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를 날려버리는 걸로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저 정신에 무언 주문을 쓰는 건 역시 예상 외였달까. 그녀는 예고 없이 날아온 밧줄에 사로잡혀 꺅, 하는 작은 비명과 함께 휘청거렸다. 단순히 놀라서 나온 반응이었다.
"깜짝이야... 곧 죽어도 매구다, 뭐 그런 건가요?"
정말 잘 만들어진 가짜네, 라는 말은 속으로만 삼킨다. 마법부 장관이 또 시비를 틀 만한 말은 삼가하는게 좋을 듯 하니.
그녀는 밧줄에 묶인 채로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고, 팔과 손을 꾸물꾸물 움직여 지팡이의 끝을 가짜 매구에게 향했다. 마음 같아선 절단 저주를 쓰고 싶지만 왠일로 에반스 교수가 완력을 쓰고 있는 걸 좀 감안해야 했다. 찰나의 생각 끝에 절단 저주 대신 기절이나 하라는 마음으로 가짜 매구의 가슴팍을 향해 주문을 쏜다.
아성은 조용히 양반탈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킨 뒤 빙빙 돌립니다. 마지막으로 중지 손가락을 치켜듭니다. 환한 미소는 덤이고요.
탈의 실렌시오 주문으로 아성의 입을 봉쇄되어 마법 사용은 글러먹었다. 아성 또한 이전에 탈과 싸울 때 실렌시오로 상대의 마법영창을 봉쇄하려고 시도한적 있었지만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그게 가능하다는 게 아성의 몸으로 증명되었다.
아성은 그대로 양반탈에게 주머니의 감초사탕을 던지며 그녀의 주위를 원 형태로 돌았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과연 뭐가 문제였을까?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걸까? 매구에게서 도망친 것? 하지만 단순히 탈들도 아닌 탈들의 주인 메구다. 그 메구가 직접 학교를 치러 행차하시었는 데 괜히 만용을 부려 싸워봤자 개죽음을 당하거나 선생님과 장관의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아성은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어자피 뭐가 문제였는 지 어디서 꼬였는 지 지금 상황에서 뭐가 중요할까? 아성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버티는 것 뿐이다. 혜향교수의 희생으로 아성의 목숨은 보장되었다. 그리고 동화학원의 마법과 물약으로 바깥에서는 포기해야할 부상도 원상복구될 수 있다. 그렇다면 최대한 녀석을 도발하며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늘 그랬지만 전투는 그와 맞지 않는다. 그가 잘 하는 건 리덕토 뿐이다. 리덕토로 가짜 매구에게 한방 날려준 뒤에야 그는 지팡이를 훌훌 털어냈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번 짚는다. 에반스 교수가 매구에게 관절기를 쓰는 모습에 그는 잠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칼 교수가 에반스 교수와 결혼한 이유가 저기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잠시 다녀오지. 잘 할거라 믿네."
그는 어딘가로 걸음을 재촉했다. 걸음은 점점 바빠졌고, 그는 결국 욕을 뱉었다. "짜증나게 하더니만 기어이 신경을 쏟게 만드는 군. 아씨오 빗자루." 하고는 빗자루에 성큼 올라타는 것이다. 안 되겠다. 혜향 교수가 아성을 불렀지 않은가. 그리고 도망쳤지. 그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귀찮아진다.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걱정하고 싶지 않다.
불태워버릴 생각으로 손에 쥔 부적 두 장을 매구를 향하여 날리려다, 달려드는 에반스 교수를 보고서 급하게 거둔다. 저렇게 엉킨 상황에서는 잘못하다간 교수님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을 거라. 붙잡고 있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되어, 빠르게 달려들어 매구를 발로 차버리려 시도 했다.
갑자기 왜 이 때에 에반스 교수가 나선 걸까. 그녀는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저번 수업 때는 분명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더니. 이번은 할 수 있는 때다 뭐 그런건가. 알 수가 없다. 교수들의 움직임도, 학원의 의도도.
알 수 없는 건 그대로 둘 뿐이지만.
"이딴 번거로운 짓을...!"
마법을 날린 뒤 그녀는 지팡이를 스스로에게 겨두고 디핀도를 썼다. 팔과 팔 사이를 스쳐가는 마법으로 밧줄을 끊어내고 비로소 몸이 자유가 된다. 묶인 부분이 살짝 욱신거리는 걸 보니 살갗이 쓸렸나 보다. 귀찮게 약 바를 일이 늘었다고 생각하며 한 손엔 지팡이를, 다른 손으론 목덜미를 주무르며 가짜 매구에게 다가간다.
"그 동안의 빚은 이자를 톡톡히 쳐서 돌려드려야겠네요."
에반스 교수가 붙잡고 있는 가짜 매구의 목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다가 힐끔 에반스 교수를 본다. 그 전 실습 때가 떠오른 탓이다. 쳇. 혀를 차고 지팡이를 내려 발목을 겨냥한다.
"성가시게..."
짧은 중얼거림 후 지팡이를 휙 그으며 주문을 왼다. 섹튬셈프라. 가짜의 발목을 베어 운신을 온전치 못하게 만들도록.
그는 백정을 흘끔 바라보곤 빗자루로 높게 떠오른다. 빗자루를 잘 타지 않는 이유는 많다. 그가 언제 정신을 잃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또렷해서 하늘을 좀 배회하니, 당신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저깄군."
양반탈과 홀로 대치한 당신을 보며 그는 품에서 지팡이를 꺼낸다. 심호흡을 한다. 급강하는 해본 적이 없지만 지금 해야할 것 같다. 각도가 기울자 순간 휘청한다. 황급히 정신을 집중한다. 이 망할 빗자루. 3년동안 안 쓰다 이제 쓰냐며 항의하는 게 분명하니 불태우고 새걸로 하나 사야겠다. 그는 그대로 급강하 하며 양반탈에게 지팡이를 겨눴다.
분노 때문에 머리가 뜨거워서인지. 몰려온 두통에 작게 욕설을 내뱉는다. 굳은 표정으로 허무하게 뒷덜미를 잡힌 매구를 보고서는 힘껏 주먹을 쥔 채, 내지르려다 오히려 제 손만 아플까 그만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제압된 채. 첼의 지팡이에 겨눠진 모습을 보고는 혀를 쯧 차며 고개를 젓는다.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진짜 매구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서. 상대가 쓴 탈을 잡고서는 그대로 벗겨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