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알아요. 그렇기에 어차피 살아 가는 거 즐기면서 살아가는거겠죠. 저도, 다른 사람들도."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안에있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증오는 사그라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표출해내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직 자신이 안고 가야할 짐이었으니까, 그 짐을 다른 이들에게 굳이 알릴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짐이 무겁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10년이나 지나지 않았는가. 그 직후의 문제들은 전부 그녀에게 있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고 10년간 돌아다니면서 사귄 인연들은 그 짐의 무게를 잊을만큼 너무나도 소중하고 찬란한 것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과거는 부정하지만, 버리고 싶지는 않아요. 어쩌면 괜히, 버리고서 후회할 바에야 끝까지 안고 가야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그녀는 깊은 호수같은 눈동자를 응시하며 가볍게 웃었다. 어쩌면 당신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한순간 만큼은, 지금 이렇게 둘이 마주보는 순간 만큼은 그 넓은 호수가 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요. 그녀는 그렇게 되뇌였다. 욕심 내지 않는거야, 그에게는 한순간일지 몰라도 그에게 매일 같이 새로운 기억을 남기자, 나라는 바람을 잊지 않도록, 그의 마음속에 깊고 깊게 새겨놓는거야. 그녀는 그렇게 천천히 미소를 지은채 그를 따라 들어갔다.
처음의 그 곳이다.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이곳은 그녀가 이제 찾은 보금자리였다. 많은 것이 필요했다. 모포부터 접이식 침대, 각종 편의성 가재도구들과 필요하다면 조립식 옷장에 각종 여벌 옷까지, 앞으로 어디를 다녀오건간에 더이상 그녀가 돌아갈 곳은 길드나 주점, 여관이 아닌, 바로 이 장소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아뇨, 넘치게 충분해요. 제가 씻느라 물을 더럽히는 건 조금만 용서 해주세요."
가볍게 눈을 찡긋이면서 개구진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와 자신의 미적감각은 다르겠지만, 만에하나 그가 자신의 씻는 장면을 본다면.... 오, 그것도 괜찮을지도, 라고 가볍게 중얼거리는 그녀였다. 무슨 상상을 한 것인지는 아마 그녀만이 알겠지. 그 순간이었다, 자신만 이렇게 부끄러운 상상에 부끄러워 하는데, 상대방은 전혀 그런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심술이 샘솟은것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에메랄드빛 눈동자로 가만히 자신의 군주를 올려다 본다.
"에잇."
-쪽
순식간에 부드러운 감촉이 그녀의 입술에 닿는다. 아주 잠깐사이에 그가 방심한 틈을 타 볼에다가 가벼운 버드키스를 남긴 그녀는 히쭉 웃은채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혀를 빼어 물며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헤헤, 저만 부끄러울수는 없다고요! 그럼, 저는 제 짐을 가지러 다녀오겠습니다!! 앞으로는 계속 여기 있을꺼니까, 3일이란 약속은 파기하는걸로!!"
그렇게 그녀가 출구를 향해 달려나간다. 마치 처음과 마찬가지로 상쾌한 바람과 청아한 내음을 남긴채 그녀는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일단 이걸로 막레에요!!
/나중에 보신다면 1:1 어장으로 와주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