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306068> 자유 상황극 스레 3 :: 1001

이름 없음

2021-09-13 08:11:25 - 2022-12-20 23:06:42

0 이름 없음 (wSjOpuFcMU)

2021-09-13 (모두 수고..) 08:11:25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91 이름 없음 (/jytqmL.Kg)

2021-10-02 (파란날) 00:30:26

>>88-90

# 12시 이후에 주시는 답레에 대해서는 제가 답레를 쓰지 못하고 잠들어버릴 수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릴게요 @ᗜ@

92 이름 없음 (r/K2sEWxto)

2021-10-02 (파란날) 09:44:34

>>90

감정을 쏟아내는 건 오랜만에요. 받아줄 사람도 없었고, 꺼내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어설픕니다. 누군가 눈물을 닦아준 적이 손에 꼽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고 있다 보니 히끅거리는 소리만 납니다. 그만 울어야 하는데, 아티도 울고 있는데도 내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데, 아무리 차분하게 생각해보아도 쉽지 않아요. 둑이 무너지면서 쏟아지는 물살은 너무나도 거센 모양이에요. 이대로라면 손수건이 내 눈물로 다 축축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상단이 마을에 올 때마다 널 찾았어."

네가 작별을 고한 날은 대상단의 행렬이 마을에 찾아온 날이었으니까요. 마을에 상단이 온다고 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계탑 밖으로 한달음에 달려 나갔습니다. 상단뿐만이 아닙니다. 시계탑 위에서 마을 어귀를 바라보고 있자니, 외부인이 오는 것 같다 하면 작은 기대를 품고는 했습니다. 너를 지금에서야 만났다는 건, 여러 번이나 품고 말았던 크고 작은 기대들이 다 무너졌다는 뜻이지요. 이제는 기대조차 하지 못할 때 네가 돌아왔어요.

분명 네 편지를 받지 못한 이유는, 네가 떠나고 얼마 안 되어서 내가 시계탑으로 숨어버렸기 때문이겠지요. 아버지를 다시 마주할 용기가 있어서, 원래 살았던 그 집에서 너를 기다렸다면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티에게 이 말은 하지 않기로 해요.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에게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려줄 필요는 없겠지요. 마을 사람들이 아티를 알아본다면, 그리고 어린 로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도 알게 되겠지만요. 그러니까 굳이 앞당기지 않기로 해요.

"...?"

나는 아티가 팔을 벌리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앞섶이 풀려있습니다. 갑옷이 불편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더워서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옷이 혼자 풀린 걸까요? 깜빡거릴 때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고, 아티를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그때 아티가 무슨 이유로 팔을 벌리고서 있는지 깨달았어요. 나를 안아주려고 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아닐 수도 있지만요. 내가 아티한테 안겨도 괜찮은 걸까요? 누군가를 안고, 안아주고 했던 것도 오래된 것 같아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가가지를 못합니다.

# >>89 아버지는 마을에서 추방당했으니 괜찮아요! 시계공 할아버지가 로빈 몰래 해결해버렸어요.
# 모험과 악당세력과 퍼즐과 보스전이 하고 싶으시면 하셔도 괜찮아요 :3
# >>91 저는 텀이 널뛰기를 해서... 그래도 밤 늦게는 아마 자고 있을 거 같네요.
# 어렸을 때는 아티랑 로빈 키가 엇비슷했을까요? 지금 아티는 키가 크다고 해서 로빈보다 크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엇비슷했었다 하면 안게 됐을 때 키 차이에 로빈이 놀랄 것 같아서요.

93 이름 없음 (/jytqmL.Kg)

2021-10-02 (파란날) 12:18:15

>>92

"내가 열여덟 살이 되는 해쯤에 내가 살던 마을에 방문할 예정이었어. 그런데 상단이 좀... 잘 안 풀렸어."

아티를 데려간 그 상단은 정말로 커다란 상단이었습니다- 3개 대륙과 2개 대양을 오가는 기나긴 상로를 갖고 있었기에, 한 번 상로를 일주하는 데에 6년에서 8년이 걸리는 상단이었죠. 그렇지만 당신이 그 대상단의 상호를 알았더라면 오히려 그 기대가 더 아프게 무너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티를 데려간 대상단은 몇 년쯤 뒤에,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올 수 있게 되기 전에 이런저런 비리 사건과 불행과 도적떼의 습격에 휘말려 많은 것들을 잃은 나머지 해산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내 발로 왔어."

그렇지만 이제 지나간 일들에 매달려 과거의 고통을 붙들고 있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비록 너무 늦어 당신의 기대가 다 무너지고 난 뒤에야 뜻밖의 재회를 하긴 했지만, 그 모든 역경과 희박한 가능성을 딛고, 아티는 그때 그 시절의 금발과 푸른 눈을 간직한 채로 당신에게로 돌아왔으니까요. 아티도 자신이 늦었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낯선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당신이 있는 고향을 애타게 그리고 있었던 만큼이나 당신 역시도 자신을 애타게 기다렸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아티는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생각지도 않고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습니다.

"..."

정말 왜 그래, 안아주는 법도 잊어버린 것처럼. 당신이 어쩔 줄 모르고 바라보고 있자, 아티는 갑옷을 아예 훌렁 벗어버리고 갑옷 아래 받쳐입는 누비옷까지 벗어서 한구석에 철걱 부려놓습니다. 밖에 나다니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어보이는 튜닉 차림이 되어서야 아티는 다시 양 팔을 벌리고 당신을 끌어안아줍니다. 옛날에는 키가 엇비슷했는데, 이젠 키차이가 꽤 나서 당신이 푹 안기는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보다도 더 탄탄해지고 단단해진 품이지만, 따뜻한 건 변하지 않았네요.

생각해보면 항상 먼저 다가가서 끌어안는 쪽은 자신이었지, 하고 아티는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뭔가 우울해하거나 외로워하는 것 같을 때마다 이렇게 당신을 안아주곤 했었죠. 이번에도 우는 당신을 달래주고 싶어서 안아주려고 했는데 왜인지 이번에는 자신이 응석부리는 모습이 된 것 같습니다.

# (아티가 로빈네 아버지에게 수정펀치를 날리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급히 지운다)
# 본격적으로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로빈주가 원하시면... uu 지금은 조미료 느낌으로, 필요한 곳에 조금씩만 덧붙여볼게요.
# 어렸을 적에는 두 사람의 키가 엇비슷했거나 아티가 조금 더 작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의 아티는 약 182센티미터 정도에요. 상당한 장신이죠...

94 이름 없음 (IKmnsJTDfw)

2021-10-02 (파란날) 23:12:39

>>93

"와줘서 고마워."

"잊지 않아 줘서, 보고 싶어 해줘서 고마워."

투정 부리고, 욕심부린 다음은 고마움을 표현했어요. 나는 이 작은 마을이 내 세상의 전부지만, 네가 아는 세상은 더 커다랗고 반짝반짝 빛날 거에요. 그런데도 아티는 작은 마을과 마을보다 더 작은 어릴 때의 나를 기억해준 거예요.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로 작은 것 같지만요. 몸도, 마음도 전부 다요. 아티는 쑥쑥 많이 자랐어요. 내가 너무 작아서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까까지만 해도 일부러 못되게 굴던 나인데도요. 내가 아픈 게 무서워서 네게 상처 주기를 선택해버렸는데... 아티를 바라볼 염치가 없어요. 아티의 눈을 몇 번이나 바라보았을까요? 분명 아티의 눈보다, 떨어진 아티의 눈물이 만든 자국을 더 많이 보았을 거에요.

나도 아티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요. 하지만 난 손수건도 없고 고작해야 옷소매뿐이에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자니, 아티가 옷을 벗어버리고 있어요. ... 아티가 나를 안아주려고 했단 건 착각이었나 봐요. 아무래도 아티는 그저 더웠을 뿐인 거 같아요!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요,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거려요. 안 그래도 많이 울어버려서 눈가에 열이 오른 게 느껴지는데 더 심해졌어요. 어릴 때는 아티카 안아주고는 했지만, 지금은 다 컸으니까요. 그때처럼 아티가 안아주려고 한 거라고 혼자 착각이나 하고, 정말 바보 같아요.

"?"

그런데 아티가 안아주었어요! 나는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 생각한 건지 알 수 없어서, 아티를 바라보았습니다.

"...?!"

그리고 또 놀라버리고 말았어요. 고개를 들었는데 아티의 얼굴이 보이질 않았어요. 아티인 줄 몰랐을 때도, 키가 크신 분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큰 줄은 몰랐어요! 좀 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나니 아티의 얼굴이 보여요. 아티가, 정말 쑥쑥 많이 자랐어요! 이래서야는 손을 뻗어도 아티의 눈가까지 닿을지 모르겠네요. 무엇으로 아티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지 고민한 게 헛수고였어요. 나는 작게 웃음소리를 냈습니다.

"아티, 내가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 로빈의 키는 정확히 생각해두질 않았지만 단신인 편이라고 생각해요. :3
# 로빈이 느끼기에 아티는 머리카락 색깔도 그렇고, 태양같아요... 그래서 아티는 과분한 친구라며 자기가 못났다 하는 부분들이 나오고 있는데 불편하면 말씀해주세요.

95 이름 없음 (l1lufNxZR.)

2021-10-03 (내일 월요일) 01:44:33

>>94

당신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당신 역시도 자신을 잊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을 애타게 기다렸다는 사실이, 애타게 기다리다 못해 자신 모양의 그을음이 당신에게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자신이 이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별들 위로 그려보던 당신의 모습과 겹쳐보여서. 그렇게도 밤하늘에 그리던 그리운 모습이 아직도 이렇게 곱고 예쁘게 남아서 옛날처럼 바라봐주는 모습이. 시점은 조금 바뀌었지만, 그 예쁘고 상냥한 금빛의 눈동자는 여전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직 자신의 일을 다 끝마치지도 못하고, 당신에게 정말로 나 돌아왔어,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데 돌아왔다는 말을 해버려서. 눈물자국이 남은 뺨을 하고 당신을 내려다보다가 아티는 천천히 입을 뗍니다.

"─많은 것을 봤어! 나쁜 일들도 많이 있었지만, 좋은 일들도 많이 있었어."

"그렇지만, 여기서 너와 함께 있었던 시간을 잊게 하는 일은 없었어."

잊을 수 없었어. 보고 싶었어. 아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옛날처럼 당신을 푹 끌어안는 것으로요. 그러고 싶어서, 당신을 그 무엇보다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아티는 임무 도중에 어지간해선 벗어서는 안 되는 갑옷도 벗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신을 안고 아티는 눈을 꾹 감습니다. 가슴팍 너머에서 옅게 전해져오는 아티의 심장박동은 아직 그 옛날처럼 따뜻합니다.

당신의 웃음소리에 아티는 당신을 안은 채로 당신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요청에 아티는 조금 자세를 바꿉니다. "으응." 하는 콧소리 섞인 대답과 함께, 당신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약간 푼 다음 상반신을 숙여서, 당신과 눈높이를 맞추고 다시 느슨하게 당신을 끌어안습니다. 당신이 손을 들어서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기 좋도록. 그리고 눈을 꼭 감습니다.

# 그것도 로비의 개성이고, 로비가 그렇게 생각할수록 아티가 더 전력으로 안아주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물론 로비가 자존감낮은 모습을 보이는 건 안타깝지만, 제가 그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아티를 통해서 많이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요.
# *.* 지금은 주무시고 계실 테니 답레만 남겨둘게요..

96 이름 없음 (tl8g0hiIWY)

2021-10-03 (내일 월요일) 20:47:23

>>95

"아티."

반짝반짝한 내 친구. 상냥하게도 내 손이 닿을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주었어요. 나는 나지막이 아티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들었어요. 아티의 얼굴에 닿으면. 손끝에 남는 감각이 낯설어요. 내 손에 제일 많이 닿은 것은 역시 시계 부품이니까요. 시계가 작을수록 조그마해지는 부품, 시계가 클수록 커지는 부품. 그 크기가 어떠하든 차가운 것은 똑같습니다. 아티는 따뜻해요. 아주 작은 회중시계의 부품을 다룰 때보다도 조심스러웠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나는 아티의 눈물 자국을 지웁니다.

"다음번에 돌아오면, 그때 이야기해 줘."

알고 있습니다. 아티가 오늘 마을에 온 이유는 저 시계탑 위에 있는 회중시계 때문이라는 걸요. 시계를 돌려받은 아티는 아마 마을을 다시 떠날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다시 기대하려고 합니다. 아티가 곧 돌아오리라고 믿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조금 용기 내서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마을을 떠나고서 있었던 일들,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전부 듣고 싶어요. 시계탑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서 들어도 좋을 것 같고, 언덕 위에 올라가 산들바람과 함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어릴 때 자주 놀러 가던 곳을 되짚어 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시계공 로빈의 모습으로 마을에 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 모습으로 상상해보았어요.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분홍빛 머리카락을 햇빛 아래 드러내고, 의미 없는 안경도 벗어버린 그런 모습이요. 거추장스러운 망토도 벗어버리고, 옷은 아티가 골라준 것으로 입으면 즐거울 것 같아요.

그리고는, 음, 어떻게 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어요. 나도 똑같이 아티를 안아주면 되는 걸까요. 누군가 안아주는 것도 어색하지만, 누군가를 안아주는 건 더 어색해요. 아티인데도요. 그렇지만 아티니까 할 수 있어요! 친구를 안아주지 못할 리가 없어요. 어색하지만 한 번 노력해봅니다. 두 팔로 아티를 안으면서, 아티의 품에 기대보았어요. 생각보다도 엄청 따뜻해서, 꼭 다시 어려진 것 같아요.

#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다행이에요 :3

97 이름 없음 (bcmxtRUYJs)

2021-10-04 (모두 수고..) 01:53:53

"하하하하하! 유쾌한 인간이로구나! 아니. 당돌하다고 해야할까!"

유쾌한 목소리가 숲속을 가득 채웠다. 용을 만나러 간다는 그 말이 상당히 웃긴 것인지, 은발의 긴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사내가 정말로 크게 웃었다. 분명히 그 역시 인간의 모습이었으나 마치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인간이 아니라는 것마냥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과연 용을 만나러 간다는 상대에겐 어떻게 들렸을까?

터져나오는 경쾌한 웃음소리를 겨우겨우 멈추며 눈에 맺힌 눈물마저 닦아내며 사내는 눈앞의 존재를 가만히 주시하면서 바라보다 다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들려오는 말대로 이 숲을 너머 쭉 가면 용이 사는 굴이 나오지! 허나 인간이여! 그 용을 만나서 뭘 하려는거냐? 용의 재보가 탐이 나는 것이냐? 아니면 용맹을 자랑하기 위해 용의 목을 원하는 것이냐?"

말이 끝난 사내의 주변에서 하얀색 연기가 솔솔 올라왔고, 곧 펑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연기 속에 보이는 실루엣은 상당히 거대한 몸의 형태였다. 온 몸이 은색으로 빛나고 있으며 그 덩치는 어지간한 건물 못지 않게 큰 용은 고개를 숙여 눈앞의 존재를 바라봤다.

"나를 찾는 모양이니 직접 나에게 말해보거라. 내 근처 마을이나 이 나라의 왕실에는 딱히 피해를 주지 않은 것 같다만, 내가 이 근처에 사는 것이 두려운 것이더냐. 아니면 목숨을 걸고 나의 재보를 노리는 것이더냐. 그것도 아니면, 내 목을 가지고 싶은 것이더냐?"

/맥커터질만 아니면 뭐든 오케이! 그냥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 것을 인간 형태에서 들은 용이 웃으면서 정체를 밝힌 장면이야.

98 이름 없음 (Xd8e/sjuCQ)

2021-10-04 (모두 수고..) 02:09:13

>>96

당신의 손길이 아티의 뺨에 닿을 때, 아티는 히히히 하는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천진하게 미소짓습니다. 누군가의 따스한 살갖을 만져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아티는 마치 오래전 잊어버린 습관과 온기를 떠올리려는 것처럼 당신의 손길에 자신의 뺨을 부드럽게 치대어옵니다. 얼굴에 남아있는 물기며 눈물자국들이 당신의 손길에 조금씩 닦여나갑니다. 눈물이 다 닦여나가고도, 당신이 손을 떼지 않았다면 아티는 한참이나 더 당신의 손에 기대어있었을 것입니다. 후드를 벗어던진 그 순간부터 이 모든 일들이 하나같이 충동적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그래서 일이 조금 번거롭게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남은 일을 하는 내내 시계탑 안에서 재회한 당신 생각이 불러오는 선명한 그리움이 조금 아플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것을 아티는 후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네가 듣고 싶으면 얼마든지."

아티는 가지런하고 뾰죽한 이빨을 드러내며 온 얼굴에 개구쟁이같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 눈빛만큼이나 그 미소도 변하지 않았네요. 당신이 알면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지나온 여행길에서, 이따금 꽤 친해진 사람이 있으면 아티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서 헤어진 상냥하고 똑똑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이따금 하곤 했습니다. 의도치 않게 끊어져버리고 말았던 그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갈 수 있게 되는 날이 가깝습니다.

조그만 장난꾸러기 꼬맹이라기엔 너무 크고 탄탄해진 아티의 품에 기대면, 옅은 흙먼지 냄새와 함께 희미하게 구운 빵 같은 냄새가 납니다. 문득 무언가가 당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게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면 아티가 맨손으로 당신의 머리를 다독여주듯 쓰다듬어주고 있습니다. 서투르지만 부드러운 손길. 예전에는 당신이 쓰다듬어주는 쪽이었는데요. "이거 해보고 싶었어." 하고 아티는 키득거립니다. 그러다 말고 아티는 "임무만 아니었더라도..." 하고 아쉬운 듯이 뇌까립니다. 그러다 아티는 문득,

"같이 갈래?"

하고 질문을 꺼냈습니다.

99 이름 없음 (BKnmjGCA1A)

2021-10-10 (내일 월요일) 00:58:06

갱신!

100 이름 없음 (YUIndFcQDI)

2021-10-10 (내일 월요일) 01:00:41

# 꼬맹이 여기 등장!
# 어떤 형식으로 돌릴까? 가볍게 해보고 싶으면 상L? 아니면 일반? 원하는 걸로 말해줘~

101 이름 없음 (BKnmjGCA1A)

2021-10-10 (내일 월요일) 01:01:27

# 일반이 괜찮을 것 같아! 상L 은 눈에 잘 안들어와서 ... 배려해줘서 고마워!

102 이름 없음 (CpZqa3y/8s)

2021-10-10 (내일 월요일) 01:11:15

>>101
# 고맙긴! 나도 일반 쪽이 익숙한걸~ 그럼 일반으로 하자!
# 사실 내가 참치에 오래 안 왔어서 재활겸 편지로 시작 해본거라 조금 못 쓸수도 있어...! 미리 미안! ㅜㅜ
# 장면은 카페 앞에서 바로 만난 부분부터 시작하면 좋으려나?
# 내가 지금 바로 레스를 쓰고 싶은데 오늘은 가봐야 할 시간이라... 내 레스 올리려면 내일 점심 조금 넘어서 가능할 것 같아 ㅜㅜ 이것도 많이 미안해 ㅜㅜ

103 이름 없음 (BKnmjGCA1A)

2021-10-10 (내일 월요일) 01:18:45

>>102
# 괜찮아 잘쓰고 못쓰고가 어디있어 그런걸로 부담갖지 않기! 다들 놀려고 온거니까 한줄 띡 써줘도 좋아.
# 아무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여유롭게 줘도 좋으니까 천천히 써줘!

104 이름 없음 (laW4Tc/P4c)

2021-10-10 (내일 월요일) 01:23:57

>>103
# 고마워 ㅜㅜ 그럼 내가 내일 안으로 꼭 레스 가져올게!
# 자유상황극 해보자고 먼저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오늘 하루 수고 많았고, 밤에 잘자! 좋은 꿈 꾸기를 바라!

105 이름 없음 (f2pNoYgWrc)

2021-10-10 (내일 월요일) 14:09:04

>>104

카페 바깥. 왼쪽 손에 그가 마실 음료와 작은 검은색 종이백을 든 여자가 핸드폰을 하고 있다.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며 작게 웃거나, 때로는 살짝 울상이 되는 등 조금이지만 다양한 표정으로 휙, 휙 바뀌던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조용히 그와의 연락에만 집중하는 듯 하더니 지금 나오라는 문자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답장을 보내며 고개를 들어 도로를 바라보았다.

' 아, 저기 있다. '

그녀는 도로에 가득한 차들 중 저 너머에서 한 번에 익숙한 차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듯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을 그대로 올려 그의 차를 향해 짧게 흔들었다.
비슷한 차일 뿐 다른 사람이 타고 있을 수 있음에도 망설임 없이 아는 척을 하는 모습이, 마치 그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그녀의 확신을 보여주는 듯 했다.

" 아저씨~ "

차에 타고 있어 그에게는 들리지도 않겠지만 그저 반가움을 표현하려는 생각인 듯, 적당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는 그녀의 얼굴엔 장난스럽기도 하고 즐거워 보이기도 하는 특유의 미소가 평소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106 이름 없음 (BKnmjGCA1A)

2021-10-10 (내일 월요일) 14:25:45

>>105

역시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아니라면 도로는 한적하다. 사실 오늘이 쉬는 날이라 사람들이 집에서 쉰다고 밖으로 안나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휴일이 아니었다면 어제 늦게까지 회식 자리가 이어지지도 않았겠지만, 오늘 이렇게 약속을 잡지도 못했겠지. 살짝 걷어둔 셔츠 아래로 보이는 손목시계에 시선을 돌리니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많이 지나있었다. 계속 문자를 해주긴 했지만 내가 늦은건 사실이니까 최대한 빨리 가자는 생각으로 엑셀을 밟는다.

그렇게 카페 간판이 눈에 보일때쯤 카페 앞쪽에 앉아있는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양 손에 뭘 들고 있는데 저 종이백이 나에게 줄 물건인가? 천천히 카페 앞으로 차를 운전해가자 이쪽을 보고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기뻐하는 표정에 역시 늦으면 안됐다는 죄책감이 몰려온다.

" 꼬맹이, 얼른 타. "

창문을 내리고 웃으면서 말한 나는 손수건으로 조수석 시트를 간단히 닦아준다. 출발하기전에 가볍게 청소는 했지만 그래도 한번쯤 더 하는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녀가 탈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는 뒷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저번에 두고간거 뒤에 있어. 지금 들고 있는 것도 뒷좌석에 던져놔. "

그렇게 얘기하고 오늘 갈 장소를 네비게이션에 찍는다. 어디 갈지는 저번에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107 이름 없음 (eF9HgOb8cE)

2021-10-10 (내일 월요일) 15:42:24

>>106

" 네~ 꼬맹이 탑니다~ "

약속 시간 이상을 밖에서 기다렸어도 그닥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오히려 꼬맹이라 부르는 그의 말에 장난스럽게 대답하면서 익숙하게 그가 닦아준 조수석에 오르며 차 문을 닫았다. 그렇게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 들어오자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기며 편하게 시트에 몸을 기댔다.
카페에서부터 차에 타기까지 이어지는 그녀의 모든 행동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웠다.

" 아, 고마워요. 이따가 챙길게요. "

안전벨트를 하며 고개를 돌려 뒷좌석을 확인한 그녀는 고맙다고 대답했지만, 이번 선물 만큼은 직접 그의 손에 쥐어줄 생각이었던 그녀는 지금 들고 있는 것도 던져놓으라는 그의 말에는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렇게 마지막 말을 무시해버린 그녀는 네비게이션을 하고 있는 그가 귀찮지 않도록 종이백을 반대쪽 손으로 옮기더니 음료가 담긴 컵만 당신 쪽으로 내밀어 빨대를 입가 근처에 가져다주려 했다.

" 여기요, 마실거. 급하게 준비하느라 바빴을 텐데 일단 한 모금 마셔요. "
" 그리고, 이건 뒤에 직접 던져서 놔요. "
" ..그때 못 줬던 생일 선물이에요. "

그가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전부 입력했을 즈음에 가지고 있던 종이백을 그에게 내밀었다. 크기가 크지도 않고,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선물용 가방은 별다른 장식이 없었지만 안에 들어있는 물건 역시 가격이 있겠다 예상될 만큼은 고급스러워 보였다.
하필 그의 생일날에 출장을 가는 바람에 챙기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그녀는, 가져온 선물의 정체를 말하는 목소리에 어렴풋이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 늦었지만 축하해요. "

108 이름 없음 (BKnmjGCA1A)

2021-10-10 (내일 월요일) 16:50:03

>>107

문자를 하면서도 느꼈지만 약속에 늦은 것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화가 나보이지는 않았다. 평소엔 약속시간보다 먼저 나와서 기다리곤 했으니 하루 정도는 봐준다는 의미일지도. 이래서 사람의 평소 행실이 중요한거다. 조수석에 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머리카락 가닥가닥을 떼어주며 말했다.

" 밖에 바람이 좀 부나보네. "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왔으니 바깥의 바람을 느낄새가 없었다. 잠깐 창문을 열었을때 바람이 조금 불긴했는데, 이렇게 계속 불고 있었나보다. 꽤 차가웠는데 이런 날씨에 바깥에 나와있으면 분명 감기 걸린다니까. 그렇게 네비게이션을 조작하며 입가에 가져다주는 음료를 자연스럽게 빨아먹다 종이백의 정체에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았다.

" 생일 선물이라고? "

분명 저번 달에 생일이긴 했었다. 그때 너는 분명 출장을 가있기는 했었지. 하지만 조금 아쉬웠다뿐이지 출장 가있는 사람에게 생일 선물 내놓아라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생일 축하한다는 말만 듣고 말았다. 그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받은게 꽤나 있었지만 이렇게 뒤늦게 챙겨주는 선물이라니, 그 누구에게 받은 것보다 값진 것이었다.

" 월급이 왜 없나 싶었는데 이것 때문이었구나? "

딱 보기에도 고급져보이는 것이라 출발하기전에 종이백에서 선물을 꺼내본다. 고급 브랜드 로고가 박힌 상자를 열어보자 보이는 것은 지갑이었다. 고급 가죽으로 마감되어있는 지갑은 영수증을 보지 않아도 그 값어치가 얼마나 될지 대충 짐작이 가서 놀란 눈으로 너를 바라보며 말했다.

" 너무 무리한거 아니야? 그냥 안주고 넘어가도 괜찮았는데. 그래도 고마워. 잘 쓸께. "

물론 똑똑한 그녀인만큼 다 계산하고 소비했겠지만 그럼에도 평소에 버는 것을 생각해봤을때 내 입장에선 좀 무리가 아닌가 싶었다. 주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본인이 부담될만큼의 선물을 받는 것은 받는 사람도 부담이 가기 마련이다. 그래도 신경 써서 선물을 줬다는 것에 감사를 표하면서 조심스럽게 뒷좌석에 가져다 놓은 나는 부드럽게 차를 출발 시켰다.

" 이렇게 큰걸 받아버렸으니 내가 줄 생일선물도 스케일을 좀 늘려야겠는데? "

고개는 전방을 주시한 상태로 너를 흘끗 쳐다봐가며 웃는다. 차도에는 생각보다 차가 없었고 신호도 빨간불에 거의 걸리지 않고 스무스하게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109 이름 없음 (jFnuKr3lCE)

2021-10-10 (내일 월요일) 17:36:09

자기가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비난받을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비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있어선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가문계승 후보자 중 하나의 목숨을 끊고 불행한 사고로 위장한 후 그는 검에 묻어있는 검붉은 얼룩을 닦아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다음 날, 정말 불행하고 운이 없게도 오두막에 불이 붙어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진상을 감출 것이 분명했다.

혹여나 불꽃이 중간에 꺼질까 싶어 어둠 속에서 불꽃이 사그라드는 것까지 확인하고 난 이후에야 그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참으로 비정하기 짝이 없는 권력 싸움 속 암투였으나 갑작스럽게 유력 가문을 이어가던 가주와 그 아내가 오랜 지병으로 목숨을 잃은 이후의 혼란 속에선 그 비정함마저 집어삼켜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이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윤리, 도덕. 그런 것을 따졌다간 이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혀서라도 지킬 이는 지키리라. 그리고 수행할 것은 수행하리라. 인간의 마음을 애써 잠재우며 지시에 충실하며 비정한 마음을 먹은 사내는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고 한 처소로 들어섰다.

그 안에 있는 이는 사내가 모시는 이였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입을 열어 그는 상황을 보고했다.

"지시한대로 처리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의혹은 생길지도 모르나 암살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난 그런 지시 내린 적 없어! 라는 식으로 사내가 멋대로 한 행동으로 처리하는 것은 조금 곤란할 것 같아. 그 외엔 어떻게 이어도 오케이.

110 이름 없음 (75gxEpABMA)

2021-10-10 (내일 월요일) 17:50:29

>>108
# 내가 지금 좀 큰 일이 생겨서 답레가 많이 늦을 것 같아... ㅜㅜㅜ 미안해..!

111 이름 없음 (jn265EYOsE)

2021-10-10 (내일 월요일) 17:56:50

>>110
# 괜찮아~ 천천히 줘.

112 이름 없음 (AerEHsKkLk)

2021-10-11 (모두 수고..) 19:03:09

>>109
불을 밝히지 않은 어둑한 처소에 가득한 침묵을 깨고, 차분하고 위엄이 서린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그의 주인의 것이 아니었다.

"유감이군, 상황이 상황이라 의혹만으로는 끝나지 못할 성 싶은데."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방 안이 달빛으로 은은하게 밝아졌다. 침대 위에는 그의 주인이 재갈이 물린 채 포박당해 있었고, 그 옆에는 길고 굽슬굽슬한 붉은 머리카락을 높이 묶어올리고, 낡았지만 잘 손질된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가 검을 뽑아든 채 그의 주인을 겨누고 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여섯명 정도의 병사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국왕 폐하의 명을 받들어, 자네를 이번 귀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서 체포하겠네. 자세한 이야기는 심문 때 듣도록 하지."

말을 마친 기사는 병사들을 향해 지시했다.

"포박해라!"

지시가 떨어지자, 곧 병사들이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113 이름 없음 (dHPE1aa3qU)

2021-10-11 (모두 수고..) 19:12:24

>>112 사내가 모시는 이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보고를 한건데 사실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둠이 깔려있었고 주인은 포박당해있었고,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보고를 하고 그 안에 병사들이 이미 있었다라는 전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이 전개로 잇는 것은 조금 애매할 것 같아. 기껏 이어줬는데 미안하다. 너참치.

114 이름 없음 (MK.lQbtPBY)

2021-10-13 (水) 20:08:08

“배고파!”

불쑥 외마디를 읊조리면서 나타나더니, 당신의 앞에서 눈을 깜빡인다. 새카만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 그리고 또 새카만 눈동자…가 아니다. 분명 눈동자가 까맣고 동그랗게 맺혀있었는데, 빨갛게 빛나고 있다. 석류알, 루비, 장미꽃잎, 선명하고 예쁜 붉은 빛으로 물든 눈동자가 샐쭉 감겨 사라진다. 눈웃음 짓고 있는 모양이다. 자, 다시 이 오밀조밀한 얼굴을 뜯어보면, 연하게 꽃가루를 덧대어 분칠한 것 같은 뺨과 입술 색, 히히 웃으며 드러난 이는 또 새하얗고, 송곳니는 유달리 뾰족하고… 뾰족하다. 송곳니가 왜 저렇게 뾰족하다 못해 날카로운가, 의문이 절로 생길 만큼이나 뾰족한 이를 가지고 있었다. 눈웃음지으며 생글생글, 밝고 당차게도 배고프다 하는 것과는 반대로 무서울 정도의 송곳니다.

“한 입만 물어도 돼?”

성장기 청소년은 잘 먹어야 한다고 그러잖아! 나도 한 입만 잘 먹어보자아아!

“약도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줄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빼더니, 당신에게 손을 활짝 펼쳐 보여준다. 캐릭터 반창고 뭉치와 연고가 손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맥커터 사절!

115 이름 없음 (Do2rtZbj4w)

2021-10-13 (水) 22:58:30

>>114

멘솔향이 나는 담배를 물고 있던, 보통 체격의 팔다리가 길쭉길쭉한 여성이 한밤 속에 더욱 도드라지는 허연 연기를 내뱉는다. 그 연기가 풀어져 밤하늘로 사라질 때 즈음 갑작스럽게 낭창한 외침이 여성의 귀를 자극한다. 분명 적잖이 놀랐을텐데 여성은 어깨를 가볍게 움츠렸다간 또 무기력한 평소의 눈빛으로 상대를 누르듯 응시했다. 날카로워 보이는 이와 환상처럼 붉은 눈동자는 여성의 무덬함을 뚫지 못했다.

" 뭐를?"

다짜고짜 물어도 되냐는 질문에 이미 반박자도, 한박자도 아닌 박차를 놓친 물음이 짓씹혀져 나갔다. 입에 물린 담배도 바스라진다. 이미 구겨지고 짧아진 몽당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밟는 여성의 태도는 무심하고 또 거칠었다. 뜨거운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달빛 아래로 희미하게 드러난 반창고를 보는 건지 모를 여성의 시선이 서서히 당신을 또 누르듯 응시한다. 그리고 인위적인 미소가 여성의 입가를 비튼다. 무얼 하려는 건지도, 누군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잠깐이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다면. 설령 미친 사람일지라도 지금은 놀아주고 싶었다. 여성은 순순히 골목벽에 기대며 항복한 포로와도 같이 순응적이고 공허한 표정을 짓는다.

" 마음대로 해봐."

116 이름 없음 (Do2rtZbj4w)

2021-10-13 (水) 23:01:21

오타났다.. 무덬함이 아니라 무던함이야!

117 이름 없음 (MK.lQbtPBY)

2021-10-13 (水) 23:38:55

>>115

“왜 안 놀라! 놀라야지!”

깜짝 놀라서 도망가려 하거나, 깜짝 놀라서 굳어버리거나, 깜짝 놀라서 당황하거나, 깜짝 놀라서…. 아무튼지 간에 깜짝 놀라는 당신의 반응을 상상하고 있던 탓에 되려 실망해서 물어본다. 조금 삐죽거리기는 했지만, 배고프다는 말을 대뜸 내뱉을 정도로 허기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허락해줄지 안 해줄지는 아직 모르니 인내를 가져보기로 했다. 무미건조한 당신과 시선을 맞추려고 들었다. 반짝반짝, 물게 허락해야 할 것이라는 부담감을 최대한 잔뜩 실어서!

“손가락! 목은 밴드 잘 떨어져.”

느린 답에도 재촉 없이 고분고분 기다린 이유도 허락 안 해줄까 봐서라는 이유가 컸다. 세상 어느 짐승이든 먹을 것으로 교육하고 조련하는 방법이 대다수인데, 소설 속에나 나올법한 존재라고 무엇이 다르지는 않은가보다. 바닥에서 밟히고 있는 담배꽁초에 시선이 톡 떨어진다.

“잘 먹겠습니다아!”

이윽고 다시 시선은 당신에게로 올라왔고, 방긋 웃으면서 당신의 손을 잡더니 입가로 가져간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다섯 손가락 중에 제일 작고, 약하고, 존재감 없는 그런 손가락. 날카로운 송곳니가 쿡 찌른다. 깊게 박아넣지도 않고, 핏방울이 맺히기는 할 정도의 얕은 상처를 내었다. 손가락에서 피가 나오는 것이 느껴지면 송곳니를 빼내고 손가락을 물고서 피를 빨아들인다. 배고프다니 먹고 있기는 한데, 맛있는 표정은 아니다.

118 이름 없음 (AuAcdFP1TY)

2021-10-14 (거의 끝나감) 23:31:04

>>109 아직 있을 지 모르지만 >>112랑 잇지 않기로 했으면 내가 >>109에 이어도 될까?

119 이름 없음 (MvuHTlMNK.)

2021-10-14 (거의 끝나감) 23:34:00

>>118 응? 물론 이어도 괜찮아! >>112는 이전 상황을 무시하고 새로 상황을 작성해서 잇기 조금 애매하니 말이야.

120 이름 없음 (gT2vy.anxI)

2021-10-15 (불탄다..!) 04:27:59

>>119 알겠어 그럼 오늘중으로 이을게:)

121 이름 없음 (gT2vy.anxI)

2021-10-15 (불탄다..!) 08:46:53

>>109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 채 보고를 올리는 종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내의 주인은, 이내 들려오는 흡족스러운 결과에 가늘고 나직한 목소리로 후후 웃었다. 높이 묶어올려 흰 리본으로 장식한 길고 부드러운 밝은 금발에, 서글서글한 눈매와 물빛 눈동자를 지닌, 여느 영애처럼 간소하지만 산뜻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그의 주인은, 혈육을 살해하도록 지시한, 피도 눈물도 없는 가주 후보라는 타이틀이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여인이었다.

"아주 잘해주었어요. 역시나 절 실망시키지 않네요."

차라리 마음에 든 과자를 구워낸 제과제빵사를 칭찬하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한 밝은 목소리와 구김살 없는 목소리로, 비록 완벽히 용의선상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지언정 방해물을 훌륭히 치워낸 수족을 칭찬한 영애는, 이내 평소처럼 발랄하지만 조금은 무게를 머금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 명령을 내리겠어요."

저 사내의 충정은 이제껏 겪어왔기에 잘 알고 있다. 나를 위하여 수도 없이 손에 피를 묻히고 타인의 생명을 바쳐온 자이니, 스스로의 목숨 쯤이야 기꺼이 내어주겠지. 그리 생각하며 영애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사내를 겨누며 여전히 해사한 미소를 머금고 가볍고 발랄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영원히 침묵해주세요. 이것이 내가 그대에게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영애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칼날이 사내의 목을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122 이름 없음 (ZIoHzGEbmA)

2021-10-15 (불탄다..!) 19:18:47

>>121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무슨 이득이 있어서 굳이 그렇게 피를 묻히는 잔혹한 짓을 하는 거냐고. 사내에게 이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충성을 바치기로 한 이가 그것을 바랬기 때문이었다. 이른 시기부터 자신의 주인 되는 이를 모셨고, 혼란의 시기가 온 순간부터 반드시 가주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자신의 검은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 존재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내리는 명령. 곧 죽음을 지시하는 것에 대해서 사내는 아무런 저항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이 필요없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걸로 좋은 일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주인이 내리는 명이라고 한다면. 그렇기에 사내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 그녀의 행동을 기다렸다.

"그것을 바라신다면야. 허나 아직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니, 부디 검을 들 수 없는 이 시간 이후에도 조심하셔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시길 바랄 뿐입니다."

칼날이 자신의 목을 찌르는 것을 기다리며, 혹은 다른 곳을 찔러넣는 것을 기다리며 사내는 마지막으로 볼 풍경으로 그녀의 모습을 담은 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눈을 뜬 이후에 보이는 풍경은 여기와는 다른 지옥불구덩이속일지. 아니면...

"......"

아마도 지옥불구덩이 속이라고 생각을 하나 사내의 마음에는 후회란 없었다.

123 이름 없음 (KwQRhA/rSU)

2021-10-16 (파란날) 09:50:53

>>122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서기가 무섭게 곧장 뾰족한 구둣발이 그의 정강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영애는 해사하게 웃으며 가볍고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나, 일어서라 명한 적은 없는데. 빨리 신의 품으로 보내달란 뜻인가요?"

고운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매도를 내뱉고, 영애는 후후 웃었다. 이내 사내가 입을 열자, 영애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으며 만족스러운 듯 미소지었다. 역시 말이 좀 많은 건 흠이지만, 좋은 장기 말이긴 했어. 더는 필요 없을 뿐이지. 사내의 말이 끝나자, 영애는 다음에 또 보자며 친구와 작별하듯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잘 가요."

서걱. 영애의 목소리 뒤에 이어진 것은, 묵직한 고깃덩이를 절단하는 듯한 섬뜩한 소리였다. 쿵, 소리와 함께 영애의 방안이 순식간에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화사한 드레스와 희고 깨끗한 얼굴에 피가 묻었지만, 영애는 아랑곳하지 않고 생긋 미소지었다. 피를 나눴을 뿐인 경쟁자들은 모두 죽었고, 그 범인 또한 죽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그의 마지막 타깃의 손에 죽은 것으로 알게 될 테고, 이걸로 완벽하게 용의 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진동하는 피비린내를 맡았는지, 하인들이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의 다 왔지만,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으면 안 되겠지. 영애는 콧노래를 부르고 싶은 걸 꼭 참고 검을 쥔 채 자세를 잡았다. 이후, 다급히 달려온 하인들이 문을 박차고 열었을 때 본 것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괴한과, 피 묻은 검을 쥔 채 겁에 질린 얼굴로 파르르 떠는 영애의 모습이었다.

124 이름 없음 (vtz9guR9vI)

2021-10-16 (파란날) 14:36:58

>>123 이미 캐릭터가 죽어버렸으니 더 이을 건수는 없을 것 같네. 이렇게 끝을 낼게.

125 이름 없음 (C6rO8ptV7w)

2021-10-16 (파란날) 15:39:49

>>124 이미 끝난 상황극에 자꾸 말을 얹어서 미안해. 혹시 괜찮다면 >>109에서 한 번만 더 이어볼 수 있을까? 참고로 난 >>112>>121과는 다른 참치야. 사실 굉장히 잇고 싶은 상황이 떠올랐었는데 두 번 모두 타이밍을 놓친 걸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거든. 생각보다 핑퐁이 짧게 끝난 것 같아서 기회가 된다면 나도 한번 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물론 거절해도 얼마든지 상관없고, 이전에 이었던 참치들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어. 문제가 된다면 자유 상극을 세운 참치는 주저없이 이 레스를 하이드해 주길 바래.

126 이름 없음 (vtz9guR9vI)

2021-10-16 (파란날) 15:41:57

>>125 어. 나는 상관없긴 한데 이거 같은 상황으로 다른 사람과 잇게 해도 되는건가? 그게 좀 애매하네. 룰로서 문제가 된다거나 그런 게 아니면 나는 괜찮을 것 같아. 사실 나도 전개가 이렇게 되니 조금 아쉽기도 하고 말이야.

127 이름 없음 (C6rO8ptV7w)

2021-10-16 (파란날) 15:44:16

>>126 나는 상황극이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대일로 넘어가지도 않은 채로 종결되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어. 만약 문제가 된다면 나중에 이 레스를 포함해서 내가 쓴 레스를 전부 하이드하면 되지 않을까?

128 이름 없음 (vtz9guR9vI)

2021-10-16 (파란날) 15:45:29

>>127 그럴려나? 하긴 이미 끝이 났으니 괜찮겠지? 그렇다면 나도 괜찮을 것 같아!

129 이름 없음 (C6rO8ptV7w)

2021-10-16 (파란날) 15:48:13

>>128 고마워. 그럼 바로 이어오도록 할게:>

130 이름 없음 (C6rO8ptV7w)

2021-10-16 (파란날) 16:26:37

>>109

방의 주인은 화려한 것을 좋아했다. 대륙에서 제일가는 장인이 반 년 동안 공을 들여 세공한 보석, 바다 건너 이국의 상인이 들고 온 집 한 채 각겨의 비단으로 지은 옷,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순금으로 장식한 가구. 루비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침대에는 두터운 휘장이 드리워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 보이는 형체를 통해 누가 안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잘했어."

사내의 말이 끝나자 휘장 사이로 흰 손이 나왔다. 가느다란 손가락은 말 잘 듣는 강아지를 칭찬하듯이 사내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 나의 강아지, 말 잘 듣는 충견. 훈련이 아주 잘 되어서 일처리도 확실할 뿐더러 배신도 하지 않지. 세상에 둘도 없는 맹견이었다.

"목격자 같은 건 남기지 않았을 거라 믿어."

휘장 안으로 다시 들어간 손은 이내 작게 접힌 쪽지 하나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둘째 형님이 날 의심하고 있어. 아직은 심증뿐이겠지만, 혹시 모르니 행적은 정리해 둬. 아침이 되면 이걸 조리실로 가져가."

엠마라는 하녀를 찾으면 될 거야. 그 말로 미루어 보아 그 하녀가 이 밤 사내의 행적을 정리해 줄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131 이름 없음 (vtz9guR9vI)

2021-10-16 (파란날) 16:55:33

>>130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정말 운이 나빠서 사내가 확인하지 못한 범위 내에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모르나, 그 정도로 먼 거리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람의 시야라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넓은 것은 아니었고 설사 뭔가가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확인할 정도의 거리라면 이미 그 자도 사내의 검에 목숨을 잃었으리라. 그런 어설픈 실수 따윈 하지 않는다는 듯, 사내는 자신의 뺨을 두들기는 것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그 의심하는 것을 이용해서 가문 내의 영향력을 뺏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결국 모두 생각하는 것은 똑같을겁니다. 병으로 인해 가문을 이어가던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 다들 권력을 얻기 위해 필사적일테니 말입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 가문의 주인이 되기 위해 피를 묻히고 상대를 제거하는 행위는 보통 비정한게 아니었다. 허나 귀족으로 태어난 이상 결국 그 운명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다. 사이좋게 지내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렇지 않은 곳도 분명히 존재했기에.

쪽지를 받아든 사내는 그 내용물을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엠마라는 하녀를 찾으라는 그 말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더 필요하신 사항은 없으십니까? 저는 당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명을 내려주십시오."

132 이름 없음 (XpmatWz9XQ)

2021-10-16 (파란날) 17:45:33

>>131

"믿을게."

짤막한 대답은 남자를 향한 신뢰를 담고 있었다. 그가 누군가에게 믿음을 주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밑바닥보다 더 아래에 있는 진창에서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동안 그의 곁을 지킨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사내였으니. 설령 사내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한 번 정도는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내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래야지. 둘째 형님은 가문 안에서 입지도 좁으니 더 수월할 거야."

이제 와서 세력 다툼에서 밀려날까 애간장을 태워도 여태까지의 망나니짓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 눈치는 빨라서 의심 따위나 하다니, 대체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이 저택에는 이제 제 사람보다 그토록 깔보던 사생아의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지금은 그걸로 됐어."

손을 가볍게 내젓던 그는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휘장 너머에서 천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사내를 향해 상체를 가까이 기울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상을 줘야겠네. 원하는 걸 말해."

133 이름 없음 (vtz9guR9vI)

2021-10-16 (파란날) 18:11:05

>>132

"말씀하신대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그다지 없을테니 너무 급하게만 가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급한 쪽은 그 사람일테니 말이죠."

가문 안에 입지가 적은만큼 혹시나 자신이 밀려날까 싶어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상황은 이쪽에게 유리해질수밖에 없었다. 의심을 한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사내는 누구에게도 목격당하지 않게 움직였고, 자신이 행한 일은 모조리 불행한 사고로 조작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허나 방심할 순 없었기에 급하게만 가지 않으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비추며 곧 들려오는 그걸로 됐다는 말에 수긍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상으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는 그 말에 사내는 잠시 생각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막상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게 자신의 생각이었다. 딱히 포상을 바라고 이렇게 모시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저 이것이 자신이 해야하는 일이라는... 마치 맹목적인 사명같은 느낌을 가슴에 품은 사내는 좀처럼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눈동자를 잠시 굴리다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은 솔직히 없습니다. 허나, 그럼에도 뭔가를 받아야 한다면... 언제가 이 가문의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도 당신의 그림자로서 지금처럼 일하게 해줬으면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이 끝난 직후에는 저는 필요없는 존재일지도 모르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의 검이 되는 것 뿐입니다."

맹목적인 추종에 이유는 없었다. 상대는 자신의 손을 더럽혀서라도 지키고 가주로서 올리고 싶은 자였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다시 말을 조용히 이어나갔다.

"만일 그게 힘들다면, 언젠가 가주로 오르셨을때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때라면 지금과는 상황이 다를테니 저도 다른 무언가를 바라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134 이름 없음 (130yYPA1zs)

2021-10-16 (파란날) 18:13:47

적당히 쓰라니깐, 바보야. 이번 달 들어서 벌써 몇 번째야? (전류가 파직, 하고 튀는 당신의 기계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언짢은 얼굴로 바라보다 피식 웃는다.) 그래서, 이놈 성능은 어땠어? 이 정도의 화력을 감당할 수 있는 신경회로를 가진 건 너 뿐일걸.

135 이름 없음 (XpmatWz9XQ)

2021-10-16 (파란날) 18:38:44

>>133

"성급히 날뛰다 실수라도 저지르면 이쪽에선 고맙지."

안타깝게도 그의 둘째 형님은 그리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사실 전 가주의 자식들은 대부분 물려받은 재산만 믿고 기세등등한 머저리들이었다. 적자들의 머리를 모두 모아도 사생아 하나만 못 하다니, 타계한 가주가 저승에서 땅을 치며 통곡할 노릇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사내처럼 충직한 사냥개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그건 상이 아니야. 당연한 거지. 내가 가주가 되면 날 떠날 생각이었어?"

대답해.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일순 싸늘해졌다. 따뜻하다 못해 다소 덥기까지 하던 방 안의 온도가 순식간에 떨어지는 듯했다. 침대에 반쯤 엎드려 있던 형체가 허리를 곧게 세웠다. 휘장 너머로도 날카로운 눈빛이 느껴질 정도였다.

실수는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배신은 용서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물은 건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야. 물론 거창한 걸 바라도 상관은 없지만... 돈을 원한다면 줄게. 보석도 얼마든지 있어."

사람의 가장 큰 원동력은 욕망이었다.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이상 욕망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내 역시 무언가 원하는 것이, 욕망하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러니 그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136 이름 없음 (vtz9guR9vI)

2021-10-16 (파란날) 19:06:17

>>135

"만일 당신의 앞으로의 길에 방해가 되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날카로운 분위기에 크게 반응하는 일 없이 사내는 마치 당연한 사실인양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물론 자신이 모시는 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경우에 따라선 자신의 앞길을 위해 주변의 측근을 내치는 일도 이런 귀족들 사이에선 흔하다면 흔한 일이었다. 자신이 그 대상이 된다고 할지라도 사내는 조금도 원망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로 인해 그가 피해를 본다면 자신이 먼저 부탁할 생각이었으니까.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이 모시는 존재가 피해를 입는 것은 그로서도 그저 두고만 볼 수는 없는 사실이었다.

돈과 보석. 그런 것을 자신이 바랬던가. 지금 이 삶에 크게 불만은 없고 인간의 마음을 버리며 악귀처럼 짙고 비정한 마음을 품은 자신이 그런 것을 바래도 되는 것인가.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인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좋으나 결국 어느 것도 자신에겐 거창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답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두진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조차 길게 이어지면 자신이 모시는 이에 대한 실례였기에.

"그렇다면 보석 하나를 얻고 싶습니다. 제가 쓸 것은 아니긴 하나, 근처에 있는 고아원을 조금 지원해주고 싶습니다. 손에 피를 묻힌 제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나, 저처럼 뒷골목을 헤메면서 배를 굶주리는 아이들이 가능하면 없었으면 합니다."

뒷골목을 헤집으며 돌아다니면서 배를 곪던 시절. 가족없이 홀로 외롭게 지내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는 쓴 표정을 지었다. 명을 받들어 손에 피를 묻히던 자신이 할 소리는 아니었으나, 정말로 모든 것을 배제하고 바라는 것을 떠올리다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앞으로 더더욱 영향력을 키울 수 있고 좋은 이미지도 세울 수 있지 않을까하기에 청하겠습니다."

137 이름 없음 (C6rO8ptV7w)

2021-10-16 (파란날) 19:48:25

>>136

"널 내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할 일이야. 그때까지 넌 그냥 자리를 지키면 돼."

놀랍도록 오만한 말이었으나, 그 목소리는 안심했다는 듯이 한풀 꺾여 있었다. 그의 몸이 다시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그럼 그렇지. 설령 사내가 그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고 해도, 그건 온전히 그가 다뤄야 할 문제였다. 감히 사내가 멋대로 떠나겠다 말겠다 할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약간의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흡사 어린아이가 심통을 부리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는 유달리 사내의 앞에서만 다섯 살배기처럼 구는 경향이 있었다.

"뭐야, 고작 그런 거?"

김이 빠졌다는 듯이 한숨이 새어나왔다. 뭘 요구하려나 했는데 고작 뒷골목 고아들을 먹여살릴 보석 하나라니. 자신의 사냥개는 묘한 부분에서 유한 구석이 있었다. 이것이 방금 전 사람을 죽이고 사고로 위장한 이의 대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새삼 느끼는 바이지만, 어째서 그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기로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자신은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한 동정심 따위 이미 버린지 오래였기에.

"그러지 않아도 이미 몇 군데 지원하고 있잖아. 그걸로는 부족했던 거야? ―하아."

당연히 부족했으리라. 그 지원마저도 철저히 득과 실을 따져 '선발된' 고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으니까. 사내의 성에 차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다시 휘장 밖으로 나온 손에는 브로치 하나가 들려 있었다. 작은 달걀만한 크기의 루비가 박혀 있는 황금 브로치는 척 보기에도 굉장히 값비싼 물건이었다. 이건 내 사냥개의 눈에 차야 할 텐데 말이지.

"가져가. ...굳이 내 이름을 댈 필요는 없어."

138 이름 없음 (vtz9guR9vI)

2021-10-16 (파란날) 20:23:31

>>137

누군가에게는 고작 그것이라고 할지도 모르나 사내에게 있어선 소중한 것이었다.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배를 굶주리고 때로는 추악한 짓까지 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쳤던 사내에게 있어선 자신이 살았던 삶을 또 다시 사는 이는 없었으면 하고 바랬으니까. 물론 사내는 자신의 삶을 저주하지 않았다. 비정한 마음을 먹으며 손에 진득한 피냄새를 남기는 건 자신이 모시는 이가 바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모시는 이의 바램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으니까.

브로치 하나를 받으며 사내는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 인사를 휘장 너머의 이. 어쩌면 자신보다 더 비정할지도 모르는 그 존재에게 바쳤다.

"허락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것을 팔면 얼마나 돈이 나오게 될까. 그럼 충분한 지원이 되리라. 그렇게 만족하며 그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브로치를 집어넣었다. 내일 별 일이 없으면 잠시 외출해서 한 곳을 지원해주면서,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따뜻한 온정을 비추는 시간을 가지리라. 그렇게 다짐하는 사내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흘렀다.

"내일 '사고' 소식이 들려오면 반드시 이런저런 말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아마 큰 영향이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무도 당신에게는 손을 댈 수 없을 겁니다. 제가 있는 한.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있는 한."

그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들어있었다. 의심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 누구도 명확하게 확신을 할 순 없었다. 그건 그저 불행한 사고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허나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조금 있는지 그는 살며시 물음을 조심스럽게 던졌다.

"만약 가주가 되신다면, 무엇을 꿈꾸고 계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물음이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139 이름 없음 (C6rO8ptV7w)

2021-10-16 (파란날) 21:13:29

>>138

감사 인사에 그는 대답 대신 손을 내저어 보였다. 이깟 브로치 하나는 그에게 푼돈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사내가 더한 것을 원했다 하더라도, 그는 얼마든지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아원 꼬마들을 먹이는 데에는 이걸로 충분할 것이다. 물론, 중간에서 누가 횡령을 하려 든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지,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는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래,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의 형제랍시고 있는 자들은 아직 그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있었다. 가주 자리를 놓고 개떼처럼 싸워 대느라 뒤에 서 있는 사자도 보지 못하는 꼴이라니. 그나마 한 놈이 슬슬 눈치를 채기 시작한 것 같긴 했지만, 그자 혼자서 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이건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는 싸움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 그의 형제들뿐이었다.

내가 뭘 꿈꾸고 있냐고?

그의 사냥개가 뭔가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내에게는 다행히도 모욕적인 질문은 아니었으나, 그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생각에 잠겼다.

나는 뭘 꿈꾸고 있지?

아니, 이 질문은 틀렸다. 전제부터 완전히 틀린 질문이었다.

"난 뭔가를 원하기 때문에 가주가 되고 싶은 게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가주 자리 그 자체니까."

그래, 바로 이거다. 그는 부드러운 침구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오리 깃털을 넣은 베개, 비단처럼 부드러운 이불, 황금으로 장식한 기둥.

이걸론 부족해.

"...권력이 필요해. 그 누구도 다신 날 무시하지 못하고... 인정받을 만한 권력이."

목적을 이룰 때까지 그는 그만둘 수 없었다. 자비니 동정심이니 하는 마음은 이미 옛날 옛적에 지워 버렸다. 설령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까마득한 낭떠러지라 하더라도, 그는 그만둘 수 없었다. 그는 권력을, 힘을 원했다. 고개를 들고 있었다고 죽도록 얻어맞지 않을 힘과, 버르장머리 없는 눈을 했다고 물 한 모금 없이 사흘을 갇혀있지 않을 힘과, 채찍에 맞은 자리가 곪아 터져도 약을 구하지 못해 혼자 앓지 않을 힘을.

그걸 위해서라면 그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140 이름 없음 (vtz9guR9vI)

2021-10-16 (파란날) 21:39:13

>>139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고 인정받을만한 권력이 필요하다는 그 말을 들으며 사내는 입에 담진 않았으나 공감하는 마음을 가졌다. 자고로 높은 자리에 앉아 아래를 보지 못하는 이들은 그 밑바닥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평화로운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당장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 너무나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제가 반드시 그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주제넘을지도 모르나 그런 당신이기에 저는 그 누구보다 당신을 모실 수 있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이들보다 차라리 저렇게 갈구하는 마음을 보이는 이에게 사내는 충성을 바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같진 않더라도 비슷한 부분이 있기에 움직이는 마음 또한 있었으니까. 물론 상대의 삶을 온전히 알 방도는 없었으나 그럼에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기에 더더욱.

이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며 사내는 꾸벅 인사를 바쳐 상대에게 말을 전달했다.

"그렇다면 자리를 비워보겠습니다. 부디 편안한 휴식 시간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이 시간에 접촉한 것을 누군가가 알게 되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자신이 모시는 이가 누군가에게 의심을 사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피해야만 했기에.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꾸길 빌겠습니다. 저의 주여."

141 이름 없음 (C6rO8ptV7w)

2021-10-16 (파란날) 22:08:14

>>140

"...그래."

확신이 담긴 목소리를 듣자 거짓말처럼 온몸에 힘이 풀렸다. 자신이 원하는 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라 한다면, 막는 대신 그 길을 닦아 놓을 사내였다. 긴장이 풀리자 피로감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그 역시 사내 못지않게 바쁜 하루를 보낸 참이었다. 방해되는 사람을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승을 위해서 필요한 건 그게 다가 아닌 탓이었다. 피곤했다.

"......가지 마."

그는 휘장 너머로 손을 뻗어 사내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정말로 원한다면, 주저할 것 없이 명령을 내리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하면 사내는 군말없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 작게 웅얼거렸다.

"하루 정도는 괜찮아. 그냥... 거기 있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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