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냐고? 소년의 얼굴을 마주하던 풀린 눈에 아주 약간 초점이 돌아왔다. 천천히 삐걱거리며 도달한 시선 끝, 온통 검붉은 액체로 뒤덮인 투박한 손. 겨우 잦아드나 싶던 울음이 예고도 없이 다시금 밀려나오고. 아, 흐윽ㅡ 어떡, 어떡해. 어떻게, 해? 오열에 섞여 알아듣기 힘든 절규 같은 것이 드문드문 흘러나온다.
소년의 손목에 닿을 듯 가까이 향하던 손 끝이 일순 움찔거리며 그 자리에 굳었다. 무의식 중에 닿으면 쓰라림을 느낄 것을 깨닫기라도 한 것인지. 그래서 새슬은 상처가 그득한 손목을 건드리는 대신, 조심스레 그 손을 붙잡아 이끌었다. 언젠가 했던 것처럼 제 뺨이 그 손바닥에 닿을 수 있도록.
코 끝을 적시는 축축하고 비릿한 것. 말 없이 굵은 눈물방울만 뚝뚝 흘리며, 커다란 손바닥에 뺨을 부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누군가를 붙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애절함마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뺨을 가로질러 떨어지는 물줄기들이 소년의 피에 번져 붉다. 툭, 투둑.
“ㅡ왜?”
왜 그랬어? 눈물젖어 갈라진 쉰 소리. 싫어. 이런 건 싫어. 혼란스레 흔들리는 초점 가운데 소년을 두고서 중얼거렸다. 손에 들어온 온기가 금방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두려워서, 거기에 분명히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하듯. 소년의 손을 그러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문득 시리도록 추운 기분이 든다. 밖은 여름이 한창이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고, 하늘은 화창하다. 공기는 여전히 후덥지근하다. 경아는 가디건을 여민다. 문득, 찬란한 햇빛 사이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온다. 이윽고 깨닫는다.
만월이다.
거뭇한 밤하늘에 달이 차오르는 순간마다 양은 외로움 속에 잠기고 만다. 피할 길이 아예 없지는 않다. 세 알의 약, 그 작은 것을 삼키면 파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경아는 재빠르게 기억을 더듬는다. 기실 더듬을 필요조차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늘이 만월이란 사실을 잊고 있지 않았나. 경아는 제가 가지고 있던 작은 가방을 뒤졌으나, 상비용으로 들고 다니던 약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침, 집을 급하게 나오며 잊고 나온 모양이다. 경아는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려 노력하며 느리게 숨을 들이쉰다.
집으로 돌아가기는 글렀다. 이미 지나치게 멀리 나왔을뿐더러, 만월에 집에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경아는 희게 질린 얼굴로 주위를 살핀다. 나무를 숨기려 한다면 숲에 숨겨야 한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경아는 달음박질쳤다. 얄팍한 수작으로 양의 페로몬을 완전히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 운수를 시험해보려 한다.
도서관의 가장 안쪽,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 없는 코너.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책들이 선택을 기다리는 곳. 경아는 다급한 손길로 책장을 훑는다. 마침내 한 책을 발견한다. 거대한 흰 향유고래가 헤엄치는 표지 위 가득하게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유영하는 고래를 보는 경아의 얼굴에 그제야 옅은 미소가 번진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든다. 경아는 책을 품에 안는다. 긴장을 온몸에 두르고, 빠른 발걸음으로 창가를 향한다. 넓은 창틀 위로 익숙하게 올라간 후 커튼을 친다. 단절된 공간 속에서, 창유리를 통해 내리쬐는 햇빛만이 외부의 것이 된다. 그곳에서 경아는 한참을 숨죽여 웅크렸다. 흐트러진 숨소리를 가다듬고, 뒤늦게 책 표지를 펼친다. 경아는 바깥을 잊겠다는 양 이를 악물고 책을 붙든다. 그러는 동안에도 바깥 하늘은 빠르게 변한다.
그렇게 대답하면 싸울 일이 없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하지만 그 답은 네가 생각나지 않을 일은 없어, 일 것이다. 네가 그런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기에 기대고 싶은 건지. 내가 응석쟁이이기에 기대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
“ 나을 때까지... 제대로 치료해야 해... ”
집에서라도 제대로 치료했다니 다행이지만, 치료한 상태가 이거라니... 말을 이어가지만 역시 간간히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 하지만 병원에 가라고 하는 건 간섭일까? 고개를 제대로 들어 얼굴을 바라보고 싶다가도, 바라보고 싶지 않기도 해. 아랑은 모자를 쓰고 나온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 무서워, 연호야. 상처가 남은 네 얼굴을 보는 것도, 내 표정으로 인해 네가 상처 받을 것도.
- 가까워지고 싶어.
그러고 보면 연호는 한 번도 멀어지고 싶다고 말한 적도, 표현한 적도 없는 것 같지. 다소 불안정하게 기대어 있었지만, 안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팔이 아랑의 목과 등에 감긴다.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의 힘으로 안아주었지만, 차라리 좀 숨이 막히게 안아주었으면.
너를, 확실히. 내 품에 새기고 싶어.
“ 그렇게 해줘... ”
잠긴 목소리로, 아직 채워지지 않은 듯 중얼거린다. 아마 그의 품이 눈물로 젖어 들어가겠지. 아랑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힘없이 그에게 기대었다. 망설이다가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당기진 않고, 조심히 잡고만 있다.
스스로에 대한 제어를 잃어버리는 그 아찔한 감각에 대한 반향이 아직도 문하에게 선명히 남아 있었다. 패치가 어떤 이유로건 만월 발작을 억제하는 데에 실패하면, 폭주하는 고독은 증폭된 시간 속에서 구르기 시작한 눈덩이처럼 걷잡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늑대 증상과 부작용이 끔찍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게 문하가 스스로를 두려워하는 이유였고, 다른 사람들을 꺼리게 된 원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문하의 손은 어떤 항거도 하지 못하고 새슬의 뺨에 맥없이 끌려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까 봐."
그게 무서웠어. 문하는 눈을 감았다. 자신을 이 외로움에서 건져줄 누군가를 바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행복한 이야기와, 모든 좋은 일들과, 모든 축복받은 바람은 항상 그를 빗겨가는 것이었다. 한때는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돌아왔고, 자신의 고통은 끝났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그 잠깐의 행복은 그에게 냉엄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하나의 계기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일 같은 것은,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분에 넘치는 일이라고. 누군가가 자신에게서 '행복'이라는 것을 찾기에는 이미 자신은 너무 황폐해지고 무너져있기에 그 누구도 자신에게서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며 자신은 그 누구와도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고. 이것 봐. 피 묻잖아.
"내가 싫어?"
그렇지만, 그는 마음 한 켠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자신을 붙들어줄 누군가를. 황무지에 언제 내릴지 모를 이슬비를. 행복이 없다고 한다면... 함께 찾아나설 사람을.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희망이 아직도 그의 가슴 속에 쐐기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슬비 한 방울이 손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러면 떠나도 좋아..."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려고 했다. 가슴팍 한가운데 박혀있는 이 지긋지긋한 희망을 뽑아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문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그것은 결코 문하 스스로 뽑아낼 수 없을 만큼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었고, 결국 문하는 눈을 꾹 감은 채로, 남아있던 팔로 새슬의 어깨를 좀더 힘주어 꾹 안았다.
아랑이는 좀 더 세게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 좀 더 세게를 연호 기준으로 잡으면... (...) 어떻게 되냐고 묻고 싶은데... 혹시 계신가요 :3 ... 아랑이 기준으로 좀 더 세게면 약간 세게... 약하게 세게 조금 더 힘을 줌 (...) 입니다... <:D
제대로 치료하라는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랑이 알고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아랑이 알아차린다면 얼마나 화를 낼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 자신의 몸을 크게 돌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병이 난 적은 없으나, 다친 상처들에 대해서는 가볍게. 그저 가볍게 여기며 알아서 아물 때 까지 상처를 물에 씻어내거나, 소독약을 바르는 것이 전부였다. 이걸 아랑이 알아차린다면.....
좀 더 세게. 그 말을 듣고서 연호는 잠시 생각했다. 정말 숨이 막히면 어떡해? 네가 힘들어하는건 보고싶지 않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했다. 가끔씩이지만, 그냥 안아주는 것 보다는 차라리 꽈악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세게 안아주어서, 상대와 내가 잘 붙어있음을, 너의 온기를 느끼고 싶음을. 연호는 그런 감정을 잘 알고있었다. 아랑이 과연 그런것을 의도했는진 모르겠지만, 연호는 아랑의 바램대로 팔에 더 힘을 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연호도 부족했으니까. 그저 꼭 안아주는 것 만으로는, 아랑을 느끼기에 더없이 부족했으니까.
" 저번에 했던 말 기억하고 있어? "
네가 응석을 부리고 싶다면, 어떤 응석인지 말하지 않고 부려도 괜찮다는 말. 덧붙여 말하면서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 때, 같이 춤을 추면서 건넸던 말. 아랑의 손을 붙잡고서 함께 춤을 추었던 그 날은 아직도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충실히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아랑을 볼 때마다, 입안에 남은 향이 존재감을 어필할 때 마다. 머릿속에 각인처럼 새겨졌었다.
" 그건 그날만을 말하는게 아니니까. "
" 응석, 부리고싶은 만큼 얼마든지 부려도 돼. "
생각해보면 그때 그 말을 하고서, 아랑이 연호 자신에게 응석을 부렸었는지... 연호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지나가는 식으로 자신도 모르게 응석을 받아줬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아랑이 안아달라고 하는것도 응석의 범주에 드는걸까? 지금 그가 이런 말을 하는것은, 아랑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기만 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이 들어 생각을 지워버리고, 연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조금씩 꼼지락거리는 몸은, 온 몸이 그녀에게 붙을 수 있도록 움직이려 했다. 그렇게 붙어있으면서도, 그렇게 꼭 안고 있으면서도 부족하다는 듯이, 조금 더 온 몸으로 그녀의 온기를 느끼려 했다.
>>436 저도.. 저 레스를 쓰고 나서 ㅇ연호기준으로 잡으면 아랑이 숨을 아예 못 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금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 연호가 아랑이한테는 조절을 너무 잘해줘서... 그게 너무 감동적인데.... 뭐라고 표현할 짤이 없네요.... ㅇ<-<
>>441 앗............ (들켜버렸다) 네에 연호 몸 상처는 그냥 냅뒀어요..... 대충 소독만 하고 약만 발랐음.... 그래도 이제 아물어가는 단계라서 고통은 거의 없다고 힙니다 :D 앗 그렇죠 무도짤더 많아요ㅋㅋㅋㅋㅋㅋ저 짤은 정말 감정이 너무 많이 느껴지는대요ㅋㅋㅋㅋㅋ...
아랑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기 때문에, 연호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알 수가 없다. 처음에 괜찮냐고 물어본 후로, 제대로 얼굴을 본 적이 없네... 내가 어떤 표정인지 숨길 수 있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네가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점은 답답해.
*
좀 더 세게, 라고 했지만. 이건 좀 더 틈 없이 붙어오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로 세게 안아버리는 것보단 이 편이 좋을지도. 이편이 좋은지도.
“ 응. ”
기억해.
그건 그날만을 말하는게 아니니까. 응석, 부리고싶은 만큼 얼마든지 부려도 돼.
“ 넌... ”
안겨 있는 아랑에게서 오늘 처음으로 웃는듯한 소리가 났다. 그게 비록 힘이 빠진 채 피식 웃는 거라도. 울음과 훌쩍임을 그친걸까? 아니면 아까부터 계속 울어왔기 때문에 힘이 빠진 걸까?
“ 내가 좋아하는 말만 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 같아. ”
아니면 예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게 헛돌 때도 있지만, 이렇게 제대로 와 닿을 때도 있고. 그래서 가끔은 좋아하는 말만, 예쁜 말만, 상처 받지 않을 말만 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옷자락을 쥐었던 손을 놓고, 연호의 등을 천천히 감싼다. 부족하다는 것처럼 더 붙어오려는 그의 움직임이 좋아서. 외로움을 채워주는 거 같아서.
“ 나도 안아주고... 싶어졌어... ”
안아주고 싶다는 말보다 팔로 감싸버리는 행동이 먼저였지만, 그가 그녀의 행동을 싫어할거란 생각은 어쩐지 들지 않았다. 힘을 주려는 듯 팔이 조금 허우적거렸지만... 너무 울어서 힘이 빠져 있는지 만족스럽게 힘이 들어가지 못한다. 이따금 천천히 말을 이어가는 목소리도 잠겨 있지. 낑, 앓는듯한 소리를 흘린다.
“ 미안, 지금은 힘이 빠져서.. 더 세게 안고 싶은데에... ”
그러질 못하겠네... 아랑은 살짝 고개를 모로 틀고 품에 뺨을 조금씩 조금씩 부비적거렸다. 더 세게 안아주지 못하는 대신, 조금 더 사랑스럽게 행동했다.
>>443 😠😡😠😡 소독하고 약만 대충 발라도 잘 낫나요 연호는.... 😭 아물어가는 단계... 금아랑이 지금 몸에 힘이 없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 언젠가... 다친 금아랑도 적어야지... (큰 결심) 정말 많은 감정이 느껴지죠... (지금도 필요할 것 같음...) 지금 아랑이 몸에 힘이 빠져서 그런가 연호가 안아들고 다니는 게 가능할 거 같은데... (다친 사람한테 그걸 시켜도 되는건지 모르겠음....) (안 시키고 싶음.... ) 분수대 근처에 자판기도 있다고 할까요? 너무 울었으니 수분 보충도 좀 시켜야 할 거 같아서... <:3
>>444 특히 에코백....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거나, 안 본 작품이어도 싹 쓸어오고 싶죠.... ㅇ<-< 모비딕 에코백이 진짜 예쁘더라구요 지금도 팔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재작년쯤 본 거 같아요!) 맞아요! 오만과 편견도 명작이죠! >:3 지금쯤이면 눈먼곰과 다람쥐 줄거리 보고 오셨을까요! <:3
축축히 젖어 번들거리는 눈동자 위로 불안함 섞인 뒤틀린 것이 투명하게 비친다. 물방울 맺힌 속눈썹 끝이 애처롭게 떨었다. 숨이 턱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싫어? 그러면 떠나도 좋아. 어쩌면 자신도 다르지 않게 수없이 입에 담았을 그 말이 이런 형태로 속을 찢어 가르는가. 잔인하기도 하지. 아니, 아니야. 엄습해오는 서러움을 억누르며 필사적인 도리질로 답할 뿐이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데, 그것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윽, 윽, 하는 막힌 소리만이 올라왔다. 어지럽다.
“내가, 떠났으면, 해?”
절반은 울음이요, 절반은 말인 무언가. 시선이 소년에게 매달리듯 이끌린다. 두렵다.
무엇이?
추스릴 새도 없이 속에서 뭔가가 격변하며 비틀려 부서진다. 뭐가 무서운데? 모르겠어. 거짓말, 사실은 알고 있잖아. 혐오의 탈을 쓴 동경이었던 것. 애정. 사실은 맹목적으로 그것을 바라고 있으면서도,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것. 맞아. 나는 거짓말하는 나쁜 아이니까. 틀림없이 손에 그러쥐고 있는 온기가 사라져버리는 나날. 여느 때와 다름없을 일상? 아니, 그것은 그 때부터 고요하고 평화롭게 죽어가는 지옥이 된다.
“같이 있어 준다고 했잖아.”
어디든 같이 가겠다고 했잖아. 그래 줄 수 있다고 했잖아. 미련이 덕지덕지 묻은 말만 튀어나왔다. 밀어내고 떠나려는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닌가. 사라지지 마, 하는 말을 채 입에 올릴 수 없어 애꿎은 입술만 꽈악 깨문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두려워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제일 두려워하던 것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곁에 누군가를 붙들어 놓고 싶다는 커다란 욕심, 어쩌면 집착. 하지만 우습기도 하지, 이때까지 품어 왔던 것들조차 네가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있잖아, 사실은 내가 떠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해주길 원해. 마비된 이성이 부서질 듯 외치는 비명은 정녕 저 밖에 휘영청 떠 있는 커다란 보름달 때문인가.
“그러니까, 같이 가.”
그것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 애원이었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아마 너무 길게 목 놓아 울어댄 탓일 것이다. 몸을 지탱하는 것은 문하의 팔과 어깨가 전부였다. 얼굴을 파묻은 채 쌕쌕 숨을 몰아쉬면서, 이따금씩 어깨를 들썩거리며 중얼거렸다. 같이, 같이 가. 하고.
오늘 분명 만월이라는걸 어제 저녁 알림으로 그 사실을 전해받았다. 우리와 같은 늑대들에게 만월이란 정말로 중요한 날이고 또 매우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저번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패치를 철저하게 검사하고선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여느때와 같이 만월은 선도부의 검사가 굉장히 까다로운 날이다. 하지만 저런 검사에도 불구하고 실수 혹은 고의로 만월을 평소처럼 보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나는 패치를 붙인 것을 확인하고 등교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 저녁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가려다가 오늘은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점장님의 말에 교문으로 향하던 몸을 틀어 학생회실로 향한다. 분명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멀쩡했는데. 그렇게 대충이나마 일을 끝마치고 창문을 바라보자 보름달이 떠있다. 만월, 한달에 한번 혹은 두번 오는 그날이다. 하지만 나는 패치를 붙이고 있으니까 평소처럼 멀쩡할꺼다, 라고 생각했지만.
' 어째서?! '
왼쪽 팔뚝에 붙어있을터인 패치를 어루만진다. 분명, 이 패치는 잘 붙어있는데 감정이 나락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최근엔 일이 많아서 이것저것 말할 일도 많았고 자연스럽게 재능의 소모도 심각했을테다. 하지만 그 욕구를 풀어줄 양이 없어 조금씩 참아가고 있었고 만월때 그게 폭발할까 노심초사하면서 패치까지 붙였지만 지금에 와서 패치는 아무런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전 패치에 불량품이 생겼고 대부분을 회수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났다. 하필이면 지금 이게 ... ?
최대한 빠르게 집에 가야했고 그러기 위해서 가방을 싸서 학생회실을 나왔지만 한층 예민해진 내 감각에 희미한 페로몬 향이 느껴진다. 저번과도 똑같이 하필 이 타이밍에 약을 먹지 않은 양이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고 이미 페로몬을 맡아버린 나에게 그것에 저항할 힘은 없었다. 이번만큼은 이성보단 본능이 날 지배하는 시기니까. 페로몬이 점점 짙어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향하자 이내 내 눈앞에 보인 것은 도서관이었다. 하필 여기에 숨어있는다고? 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손은 도서관의 문을 열고 있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가 나고 나는 천천히 도서관의 구석으로 향했다.
" ... 경아야? "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인 것은 짙은 녹색의 눈동자와 고동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너무나도 익숙한 아이, 경아였다. 창 밖이 보이지 않고 이렇게나 단절된 공간에서 경아는 강렬하게 페로몬을 내뿜고 있었다. 남아있던 한가닥의 이성으로 내 발걸음을 간신히 멈춘채로 너를 바라보며 입술을 꾹 다문다. 나에게 있어서 소중한 그녀에게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경아와 가까이 있을수록 그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어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446 저는 사실 문진이나 스노우볼같은 종류만 보면 눈이 돌아가요...정말, 쓸모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홀려버려서... 에코백도 예쁜 게 많죠. 왜 고전명작이라 불리는지 잘 알 수 있는 작품 중 하나죠~ 네, 대략적인 스토리라도 보고 왔어요! 포근포근한 이야기더라고요.
>>451 저도 스노우볼 종류에는 눈 돌아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 스노우볼은... 진짜... 예쁜데... 장식이나 선물 외에는 쓸모가 없죠.... <:3 맞아요! 집에도 에코백 있는데 또 사고 싶어져! ㅋㅋㅋㅋㅋㅋㅋ 전 모비딕 위키백과 보고 왔는데... 제대로 된 줄거리 없이 스포만 보고 온 느낌이에요... <:3 (쪼금 슬픔...) 포근포근한 이야기 좋죠! <:3 포곤한 그림책은 떠오르지만, 포곤한 소설은... (기억 뒤져도 심각한 소설만 떠오름...) 있을텐데 아랑주가 못 읽은 모양입니다... <:3
>>453 새슬주.......... 8ㅁ8 (왈칵) 감사합니다.... 새슬이 아주 귀엽군요.... (보고 힐링) 와랄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