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306068> 자유 상황극 스레 3 :: 1001

이름 없음

2021-09-13 08:11:25 - 2022-12-20 23:06:42

0 이름 없음 (wSjOpuFcMU)

2021-09-13 (모두 수고..) 08:11:25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594 이름 없음 (UC6RvxhPxM)

2022-08-03 (水) 15:07:59

>>593

/일하는 도중 바쁘게 쓰다보니 크나큰 설정오류가 있었다니...!! 넓은 아량 고마워!! 곧 다시 써올께!

595 이름 없음 (Dd0Y7WEg36)

2022-08-03 (水) 15:09:56

>>594

/천천히 와도 괜찮아

596 이름 없음 (UC6RvxhPxM)

2022-08-03 (水) 18:35:58

>>593

"치매는 무슨, 애시당초 오늘 내일 하는게 우리네 삶인데."

치매가 오기 전에 먼저 모가지가 따이지는 않을까? 당장 그 험지에서 살아남는 것만 생각해도 굉장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남부의 그 여유를 부러워했고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 전쟁을 막고자 할 이유는 없었다, 형제 자매들이 목놓아 슬픔을 토했고, 약육강식에 찌들은 그들은 남방이란 정복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았을테니까. 그들의 오만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의 시선으로 상대방의 눈이 들어온다.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만든, 우리가 만든 괴물이었다. 약육강식에 잡아먹혀 그를 버티지 못한 이들의 소외감, 그리고 증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괴물이자, 역작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결과물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했던 최악, 최고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사내를 잠시간 온화함 반, 대견함 반으로 지켜보는 순간, 그의 오른손이 잡아당겨진다.

"오호."

어느정도의 수를 읽은 것일까, 그는 말그대로 괴력을 선보이면서도 사내의 흐름에 발맞췄다. 일부러 뼈와 근육을 뒤틀듯 사내의 손목이 기묘하게 움직이고, 마치 사내가 자신의 무기에 가져다 주듯, 그는 손아귀에 있는 힘껏 무기를 부여잡고, 뒤틀린 상태 그대로 무기를 움켜쥐는데 성공하였다. 괴물, 이라고도 볼수 있겠지만, 이러한 수를 쓸만큼 이제 그에게는 여유가 없다는 뜻이리라.

"대단해, 대단해!! 이정도로 몰아 세울줄이야.... 그리고..... 정말 대단한게 뭔지 아나? 자네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일세."

무기를 뽑아든 채 그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잠깐, 물러섰다고?

"놀랐나 보군?"

대전사가 손을 펴보였다. 왼손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말끔히 잘려나간 듯 왼손바닥 이었던 것에는 더이상 중지부터 시작해 대부분의 형상이 없는 상황이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검지와 엄지를 연결하는 살부분을 제외한, 손바닥 자체가 없었다. 그랬다, 상대방이 금나수를 선보일때 무의식적으로 그는 전신에 힘이 들어갔고, 동시에 발맞춰 자세를 취할때 기병도가 사내의 손을 완전히 찢어 발겨버린 것이다.
슬슬 피로감과 피를 계속 흘린 댓가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억지로 정신력에 힘을 주고 버텼지만 이 이상으로는 절대 안된다는 듯이 그는 바위에 자신의 오른팔을 후려쳐 억지로 근육과 뼈를 끼워 맞추고는 씨익 웃었다. 이제는 진짜로 마지막을 장식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의 내가 산으로 보이는가?"

그가 웃는다. 그 표정은 산을 닮았다. 때로는 못 이길 시련처럼, 때로는 아버지같이 따스하게,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는 정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이어받아낼 남자를 찾은것이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네만, 그대라면 내 모든 것을 가져가도 좋네. 대전사의 칭호, 자네에게 물려주고 싶네만."

남은 한손으로 둔기를 집어 든다. 아까와 같은 투기와 패기는 없지만, 막대한 거력을 담아낸 듯, 태산과도 같은 험준하고 광대한 기운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사내의 시선으로는 분명,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태우는 불꽃이 그의 눈 안에서 보일 것이리라.

597 이름 없음 (JohdJWCzio)

2022-08-03 (水) 20:10:05

>>596

"그래도 나는 오래 살고 싶습니다."

뒤틀려버린 손으로도 기어코 애병을 다시 잡아챈 사내의 집념에 장교는 기를 써서 기병도를 휘두르려 했다. 아니, '휘둘렀다.' 저항감 없이 날이 허공을 반 바퀴 긁은 뒤에야 장교는 오른손이 더 이상의 속박을 받고 있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어쩌면 상대의 기백에 지나치게 눌려 있던 것일까, 클린치에서의 무수한 수싸움과 격한 몸의 흔들림을 생각하면, 날을 쥔 손이 남아날 거라 생각한 게 이상했다. 그 정도로 상대의 위용에는, 도무지 불신의 칼을 대기 힘들었다.

"당신같은 상대를 반드시, 하나 더 찾아내기 위해서."

그러나 지금, 의식하지도 못하는 새에 비로소 날이 들어갔다. 최초의 접근 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여유로운 간격 너머로 보이는 남자는 더 이상, 항거할 수 없는 철벽이 아니었다. 끓어오르듯 가쁜 호흡 속에서, 점점 희열이 나타났다. 드디어, 도달해간다. 반죽음 상태의 중년을 상대로 느낄 감정은 아닌지도 모르지만, 따라잡아가는 기쁨, 도전자가 아닌, 대적자로서 서 있음을 느꼈다.

"지금의 저는, 산으로 보입니까?"

광포한 북방의...... 아니, 그 자신의 오만을 드러내 보이며, 장교는 간격이 벌어진 잠깐의 여유를 틈타 스스로의 가슴을 눌러, 부러진 갈빗대들을 어떻게든 엇갈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적어도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는 엇나가 내장을 찌르지 못하도록 했다. 이쪽도 꽤나 만신창이지만,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 터프함의 원천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장교는 처음으로 자신의 출신에 감사를 느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던 도망자의 콤플렉스를, 오롯이 떨쳐낼 수 있었다.

"무례를 용서하신다면......"

장교는 기병도를 가볍게 몇 번 휘둘러 허공을 수놓았다. 반사광의 미묘한 연결로부터 시작되는 간단한 기교는 남방의, 아니, 장교 자신의 의례였다. 일생에 마주한 가장 뛰어났던 자, 누구보다도 동경했던 자, 한때 원망으로 따라잡길 바랐던 자, 마지막으로, 스승이었던 자에게, 장교는 가능한 한 최대의 경의를 표한 다음, 우레와 같이 포효했다. 한 명의 전사로서, 그리고 답할 수 없는 제안에 대한 그 나름의 의사 표현으로서.

"와라!"

598 이름 없음 (L.ZHS5dAfE)

2022-08-03 (水) 21:03:52

>>597

"음? 후후후.... 하하하하!!"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드디어 너 다운 모습이 나왔다고 해야겠구나. 드디어 내 죽음이 헛되이지 않겠어, 보이냐? 이 녀석들아!! 이 녀석이 바로 다음대 대전사다!! 너희는 해내지 못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에 드디어 올라 선 것이다!! 그 웃음에 모든 감적이 튀어나온 듯 그가 웃음을 사방으로 터트린다. 전쟁에서 패하고 전투에서도 패하였으나 이미 모든 것을 얻어낸 것인지 그는 자신이 산으로 보이냐는 말에 웃음으로 답한 것이었다. 불완전 했으나 멈추지 않고 결심한 것을 움켜쥐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 눈앞의 막무가내 사내가 무아지경으로 붙잡은 이 기회를 어디까지 가지고 올라갈 것인지 끝까지 보지 못함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일기당천의 사내라고 하더군. 하지만 말이야. 이제 그것도 옛말이 되겠군, 자네는 일기당천을 이긴사내가 되는 거지. 그래 무슨 칭호가 어울릴까...."

그 순간 천천히 미소를 띄우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천하무쌍(天下無雙)이 좋겠군."

그와 동시에 나지막한 말이 그의 외침에 묻혀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그의 둔기가 천천히 휘둘러진다. 산들바람부터 건들바람, 흔들바람, 된바람에 순식간에 큰센바람까지 올라가고, 마침내 북부 최후의 전승비기인 싹쓸바람까지 휘둘러진다. 마치 자신 눈앞의 사내에게 이 모든 것을 기억하라는 듯 기술의 힘배분과 모든 것을 하나하나 전승시키기 위해 한차례의 고된 춤을 추었다. 그 순간 모든 바람이 멎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흐릿해져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그의 둔기가 거대한 사선을 그었다. 하늘부터 땅까지, 모든 것을 삼킬듯한 바람이 터져 나오며 그의 말이 조용히 위대한 전설이 될 남자에게 흘러 갔다.

"고생했네, 후예여. 모든 원망은 나에게 두고 앞으로 가시게. 아니지 아니야...."
[제 12식 - 싹슬바람, 아류 - 용오름]
"다음을 부탁하지, 다음 대전사."

온전한 상태라면 분명히 최후의 일격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 눈앞의 사내는 알것이다. 기술의 기수식 자체가 양손으로 휘둘러야만 온전한 일격이 되는 그러한 기술임을.

599 이름 없음 (qUJYWtu0DQ)

2022-08-04 (거의 끝나감) 01:17:33

손에 우산을 쥐고 있었지만 펼치고 싶지 않았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피하지도 않았다. 추적추적 떨어지는 비를 맞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이다. 미친 년처럼 보일 기행을 저지르는 중이다. 나도 그저 따스한 누군가의 진심 어린 걱정을 받고 싶을 뿐이야.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그런 걸 바란다니 과분해도 너무 과분하다. 당신도 나를 지나쳐가겠지. 나는 비에 젖은 몸이 추위에 떨기 시작하면 집으로 갈 것이었다. 죽고 싶거나 미쳤다는 말이 참말이기에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600 이름 없음 (KONr/rCF3A)

2022-08-04 (거의 끝나감) 01:34:44

>>599

처음에는 미친년인가 싶었다. 우산을 들고 있음에도 나리는 비를 그대로 맞고 섰는 저 여자는 뭐 마음이 그리 고될까. 통념적으로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거나 각별히 다독여주는 것이 마땅할진대, 그건 진심도 걱정도 아닌 남에게 아량을 베풀었다는 데에서 오는 알량한 자존감의 충족일 뿐일지다. 다만 그것을 잘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말없이 다가가 구태여 비를 막아주는 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이 목구멍을 슬쩍 긁어놓은 탓이다.

"어디 아프세요?"

601 이름 없음 (JBe3FY.CBY)

2022-08-04 (거의 끝나감) 08:24:03

>>598

육중한 둔기가 허공을 수놓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던 장교의 팔이 흔들렸다. 큰 게 온다는 직감과 함께 그는 마지막을 예감하며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심으로 생각하기를, 선발제인의 수로 기수식에서 저 동작을 꺾어버리는 판단에 마음이 동한다. 하지만 그것은 저 사내의 여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외팔일지언정, 상식을 무시하고 지친 상태에서도 자신과 같은 속도로 저 거병을 움직이던 완력이다. 설사 이빨만 남는다 하더라도, 준비동작에서 반격을 허용할 상대가 아니다.

대신 극도로 공격적으로 칼을 앞으로 뻗고 맞서기를 택한다. 바람을 막기 위해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천막? 벽? 하지만 지상 어디의 바람보다도 차갑게 다가와 살을 씹어먹는 북풍을 상대로는, 때때로 막는 것보다 나은 선택도 있다. 어쨌든, 벽보다는 깃털이 싸게 먹히는 법이다.

장교는 몰아쳐오는 사내의 거병을 향해 가볍게 도약했다. 막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다만 바람을 탈 뿐이다. 폭풍에 휘말린 뇌운처럼,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는 민들레의 종자처럼 장교는 몸을 펼쳤다. 부족한 손의 한계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공세의 감속, 그 짧은 순간을 포착해, 휘둘러오는 둔기를 발로 디뎠다.

발목을 감싸는 알싸한 충격, 그러나 버틸 수 있다. 원래라면 박살이 났을 발을 축으로 삼아 다시 한 번 도약한다. 동시에, 오른팔을 뒤로 한 번 펼치고, 빠르게 갈무리한다. 소름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기병도는 앞으로 당겨지고, 몰아쳐온 거센 바람을 거꾸로 타고 앞으로 뻗는다.

태양과 장교의 형체가 일순 겹쳤다. 일광을 등진 장교의 목이 찰나에,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바로 직후에, 위에서 아래로 기병도를 찔러내려갔다. 남방의...... 아니, 자기 자신만의 유파, 폭풍에 휘말려 밀려들어와서, 어느 새 폭풍보다도 깊은 상흔을 남기고 떠나는,

구름.

602 이름 없음 (oT1wo7ylFA)

2022-08-04 (거의 끝나감) 20:07:26

>>601

'오.'

대전사의 눈이 살짝 휘둥그레해진다. 그것은 마치, 한순간이나마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어전투구 속에서 살아남아 승리를 쟁취했을때의 그 감정이었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잠깐동안이지만 그의 성장을 지켜보는 이로서는 가장 크나큰 즐거움이 지금이라고 할수 있으리라. 폭풍을 거슬러 오르는 그의 모습은 마치 등용문을 오르는 용어의 모습이었다.
자신을 막아섰을때의 그를 보고 잠깐이나마 가소롭게 생각했던 자신을 향해 뒤통수를 한대 후려갈기고 싶은 느낌까지 들었다. 용이 되려는 남자를 막아서서 그 성장의 한걸음이 되어주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남자는 이미 이 생에 모든 일을 다 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굉장하구나."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폭풍의 한가운데를 거슬러 오르는 용의 모습에 그는 순수한 웃음을 터트렸다. 삶의 끝에 도달한 지금, 그는 지금 막 백수의 황제를 쓰러트리고 저 먼 하늘을 비상해 오르는 용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어서 서둘러 올라가라,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용과 같이, 나를 밟고 그 하늘 너머로 날아가는 것이다.
출신, 성분, 나이, 그 모든 족쇄가 지금만큼은 모두 박살나가는게 느껴진다. 폭풍을 꿰뚫고 하늘을 뒤덮인 구름을 바라보며 그는 천천히 둔기를 땅바닥에 꽂았고, 천천히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축하한다.... 네가 다음 대전사다....."

가슴으로부터 뜨거운 피가 쏟아진다. 하지만 그의 입가로는 감출수 없는 미소가 드러난다. 그것은, 진정으로 용이 된 남자를 위한 축하의 선물이었다.

603 이름 없음 (3dIEBrXC8E)

2022-08-05 (불탄다..!) 09:21:03

>>602

장교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승리의 직감, 동시에 공포, 혼란, 흉부를 관통한 기병도가 뒷걸음질에 따라 느릿하게 뽑혀나왔다. 붉게 물든 날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그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어나."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불분명했다. 그러나 곧 장교의 한쪽 발목이 육체를 지탱하지 못해 스러졌다.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서, 마치 그림자를 보는 것처럼 장교 또한 칼을 바닥에 꽂았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장교는 토혈했다. 몇 개의 이빨이 피 속에 섞여 흘러나왔다.

"겨우 찾았는데, 이 개같은, 투쟁 뿐인 세상에서."

전신이 엉망이지만, 장교는 어떻게든 몸을 추스렸다. 죽을 정도는 아니다. 이런 격전을 벌였음에도 아직 이승에 발 붙일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신같은 자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있어야 한다고, 억지를 써 보려 했다. 그러나 붉게 타오르는 듯한 기병도의 날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스승을......"

최초로 사냥당한 베히모스의 앞에서 장교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고통 때문인 것처럼, 동시에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곧 비명이 울렸다. 누구에게도 보여지지 않는 장교의 입에서 나온 비명은 곧 줄어들어 신음이 되었고, 고통스레 끊기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도, 이어졌다. 듣고 있으면, 그것이 하나의 멜로디임을 알 수 있다. 투박한 전사의 노래, 6천명의 시체 위에 태연하게 서 있던 전사에게 보내는 용의 장송곡이 울려퍼졌다.

604 이름 없음 (vNvFOpMc4A)

2022-08-05 (불탄다..!) 18:50:12

>>603

"..... 이제 되었다."

그가 천천히 미소 짓는다. 흐릿해지는 시야가 모든 것을 말해주듯 죽음에 초연해진 위대한 전사는 만족한 표정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였다. 승자는 울음을 참고 있고, 패자는 오히려 만족했다는, 그런 이상한 결과가 벌어졌다. 그러나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것은 합당한 결과일 수도 있으리라. 그것이야 말로 사람들이 말하는 남자의 세계였으니까. 대전사는 자신의 죽음으로 용이 탄생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용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둔기를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무언가를 휘두르기 위함이 아닌 자신의 마지막 유언을 전하기 위해, 앞으로 날아오를 용을 위해, 백수의 황제는 마지막 사력을 다해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하였다. 아주 잠깐이지만 혈색이 도는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생기가 넘쳐보였다.

"네가 산으로 보이냐고 물었지 않느냐. 이제 그 답변을 들려주마."

그가 왼팔을 들어올린다. 이젠 만신창이가 되어서 더이상 손이라고 할수 없는 그것에선 더이상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엄지와 검지만 남은 손을 용의 머리에 올려두며 격려섞인 쓰다듬을 행하였다. 아들, 제자...... 저승으로 향하기 직전 가장 소중한 이에게 해줄수 있는 선물이었다.

"너는 하늘이다. 구름도, 바람도, 산도 모두 덮을수 있는 저 하늘이다. 생에 마지막, 너를 보고 네 길의 완성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모든 것을 이뤄낸 남자였다. 사내로서 천하를 호령하고 힘으로나마 무언가를 이뤄내었다. 모든 것을 잃었으나 모든 것을 얻었다. 죽음으로써 가장 아쉬운 것은, 눈앞의 젊은 용이 세상을 어떻게 호령할지, 그것을 보지 못해 아쉬울 뿐이었다. 하지만 어떠한가, 이미 자신은 그 역할을 다하였고, 이제는 그에게 맡겨야할 시간이었다.

"이젠 진짜 작별할 시간인가, 이게 내가 깔아놓은 길의 마지막이다. 남은건 스스로...."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걸로 대전사 사망!!

605 이름 없음 (Ih0JvXh4Qs)

2022-08-05 (불탄다..!) 20:19:13

>>390

여성의 신랄한 대답을 듣곤, 만족했다는듯이 미소를 띄고 있다. 들릴듯 말듯한 약한 흥얼거림이 들리다가, 이내 멈춘다. 가만히 앉아있는 여성 쪽으로 고개만 살짝 돌린채, 삐딱한 자세로 기대 앉는다.

"걱정돼?"

한껏 가늘어진 눈과 더불어, 입꼬리는 당겨져 웃고있다. 비아냥거리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기분 좋은듯한 어조다.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여성의 얼굴에 보석이라도 박힌듯 즐겁게도 바라본다.

"나 관심 받는거 되게 좋아하거든. 알고 이러는거야?"

얼굴을 닦아주는 여성의 손길에 그저 가만히 앉아있는다, 시선은 여성에게 고정된 채로. 왜 싸웟냐고 여성이 물어오자 그는 눈동자를 데룩 굴려 애꿎은 미니선풍기만 구경한다. 탈탈 걱정도 없이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는, 이 분위기에 비하면 경쾌하게도 들린다.

"양아치놈 싸우는데 뭐 이유 있겠어? 맘에 안드니까 친거지."

싸운 이유는 사실 돌아가신 어머니 욕을 들었기에 그런 것이다. 반장이 어디까지 알고 묻는지는 모르지만, 먹힐지 모르는 거짓말을 해 보인다. 맑은 웃음소리가 어울리지 않게 울려퍼진다. 분위기에 맞지도 않게 발로 당신의 신발을 가볍게 치며 장난을 걸어오며 말을 거는 남성.

"반장 공부하러 안 가? 그러다 나처럼 대학 못간다?"

/너무 늦게와서 반장오너 아직 있을련진 모르겠지만... 일단 올리고 갈게 3달이나 늦게와서 정말 미안.

606 이름 없음 (CpvVkHi1.k)

2022-08-05 (불탄다..!) 22:05:35

>>604

"......"

대전사는 고개를 들었다.

숨 쉬기 어려운 고통과 흐릿해진 시야,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건조해진 시선으로 이곳 저곳을 쓸어봐도 주위에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없다. 눈 앞에는 마치 세월의 풍파를 오래도록 견딘 거상과 같이 한 남자의 시체가 서 있었다. 지독한 피의 냄새와 끔찍한 고통이 없었더라면 정말로 오해했을지도 모를 만큼,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잘 가시오."

모든 것을 세상에 풀어놓고 사라진 자에게, 무덤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여전히 흉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사내의 몸을, 벌레와 까마귀에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저도 모르게 대전사는 성치 않은 몸을 움직였다. 나무와 풀, 다음 번의 비가 내릴 때까지 원 없이 타오를 수 있을 만큼의 땔감을 끌어모았다. 결코 사냥해서는 안 되었던 야수의 죽음에 대한 하늘에의 탄원이요, 마음 한켠에 미뤄두고 있었지만, 6천 명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화장이기도 했다.

그러고 있으려니, 말이 주인의 곁으로 돌아왔다. 대전사는 안장에서 물병을 꺼내어 목을 축였고, 직후에 말의 등 위로 엎어졌다. 조금은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일단은 간소하게 몸 곳곳에 부목을 하고, 움직일 준비를 했다. 쉬기에는 할 일이 아직 많았기에, 우선 앞서 나간 자신의 부대를 따라잡을 생각이었다. 맡겨진 무수한 책임들을 모두 해결하기 전까지는 움직임을 멈출 수 없다. 혹여나라도, 이 책임을 넘겨줄 만큼 걸출한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든 일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 때가 되면-.'

자신의 단검을 찾아 갈무리하고, 닦아낸 기병도를 칼집에 꽂고, 말 위로 올라타서, 대전사는 조용히 전대에서 부시를 꺼내었다. 터져나오듯이 만들어진 뜨거운 불길을 홰에 옮겨붙이고 나서, 대전사는 천천히 고삐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처참했던 격전의 현장을 비스듬히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그는 속삭였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대전사는 횃불을 던졌다.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한, 모든 전투와 죽음을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지워나가는 불길을 뒤로 하고 말은 달렸다. 빠른 속도로 산길을 향하며, 얼마쯤 뒤에는 매캐한 연기와의 거리도 벌려나갔다. 그러나 말 위의 기수는 못내 미련이 남아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겉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대전사는 거무튀튀한 것의 반사광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몇 번의 계절과 풍파가 지나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을 한 자루의 거병이, 한 사내의 묘비로서, 뜨거운 화염을 입은 채로도 당당히 서 있었다.


/이걸로 막레...일 듯 하네. 이야, 상당히 길었다
우리 원조 대전사님은 이걸로 성불하셨으려나?

607 이름 없음 (vNvFOpMc4A)

2022-08-05 (불탄다..!) 22:56:19

>>606

/고생했어!! 성불 수준이 아닐꺼야!! 아마 극락왕생하지 않을까 싶네! 생에 마지막 한조각까지 본인의 모든것을 받아내고, 동시에 그 사람이 자기를 뛰어 넘는걸 봤으니 이미 미련없이 갔을꺼야!!
/오랫만에 원없이 전투씬을 써봤는데 내가 좀 억지로 굴린게 없잖아 있었다고 느꼈음에도 끝까지 같이 어울려줘서 고마워!!

608 이름 없음 (QrW7HyjGTA)

2022-08-06 (파란날) 10:15:09

>>607 /하얗게 불태웠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음, 전투씬은 나도 많이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지를 만큼 지르며 어울린 건 피차 마찬가지라고
근데 여기까지 와서 그닥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데, 전쟁의 승패는 어떻게 되는 거야...?

609 이름 없음 (Bkvc2rHmkg)

2022-08-06 (파란날) 11:00:41

>>608

/아 결말? 북부의 대패야
/애시당초 대전사 본인이 말했듯이 '모든것을 잃었으나 모든것을 얻었다'는 말 자체가 이미 전투에서도, 전쟁에서도 패배할 것을 예측하였으나 지금 장교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의미였거든
/사족을 덧붙이자면, 대전사는 전쟁에 반대했어. 보급선도 제대로 유지 안될 뿐더러 추운 북쪽지방과는 달리 남쪽 지방은 북부인들이 경험하지 못한 풍토병이나 독성을 가진 풀들도 많았고, 기동성을 살린 공격을 가하더라도 백병전에선 이길지언정 공성전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거든.
지극히 정상적인 의견이었지만..... 결말은 보면 알겠지? :)

610 이름 없음 (QrW7HyjGTA)

2022-08-06 (파란날) 11:08:03

>>609 /그러면 이적해서 패배에 일조해놓고 돌아와서 대전사를 자칭... 린치당할 것 같은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반즈음에, '본대가 기습적으로 역공을 찌르는 사이 깊숙이 들어온 적을 틀어막는다'는 내용이 있어서 반전을 기대했는데, 그런 건 없었네

611 이름 없음 (Bkvc2rHmkg)

2022-08-06 (파란날) 11:11:44

>>610

/2차대전 독일을 생각하면 편할꺼야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말했지? 북부는 약육강식의 세계라서 힘을 보여주면 끝이야, 힘을 가지고 약식이긴 하지만 대전사의 계승을 거쳤는데 대전사를 인정안한다고? 오우 그거....
/아 그리고 대전사의 계승 방식은 매우 간단해, 전대 대전사를 죽이면 끝.

612 이름 없음 (QrW7HyjGTA)

2022-08-06 (파란날) 11:17:37

>>611 /증명해줄 목격자가 없잖아ㅋㅋㅋㅋ
뭐, 실력에 숙인다면야 관철할 수 있겠지, 관철할 수 없게 된다면 물려줄 사람이 나왔다는 거니까 더 좋은 거고
그러면 북부는 전후처리가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 다시 싸우고 싶어 하려나?

613 이름 없음 (Bkvc2rHmkg)

2022-08-06 (파란날) 11:43:26

>>612

/뭣하면 둔기라도 들고가서 내가 니네 대전사 죽이고 승계의식 치뤘으니까 꼬우면 덤벼!! 이라던가!! 정식 대전사 계승식은 무조건 1:1이고 진행되는 동안에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이 못 껴드니까!!
/그대목 답변은 중국 한족과 유목민들 관계를 생각하면 빠를꺼야!! 티격태격 하면서 틈나면 한판 거하게 치르는.... 다만 이쪽의 경우는 아직까지 남부를 정복한 예가 없다는 정도?

614 이름 없음 (yaIjXqe94A)

2022-08-12 (불탄다..!) 11:55:59

"야아아아아아아아아~!"

신호음이 끊기자마자 혀 꼬부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통화로는 소리 밖에 안 들릴텐데 술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달릴 때까지 달리고 있는 중인 목소리다. 평소보다도 높게 튄 음이라던지 부정확하게 굴러가는 발음이라던지, 또 주변에서 웅성이는 시끄러운 소리 등이 상황을 짐작케 한다.

"이쉐끄야, 또 집에 처박혀있지 말고 나와~!!!"

//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안 정했으니 자유롭게 받아주~

615 이름 없음 (834PkCqxGU)

2022-08-13 (파란날) 11:04:24

>>614

"....."

따뜻하게 덥힌 우유 한 모금을 들이키며 탁자에 앉아 하루간 있었던 일을 정산하려던 찰나, 울려오는 핸드폰에 그가 눈쌀을 찡그렸다. 이 시간에 전화가 울린다면 단 한명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아주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내일은 그나마 주말이었고, 지금 이 전화의 대상이 절대로 나쁜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그 반증으로 그는 핸드폰을 집어들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꼬인 발음과는 다르게 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에 혼자 갔는지, 다수가 갔는지 모를 정도로 소란 스러운 상황, 얼마나 퍼마셨는지는 몰라도 그는 어차피 상관 없다는 듯 무미건조한 상태로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며 전화기 너머의 상대방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얼마나 드신겁니까."

상당히 정중한 목소리로 그는 가운을 벗은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상대방의 전화를 끊지 않은채 옷을 챙겨입기 시작하였다. 평소에 입고 다니던 검정색 양복이 아닌, 캐주얼한 디자인의 블랙진에 하얀색 셔츠, 그리고 검정색 조끼를 챙겨입은채 그는 핸드폰을 챙겨들고 집밖으로 나서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내일이 주말이라지만 이 시간에 전화하는 건 민폐라는거 못 배우셨는지요. 그래서 어디로 모시러 가면 됩니까."

/퇴근한 경비와 자유분방한 도련님/아가씨라는 설정인데 괜찮을까요....? :(
/안되면 컷 해버리셔도 됩니다!!

616 이름 없음 (o6Tecvh5ps)

2022-08-13 (파란날) 11:34:37

>>615

"우리 스님과 마실 술배는 남겨놓았도다아~!"

본인이 말해놓고도 스님이라는 말이 우스운지 한바탕 웃는 소리가 난다. 그래도 내일이 주말이라니 자정을 넘기도록 퍼마시진 않아 다행일지도 모른다. 혹은 자정이 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나 취기가 올랐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마실 작정인지를 고민해야할 지도 모른다. 통화에 넘어오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나 소음은 당신에게도 시끄럽겠지만 그 뿐만이 아닌 것 같다.

"야아아, 너네 시꺼. 나갈래, 나갈래~!!!"

천천히 소란스러운 소리은 사그라든다. 어딘지는 모르지만 술을 마시던 왁자지껄 시끄러운 장소의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다만 공백은 다른 소리로 채워진다. 자동차 오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 뭘 모시러 와아~!!! 내일이 주말이니까 놀아야쥐이~!!!"

술 냄새 짙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너어, 너. 안 놀거면 오지마이쒸!!!"

// 상관업쓰~

617 이름 없음 (834PkCqxGU)

2022-08-13 (파란날) 12:06:34

>>616

"저한테 주말이 어디있습니까. 그리고 스님이라뇨. 머리를 밀어버린 적은 없습니다만."

푸념아닌 푸념을 흐트리면서 올백머리스타일에 조금은 날카롭지만, 순박한 인상의 남성은 빠르게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탄뒤 길거리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술만 아니면 좋은 상관인데 술만 들어가면 이 상황이 되는 거 자체가 우스운 상황인거지만, 애시당초 주말도 없는 상황이 좀 많이 슬프지만 자신의 일이기에 그는 그냥 묵묵히, 자신의 주인을 위해 달릴뿐이었다.

".... 후우, 알겠습니다. 단 한잔입니다. 위치만 말씀해주십시요."

그렇게 한숨을 내뱉자 마자 그가 창밖을 바라본다. 아직 날은 지나지 않았지만 밤거리는 위험하다. 언제나 화려한 네온싸인은 그를 감추기 바빴고, 언제 모를 사고는 후끈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었으니까. 항상 노파심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주인은 그만큼 자유분방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고 말이다. 남자는 입안에 은단을 털어넣었다.
지금 자신의 주인을 섬기기 위해, 그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술을 그만둔지는 2년밖에 되지 않았으나, 담배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끊었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이제는 은단으로 버틸만 했으니까. 다만, 자신의 주인이 술을 마셨다는 소리만 들리면 그날만큼은 너무나도 담배가 땡겨왔다.

/대강 위치 브리핑 해주시고오~ 검정색 제네시스니까 보이면 가볍게 브리핑해주세오!! 성별따라 호칭 달라지니까 말해즈시구!!

618 이름 없음 (A0Tr8cibsk)

2022-08-14 (내일 월요일) 11:48:45

>>605

당신이 만족스런 미소를 띄자 여성의 얼굴은 더 찌푸려진다. 약한 흥얼거림마저 불만스러운지, 삐딱한 자세로 기대 앉은 당신 쪽을 째려보았다.

"그래, 걱정된다. 됐어?"

당신의 웃는 얼굴마저 얄미웠다. 얼굴에는 피칠갑을 해놓고 당신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거다, 왜. 불만 있어?"

말투는 톡 쏘아도, 당신의 얼굴을 닦아주는 여성의 손길은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최대한 당신이 따갑지 않도록 주의하는 행동이었다. 피를 닦아주느라 당신과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던 여성의 눈동자가, 당신이 눈동자를 굴리자 그제서야 당신에게로 향했다.

"......넌 고작 그런 이유로 싸우는 놈은 아니잖아."

여성은 말을 툭 내뱉었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것은 아니었기에 당신이 싸운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래도 여성은 당신이 양아치여도 마구잡이로 싸우는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장실로 따라온 것도, 반장인 것도 반장인 것이었지만 당신을 두둔하기 위해서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맑게 웃으면 다시 또 당신이 얄미워졌다. 여성은 당신이 발 장난을 걸어오자 당신을 째려보더니 똑같이 발로 당신의 신발을 가볍게 쳤다.

"난 걱정 붙들어매시지. 이렇게 잠깐 빠지는 걸론 대학 진학에 영향 없거든?"

여성이 전교권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지. 여성은 나름대로 당신을 위해 여기 있는 건데,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장난치면 더 얄미웠다. 당신의 얼굴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여성의 손길이 심술을 부리듯 조금 거칠어졌다.

"걱정돼?"

여성은 파우치를 정리하며 당신에게 똑같은 물음을 되돌려주었다.

/ 괜찮아~ 반장오너 아직 있다! 나도 늦게 확인해서 미안해....

619 이름 없음 (HnWK872RgI)

2022-08-14 (내일 월요일) 16:45:26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상대방은 만나보고 결정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실례행위입니다."
"만나긴 할 거에요. 하지만 꼭 만나본 후에 결정을 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전 정략 약혼 같은거 하기 싫어요."

귀족가의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한 번은 부딪쳐야 할 관문이 바로 이 정략 약혼이었다. 집안과 집안의 이득을 위해 자식들끼리 약혼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이며 때로는 당사자들끼리의 동의가 있었지만 때로는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체결하려는 가문도 있었다. 옛날에는 후자가 대다수였으나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전자와 후자가 반반 정도로 나뉘어져있었고 집사의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는 이 푸른 머리 사내는 후자에 해당되었다. 상대방 집안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은 딱히 약혼에 대해서 들은 것이 없었다. 갑자기 약혼을 맺으려고 하며 약혼 상대방을 집에 초대했으니 만나볼 준비를 하라는 제 부모님의 지시를 떠올리며 사내는 괜히 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럼 도련님은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이라도 있으신겁니까?"

"아니요. 지금은 딱히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없어요. 무엇보다 누군지도 모를 이와 어떻게 약혼을 한다는 말이에요. 무슨 할아버님 시절도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정말로 어린 시절에 면식은 있는 분입니다만..."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을 카운트하지 말아주세요."

적어도 자신은 생각이 없다는 듯 사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집안에서 상대방을 초대했으니 자신이 나가지 않으면 그야말로 상대 가문에 대한 무례였으며 상대 가문의 입장에선 말로 다 할 수 없는 창피나 마찬가지였다. 약혼은 싫지만 그렇다고 무례를 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내는 일단 상대방을 만날 생각이었다. 물론 바로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을 입어 나름대로 예복 차림을 갖춘 사내는 도망치지 않을테니 따라오지 말라는 부탁을 집사에게 하며 응접실로 향했다. 슬슬 도착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뭐가 어찌되었건 상대방과의 약혼은 거절할 생각이었고 경우에 따라서, 예를 들면 상대방도 영 내켜하지 않는다면 연합해서 부모님에게 이 약혼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보이리라고 그는 머리를 굴렸다.

/그냥 정략 약혼을 정말로 꺼려하는 귀족집 도련님이고 상대가 곧 온다고 해서 일단 기다리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야. 꼭 상대방이 아니어도 되니까 그냥 편하게 이어줘도 괜찮아.
하지만 맥브레이커나 그냥 단순히 꼽 주려고 잇는 전개면 스루처리할 생각이야.

620 이름 없음 (awd9psyadY)

2022-08-14 (내일 월요일) 17:53:46

>>619

어느 귀족가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곱게 단장한 여성이 남몰래 한숨을 삼킨다. 느닷없는 정략 약혼을 위해 상대를 만나러 가라니, 아버님도 참 너무하시지. 귀족으로 태어난 이상 무엇 하나 자유롭지 못 할 것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 급작스럽잖아.

"자꾸 한숨 쉬시면 안 되요, 아가씨."
"안 쉬었어. 릴리."
"속으로 삼키신 것, 표정에 다 드러나신답니다."
"흥. 릴리는 내 맘도 모르고."

성년이라고는 하나 여성은 아직 앳되었다. 나이도 마음도. 아직 세상 궁금한게 많을 나이였고, 조금은 더 두근거리는 경험을 하고픈 시기였다. 약혼 상대도 가능하면 스스로 고르고 싶었다. 예를 들면, 아주 어릴 적 만났던, 신비로운 푸른 머리의 소년이라던지-

"곧 도착하겠네요. 자, 내리기 전에 거울 한번 더 보셔요. 어서요."
"치잇... 알았어.."

자신의 마음은 새카맣게 모르는, 아니 모르는 척 하는 시녀의 닥달에 그녀는 마지못해 거울을 들고 얼굴을 비춰보았다. 분을 바르지 않아도 새하얀 피부, 앵두를 머금은 듯 붉고도 도톰한 입술, 길고 가지런한 속눈썹과 진한 에메랄드의 눈동자, 아침부터 갖은 수고로움을 들여 손질한 백금의 머리카락...

"세상에 아가씨보다 더 고운 영애가 계실까! 분명 상대분도 홀딱 반하실 거에요!"
"상대가 반하면 뭐해. 내 맘에 안 들면 흥이지."
"아가씨!"
"흥!"

그녀가 시녀와 티격태격 하는 사이 마차는 귀족가의 정문에 도착해 멈춰섰다. 시녀가 마찬 안에서부터 능숙하게 그녀의 드레스를 정돈해주어 내릴 때 고운 자태를 뽐낼 수 있게 해주었다. 또각. 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귀족가 사용인의 안내를 받으며 응접실에 도착했다. 사용인이 먼저 문을 두드리며 그녀의 도착을 알리고, 문이 열리자 그녀가 안으로 들어갔다. 사뿐사뿐 들어가, 고운 로즈핑크빛 드레스 자락을 살짝 잡아 예를 갖춘 자세를 취하며 그녀는 귀족가 영애다운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셔요. 오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어요."

미모에 걸맞는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올린 그녀가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했을 때, 그의 머리색을 보고 흠칫 놀랄 뻔 했으나, 단단히 교육받은 귀족의 몸가짐을 떠올리며 애써 티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속으로는 혹시, 설마- 하는 의혹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약혼 상대인데 어릴 적 만남을 기억하고 있고 약간은 좋아한다는 느낌으로 이어봤어!

621 이름 없음 (HnWK872RgI)

2022-08-14 (내일 월요일) 18:09:03

>>620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님이 왔는데 자리에 앉아서 맞이하는 것은 귀족 이전에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자신이 상전도 아니고 어쨌든 대등한 눈높이에서 마주보는 시대가 아니던가. 자신의 할아버지 시절이라면 또 모를까. 아무튼 사내의 시선이 자연히 막 들어온 영애의 모습으로 향했다. 에메랄드 빛 눈동자와 정말로 고운 빛깔의 백금 머리카락. 그리고 정말로 부드러워보이는 고운 하얀 피부에 상당히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고 사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허나 곧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눈을 꾹 감았다가 다시 뜨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여기까지 오신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상당히 고운 여성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대충 머릿속으로 생각한 이미지보다 더. 아니. 애초에 상대에 대해서 나름 이름 있는 귀족가의 영애라는 것 외에는 들은 것이 없으니 머릿속으로 생각한 이미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어쨌든 그녀의 자리를 안내하며 그녀가 앉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는 앉았던 자리로 가서 앉았을 것이다. 정확하게 마주보는 구도로.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순 없지 않겠는가.

마주보자 자연히 보이는 그녀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그의 보라빛 눈동자에 비쳤다. 생각보다 되게 예쁜데. 하지만 약혼. 거절 해야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그녀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나름 곱고 연한 하얀 빛 뺨을 긁적이다 손을 아래로 내렸다. 결심을 확실하게 굳힌 후, 사내는 입을 열었다.

"초면에 실례가 될 순 있으나 저는 정략 약혼에 응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불만족스럽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아직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해야할까. 그냥 그런 느낌입니다. 제 집사의 말로는 저와 당신이 어린 시절에 면식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다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고요."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면서도 아까운 짓을 한 것이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티내지 않으려고 하면서 사내는 마음을 굳게 먹고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의사를 물었다.

"마찬가지로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오케이! 확인했어!

622 이름 없음 (awd9psyadY)

2022-08-14 (내일 월요일) 20:33:53

>>621

귀족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다양한 가문의 또래 아이들과 접하며 자랐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여러 집안의 자제들과 한번씩은 어울렸었다. 그 때야 아직 어리니 그저 아이의 마음으로만 순수히 놀았었으나, 유달리 기억에 남는 소년이 있었다. 깊은 바다를 닮은 머리카락에 예쁜 보석 같은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었다.

"아, 아. 네. 친절하기도 하셔라."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정략 약혼을 위해 만나게 된 상대 역시 그녀의 기억 속 모습과 흡사한 사람이었다. 가까이 온 그의 눈동자를 보고 더욱 이미지가 맞아들어간다. 아직 왈가닥이던 그녀는 하마터면 그를 보자마자 혹시 그 소년이었냐며 질문세례를 쏟아내었을 뻔 했으나, 자신이 귀족이란 점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참아내었다. 집에서 어머님께 배운 대로 예의 바른 인사를 하고, 고운 미소를 지으며 그가 안내하는 자리로 가서 배운 대로 사뿐히 앉았다. 두근두근. 그 사이 의혹은 궁금증으로 변해가 그녀의 심장을 들뜨게 만들었지만, 맞은편에 앉은 그가 첫 마디를 꺼내자마자 두근거림이 가라앉았다. 동시에 그녀의 표정도 시무룩해졌다.

"그러시군요..."

어릴 적 면식이 있었다-는 말로 그녀의 의혹은 사실이었음이 밝혀졌으나, 그래서 더더욱 들뜰 수도 있었으나, 너무나 확고한 거절의 의사는 식은 들뜸을 다시 일으키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래선 마차에서 릴리에게 했던 말의 부메랑이나 다름없잖아. 내가 마음에 들어도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람. 너무 시무룩해져서인지 그녀는 애꿎은 손가락을 괴롭히며 바닥과 자리 사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딱 봐도 저 토라졌어요, 를 티내면서. 그가 의견을 묻자 샐쭉하게 한 번 바라보더니 손만 더 꼼지락거린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가 말을 꺼내기까지 잠시 시간이 있었던 것처럼 조금 후에 그녀가 대답을 꺼냈다.

"당신께서는 기억도 나지 않을 어릴 적이겠지만.. 어린 제게는 특별한 만남이었고 오늘 오는 동안에도 만난다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여기 들어와 당신의 머리칼만 보고도 가슴이 뛰었고 어쩌면, 혹시, 라며 조금은 설레였는데..."

그렇지만 들은 얘기는 단호하디 단호한 이 약혼의 거절 의사였지. 게다가 어릴 때 만났던 건 의미도 없단다. 그녀는 잠깐이나마 혼자 들뜨고 혼자 설렜던게 바보 같이 느껴졌다.

"제가 그렇다 해도... 옛 일은 옛 일일 뿐이겠지요. 저도, 아버님이 한 번 나가보라 하셔서 온 것이니, 당신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돌아가서 아버님께 잘 말씀드릴게요."

사실은 조금만 만나보면 안 될까, 만나다보면 정략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 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 그런 말들이 목 끝까지 차오르긴 했지만 그녀에게 그의 태도가 마음을 완전히 굳힌 듯 보였다. 결국 꺼낸 말은 돌아가서 얘기 잘 해드리겠다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걸로 자리를 끝맺고 그녀는 곧 일어날 것처럼 몸을 살짝 움직였다.

/좀 고민하다가 썼는데 이건 좀 아니다 싶으면 말해줘!

623 이름 없음 (HnWK872RgI)

2022-08-14 (내일 월요일) 21:05:11

>>622

아무래도 상대는 자신과의 만남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특별한 만남이었다고 이야기하는데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자신만 기억을 못한다는 것이 묘하게 죄책감이 느껴졌고 그에 따라 사내의 마음도 절로 무거워졌다. 머리칼을 보고 가슴이 뛰고 어쩌면 혹시라고 하면서 설렜다는 그 말에 그의 입술이 아주 가볍게 흔들렸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 모습에 사내는 잠시 말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단 사과부터 전하겠습니다. 정말로 저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릴적이고, 제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마 그 이후에 특별히 더 교류가 있던 것도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약혼을 하는 것은 제 자신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굳이 말하자면... 생각보더 더 예쁜 분이 오셔서 놀랐습니다."

상대는 매력적이었으며 상당히 아름다웠으나 그럼에도 잘 알지 못하고 집안과 집안의 이득을 위해서 약혼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역시 제일 큰 이유였다. 어차피 장차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한다면 서로 잘 아는,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그런 사람과 하는 것을 그는 원했다 애초에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던가. 마음이 통해서 서로 약혼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판국인만큼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집안의 이득을 위해서 약혼을 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었던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다 털어놓진 않았으나 적어도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강조하듯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조금 무책임한 발언일지도 모르지만 당장 약혼을 하기보다는 그냥 지금 제 삶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기도 하고... 이런 마음으로 단순히 당신이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약혼에 응하겠다고 하는 것은 역시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뒤이어 숨을 약하게 내뱉으면서 그는 그녀가 몸을 살짝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며 그녀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물었다.

"말씀을 들어보면 약혼에 호의적인 것 같은데 어릴 적 저를 기억한다고 해도 지금의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집안과 집안 사이의 이득을 위해서 약혼을 맺는 것이 괜찮으신건지요. 마치 제가 거절하지 않으면 그대로 약혼을 이어가려는 것처럼 들려서."

원래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으나 상대가 저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을 굳게 먹는 것도 그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괜찮아! 오히려 캐릭터 설정과 캐입이라고는 하나 남캐가 너무 철벽을 친 것 같아서 잇기 힘든 것이 아닐까 싶어서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걸.

624 이름 없음 (6Ci7YSJZBY)

2022-08-14 (내일 월요일) 21:46:08

“우리… 그만할까요.”

입술을 씹었다. 애써 립을 발라 고운 색을 내면 무엇할까. 나는 이 연애에 지쳤다. 사랑받고 싶다는 갈증은 채워지질 않는다. 받는 사랑이 모자른게 아니라, 아마도 내 빈 공간이 너무 넓어서. 나도 너도 병들어갈 뿐이야.

625 이름 없음 (awd9psyadY)

2022-08-14 (내일 월요일) 22:36:52

>>623

사실 어릴 적 만남은 여느 아이들간의 교류와 별반 다를게 없었을 것이다. 세간적으로 보면 기억이 잘 안 날 만도 하고 그녀도 지금은 그 소년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는게 전부였다. 그저 어릴 적 추억으로 남겨두려던 만남이, 기어코 찾아와버린 정략혼 얘기에 생각났고, 만난 상대가 그 소년과 너무 닮아서 주책맞게 들떠버렸다.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와 비슷하게 시큰둥했던 건 깜빡 잊을 만큼.

헌데 그렇게 들뜨면 뭐하나. 설레면 무엇할까. 그녀를 그리 만든 상대는 저토록 단호한데. 마치 철벽과도 같은 그의 태도는 평소 말 많고 촐싹거려 어머니는 물론 시녀에게조차 제발 얌전해지라 듣는 그녀가 당돌한 말 한 마디 못 꺼내게 하였다. 역풍을 제대로 맞아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를 탓하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그가 아니었다면 비슷한 태도를 취했을테니, 그저 입장이 바뀌었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무룩하지만 차분한 말 뒤로 그리 생각하고 있던 그녀는 그가 사과를 꺼내자 살짝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곧 발그레하게 번진 홍조로 물들었다. 생각보다, 라곤 했지만 예쁘게 보여서 놀랐다고 하니까. 방금도 그렇고 자신이 싫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재차 말하는 걸 보니 정말일지도- 싶었다. 그녀가 예쁘니까 라는 마음으로 약혼을 하기엔 실례라 생각했다는 말도 그녀의 표정을 풀어주는데 일조했다. 처음처럼 미소를 짓진 않았지만 적어도 시무룩함은 없어진 연녹빛 눈동자가 그를 응시한다. 뒤이어진 그의 물음에, 그녀는 자세를 바로하곤 조곤히 대답했다.

"실은 저도 마차에 오를 때에만 해도 그저 아버님이 다녀오라시니 간다는 마음이었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이 당신이 아니셨다면, 아마 제가 당신이 하셨던 말씀과 똑같은 걸 말했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당신이 어린 제가 만났던 그 분이라 해서 성급히 약혼을 진행할 생각 역시 아니었어요. 제가 지금의 당신을 모르듯, 당신께서도 지금의 저는 무엇 하나 알지 못 하시니까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저를 긍정적으로 보아주신다면,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지 않으실런지 여쭈려고 했답니다. 저희 아버님들도 그렇게 말씀드리면 분명 얼마간의 시간은 주시겠지요."

그의 진심이라고 할지, 성의 담긴 말에 페이스를 되찾은 그녀의 말투는 또박또박하고 확실했다. 귀족의 영애라 해서 마냥 여리지만도 않은 모습이었다.

"저 역시 귀족이기에 집안을 아주 신경쓰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 하여 제 주관까지 내려놓아가며 약혼과 혼인을 할 마음은 없으니까요. 그러니 정 원치 않으신다면 이 약혼 얘기는 서로 아닌 걸로 하셔도 괜찮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일목요연하게 꺼내서인지 한결 편해진 얼굴의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지었다. 그가 정말, 정 원한다면, 그녀도 이 약혼은 원치 않는다 말하겠노라고 하면서.

/아냐 오히려 캐입 탄탄해서 좋았어! 근데 내가 잇는게 너무 억지스러운 전개가 될까봐 걱정되더라구. 괜찮다니 다행이야!

626 이름 없음 (fnR99vCktc)

2022-08-14 (내일 월요일) 23:01:28

쏟아지는 빗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 옆에 놓인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며 놓여진 서류를 바라보았다. 하얀색 셔츠에 자주색 베스트가 잘어울리는 남자는, 반쯤은 희끗해진 머리카락과는 반대로, 43세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30대 초반—더 잘쳐주면 20대 중후반까지도—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적당히 꿉꿉한 공기가, 에어컨에 녹아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그는 서류를 내려놓고 천천히 주머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들었다.
한 모금, 들이키고 내쉬고, 퍼졌다가 다시 흩어지고, 청포도 향이 퍼졌다 흩어진다. 조만간 끊어야지, 결심을 하거서도 결국은 원상복귀, 남자는 잠시간 머릿속으로 헛생각을 하며 허공으로 흩어지는, 자신의 입으로부터 비롯된 희뿌연 안개를 바라보며 등받이를 뒤로 젖혔다.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가."

이미 다른 이들은 전부 가정으로 돌아갔을 시간이다. 하지만 자신은 이 나이가 되도록 일에 매진하였고, 그래도 이제는 이 뒷세계에서 만큼은, 절대로 누구에게 꿀리지 않을만한 권력과 힘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적수공권으로 올라와 많은 것을 이루어 내었고, 간판이라는 이름의 명성까지 자신의 손으로 거머쥐었다.
주먹을 쓰던 옛날이 그립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였고, 이제 주먹으로 정상을 거머쥐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양지로 나섰고, 자신의 조직원들 중 자신을 따르는 이들만을 엄선한채 이 회사를 차렸다. 이제는 어엿한 경호회사의 주인으로서, 또 그들을 이끄는 이들로서..... 슬슬 후계를 생각할 때가 다가온건가, 그렇게 그답지 않게 상념에 잠기려는 순간, 똑똑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거라."

/양지로 나와 10년간 회사를 운영해온 뒷세계 거물이 후계자를 고민중이라는 내용, 이지만 다른 방향도 오케이! 어느 정도의 맥커터도 받아쳐줄수 있으니 너무 무리수만 아니면 되오!!

627 이름 없음 (HnWK872RgI)

2022-08-14 (내일 월요일) 23:01:36

>>628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린 적이 없었기에 그의 보라빛 눈동자에 그녀의 표정이 변한 것이 그대로 비쳤다. 이어지는 그 말에 그는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만약 자신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지금 한 말과 별 차이가 없게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 하는 말에 결국 그녀도 자신과 마음은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지금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린 시절에 만난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괜히 조금 더 찔리는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나중에 집사에게 가서 어린 시절 무슨 이유로 그녀와 교류를 했는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우선 그녀의 말에 귀를 쭉 기울였다.

"서로 알아가는 시간..."

물론 지당한 말이었다. 알지 못하기에 약혼을 하는 것이 꺼려지고 싫은 거라면 서로 알아가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그녀의 그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녀와 약혼을 할 지의 여부는 약속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괜히 기대감을 키웠다가 나중에 실망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잠시 눈을 감았다. 오른손을 테이블에 올리고 검지로 톡톡. 마치 버릇처럼 그렇게 여섯 번을 친 후, 감았던 눈을 뜨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차후에 긍정적인 대답을 드리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다면 그 제안. 받도록 하겠습니다. 반대로 당신도 진지하게 고려하고 생각해줬으면 하고요. 기왕이면... 일방적으로 좋아하거나 집안의 이득 때문에 약혼을 어떻게 맺는 것보다는 서로 마음이 통한 후에 하는 그런 것을 하고 싶어서. 그래서 이번 약혼도 거절했던거고."

어떻게 보면 귀족의 발상과는 조금 거리가 멀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그것은 옛날처럼 너무 꽉 막힌 사회가 아닌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는 허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뒤이어 그는 다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신의 결론을 내렸다.

"그걸로 괜찮으시다면 저희 아버님과 어머님에겐 제가 얘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야말로 여캐가 확실하게 성격이나 그런 특성이 잘 잡혀있는 것 같아서 캐입으로 대답하기 편했어! 그러니까 정말로 걱정하지 말기!

628 이름 없음 (awd9psyadY)

2022-08-14 (내일 월요일) 23:41:29

>>627

의견 피력을 마친 후에는 그녀도 그를 계속 바라보았다. 잠시지만 대화를 하고, 마주하고 있으니, 어릴 적 모습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어 보였다. 그 소년이면서 자신처럼 어엿하게 자란 쳥년의 모습은 슬그머니 그녀의 가슴이 설레게 만들고 있었다. 행여나 그가 여기서 역시 안 되겠다를 말해도, 지금은 괜찮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연이란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니까. 그러니 잠자코, 그가 생각을 정리해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고 그 끝에 들은 대답에 조금 더 활짝 웃어보였다. 각오는 했다지만, 그래도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는가.

"좋은 대답을 돌려주셔서 감사해요. 물론 저도 제 주관대로 진중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터이니 당신께서도 그리 해주셔요."

그녀 역시 그 제안을 하면서 무조건 긍정적인 결과만을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그의 말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서로 집안의 명예상, 약혼을 하고 사이가 틀어지는 것보단 조금 시간을 들여 서로의 입장과 마음을 확실히 한 후에 약혼을 하거나 아예 없던 얘기로 돌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기도 했다. 그녀들의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통용되지 않을 방법이었지만 시대는 점점 변하고 있다. 귀족이라는 틀에 갇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 하게 되면 그건 그거대로 집안에 좋지 못 한 일이니 분명 양측의 부모들도 얼마의 기간을 유예삼아 내어주실 것이다.

"네. 저는 저희 부모님께 얘기 전하도록 할게요. 아예 거부하는 것도 아니니, 분명 잘 들어주실거에요."

밝게 웃으며 자신도 그렇게 말을 전하겠다고 대답한 그녀는 잠시 말없이 마주한 그를 보았다. 속세에 물들지 않고 자기 주관이 또렷이 빛을 발하는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그의 푸른 머리카락을, 보랏빛 눈동자를, 그녀와 마주한 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어쩌면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약혼을 미루고 만남을 제안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시 그가 그여서 다행이라고, 그녀의 제안을 그에게 할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기쁘다고 생각하자 고운 웃음이 사르르 띄워졌다. 기쁨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의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서로 마음이 정해질 때까지, 잘 부탁드려요. 저, 최선을 다해볼게요."

유예의 끝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결과가 되더라도 그녀는 받아들이겠다고, 이 때엔 그렇게 생각했다.

/고마워 고마워! >< 음, 일단 상황 거의 끝난 거 같은데 더 이을거야? 아니면 마무리?

629 이름 없음 (HnWK872RgI)

2022-08-14 (내일 월요일) 23:54:14

>>628

집사와 이야기를 나눌 때만 했어도 약혼을 받을 생각 따윈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결국 결과는 이렇게 유예가 되었다. 생각보다 예쁜 여성이 온 것도 있어서 흔들린 것도 분명히 있었으나 아마 정면으로 제대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나 빛나보였기 때문이라고 그는 짐작했다. 그 증거로 지금도 그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지 않던가. 물론 그녀를 본다고 해서 딱히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그녀가 아니었으면 지금 이 결과는 그 무엇보다 잔혹한 결과가 될 수도 있었을터였다. 그녀이기에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 생각이에요. 당신에게 큰 실례가 되지 않도록."

굳이 말하면 초기에 바로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이 상대에 대한 실례가 아니었나 생각했고 집사도 대체 왜 그랬냐고 혼낼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녀 쪽에선 크게 문제 삼진 않는 것 같았으니 그도 굳이 더 입을 열진 않았다. 그럼 자신은 자신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녀와 마주보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내 그는 진지하게 고했다.

"그러면 저는 저대로 당신을 제대로 마주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이야기는 끝난 것 같지만 여기까지 오셨으니 저택 구경이라도 좀 시켜드릴게요. 따라와주시겠어요?"

어쨌건 서로 알아가기로 한 사이였다. 그러면 볼일이 다 끝났다고 바로 돌아가는 것보다 조금은 서로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을터였다. 물론 저택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이 나중에 이 관련으로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눌지도 모르나 그건 또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이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며시 올려 미소를 지었다.

"저 역시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이건 이렇게 막레를 써볼게! 음. 사실 별 생각없이 쓴 거기도 하고 상대 캐릭터 쪽에서 집사나 사용인이나 집안 사람이 올 거라고 예상을 한지라 설마 약혼을 맺기로 한 여캐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조금 놀라긴 같지만 아무튼 재밌게 잘 돌렸어!
아무튼 이 이상 돌리면 일댈로 행하게 되려나? 다만 여기서 더 돌리면 지금 이 분위기대로라면 러브코미디 느낌으로 가게 될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너참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도 될까?

630 이름 없음 (PHJLJoTM9g)

2022-08-15 (모두 수고..) 00:03:00

>>629
/막레 수고했어! 나도 재밌었어! 너참치 캐가 탄탄해서 나도 짧지만 확실하게 캐입 잡고 돌릴 수 있었구 :) 재밌긴 했지만 일댈까지 가기엔 조금 부담스럽네. 나도 즉흥적으로 이은 쪽이다보니 말야. 아쉽지만 한번 재밌게 돌린 걸로 만족할까 해!

631 이름 없음 (SenXWJHE76)

2022-08-15 (모두 수고..) 00:07:20

>>630 나 역시도 비슷하게 생각해. 아무래도 즉흥적으로 올린것이다보니 일댈은 조금 애매하지 않나 싶고 러브코미디 쪽은 내가 잘 못하는 분야기도 해서 말이지. 혹시나 일댈을 제안하면 거절하려고 생각 중이었어.
뭐 이후는 저 두 캐릭터가 알아서 한 것으로 처리하고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632 이름 없음 (PHJLJoTM9g)

2022-08-15 (모두 수고..) 00:19:48

>>631
/그래그래 그렇게 하자! 짧지만 재밌었구 언제나 즐상판 되길!

633 이름 없음 (SenXWJHE76)

2022-08-15 (모두 수고..) 00:32:45

>>632 마찬가지로 재밌었어! 수고했어!

634 이름 없음 (CHRNc2fQ8w)

2022-08-15 (모두 수고..) 04:23:20

>>624
많이 좋아했었다. 그렇게 기억은 하고 있다. 그랬으니 연애도 했겠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가 만족한 모습을 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해지던 순간은 점차 그가 불만족한 티를 내면 어찌 대처해야 하나 골머리를 앓는 순간으로 바뀌어 갔고, 그 골치 아픈 순간의 연속조차 어느날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눈 앞의 그가 무슨 말을 할 지는 뻔했다. 한때는 상상만 해도 두려웠던 그 말을 상대가 하려고 한다는 걸 뻔히 느끼면서도, 눈물이 나지도 가슴이 쓰라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금 후련했다. 야자 끝나기 10분 전 비슷한 기분일까. 그가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예상하던 그 말이었다.

"네, 그러죠. 그럼 먼저 갈게요."

입술을 짓씹는 것을 모른 체하며, 이별통보를 받고 헤어지는 사람 치고는 퍽 평온한 톤으로 대답하고선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635 이름 없음 (f3NQMOpQ3Q)

2022-08-15 (모두 수고..) 09:06:54

>>634

받은 만큼 돌려주었을까? 아닐 것이다. 사랑하기보다 사랑받고 싶어 하지 않았나, 보기 좋은 연애는 절대 아니었다. 예쁜 연애도 아니었다. 나를 좋아한다던 네가 나에게는 무척이나 과분했고 그걸 몰랐다. 이제는 알고 있지만, 너의 옆에서 실수를 되잡고 고쳐나기에는 늦었다고. 이별 사유를 묻지도 않는다는게 이 연애에서 나의 종착지인 것이다. 그만큼 좋은 연인이 아니었던 나는 네 평온한 목소리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떠나려는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은 남아 있지 않을까.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한참, 오늘이 다 가도록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야 염치없이 후회하며 우는 꼴 같은 걸 안 보이게 하는게 우선이다.

“조심히 들어가요.”

흔하고 뻔한 인삿말이 가라앉는다.

636 이름 없음 (SenXWJHE76)

2022-08-15 (모두 수고..) 13:34:49

그 드래곤의 크기는 얼핏 봐도 일반적인 사람보다 거대했다. 두 발로 일어서면 약 4m 정도의 키를 가지고 있었으며 꼬리까지 포함해서 길이를 잰다면 어림잡아 6m는 되지 않았을까. 제 아무리 키가 큰 장성이라도 그 드래곤은 아주 가볍게 손에 쥘 수 있었을 것이고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한다고 해도 그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칠 수 있는 단단한 황금색 비늘이 몸에 붙어있었기에 기습은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드래곤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인간의 아이야.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필시 무슨 목적이 있을터이다. 그렇지 않느냐."

허나 드래곤은 딱히 눈앞의 이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아니. 굳이 이야기하자면 동굴 입구, 그리고 긴 통로를 지나 자신의 둥지가 있는 이곳까지 온 인간에게 흥미와 호기심을 가진 것 같았다. 물론 마냥 방심하진 않을 생각인지 어느 정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었으나 적어도 먼저 공격해올 것 같진 않아보였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 동굴에 있는 나의 재보를 노리고 왔느냐? 아니면 나를 쓰러뜨리고 내 심장을 가져가 명예를 취하고자 하느냐. 그것도 아니면 인간들이 멋대로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너를 제물로 바쳤느냐."

용건이 있으면 어서 이야기하라는 듯이 황금빛 드래곤은 눈앞에 있는 인간을 바라보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공격하지 않을테니 편하게 앉아도 좋다는 듯, 왼쪽 앞발로 앉으라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드래곤은 말을 이어나갔다.

"가능하면 나를 쓰러뜨리는 용건은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그다지 싸움은 하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특히 여기서 싸웠다간 나중에 이 둥지를 다시 정리정돈하기가 상당히 귀찮아서 말이다."

/그냥 거대한 황금빛 드래곤이 자신의 둥지에 찾아온 인간과 대면한 상황이야. 인간이 누구인지는 그냥 편한대로 이어도 괜찮아. 다만 분명한 목적이 있어서 찾아왔다는 설정이었으면 해. 막 맥커터나 그런 것은 사절.

637 이름 없음 (l7AbUDQ1PA)

2022-08-15 (모두 수고..) 15:05:34

>>636

"오, 진짜 있네?"

여성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검정색 체인메일에 자주색 하드레더 아머를 걸친, 흔히들 말하는 모험가라 불리우는 여자였으나, 모험가 길드 내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드높은 10석중 한 명, '가을매'라고 불리우는 여인이라면 단순한 모험가는 아니리라, 그래도 나름 준비를 하고 왔다는 것인지 양 팔뚝에 매어져 있는 각종 암기에 어깨에 둘러져 있는 숏소드 두개, 허리에 매어진 바스타드 소드는 절대로 그녀가 이번 안건을 가볍게 여기고 왔다는 뜻은 아니라는 반증일 것이다.
거대한 체구를 보면서도 여성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딱히 상대방이 해칠 의사도 없고 어차피 목적도 달성 했다는 것일까, 딱히 문제는 될 거 없다는 듯이 그녀는 유유자적한 태도를 보이면서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뒤, 어울리되 어울리지 않는 예법을 선보이며 살짝 눈을 찡긋해 보인다.

"위대하신 분의 거처인줄 몰랐나이다. 인간세계에선 '가을매'라는 간단한 명칭으로 불리우는 졸자라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혼자 왔다는 듯이 양손을 쫙펴보였다. 보통의 모험가들이 파티를 맺고 움직인다지만 드높은 10석들은 제각각의 특징이 있다고들 알려져 있었다. 그중 '가을매'의 특징은 혼자서 세계를 방랑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살고, 의뢰도 자기 멋대로 행하는, 그렇다고 절대로 악인은 아닌, 혼돈 선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번 몬스터 대규모 이동건에 대해서의 의뢰를 받고 온 것도 마찬가지, 그저 '재밌을거 같고, 내가 움직이면 다치는 일은 별로 없을꺼 아냐?'라는 의미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그녀가 여기에 온 것도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온 것이다. 몬스터가 대규모 이동을 했다는 것은 몬스터들의 서식지에 거대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고,실제로도 그런식으로 범람들을 예측해온 결과였다. 인간들로서는 몬스터들의 대규모 이동에 촉각을 세울수 밖에 없는 현실, 그렇기에 여성 모험가 '가을매'는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었다.

"아쉽게도 의뢰에는 드래곤 퇴치라던가, 용심장 뽑기라던가, 드래곤 제물 되어주기라던가는 없었는데 말이죠. 후후, 그래도 좋은 구경 하고 있는건 사실이네요! 이렇게 진짜 드래곤을 보는건 모험가로서 크나큰 영광이죠! 그것도 전투가 아닌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녀는 예의 그 능글맞은 태도를 보이면서 대놓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여자로서는 꼴불견인 자세일 수도 있겠으나, 그녀는 자신의 성별보다는 모험가로서의 자신이 더 좋았으니 당연한 태도이리라.

"어차피 의뢰도 끝났겠다, 한 1주일 예정이었던거 4일만에 끝났으니 여기서 농땡이나 피우고 가렵니다. 허락해주실꺼죠? 방세는.... 어.... 음....."

생각해보니 드래곤들은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의 부자였다는걸 떠올린 그녀였다. 그런 그녀는 멋쩍게 자신의 주머니를 탈탈 털어 먼지만 튀어나오는 꼴을 보여주며 머쓱하게 웃음을 지어보인뒤 입을 열었다.

"..... 방세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라도 안될까요?"

/몬스터 대규모 이동 조사를 하다가 아주 우연히 드래곤 레어를 발견한 여성모험가입니다!! 우연찮게 드래곤 레어를 발견했으니 목적은 정확히 없지만, 드래곤 하나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모험가들에게는 매우 큰 로망이 아닐까 싶네요!!
/싸울 의사 없습니다! 그냥 이야기나 술 드링킹, 아니면 연애사라든가 그런거 좋아요!!(?)

638 이름 없음 (SenXWJHE76)

2022-08-15 (모두 수고..) 15:34:43

>>637

이 무슨 당돌한 여성인지. 가을매라고 불리는 졸자라고 불린다고 하니 이 인간의 이름은 가을매가 분명하다고 드래곤은 생각했다. 딱히 드래곤 퇴치를 위한 것도, 자신의 심장을 뽑는 것도, 그리고 제물이 되러 온 것도 아니라고 하니 그야말로 이곳에 구경을 온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섞여들어온 것인지. 어느 쪽이건 그다지 무서워하는 모습도 없고 자신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그 모습이 드래곤에게 있어선 더욱 흥미를 돋구고 있었다. 아무튼 모험가라고 하니 드래곤은 슬며시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바라봤다. 아니. 어디 무기뿐일까. 지금 자신을 이렇게 앞에 두고 저렇게 여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세 자체가 보통 모험가는 아니라는 것을 드래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인간의 아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흔하지 않지만 그 마주친 인간이 도망치거나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구경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못해 처음이구나. 인간들 사이에선 나와 동포들이 딱히 위협하지 않아도 다들 겁먹기 바쁘고 도망치기 바쁘고 공포의 대상으로 섬기면서 필요하지도 않은 제물을 갖다바치거나 죽여야만 하는 존재로 보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알고 있다만."

물론 드래곤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었다. 당장 자신만 해도 저 옆나라에 살고 있는 레드 드래곤이나 저 아랫산 너머 깊숙한 계곡에 둥지를 파고 살고 있는 블루 드레곤과는 다르지 않던가. 굳이 말하면 자신은 이 둥지 안에서 트러블 없이 조용히 뒹굴거리다가 적당히 먹을 거 먹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족속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슬슬 인간들에게 공포를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레드 드래곤은 어떻게 되었으려나. 그런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다 마치 자신의 이 둥지에서 지내겠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여성을 바라보며 드래곤은 눈썹을 실룩거렸다.

"여긴 인간이 지내기에는 편한 환경이라고는 할 수 없을터인데 왜 굳이 여기서 지내려고 하는 것이더냐. 조금 멀긴 하지만 실력 좋은 모험가라면 하루 정도를 걸어가면 마을에 도달할 수 있을터인데."

당연한 의문이었다. 여긴 인간들이 사용한다는 그 푹신한 침대도 없었고, 가게에서 흔하게 살 수 있는 빵이나 우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있는 것은 자신의 보물과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넓은 동굴 안의 호수, 그리고 자신이 잘 때 사용하는 넓은 개인 공간, 그리고 자신이 지금 이렇게 있는 다른 드래곤이나 다른 종족을 마주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이 커다란 공간. 그 정도였다.

"허나 그 당돌함은 꽤 재미있구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했느냐. 우리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일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러니 너에 대해서 얘기를 듣고 싶구나. 이렇게까지 나에게 당돌하게 구는 인간은 네가 처음이니 말이다. 아무튼 내 보물과 내 목숨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불편함을 감수한다고 할 때 있어도 상관은 없다."

/오케이. 확인했어!! 이야기나 술 드링킹은 뭔지 알 것 같은데 연애사는 이 드래곤과 지금 여캐의 연애사 이야기를 말하는거야?

639 이름 없음 (YMHaqYpjIk)

2022-08-15 (모두 수고..) 16:00:38

>>638

"우흐흐, 그런 소리 많이 듣죠."

생각해보면 드높은 10석 들 죄다 정상인들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정상이 아니기에 그들은 유명해진것일지도 몰랐다. '가을매'는 겁없고 유유자적하며 자유롭고, 다른 10석들은 난폭하거나 일중독 등 여러가지 특이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남은 짐을 뒤적거리던 그녀는 이내 화색을 보였고, 이내 찾아낸걸 꺼내 뚜껑을 따내 물통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일주일치 식량에 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마치 남자가 길을 나설때의 모습과 같았고, 여느 여식 같지 않게 꾸밈없는 모습은 생동감이 넘쳐보이기에 충분했다. 물을 꿀꺽꿀꺽 마시던 그녀는 남자 마냥 한숨을 푸하-하고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인간들끼리 정보 공유가 안되서 그래요. 솔직히 저처럼, 에이 내 입으로 말하려니까 부끄러운데..... 저 정도 급 되면 온갖 사료를 다 찾아볼수 있어서 그런건 죄다 헛소문이라는 걸 알죠, 모험가는 절대로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고요? 몬스터들의 생태, 의뢰지의 환경, 각 지역의 특수한 상황 등등 여러가지를 전부 고려하지 않으면 생존률은 절대적으로 내려가요."

물론 그렇게 모은 자료들은 전부 모험가 길드에 전부 공개된다, 하지만 그것을 전부 공개한다고 해서 모험가들이 전부 읽는 것은 아니었다. 애터지게 자료들을 만들고 각종 직원들이 필사를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교육하는 인원이 부족해서 모험가들은 지금도 죽어나가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였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과 달랐다. 기본적으로 실력도 출중했고, 공부도 많이 한다. 천하를 유랑하는 때가 아니면, 그 외의 모든 상황은 그녀가 공부하거나 실력을 가다듬는 모습일 뿐이었으니까, 그녀는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여느 귀족 여식 못지 않은 미색에 건강미가 겹쳐지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었다.

"모험가에게 있어서 비 바람 피할 곳만 있으면, 어디든지 잘수 있어요. 하늘이 이불이고, 땅이 베개니까요? 어디까지나 저에게 있어서 새로운 경험만큼 마음을 뛰게 하는게 없어요. 그리고 드래곤 레어에서 입구일지라도 잠을 잘 수 있다는게 어디에요? 어디 가서 안주 삼아 먹을만큼 재밌는 이야기 아닐까요?"

그렇게 답변하던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풀숲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풀숲 사이에다가 숨겨둔 개인 물건들을 꺼내 천천히 옆에 둔 여인은 가볍게 기지개를 편 뒤 입을 열었다.

"드래곤씨도 생각해보세요, 나중에한 1천년쯤 지나서 '우리집 앞에 나랑 노닥거리다가 집세 대신 수다로 돈 안내고 도망간 미친 여자가 있다.'라고 하면 아마 다른 드래곤들에게도 꽤 쓸만한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 아니다. 이 맛간 여자야.

/그것도 오케이입니다!! 아니면 각자 지낸 시간이 있으니 연애 한번쯤은....?(아님)
/그래도 무리수는 아니었나 보네요!! 맥커터 될까봐 걱정했는데!!

640 이름 없음 (SenXWJHE76)

2022-08-15 (모두 수고..) 16:21:41

>>639

"내 입장에선 차라리 공포의 대상이 되어서 찾아오는 이가 적은 것이 나을 것 같구나. 가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인간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너무 자주, 그리고 다양하게 찾아오면 대응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귀찮거든."

인간 하나는 아주 가볍게 짓밟아버릴 수 있을 정도로 드래곤과 인간의 힘의 차이는 컸으나 인간이 뭉치면 그만큼 강해진다는 것을 드래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많고 많은 인간들이 한번에 여기로 몰려오거나 하면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는가. 조용히 평화롭게 둥지 안에서 뒹굴거리면서 살고 싶었던 드래곤에게 있어서 그 사태는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동굴 입구를 바위로 막아도 그 바위를 박살내고 들어올 것만 같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모험가라는 이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네 말대로라면 참으로 독특한 이라고밖엔 할 말이 없구나. 인간의 아이야. 모험가라는 이들은 다 너처럼 당돌하면서도 용기 있는 자들이더냐. 내 둥지에서 자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이라. 내가 사실 먹잇감을 유인하기 위해서 이러는 거고, 네가 방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공격하기라도 하면 어쩔 참이더냐. 난 몬스터로 구분되고 싶진 않지만 너희 인간에게는 우리들도 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터인데 너는 정말로 두렵지 않은 것이냐?"

정말 허락만 하면 진짜 이곳에 드러누워서 태연하게 잠을 잘 것 같았기에 드래곤은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딱히 그녀를 잡아먹거나 해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배가 고프면 저런 인간보다 밖으로 나가서 짐승을 잡아먹는 것이 더 맛있을테니까. 혹은 자꾸 동굴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몬스터 중 하나를 본보기로 잡아서 구워먹을 수도 있는 것이고. 혹은 조금 더 별미가 먹고 싶으면 재보를 조금 챙겨서 둥지 밖으로 날아올라 인간의 형태로 폴리모프해서 마을에 들어가 무언가를 사먹으면 될 일이었다. 고작 인간 하나를 잡아먹을 생각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어떻게 나올까 싶어 드래곤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내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거 내가 그냥 호구가 되는 결말 아니더냐. 하지만 좋구나. 그런 추억거리 하나 있어서 나쁠 건 없겠지. 편한대로 하거라.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 재보와 목숨을 노리는 것이 아니면 딱히 나도 공격하거나 해칠 마음은 없으니까."

/적어도 맥커터는 아니었다고 생각해! 갑자기 드래곤이 기억력이 나쁘다는 설정이 타의로 추가되어서 전에 만났는데 왜 벌써 까먹었냐. 그런 식으로 나와버리면 그런 것은 맥커터가 되겠지만 말이야.

641 이름 없음 (KuDDmv.ucI)

2022-08-15 (모두 수고..) 16:46:21

>>641

"그런걸 막는 것도 사실 모험가 길드 역할 중 하나에요. 쓸데없는 객기나 만용을 부리는 녀석들을 제압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자유를 지켜주는거죠. 책임없는 자유는 방종이니까요."

아무리 가을매라 불리우는 그녀라도 선이 있었다. 제멋대로인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인도적인 면에서는 다른 모험가들에게 귀감이 되는 그녀이기에 많은 이들에게서 평판은 매우 훌륭한 편에 속하였다. 실제로도 후배 모험가들을 가장 위하는 모험가로서는 그녀가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용사라는 것들은 그녀에게 있어 최악의 존재였다. 그들은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이유로 여러가지로 생태를 건드리고 말도 안되는 일들을 벌이려고 하니까. 그렇게 판을 벌일 준비를 하던 와중 드래곤의 농담을 들으며 그녀가 갑자기 진지하게 고민을 해오기 시작한다.

"음? 흐으으음...."

드래곤이 사람을 먹는다는 사료는 하나도 없었다. 뭏론 전설상에서 사람 먹는 마룡이 있다고는 했지만 너무 오래전 사료라서 믿을만한 물건은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라면? 그런 생각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며 내린 결론을,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뒷머리를 긁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때가서 생각해야죠. 물론 그렇게 되면 제 공부가 모자랐던거고 그건 제 책임이니까. 그래도 사실 가장 중요한건..... 눈을 봤거든요. 왜 눈은 마음을 바라보는 창이라고 하잖아요?"

흔히들 모험가를 하다 보면 닳고 닳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순수하게 반짝이는 양 눈은 미지에 대한 열망과 쌓아올린 지혜, 그리고 자신감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그 시선의 끝에 닿은 것은 다름아닌 황금빛으로 몸을 감싼 드래곤이 가볍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녀 또한 미소를 짓는다.

"드래곤씨는 그러지 않을거 같거든요. 응, 믿고 맡길 수 있을꺼 같아요."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와관보다는, 상대방의 말속의 진의를 자신의 시선으로 믿고 싶은것이리라. 그녀는 그렇게 웃으면서 천천히 눈 앞의 드래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 물론 드셔도 되요!! 드시고 소감이랑 그런것만 좀 기록을....."

그만해, 이 미친녀나....

/이래서 로망덕후가 안되는겁니다 여러분!!(?)

642 이름 없음 (SenXWJHE76)

2022-08-15 (모두 수고..) 17:16:31

>>641

생각도 못한 말. 정확히는 그렇게 되어도 자신의 책임이니 원망하지는 않겠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드래곤은 결국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당돌한 줄 알았더니 순수한 느낌도 있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그 와중에 또 용기가 있다고 해야할지. 오랜만에 보는 인간이었으나 꽤 재밌는 이라고 생각하며 드래곤은 웃음을 좀처럼 멈추지 못했다. 둥지에 처박혀 뒹굴거리면서 살려던 삶에 끼어든 약간의 자극은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유감이지만 나는 인간을 먹을바에야 밖으로 나가서 멧돼지를 잡아서 먹고 싶단다. 인간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다지 맛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배가 찰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이야. 무엇보다 동굴 근처엔 들짐승이 많아서 사냥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지 않더냐. 그러니까 잘 기억해두거라. 겁을 먹은 인간들은 드래곤에게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일이 있으나 우리 드래곤에겐 그것만큼 난감한 일도 없다는 것을. 간혹 시종으로 쓰는 이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잡아먹은 적은 내가 알기로는 없단다. 물론 정신이 나가서 앞뒤 구분도 못하는 제 정신이 아닌 동포는 잡아먹는다고도 한다만."

허나 그것은 이성을 잃고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말 그대로 제 정신이 아닌 케이스이니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신이 아는 정보를 하나 알려주며 드래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땅이 울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서는 것은 눈앞의 여성을 놀라지 않게 하고자 보인 약간의 배려였다.

"따라오거라. 여기서 며칠 쉬었다가 간다면 적어도 모든 생명체가 필요한 물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을 알려줄테니 괜히 더럽히지만 말거라."

이곳에서 며칠 있다가 가는 것을 깔끔하게 허락하는 것은 그 당돌함과 용기, 그리고 묘하게 귀여운 것이 마음에 들어서였으나 굳이 그것을 표하진 않으며 드래곤은 성큼성큼 안쪽으로 들어갔고 안쪽 갈림길에서 맨 왼쪽의 길목으로 향했다. 그곳을 따라 걸어가면 정말로 넓고 넓은 동굴 속 호수가 펼쳐져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당장 따라오지 않았다면 드래곤은 그냥 위치만 알려주고 다시 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묵는 동안 내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느냐. 묵는 값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보다 그냥 이렇게 말동무를 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니 염려는 말거라. 오랜만에 보는 인간이 꽤 재밌는 이니 내 특별히 그 정도로 끝내주도록 하마."

643 이름 없음 (KuDDmv.ucI)

2022-08-15 (모두 수고..) 18:22:34

>>642

"어우, 예, 전국에 널리 알려야겠네요."

솔직히 인간이 인간을 제물로 바친다는 이야기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녀였다. 기사 가문에서 태어나 출세에 미친 아버지 몰래 14살의 나이에 탈주를 감행해 지금까지 이름과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만의 검술을 개척해 버틴 그녀로서는 정략결혼과 제물이 하나로 겹쳐보인 탓일지도 몰랐다. 그렇기 때문일지는 몰라도 이번에 돌아가면 길드를 들들 볶아내서라도 이 이야기는 널리 알려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허둥지둥 드래곤을 따라가 들어가본 광경은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넓은 길을 따라 들어가 가보면 그 안에는 넓은 공간과 각종 종유석이 조각을 맺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 자리잡은 물은 놀라우리만치 깔끔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에다가 손을 가져다 댄뒤 가볍게 손으로 떠서 물을 마셨다. 보통 물에도 단계가 있지만 이 정도면 끓여 마실 필요도 없이 깔끔하고 부드러운 물이었다. 이런 물이라면 뭘 만들어먹어도 깔끔한 맛이 나오지 않을까.

"감사합니다."

그녀 다운, 밝고 투명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광경을 바라본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한 태초의 신비가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이 곳의 모습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겠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넋놓고 보길 잠시, 이내 잠시간의 고민을 끝낸 그녀는 드래곤의 황금빛 거체를 바라보며 장난스레 미소를 머금은채 입을 열어보였다.

"사실 시선을 맞추고 싶은데 위대하신 분의 몸은 너무 커서 이 각도에선 보이지 않네요."

말하고 싶은바가 뚜렷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는 잠시간 멋쩍게 머리를 긁적인뒤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하였다.

"드래곤분들은 전부 마법의 조종들이라고 들었는데.... 혹시 몸집이 작아지는 마법도 있을까요?"

가령, 인간의 모습이 되는 마법이라던가, 라는 뒷말은 삼킨 채 그녀는 기대감 반, 호기심 반의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644 이름 없음 (CHRNc2fQ8w)

2022-08-15 (모두 수고..) 19:50:23

>>635
미안하다, 고맙다, 그리고 조심히 들어가라. 그런 말들이 귓가에 들려왔다. 서로 이별에 합의한 이상 다른 테이블에서 오가는 대화만큼이나 내게는 의미 없는 말들이다. 묵례 한 번으로 회답하고 짐을 챙겨 카페를 나섰다.

마침 저녁때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모처럼 나왔으니 보양식 삼아 돈까스라도 먹을까? 아니다, 내일 출근 준비도 해야 하고 햇반 유통기한 아슬아슬하니까 집에 가서 남은 반찬이랑 먹자. 내일 먹을 도시락도 싸야 하고. 아니다, 회사 근처에 새 카페 하나 개업했던데 거기서 브런치 메뉴를 먹어볼까? 맛이 별로거나 양이 적으면 보충해서 먹게 간단하게라도 도시락을 싸긴 싸야겠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니 문득, 이별보다도 뭐 먹을 지에 신경이 쏠리는 게 퍽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었고, 그만큼 두려워했던 이별이었는데. 하기야, 내 밥 친구 사랑과 전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에 이런 말이 나왔었다. 아낌없이 주는 것의 장점은 후회가 안 남는 거랬다. 나 역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렇기에 후회가 안 남는 거겠지. 고맙다고 했던가. 나 역시 동기가 뭐든 상대가 연애의 끝을 바라준 것 만큼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이제 퇴근하고 나면 자유시간이 늘겠네. 마침 사놓고 시간이 없어서 못 해본 게임이 있으니 이참에 내일 퇴근하고 켠왕해야지. 볼륨이 꽤 있으니 켠왕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안 돼도 내일모레까지 안 심심하고 좋지, 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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