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저 정신나간 자식과 생각이 일치했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이 녀석이 지원군으로 온걸까? 하지만 투덜거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한사람이라도 아쉽다. 드디어 입이 열리고 주문을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하지만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 녀석은 당당히 내 눈 앞에 서있으니까.
"어이쿠! 한방 제대로 맞으셨네? 하긴 그런 이상한 탈 쓰고 진작 뒤져버린 영감한테 줴인님 줴인님거리는 중2병 놈들 수준이야 뻔하지 안그래?"
호랑이는 그렇다쳐도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이 녀석이 지원군으로 온걸까? 실력 하나는 믿음직하지만 다른 동료들 실력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사감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이 왔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왜 하필...
너무나 쉽게 베어지는 발목을 보며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한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언뜻 보기에 못 볼 걸 봤다는 듯한 행동이었지만, 가려진 손 뒤의 입은 웃고 있었다. 가는 웃음소리라도 새어나갈까봐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소리를 죽이고 시선을 슬쩍 돌리는 걸로 그럴 듯한 반응을 내보였다.
"......"
그녀가 그러는 사이 비슷하게 다가온 스베타가 탈을 벗겨내는 모습을 시선으로만 응시했다. 툭 하니 떨어진 탈 뒤로 나타난 얼굴은, 그녀가 아는 그의 얼굴이다. 같은 얼굴이지만 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짜를 보고 입가의 손을 내린 그녀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짧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서 발악하긴. 이젠 정말 좀 조용해져 주셔야겠네요."
그리고 늘어뜨렸던 지팡이를 들어올려 조금 전 피했던 목에 겨눈다. 비스듬히, 노리는 지점이 있듯이, 한 곳에 지팡이 끝을 쿡 찌르고 말한다.
"인간의 목은 말이죠. 잘 그으면 죽지 않고 목소리 정도는 잃게 만들 수 있어요. 마법은 금방 풀릴 테니까, 조금 강경수단을 쓸게요?"
감출 수 없는 웃음기를 희미하게 지으며 지팡이를 기울여 겨눈 채 주문을 읊는다. 섹튬셈프라.
하강하는 동안 빗자루는 별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주문은 명중했고, 양반탈은 밧줄에 묶였다. 그는 내심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자신을 칭찬했다. 그는 인카서러스 마법을 쓸 때 습관적으로 손목을 비틀어 상대방을 예술적으로 묶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그가 절애하는 사람에게만 쓸 것이다. 묶인 모습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는 흘끔 백정을 쳐다보다, 왜 왔냐는 단말마에 공중에서 양반탈을 내려다봤다.
"그건 이쪽이 할 말이지. 초대도 받지 못한 손님 주제에 왜 학교에 기어 들어오나. 자네는 양심이라곤 단 한톨도 없나?"
무사히 땅에 착지한 그는 아성을 돌아보며 모노클을 정돈한다. 중지 손가락이 곧게 뻗어났고, 자연스럽게 아성에게 소리 없는 욕을 할 수 있었다.
"꼬우면 다시 돌아가지. 본론은 청궁 기숙사 5점 감점이라 그 말입세. 저번에 대표니 뭐니 잘도 사기를 쳤더군. 자네도 양심이라곤 단 한톨도 없나?"
탈이든 저 새..아니, 저 학생이든 지금 당장 마음에 안 드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판단하건대, 피로 등급을 나누고 숭고하지 못한 죽음을 양산하는 저 탈쪽이 미세하게 더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당연하게도 지팡이는 양반탈을 향한다.
스베타가 그녀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듯이 그녀도 스베타가 뭘 하건 끼어들지 않았다. 그녀가 쓴 마법의 편린에 맞아 다치지만 않으면야, 뭘 하든 서로간에 무슨 상관이겠는가. 가짜의 목을 향했던 지팡이를 내려 까딱까딱 흔들면서 고개를 슬금 기울인다. 발목과 목이면 충분할까. 싶다가도 한번쯤은 더 해도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어쩔까나."
장난을 치듯 가볍게 중얼거리며 지팡이를 내리는 듯 하다가, 가짜의 옆구리를 쿡 찌르곤 세번째로 주문을 날린다. 이번에도 즉사는 아니지만 고통은 최대로 느낄 만 하게, 그런 부분을 노린다.
"섹튬셈프라."
그렇게 총 세번을 날려주고서 그녀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반스 교수를 보며 말했다.
"죽이진 않았으니, 이 다음은 알아서 하세요?"
건방지게도 그런 말을 던져놓고 킥킥, 웃으며 돌아선다. 돌아서 윤의 곁으로 돌아가 안아달라는 듯 팔을 벌린다. 생긋 웃고 있는 얼굴은 기묘한 만족감과 즐거움이 섞인 오묘한 표정이었다.
천문학 교수다. 그는 칼 교수를 흘끔 쳐다보고 말았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신경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문 문제라는 소리를 들어보니 칼 교수도 뭔가 있는 것 같지만 성급히 판단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는 어깨 위로 시선을 옮긴다. 절애하는 자의 몸짓과 눈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는 한 손을 들어 시야를 가리듯 손바닥을 편다. "마노, 아가야." 하고 짧게 달래보고는 순식간에 그의 손등이 매서워진다. 핏줄이 돋아나며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는다. 표정 또한 매섭긴 마찬가지니, 늘 무표정이며 예민한 눈길이었던 그가 살아오며 적어도 원내에서는 한번도 보인 적 없는 표정이다. 그는 언더테이커 가문의 가주이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내 이런 상황은 경의 행동을 숫제 윤허한 적 없으니 어디 마음대로 해 보거라. 과연 그러고도 내 곁에 남을 수 있을 거란 오만이 있다면 행동해도 좋다."
원인은 질투다. 문학 작품에서 나오듯 인간이 가진 질투는 녹색이라 하지만 그의 질투는 양쪽 색이 다르다. 주인된 자를 위해 움직이는 것은 좋지만 그 감정을 한번이라도 내게 쏟으면 좋을 텐데. 그는 낮게 속삭였다. "날 미치게 하지 마. 이젠 이런 말을 할 시간조차 없어." 하고는 양반탈을 향해 지팡이를 겨눈다.
"당연히 자네보다는 과거가 깨끗하니 우위에 있지. 자네는 무덤에 묻힐 때 마지막으로 보게 될 얼굴이 누구라고 확신하며 그렇게 입을 함부로 놀리나?"
남을 주먹으로 때려본 적은 없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주먹을 꽉 쥐고서, 팔을 뻗으면 되는 것이니. 얼얼한 제 손을 털어내고서 다시 첼을 본다. 심한 것이 아닌 이상, 딱히 말릴 생각은 없었으니. 알아서 하라는 말과 돌아서는 첼을 보다가 에반스 교수와 눈을 마주한다. 어깨를 으쓱이고는 부적 두 장을 꺼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