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ㅋㅋㅋㅋㅋㅋㅋ저도 사실 그거 생각했지만.... 원래 일상이랑 생각이랑 다르게 흘러가서 재밌는것 아니던가요...ㅋㅋㅋㅋ (널부렁) (악마날개는 제거할때 아프더라구요...)(?) 네 자각하기 좋아요... 이유는 나중에... (또 미루는 연호주) 네거티브 연호는 여기서 나올 확률이 적긴 해요. 아랑이 잘못 안했어요.... 아랑이가 더 예쁘고 사랑스러워... 안아주고 싶어요...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그래도 연호주는 팔팔하니까 답레 올리고 잘거에요! 아랑주는 잘자요~ 좋은밤 좋은꿈!!
>>362 정확도 높아.. 어쩌다 매 보름마다 문하가 스스로를 기둥에 묶고 열쇠를 던져버리는지, 문하는 자기 이야기를 꺼려하긴 하지만 문하에게서 듣는 것도 불가능은 아냐. 그렇지만 정석적으로 들어보고 싶다면 트레이너에게서 어느 정도 들어볼 수 있고(새슬주의 희망 혹은 추후 전개 여부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번 일상에서 만날 수도 있음), 문하네 아버지와 만나서 물어보면 전말을 다 들어볼 수 있어.
싸울 일이 없었을까,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네가 생각나지 않을 일은 없어' 라는 대답이었다. 만약이라는 질문은 없었다. 이미 아랑과 연호는 서로에게 확실히 존재감을 내비치고 있었으니까. '네가 없었다면...' 이라는 가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연호에게 있어 아랑은, 금아랑이라는 사람은 이미 마음속에서 연호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을만큼 커져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그늘속에 가려져있어서. 연호가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 응. 집에서 제대로 치료 했어. "
그는 병원보다는 혼자 하는 치료를 선호했다. 애초에 치료라고 해봤자 대충 소독이나 하고 상처를 내버려뒀겠지만, 이번엔 치료를 도와준 친구가 있었으니 조금 더 신경써서 밴드까지 붙인 것이다. 덕분에 밴드를 처음 붙인것 같은, 정갈하지 않고 덕지덕지 바르기만 한 티를 내버리긴 했지만.
" ..... "
멀어졌으면 좋겠냐, 가까워졌으면 좋겠냐. 그런것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그에게 소용이 없었다. 그에게는 속도를 조절한다는 선택지가 남아있을진 몰라도, 뒤로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 가까워지고싶어. "
나지막히 속삭이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손에 있는 온기를 잊지 않으려 살살 움직이는것이 느껴진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남은 일말의 불안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랑이 자신의 가슴에 기대어왔기에, 그 불안함을 잠시 잊을 수는 있었을테다.
아랑이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의 팔이 움직인다. 잡고있던 손을 스르륵 놓으면서, 전신으로 아랑을 감싸듯이 목에, 등에 양팔을 둘렀다. 그리고 그 팔에는 조금씩, 그녀가 답답하지 않을 만큼 힘을 주어 꼬옥 하고 안았다. 계속해서 흘러들어오는 헤이즐넛 초콜릿 향이 그의 코를, 목을 간질였지만 애써 무시하면서 눈을 감았다. 한쪽 손이 그녀의 머리에 닿아 아주아주 천천히, 아주아주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주려 했다.
파각. 손에 들린 것이 둔탁하게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아마 액정이라도 나간 것일 테지. 바닥에서부터 새어나오는 불빛이 조금 더 넓게 방 안을 비춘다. 그 가운데 마주하게 된 얼굴은, 분명히, 그렇지만, 아니야, 어떻게? 팟, 파팟. 팟. 애써 부정하며 묻었던 무언가가 다시 플래시 불빛처럼 머릿 속에 터진다. 어두운 와중에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새슬의 낯빛이 파리해진다. 발목을 묶은 것은 이제 온전한 두려움 뿐이었다. 식은땀. 눈물. 어쩌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도 같은데. 쌕쌕거리는 거칠고 불규칙한 호흡. 아, 아. 울음 섞인 비명같은 신음과 함께 몸이 내던져지듯 앞으로 튕겨졌다.
“ㅡ잠깐, 잠깐만, 풀어, 줄, 음, 풀어줄게, 이, 이걸... 풀어, ㅡ..”
높낮이를 마구 넘나드는 불안정한 목소리. 무슨 말을 하는지 쉬이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몸을 덜덜 떨면서, 새슬의 손이 쇠사슬을 움켜쥐었다. 철그렁. 차가운 금속의 촉감. 눈을 꾹 감았다 뜬다. 끝, 끝을 찾아. 새슬의 손 끝이 다급하게 쇠사슬을 훑으며 끝을 찾았다. 어디, 어, 어디야? 어디에, 흐윽, 어디.
사슬을 연결하는 자물쇠를 찾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극단적으로 시야가 좁아진 탓에, 자물쇠가 걸린 곳을 몇 번 정도 건너 뛰었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자물쇠를 잡아당긴다. 캉, 캉, 열쇠 없는 자물쇠가 풀릴 리 없었지만, 집요하고 맹목적으로 한동안 그것은 반복된다. 잇새로 간혹 새어나오던 흐느낌은 어느새 울부짖음 비슷한 것이 되고. 왜, 안 열리지? 미친 듯 쇠사슬을 잡아당기고, 자물쇠를 달칵거린다. 이따금씩 콘크리트에 쓸리고 부딪힌 손 끝이 까짐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호흡만이 귓가에 어지럽게 흩어진다.
열쇠, 열쇠가 필요해. 겨우 자물쇠에서 벗어나 힘겹게 떠올린 해답. 새슬의 시선이 바쁘게 방 구석구석을 살핀다. 자신이 서 있던 곳에 덩그러니 던져져 있는 무언가. 다급하게 그것을 주워 돌아왔다. 작은 열쇠. 제발, 제발, 이 열쇠가 맞는 열쇠이기를 무엇보다 바라며. 그러나 그것마저도 떨림 탓에 제대로 되지 않아 열쇠 끝이 구멍 근처를 긁고 지나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제, 발..!”
악 다문 잇새로 흘러나오는 간절한 흐느낌. 자물쇠에 이어진 사슬로부터 느껴지는 진동이 잔인하다. 마침내 열쇠는 구멍에 들어맞고. 천천히 돌아간다.
이 패치라는 게 아직 안정적인 물건이 아니기에 종종 불량 사고가 난다고 한다. 두 가지의 약제성분이 들었는데, 두 성분 중 하나가 화학적으로 불안정한 성분이라서 유효기간이 조금만 지나거나 배합이 조금만 잘못되어도 순식간에 분해되어 버려 패치의 효과가 격감한다고 했던가. 제작 과정에서 불량품을 최대한 거르고 걸러내도 불량품이 배급품 사이에 섞이기도 하고, 품질 검수 과정에서 패치가 못쓰게 되기도 하고, 운송 과정에서 패치가 못쓰게 되는 일도 있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럴 경우 양을 고용해서 해결한다고 들은 적도 있다. 내 사정을 들은 트레이너가 그걸 시도해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실패했다. 일종의 심리적 자기암시라고 해야 하나, 심리적 동조를 이루지 못한 양에게서는 억제작용이나 충전작용을 받을 수 없는 고약한 특이체질이라고. 능력의 부작용으로 증폭되는 부정적 감정이 양의 그것과 비슷한 이들 중 몇몇에게 발현되는 심리적 특이체질이라고.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거나, 형제자매이거나, 애인일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기대어봤자 안식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었다. 돈을 주고 도망친 곳에 구원은 없었다.
단 한 번 내 손으로 찾아낸 구원이 있었으나, 한때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구원에도 한계는 있었고, 나는 나보다는 그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랐기에 이별을 납득하기로 했다. 그 이해심많은 친구를 위해 나는 그 아이를 기꺼이 떠나보냈고 그리고 뒤에 남겨졌다.
내가 붙인 패치가 불량이었다고 한다면, 나는 나를 제어할 수 없게 된다. 끝없는 허기와 온몸이 찌그러지는 것 같은 고독이 나를 좀먹기에, 나는 인간보다 굶주린 짐승에 가까운 무언가가 된다. 능력에 대한 통제권도 잃는다. 내 늑대 증상은 체감시간의 증폭. 다시 말해, 나는 한없이 느려진 시간 속에 허기와 고독을 안고 유배되게 되는 것이다. 몸이 서서히 굳어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두 달간의 유배. 60분의 1로, 혹은 더 느려질 수도 있는 시간 속에서 보내는 하룻밤. 한 번의 뒤척임이 몇 시간으로 늘어나고, 한 번의 흔들림에 쇠고랑이 팔을 한 번 파고드는 그 한 순간의 고통이 몇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그런 유배.
물론 고통스럽다. 그러나 나는 비명을 지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나를 묶어야만 한다. 패치가 듣지 않으면 나는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으니까. 그 날의 멍청한 실책을 두 번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괜찮다. 익숙하다. 두 달 동안 어둠 속에 혼자 내버려지는 것은, 바깥으로 나가려고 날뛰는 몸뚱아리 위에 정신을 맥없이 얹어놓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풀어준 것처럼, 굳어진 채로 서서히 움직이던 내 몸이 풀렸다. 나는 이 목소리를 알고 있어. 이 단 냄새를 풍기고 있던 것은───── 너였구나.
"유새슬......"
하는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어둠 속에서 그가 주춤주춤 물러선다. 저녁부터 내내 팽팽해서 이제 곧 끊어질 지경이 되어있던 쇠사슬이 느슨해져셔 땅바닥에 철그럭 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진다.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빨간 점 몇 개가 자국으로 남는다. 그러나 유새슬이 풀어줄게, 하고 말을 덜덜 떨며 그의 옆을 앞질러 그의 등뒤로 달려간다. 하는 떨리는 손을 새슬에게로 뻗었다. 뒷걸음질치다 바닥에 널려있던 쇠사슬에 발이 걸려 한번 땅바닥에 우당탕 넘어졌다. 그러나 문하는 이를 악물며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짚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유새슬의 손끝이 정신없이 사슬마디 사이사이를 버릊기 시작했을 때, 유새슬의 어깨를 조심스레 끌어안는 것이 있었다. 유새슬의 손끝을 스치는 차가운 쇠사슬보다 더 단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 조금 더 따뜻한 게.
블리치의 등장인물 "자엘아폴로 그란츠" 의 최후는 독특한데, 주인공의 세력에 속해 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쿠로츠치 마유리" 에게 단 1초라고 해도 무한에 가까운 억겁의 시간으로 느껴지게 하는 약을 강제로 투약당한 뒤에 마유리의 칼에 찔려서 죽어. 이때 마유리는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만에 자엘아폴로의 급소를 찔러 절명시켰지만, 자엘아폴로가 느낀 마유리의 칼이 몸에 닿기부터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데까지 걸린 체감 시간은 수백 년이라고 해.
딸그랑. 손에 들었던 자물쇠와 열쇠가 바닥에 떨어져 구른다. 풀려, 났, 나? 애초에 열쇠는 제대로 돌아갔을까. 주변을 제대로 인식하기가 힘겹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 한 탓에 정신이 부옇기만 하다. 아, 으, 양 팔을 쥐어뜯듯 감싸안으며 자세를 무너뜨렸다. 둥글게 말린 뒷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이기만 하다. 뒤늦게 콘크리트의 냉기와 탁한 공기가 맞닿은 맨실에 스며들어왔다. 소름끼치도록 익숙한. 힉ㅡ, 급하게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진동한다.
“...잘못, 잘, 못... 잘못했, 어요.......”
이내 새슬이 몸을 부들거리며 강박적인 중얼거림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꺼내 주세요, 잘못했어요, 착하게 굴게요. 하나같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애걸복걸하며 매달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빛 한점 들지 않는 방 안과, 바닥의 냉기가 소름끼치도록 비슷해서. 누가 봐도 새슬은 이성을 온전히 잃은 상태였다. 팔뚝을 쥔 손가락이 희어질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가고, 불규칙한 호흡에 날카로운 흐느낌이 섞여들기 시작했을 때.
뭔가가 어깨를 끌어안았다. 이성의 끈을 놓쳐버린 가운데서도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 더듬거리며 그것을 쥐었다. 채 잦아들지 않은 부들거림이 가득한 손이었지만. 제 이름을 부르는 환청이 들린 것 같기도 하다. .....하? 다급하게 소년의 얼굴을 찾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손 끝을 더듬거리며. 굳은 고개를 겨우 돌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환상이라도 보는 것처럼 얼빠진 얼굴이 온통 눈물에 젖어 번들거렸다. 눈 앞에 있는 것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것처럼, 새슬의 손 끝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이마에서부터 콧대, 눈꺼풀, 볼과 입술. 하나씩 확인해 갈 때마다 새슬의 얼굴이 무너지듯 울상이 되어 간다.
“.......문, 하.”
왈칵, 굵은 눈물방울을 흩뿌리며 달려들듯 소년을 끌어안는다. 어린아이가 그러하듯 목 놓아 울며, 계속해서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하, 하. 문하, 하고. 목덜미를 꽉 끌어안고 그 어깨에 얼굴을 부벼 가면서.
수십 일을 견뎌야만 했을 굳어버린 시간이 갑자기 녹아내린 순간, 그 시선 끝에는 옹송그려 쭈그려앉은 새슬이 있었다. 자신이 짊어졌어야 할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발바닥이 통각 신호를 뇌로 올려보내고 있었지만 문하는 그것을 묵살했다. 차가운 한기가 발에 난 상처를 파고드는 것 같았지만 문하는 그것 역시 무시했다. 그는 굳은살투성이의 맨발이 방바닥에 붉은 선 몇 개씩을 남기는 것도 개의치 않고, 평소라면 꺼림칙하게 피했을 그 깎여나간 콘크리트 기둥을 향해 쇠사슬을 질질 끌며 달렸다.
너는 왜 잘못했다고 하는 거야.
핸드폰의 플래시라이트가 천장에 비치는 반사광은 이 달빛 한 쪽 들지 않는 관짝과 같은 방을 모두 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둠 속을 뻗어간 새슬의 손끝에 질긴 가죽 같은 피부가 덮인 얼굴이 걸렸다. 갸름하고 강팍스런 턱선에 곧은 콧대까지, 새슬이 기억하는 얼굴대로였다. 그러나 그 얼굴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게 새슬의 손끝에 분명히 느껴졌다.
"나 여깄어."
네가 날 찾아서 여기까지 왔잖아. 하고 문하는 중얼거렸다. 문하는 이 관짝의 가장 깊은 곳까지 손길을 내뻗어주러 온 새슬을 품 안에 품어주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엉덩방아를 찧은 것 같지만 상관없다. 서로 끌어안는 순간, 차가운 관짝이라고 생각했던 이 지하실이 조그만 안식처가 되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러니까 넌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아팠다. 생생하게 아팠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시린 엉덩이가, 쓸려서 상처난 팔목과 발바닥이, 뒤로 과하게 잡아당겨진 어깨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기울어져 있던 몸뚱아리가 한순간 한순간, 과장되어 증폭되지 않고 생생하게 아팠다. 마치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그 끔찍한 유배에서 이제 자유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그래서 문하는 새슬을 끌어안고, 있는 대로 울었다. 서로가 마음속에 고여있던 슬픔을 어느 정도 털어내고 그걸 추스릴 수 있게 되기까지.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 울음을 쏟아냈다. 그저 서로를 가만히 껴안고. 쓸쓸한 적막만이 감돌던 방 안이 아내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해졌다. 눈물로 먹먹해진 정신에 알 수 없는 말이 스쳐 지났다. 분명히 알아듣지도 못 한 말이었는데, 왜 기묘한 안도감이 느껴지는지? 할 수 있는 만큼 소년의 품에 파고들듯이 고개를 묻는다. 통곡하던 두 사람의 소리가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을 무렵.
“……나가자.”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가 잦은 떨림과 함께 속삭였다. 무서워, 하. 당장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제 눈 앞에서 지워지기라도 바라는 것처럼, 있는 힘껏 눈을 꾹 감고서. 여전히 떨림을 주체하지 못 하는 힘 빠진 몸이었으나 감싸쥔 소년의 목덜미를 놓는 법은 없었다. 잠깐 놓으면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정말로 큰일이 날 것처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었다. 정신을 놓는 한이 있어도 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게.
“나가게 해 줘.”
여기서. 다시 한 번 쏟아낸 속삭임. 이번에는 조금 더 흐느낌에 가까운 것이었다. 새슬이 잠시 파묻었던 고개를 들자, 어둠에 물든 녹색 눈동자가 갈구하는 빛을 띄고 소년을 향하고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쇠사슬이 느슨하게 풀어지자, 쇠사슬의 장력으로 팔목을 옥죄고 있던 쇠고랑도 가볍게 손목을 털어내는 것만으로 바닥에 털그렁 하고 맥없이 떨어졌다. 손목이 온통 빨갛다... 리스트컷 증후군이라기엔 너무 둔탁했고 손목을 빙 둘러가며 나있었던, 언뜻 보면 잘 보이지도 않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살이 튼 자국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흉터들이 어디서 난 것인지 약간의 해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손목에서 흘러내린 피는 손에도 온통 묻어 있었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손 안에 느껴지는 끈적한 감각이 손이 지금 어떤 꼴이 되어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감정의 격랑이 빠져나가 텅 빈 자리에 자리에 두려움이 들어찼다. 자신을 무서워하거나, 꺼림칙해하거나, 싫어하게 되리라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만월 때마다 자신을 쇠스랑에 묶어놓고, 종종 이성을 잃고 날뛰기까지 하는 미치광이를 도저히 좋아해줄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순간, 하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채고야 말았다. 여태껏 아버지와 그 망할 여자, 트레이너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지키고 있었던 비밀이 예기치 못하게 깨어져버린 것이다.
결코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모습을, 그 중에서도 가장 보여주기 싫었던 사람에게, 보여줘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하가 깨달아버린, 하의 등골을 싸늘하게 만드는 사실은 하나 더 있었다. 유새슬이 양이라는 사실, 그것도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가두어두고 있던 감정적 고독의 울타리마저 뛰어넘어온 양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러면 나는 너를 요구하게 될 텐데. 네게 있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 '있어도 되는 곳'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뭔가 잘못됐다.
"...피 묻을 텐데."
목소리가 떨렸다. 핸드폰의 플래시가 던지는 어렴풋한 반사광 속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문하의 눈이 떨고 있었다.
"괜찮, 아?"
괜찮냐는 그 질문에는 너무 많은 것이 매여 있었다. 하의 손목을 옭아매고 있던 쇠고랑보다도 더 많은 것이.
만월이 찾아올 시기가 되면 언제나 외로움이 시아를 감싸곤 한다. 분명 요즘은 슬혜와의 시간을 통해서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체질이란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지 시아는 밀려오는 외로움에 머리를 쓸어넘긴다. 별 수 없다. 정말이지 귀찮기 짝이 없는 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외로움을 달래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뿐이었다.
" 뭐, 이젠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생겼지만.. "
더이상 외로움에 젖어 방에 틀어박혀 있거나, 정처없이 위험한 거리를 걸어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기댈 곳이 있었으니까. 한없이 사랑하고 보듬고 싶은 사람. 눈을 감으면 언제나 떠오르는 그 아이만 있으면 시아는 망설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없던 자신감과 용기마저 생겨날 정도였으니까. 그 아이의 집으로 가기 전에, 마트에 들려 가볍게 즐길 달콤한 비스킷과 음료, 그리고 가벼운 식사를 만들만한 재료를 산 시아는 미리 기억해둔 길을 따라 천천히 나아간다.
" ... 세상은 평상시랑 별로 다를게 없는데 말이지. "
분명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는 서로를 달래기 위해 만남을 가지고 있을 양과 늑대가 존재하겠지만, 거리는 한산했고, 평화로운 평상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여태까지 그래왔으니 시아는 더이상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을 담아두지 않는다. 불필요한 생각은 접어서 던져버리고 머릿속에는 소중한 그 아이만 떠올린다. 자신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는 상상속에서도 아름다웠으니까.
" 아, 다 왔다. 어디 보자.. "
슬혜가 알려준 주소대로 찾아온 시아는 문 앞에 도착해선 천천히 중얼거리더니 가벼운 심호흡을 한다. 딱히 슬혜를 만날 때에 긴장을 할 것이 없음에도 괜스레 심호흡을 하게 되는 것은, 벌써부터 슬혜를 볼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스리려는 발버둥이 분명했다.
또 그날이구나... 하고 막연하게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어수선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건 분명 그것 때문이겠지.
그녀에게 있어선 그뒤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확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즐거운 나날들에 대해서 모두 기억해내며 짜깁기를 해보아도 돌이켜볼땐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차라리 그때의 감정을 되살리는게 가능하기라도 했다면 덜 외로웠을까? 하지만 참으로 애석하게도, 그녀는 감정이 매우 무딘편이라서 직접적으로 와닿는것 외에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바라다못해 매달리고 있었다.
평범한 양들이 만월일 때마다 외로움에 시달린다면 그녀는 그것에 공허함까지 더해야 할까. 물론 둘 다 평소에도 느끼는 감각, 감정이었지만 제어되지 않는 상황에선 무엇보다도 깊게 가라앉는 편이라고 하는게 그나마 적당한 표현이겠지.
"......"
차라리 무언가 만든다거나 요리를 하고 있다면 몸을 움직일 일이 많으니 그나마 공허한 기분도 덜 들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마치 제 집사를 기다리는 고양이마냥 현관에 웅크려앉아 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집 안을 서성이다가도 저와 같은 처지였을 커다란 털복숭이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다시 문앞에서 기다리다 버릇처럼 엄지 끝을 잘근잘근 깨무는 자신을 인지하자 그녀는 약간 허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정도면 중증이네요..."
별수 없는 일이라고 넘기려 했다. 어차피 오늘같은 날은 자주 있는게 아니니까, 하지만 자주 있는 날이 아닌만큼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기에 문 너머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예민해졌던 그녀는 익숙한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보였다. 주변을 살피고, 당신을 바라보고, 그러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걸 인지하고나서야 평소처럼 차분한 미소를 지어보였을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온거 같네요? 사실 마중이라도 나가야 할까 살짝 고민하고 있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으려나~? 후후후..."
계절도 계절이지만 마냥 당신을 문앞에 세워놓는 것도 좋은 행동은 아니니 그녀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넖은 공간의 어딘가에선 잔잔한 음악이 들려오고 있었고, 벽으로 보이지 않는 저쪽 어딘가의 사각에선 새까만 먼지떨이 같은게 살랑살랑 움직이다가 어느새 쏙 들어가선 대신 머리를 내놓고 있었다.
"...오라고 한건 전데, 막상 초대하고나니까 좀 쑥쓰럽네요~ 아무래도 날이 날이다보니까 그런 걸까요? 아, 물론 청소는 잘 해놓았으니까요! 뒹굴어도 된답니다?"
시아는 문을 열고 자신을 반겨주는 슬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노크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열린 문과 문 앞에 서있는 슬혜의 모습을 통해 유추해본 시아의 생각은 슬혜가 자신이 오는 것을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방 안에 편히 앉아있다 나왔다기엔 문이 열리는데 걸린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물끄러미 재잘거리는 슬혜를 바라보다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을 것이다.
" 슬혜야. "
천천히 장을 봐온 것을 현관 벽에 기대어 세워둔 시아는 나직히 슬혜의 이름을 부르며 신발을 벗는다.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두고 집안에 발을 들인 시아는 슬혜의 앞으로 다가간다. 물끄러미 언제나처럼 빛나고 있는 슬혜의 눈동자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뻗어 부드러운 슬혜의 머리카락과 뺨을 매만져준다. 그리곤 몸을 조금 숙여 슬혜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간 시아는 들을 이는 슬혜 뿐임에도 비밀이야기를 하듯 속삭였다.
" 문 앞에서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던걸까? 힘들었을텐데. "
귀여워 죽겠다는 듯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인 시아는 장난스런 속삭임을 남기고 떨어져선 살며시 슬혜의 손을 매만지곤 놓아준다. 그리곤 내려놓았던 봉투를 도로 집어든 시아는 슬혜보다 먼저 집 안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 슬혜가 기다리다 지쳤을 것 같으니까, 얼른 사온 것만 정리하고 달래줘야 할 것 같네. "
슬혜에게 들을라는 듯 웃음기 섞인 말을 던진 시아는 사뿐한 발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한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자신도 슬혜를 만나 몹시 기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슬혜를 끌어안고 푹신한 침대 위로 몸을 던지고 싶었지만, 은근히 슬혜를 애태우고 싶은 마음도 들었기에 조금씩 시간을 끌어볼까 하는 짖궂은 생각을 하고 마는 시아였다.
" 뭐, 정 급하다면 얼른 어울려줄 수 있지만? "
시아는 걸음을 옮기다 돌아서선 슬혜를 향해 눈을 곱게 접어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이며 자그맣게 속삭였다. 장난스레 혀 끝을 내밀어, 옅은 화장을 해 붉은빛을 띈 입술을 훑어보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신이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이자 그때서야 자신이 무언가 서두르는 느낌이 강했단걸 깨달은 그녀는 잠깐 눈을 굴리다가도 당신이 내려놓은 물건으로 눈길을 옮겼다.
이내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내색하지 않는다 해도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을까,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서 앞으로 다가온 당신이 계속 시선을 맞추다가도 천천히 손을 뻗어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카락에서 뺨까지 쓸어오자 살며시 눈을 감고선 고로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별로 기다렸다거나 지쳤다거나 그런건 아니니까요?"
물론 평소였다면 그런 기다림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여유롭게 맞이해주고 경우에 따라선 당신에게 장난을 쳤을 수도 있으려나?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런 평정심이 없었는지 비밀이야기를 하듯 귓가에 속삭이는 당신에게 대꾸 아닌 대꾸를 하며 살짝 앓는 소리를 내보였다.
살며시 자신의 손을 매만지던 당신이 들고왔던 봉투를 집어들어 먼저 들어가자 옆에 있던 고양이 역시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 벌렁 드러누웠고 그런 모습에 가볍게 턱을 긁어주던 그녀는 웃음기 섞인 당신의 말에 괜히 찔리기라도 한 양 샐쭉거리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정도의 인내심도 없는건 아니라구요~"
그게 허풍인지 진심인지, 아니면 잠깐정도는 참을수 있다는 뜻인지 구태여 밖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바로 옆에서 작은 하품소리가 들려오는걸 보아선 평소의 그녀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는것 정도는 확실했다.
걸음을 옮기다가도 샥 돌아서선 매혹적인 눈웃음과 함께 혀끝을 내밀어 부러 강조하듯 훑어보이는 당신에게서 어느정도 신경을 썼다는듯 평소보다도 붉은 빛을 띄고 있는 입술이 보이자 살짝 의식의 끈이 느슨해졌던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가선 당신의 어깨를 최대한 가볍게 그러쥐려 노력하고선 꾹 눌러두었던 말을 겨우 뱉어냈다.
시아는 자신의 반쯤은 도발을 하기 위해 던졌던 말을 낚아챈 슬혜를 보며 입술을 한번 더 혀 끝으로 훑어내며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역시 평소의 슬혜와는 다르다는게 이러한 사소한 부분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슬혜의 모습마저 몹시 사랑스러워서 자신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안달이 난 것은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오늘 저녁은 가볍게 카레라도 해먹을까 해서 간단하게 사왔거든. "
자연스레 슬혜의 허리를 한 팔로 감싸안은 시아는 그대로 싱크대로 향한다. 슬혜를 싱크대 바로 앞에 서게 만들곤, 그 뒤에 자리를 잡고 선 시아는 옆에 봉투를 올려두곤 거기서 야채들을 꺼내서 싱크대 안에 담아둔다.
" 자, 카레에 들어갈 야채를 먼저 손질해두자. 일단 깨끗하게 씻어둘 필요가 있으니까.. "
슬그머니 뒤에서 백허그를 하듯 감싸안은 시아가 슬혜의 등에 자신의 몸을 맞댄다. 슬혜의 온기가 은은하게 전해져 오는 것을 느끼면서,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슬혜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가선 속삭이며 슬혜의 손을 잡아 야채를 씻기 시작한다.
" 이렇게 감자는 먼저 물에... "
조곤조곤 슬혜의 귓가에 속삭임과 숨결을 불어넣으며 틀어둔 수도꼭지의 잔잔한 물소리를 반주삼아 시아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두사람의 거리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더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시아는 여전히 아무것도 의식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마치 자신이 슬혜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을 하고 손을 움직여 슬혜의 손을 맞잡아 재료들을 손질해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10분, 20분 시간을 보내던 시아는 흘깃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한순간에 슬혜에게서 떨어진다. 여전히 시아의 입가에는 밝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마치 슬혜가 아쉬움을 느껴 더욱 갈망하길 바라는 듯 애간장을 태우다 떨어지려는 모양새였다. 평소의 슬혜라면 알아차렸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슬혜는 어떨지 모를 일이었다.
" 그러면, 나는 잠깐 슬혜에게 손질을 맡겨두고 사온 간식을 냉장고에 정리해둬야 하겠는걸. 후후. "
시아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한손으로 입을 가린 체 웃어보이며 말하곤 우아하게 뒤로 돌아선 간식만 남은 봉투를 들곤 냉장고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