에 꾹꾹 눌러담습니다.
어린아이같나요? 그럴 수 있어요.
라임의 어린 시절, 라임이 라임으로 있었던 시절에는 그의 모습은 떨어진 적 없으니까요. 단지 잠시 떨어지고 돌아오는 것이 당연했던 적이 있으니까요.
아저씨, 아저씨.
그는 끝가지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주저했었죠. 이름을 알려주면, 추억이 너무 깃들어버린다며. 라임이 부르듯 아저씨로, 이따금 라임이 가족을 찾을 때면 아빠가 되었던.
아저씨. 아빠.
그 많은 이름들에 무어라 이유를 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이것은 이러니까. 저것은 저러니까. 단지 '이름'이 중요하니까가 아니라.
나에게 '아저씨'고 '아빠'는 한 사람밖에 없으니까요.
훅.
살짝 문을 열고, 라임은 바깥을 바라봅니다. 해가 능선을 넘어, 이제는 밤을 향해가고 있는 시간에 라임은 추억들을 되새기며 작은 손에 품어냅니다. 그것을 다시 마음 어귀의 상자에 곱게 넣어냅니다.
흐려질까, 잊어질까. 그럴까봐. 의념을 피워내어, 기억에 새겨내면서. 라임은 다시금 그 추억들을 곱씹씁니다.
밤이 옵니다. 이제는 둘이 아닌, 혼자만의 밤을 보내는 게 어색합니다. 가까운 곳에 온기가 있지 않다는 것이 어색하게, 분명 따뜻한 공간임에도 몸이 떨리는 것 같습니다. 라임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습니다.
잘 자렴. 우리 꼬마.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라임.
목소리. 그 목소리를 다시금 떠올리며, 라임은 잠에 듭니다.
>>754 재현형 게이트는 게이트의 특정한 '시기'나 '장면'. '이야기'등을 재현해내는 게이트라고 합니다. 본인에게 '역할'이 주어지거나, 주어지지 않은 역할을 유추하여 그 세계를 이끌어나가 게이트의 이야기를 '정상화'하는 것. 그 과정에서 이야기를 방해하는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바로 재현형 게이트의 기본적인 골자입니다.
우리 식으로 번역하자면 방해 요소에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몬스터일수도, 함정일수도, 아님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겠죠.
아무거나는 조금 심했나? 하고 후회해봐도 이미 늦은 일이었다. 아예 받기 전이었다면 몰라도 이미 받아버린 이상 그냥 신경쓰인다는 이유만으로 취소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토오루는 그래도 게이트 안에서 누가 크게 다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파티원을 모두 데리고 탈출하겠다고 다짐하며 학교로 돌아갔다.
TIP. 회귀자가 미래를 보고, 그것이 분명 이뤄진단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단지 자신이 꿈을 꿨다는 것이 아닌. 진짜 있었던 일임을 알게 된다면 어떤 충격을 받을까요? 지금 성현의 상태는 위태롭습니다. 망념도, 정신도. 둘 다 극한에 몰려있죠. 먼저 망념을 해소하고, 그 뒤에 정신을 수습할 방도를 찾아보도록 합시다.
>>763 유나는 가볍게 고갤 끄덕입니다.
" 아! 연락처. 줬으니까. "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드네요.
" 나중에 이런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
주세요. 어쩐지 저 존댓말 하나에 뿌듯해지는 기분입니다.
>>766 코드명 HW - 10070은 도구입니다. 도구는 사용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으며, 사용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도구가 표현하는 것은 오직 두가지로 구분됩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도구는 고민할 필요도, 언어를 구상할 필요도, 포함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사용하고, 사용하지 않고를 결정짓는 것은 오직. 물건의 주인에게 있으니까요.
도구명 HW - 10070은 주인이 없습니다. HW - 10070이 완전히 각인되기도 전에, 주인의 손을 벗어났고 세상은 당신이 HW라는 기종명과 10070이라는 코드명으로 구성되길 거부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의사를 묻고 이름을 새기고 자신들과 같다는 것을 말하며, 당신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코드명 HW - 10070은 화엔이 되었습니다.
언어를 배우고, 표현을 배우고 나면 인간이기에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것은 옳다, 옳지 않다'의 선악에 대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거치며 HW - 10070. 이하 화엔은 선악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옳은 것은 착하며, 옳지 않은 것은 나쁘다고 배우면서 HW - 10070이 했던 것에 대해 떠올렸을 때. 그것은 명백히 '나쁜' 것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졌고, 이따금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해내고, 살갖이 떨어지도록 팔을 긁어내고, 피를 흘렸음에도. 그 모든 것은 '나쁜' 것에 속해 있었습니다.
착한 것은 무엇인가요? 옳은 것은 어떤 행동인가요?
자신이 도구라는 이름으로, HW - 10070이란 이름으로 행했던 모든 것들이. 알고보면 인간 '화엔'의 '나쁜' 행동들이었다면,
그러나 누구도 명백히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날 화엔이 한 행동들에 대해 대화를 들어주는 사람은 종이에 대고 '강한 트라우마 기질이 있음'이란 기록만을 남겼습니다. 모두가 '주인님'. 도구의 주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날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도구에겐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죄를 짓고, 죄를 범합니다.
그것이 누가 시켜서 했던, 자신이 원하여 했던. 그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그렇기에 화엔은 HW - 10070을 혐오합니다. 그러면서도 화엔은 HW - 10070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합쳐져 '화엔'이라는 존재를 이루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화엔'을 '화엔'으로 새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츠네. 그녀는 분명 말했습니다.
'그 새끼가 잘못한거지. 네가 잘못한 게 아냐.'
그것은 죄를 지은 이에게, 죄를 입은 이가 전하는 면죄부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면죄부의 가치가 너무나도 무겁고, 무거워서. 화엔은 그것을 손에 쥔 채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HW - 10070은 표현합니다. 화엔은 표현합니다.
도구는. 사람은.
표현하는 법을 모릅니다. 표현해야할 순간이 있어.
도구입니다. 사람입니다.
[ 응. ]
그 한 단어를 보냅니다. 많은 의미를 꾹꾹 눌러담아, 그러나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뒤섞인 그 문장으로. 당신은 '언어'를 표현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