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306068> 자유 상황극 스레 3 :: 1001

이름 없음

2021-09-13 08:11:25 - 2022-12-20 23:06:42

0 이름 없음 (wSjOpuFcMU)

2021-09-13 (모두 수고..) 08:11:25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206 이름 없음 (xYbFjFVU0g)

2021-11-05 (불탄다..!) 23:24:56

>>205
(코에 낯선 향기가 뒤늦게 걸리는 것을 운동부는 느꼈다.)
(덥석 쥐어놓고 너무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운동부 본인도 후회하고 있었다. 손을 잡은 것에 대해 당신이 뭐라 말을 꺼내지 않는 것도 그랬고. 그래서 운동부는 조금 멋적게, 자신의 귀를 만져보던 손을 떼어내리며 한번 흘끗 쳐다보았다. 그리곤 시선을 다시 들었다.) 어른 될 때까지 같이 놀아주게? (운동부는 잠깐 뜸을 들인다.) ......아니 방금 취소. (기껏 열이 내렸던 뺨에 다시 열이 오르는 기분이다. 그래서 운동부는 당신의 말에 필사적으로 시간을 되새겨보았다.) 이번주는 목요일이랑 금요일이 괜찮겠네. 주말에는 밴ㄷ- 아니, 연습 있어서.

207 이름 없음 (IJvBGQAJ9o)

2021-11-05 (불탄다..!) 23:42:06

>>206
(그런 말을 쉽게 하는 편이었다. 다음에 보자는 기약없는 약속처럼, 보여준다고 말했지만 당신이 기다려준다면의 가정이 붙은 약속이었다.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 사이 당신은 말을 번복했다.) 뭐야, 왜 취소야. (무뚝뚝한 듯 상냥하고, 부끄러움도 타고, 그렇다고 장난에 계속 당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 번은 크게 당했다. 그런 당신과 친구하기 좋냐, 싫냐 가르면 좋다는 쪽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어른될 때까지 같이 놀진 말고- 공부 도와줄게. (웃었고, 이어 스케줄이 나오면 고개를 끄덕인다.) 도서관에 있을게.

208 이름 없음 (bJVWyUoYs.)

2021-11-06 (파란날) 00:08:02

>>207
...... (대답이 금방 나오지는 않는다. 운동부는 대답 대신 손부채질로 반문을 넘겼다. 이렇게 어떤 풋풋한 정이 담긴 이야기에는 별로 익숙하지 않았고, 누구라도 쉽게 알 만큼 그는 부끄러움이 많았으며, 그걸 숨기려 애써 틱틱대는 태도로 나오곤 했다. 다만... 숨기는 솜씨도 어설펐고, 뭔가 숨기기에는 그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감정에 솔직하기도 했다. 같이 놀진 말고, 하는 말이 꺼내지자 운동부는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눈을 치떴으나, 이내 시선을 천천히 비스듬히 아래로 내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오늘 나 좀 이상한데.' 하고 애꿎은 자책을 하는 것은 덤이다.) 뭐, 그러던가. (운동부는 가만히 시선을 비스듬히 돌리고 있다가, 다시 시선을 들어 이쪽을 바라봐온다.) 그럼 반으로 돌아갈까.

# 아 달아. 아 달아......

209 이름 없음 (W3l7uoXdqY)

2021-11-06 (파란날) 00:22:37

>>208
(고개를 끄덕이면, 취소한 이유에 대해서 듣지 않아도 괜찮았다. 취소가 취소되어 버렸으니까.) 이제 너 큰일났다. (반으로 돌아가자는 말에 주섬주섬 다시 담요를 제대로 뒤집어 쓴다.) 성적 갑자기 올라서 컨닝한 거 아니냐고 선생님들이 괴롭힐지도 몰라. (자신만만하고 당찬게 담요를 폭 뒤집어쓰고 있는 아래에서 새다 못해 뿜어지듯 하다. 그리고 매점에 있던 시계를 확인하고는 걸음을 재촉한다.) 야야, 곧 쉬는 시간 끝나겠다. 가자! (먼저 매점에서 반으로 발을 옮겼다.)

#이걸 막레로 할게 ~.~ 귀엽고 즐겁고 달았다!

210 이름 없음 (bJVWyUoYs.)

2021-11-06 (파란날) 00:33:20

>>209
# 밤이 늦은 지금에 생뚱맞은 느낌도 있지만 용기내서 말씀 올려봅니다
# 다른 이야기들 더 보고 싶은데 일대일 괜찮을까?

211 이름 없음 (D9sLUFeoLU)

2021-11-06 (파란날) 00:39:06

# >>210 우선은 오키 ㅎ.ㅎ! 캐에 설정이 좀 붙어서 아깝단 생각이 들기도 했고.

212 ◆rzhGzKKFLk (bJVWyUoYs.)

2021-11-06 (파란날) 00:42:44

>>211
# 설정... (짤)
# 우선은 불금이라지만 시간도 늦었고 너참치도 자러 가야 될 테고 나도 조금 졸려 +.+
# 자고 일어나서 한가로울까~ 싶은 시간에 일댈 갱신해둘게 아마 오후나 저녁
# 인증코드 남겨둘게

213 ◆76oY4.po8o (MAHCDemDi.)

2021-11-06 (파란날) 00:51:56

# >>212 내일 일정이 있어서 늦게 확인할 수도 있어 ㅇ.ㅇ 저녁에는 오겠지만 무튼 나도 인코 남겨둘게! 잘자~

214 ◆rzhGzKKFLk (W4J61025tY)

2021-11-06 (파란날) 01:01:28

# >>213 확인했어, 잘 자 u.u

215 이름 없음 (LwZRkZ6ZCc)

2021-11-06 (파란날) 04:28:00

선장, 당신이 수다 즐기는 성격이 아님은 내 자알 안다만은. 이제 도무지 어디로 가는지만이라도 알려주면 안 되겠소? 이 남쪽에는 아무것도 없다오. 오직 바다, 바다, 끝없는 바다 밖에는 아무것도!
나침반은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제멋대로 돌기 일쑤인데 당신은 어찌 키를 돌리라는 지시를 내리는 것이며, 어째서 바다의 여신은 이상할 정도로 오래 이 배에 관대함을 보여주시는 것이오? 수수께끼 같은 말은 그만두고 이제 정말 입을 열 때가 됐소이다, 선장. 속내가 뭐요?
선원이라곤 둘밖에 없고 배라고는 썩은 나뭇조각밖에 없던 시절부터 우리는 온갖 기상천외한 항해를 함께 겪지 않았소. 당신이 마음에 들지 않은 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지시를 의심한 적은 여신께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소! 그러나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생각이 드는군.
...안개 때문에 코앞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디를 그리 쳐다보고 있는 거요, 제기랄.

216 이름 없음 (03IwWNvWRk)

2021-11-10 (水) 23:58:16

맞아, 여긴 네 악몽이야. 너, 또 공포영화 보고 잤더라? (단조로운 별장 같은 공간 속,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의자에 앉아있는 인영은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혼내는 걸까?)

217 이름 없음 (HL5Pw1cZE.)

2021-11-11 (거의 끝나감) 00:39:08

>>216
(방금 전까지 형언하기 어려운 꿈을 꾸고 있었는데, 눈을 깜빡하자 배경이 바뀌었다. 바뀐 배경보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신경이 먼저 반응했다.) ....신경 꺼. (상대의 말이 꾸중처럼 들려서 미간을 찡그리고 투덜댔다. 또라니 누가 들으면 내가 만날 공포영화만 보는 줄 알겠다.) 쓸데없는 참견을... 그래서 여긴 또 뭐야. (퉁명스럽게 말하고 앉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218 이름 없음 (opzjo/z7/g)

2021-11-11 (거의 끝나감) 00:47:07

>>217
신경이 예민한 건 알겠지만, 도와준 사람한테 그런……아니다. 뭐라 해봤자 무슨 소용이람. 어차피 또 잠에서 깨면 다 잊어버릴텐데.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고는, 앉을 곳을 찾는 당신의 주변에 눈길을 준다. 원래 저곳에 의자가 있었던가? 시선이 닿지 않는 모든 구석구석이 흐릿하다.) 네 말이 맞아. 매번 악몽꾸고 아침에 머리 붙잡는 건 내가 아닌 너니까. 다시 보내줘?

219 이름 없음 (HL5Pw1cZE.)

2021-11-11 (거의 끝나감) 01:05:54

>>218
(상대의 반응에 내가 너무 날이 서 있었다는 걸 자각했다. 그야 누구나 험한 상황을 겪다 넘어오면 그렇지 않냐는 생각이 들면서도, 상대의 말대로 도와준 사람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나는 괜히 서서 볼을 긁적이다가 상대의 시선이 닿는 곳을 돌아보았다. 거기엔 의자가 있었고, 앉을 자리를 찾던 나에게는 반가운 자리였다. 의자를 향해 돌아서며 겨우 들릴 정도로 툭 내뱉었다.) 미안하게 됐네. 매번 도움만 받는 주제에 말이 심했다. (사과인지 불만인지 모를 말이지만 내 성격상 어렵게 꺼낸 사과라는 걸 상대는 알고 있을거다. 나는 의자로 다가가 털석 앉았다. 푹신했는지 딱딱했는지는 모르겠다. 앉아서 그제야 제대로 상대를 보며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과 했으니까 돌려보내는 건 좀 봐줘. 그런데 왠일이야. 한동안 안 보였잖아.

220 이름 없음 (cUyYHlvTRU)

2021-11-12 (불탄다..!) 08:44:57

/하현주가 먼저 갱신해둘게

221 이름 없음 (/eUcYvVs/c)

2021-11-12 (불탄다..!) 20:00:00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첫 출근입니다. 사실 이 회사에 다닌지는 근 천년가량 되었지만요. 근데 어떻게 첫 출근이냐구요? 그야 오늘은, 제가 마계지부에 발을 내딛는 첫날이거든요. 하하, X발. 니체의 말이 맞았나봐요.

천계지부에선 그야말로 꽃과같은 생활! 이라기보단 응? 사실 내가 천사가 아니라, 지옥에 수감된 불쌍한 필멸자였던가? 같은 수준으로 혹사당했답니다. 기근, 재앙, 천재지변, 전쟁, 나날이 줄어드는 신도들의 숫자... 그렇기에 제가 생각했던 하하호호 깔끔한 사무직이 아니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파견직이었어요. 전쟁을 일으킬것같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무의식에 닿게끔 전쟁은 안돼요... 불쌍한 아이들에게 기부해주세요... 교회를 지원해주세요... 같은걸 하루종일 속삭이고, 악인들에게 더이상 범죄는 안돼요... 신께선 당신을 사랑하세요... 으악, 이렇게 속삭여온지만 천년! 그러나, 개심 시킨 사람의 숫자는 한 손으로도 셀수 있을정도로 적은 나! 무능이라는 딱지가 단단히 박혔는지, 네. 마계지부로 좌천당했습니다. 사실 좌천이란것도 아니긴 해요, 명목은 승진으로 인한 파견이니... 그건 그래도 전 천사인데, 마계지부에대한 인식이 어떻게 좋겠어요! 안그래요? 사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어서 우리는 균형이라곤 하지만... 아는 것과 마음이 동하는건 꽤 차이가 크죠.

게다가 전 사실 첫 출근인데 5분이나 늦었답니다. 네. 긴장해서 길을 잘못 들은게 죄는 아니지만 늦은건 죄가 되고, 그 탓에 더욱 들어가기가 망설여지네요. 마계, 으리으리한 저 건물에 위압당했지만... 용기내어 문을 두드릴 때가 되었겠죠.

" 실, 실례...합니다아...? "

222 이름 없음 (m.ggh/m4tE)

2021-11-15 (모두 수고..) 21:59:12

>>221
혹시 아직 흥미 있으면 이어봐도 될까? 시간이 좀 지나서 먼저 물어봐!

223 이름 없음 (T4XIDF0GU2)

2021-11-16 (FIRE!) 22:36:06

저택은 단정한 회색이다. 도회지라면 심심찮게 볼 법한 것으로, 눈에 띄지 않아 무심코 놓쳤을 수는 있어도 지나가는 눈에 한번만 깊이 담겼다면 와, 나도 이런 집에 살았으면- 따위의 선망 정도는 자리에 우뚝 버티는 것만으로 누차 들었을 것이다. 저택만큼이나 단정한 담장과 나란히 걸으면 빈틈없이 닫힌 검은 대문이 있다. 창살조차 없어 답답하기까지 한 문은 말끔한 초인종만 덩그러니 두었을 뿐이라, 새벽 5시 하물며 0분도 30분도 아닌 40분에 만나자고 통보나 다름없는 약속을 잡은 센티넬은 너무도 깨끗해 지문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 이 종鐘을 건드려야만 대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창 너머 어두운 하늘을 보며 머그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아삼 홍차에 섞은 밀크티다. 탁자엔 비벼 끄지 않은 연초가 자연紫煙을 풍겨 올리고, 여자는 밀크티를 한 모금 마셔 삼키며 상념에 잠긴 듯이 아무 말도 행동도 뱉지 않았다. 하늘 갑갑한 것을 보니 아침때 비가 내릴 징조다. 여자는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자 빈 머그잔을 내려두며 소파에서 등을 뗐다. 인공품처럼 하얀 손가락이 연초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지원주야! 선레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본의 아니게 시간을 더 끌어버린 거 같아ㅠ_ㅠ 너무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ㅠ_ㅠ

224 이름 없음 (g1g15SyClM)

2021-11-17 (水) 00:02:36

>>223

현은 새벽 일찍 일어났다. 의뢰인이 5시 40분이라는 애매한 시간대에 만나자고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 시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다, 라는 답이 가장 좋겠지만(그런 경우가 좀 상태가 정상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일을 하러 가는 것인 만큼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가이딩이 빨리 필요하며 능력을 개화함으로 얻게 된 불안, 초조, 우울 뭐,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견디기 어렵다는 뜻이겠지. 그 애매한 시간이란 불면을 뜻하는 것일까.

현은 검은 머리카락을 대충 빗어넘기고 검은 마스크를 낀 채 밖으로 나왔다. 옷은 무난한 셔츠와 검은 바지이다. 밖은 우중충한 회색이다.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현은 우산을 챙겼다. 여차하면 호신용으로도 쓸 수 있겠다. 첫 만남을 새벽 다섯시에 그것도 집으로 부른다니 의뢰인은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니겠거니 생각한다. 아니면 야밤에 사람을 부르기는 어려우니 최대한 배려를 한 것이 다섯시 사십분이라는 그 시간일지도 모른다.

허나 현은 돈이 매우 필요했으므로 군말하지 않고 나가기로 했다. 꽤나 범죄에도 시달렸기 때문에 -그를 지켜주는 센티넬이 더이상 없기 때문에- 늘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의뢰인이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깊이 바랄 뿐이다. 아니라면 우산으로 후려치고 도망가는 것도 좋겠지.

저택에 도착했다. 우중충한 하늘 빛과 같은 회색이다. 단정한 겉모습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계약이 잘 성사된다면 이 근처에 살게 되는 건가. 주변의 집을 눈동자로만 슬쩍 봤다가 초인종 앞에 섰다. 깨끗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지저분한 것보다야 깨끗한 것이 낫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본다. 딱 5시 40분. 벨을 누른다.

현은 답을 기다렸다. 새파란 눈동자가 검은 대문과 단정한 담벼락을 눈에 담으며 우산으로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지원주 안녕!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으니 괜찮아~ 계절적 배경이 언제인지 궁금하네. 비라고 하니 여름이려나? 겨울은 아닌 느낌이고. 가을비일수도 있겠다. 현재 배경이 가을(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겨울)이니까 지금같은 날씨일지도 모르겠네. 그렇다면 검정 코트를 걸쳤으려나.

225 이름 없음 (JmLS9bedDw)

2021-11-18 (거의 끝나감) 02:00:08

갱신!

226 이름 없음 (b4898wJybY)

2021-11-18 (거의 끝나감) 02:08:43

>>224
/어...? 답레 올려뒀는데 어디 간 거지??? ....??? 헐...먹혔거나 내가 착각했나 봐... 내일 중에 어서 다시 써서 올릴게. 매번 기다리게 해 미안해ㅠ_ㅠ 좋은 밤 보내~
P.S. 계절은 가을이라 생각했어~

227 이름 없음 (JmLS9bedDw)

2021-11-18 (거의 끝나감) 09:15:33

>>226
아이고 날렸다니 맘아프다 ㅠㅠ 천천히 편하게 이어줘~~ 가을느낌 좋지~

228 이름 없음 (tZxY2phYIw)

2021-11-18 (거의 끝나감) 18:24:56

>>224

문은 곧바로 열렸다. 소리조차 없이. 잔디 심긴 탁 트인 마당이 낯선 객을 반긴다. 다른 집과 차이가 있다 하면 사람의 조그만 소리도 기척마저도 풍겨오지 않는 것. 다만 공기다. 오직 공기. 나란히 잿빛으로 통한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면 언제부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딱딱한 문이 반쯤 내부를 보이며 열려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저택은 창문 수가 적거니와 있더라도 그 건너편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꼭 무언가 꽁꽁 감출 것이 있는 것마냥 말이다.

"-들어오시죠."

반쯤 닫힌 문 너머에서 심해에 잠긴 것을 닮은 목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연한 목소리기도 하다. 침침한 조명. 깨끗하고 넓은 거실 가운데 소파에 느긋이 기댄 여자는 언제부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170은 가당치도 않을 체구, 푼 흑발에 금을 박은 양 소슬한 눈동자. 큰 후드티 차림은 그렇다 쳐도 소파에 의지한 육체와 배려라곤 느껴지지 않는 시선은 결코 손님을 집안에 들이는 올바른 주인의 자세가 아니다. 소파 바로 앞 탁자의 재떨이가 근원으로 사료되는 실내 전체에 은은하게 퍼진 담배 향은 더군다나 그렇고. 여자는 허리를 펴며 건너편 소파에 앉으라는 듯 무심하게 손짓했다.

"이름, 나이, 성별, 직업."

229 이름 없음 (cEYjY270/g)

2021-11-18 (거의 끝나감) 21:02:13

>>228

현은 조금 긴장하면서 열린 대문을 넘었다. 까만 대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왠지 모르게 삭막한 느낌을 주었다. 여차하면 도망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국가가 지급한 비상용 스마트워치(누르면 위치 정보와 함께 국가 인력인 가이드를 구출하기 위해 센티넬이 출동함)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그 안을 걸어 들어간다. 센티넬들은 가이드들이 얼마나 개인적인 공간을 싫어하는지 알아야 했다. 대체로 그렇듯 이 사람도 모르는 듯 했지만.

매번 처음 센티넬들을 만날 때면 긴장이 된다. 가이드들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맹수와 맹수 조련사와 같은 관계가 아닐까. 맹수 조련사... 라기에는 맹수에게 밥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랄까. 그러니까 맹수에 비하면 자신을 방어할 수단이란 전혀 없는 일반적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보통 첫 만남 때 긴장을 하는 쪽은 맹수가 아니라 맹수 조련사이다.

특히 이 집은 창문도 적고 뭔가 꽁꽁 감쳐둔 느낌이 나는 것이 영 불안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물론 내가 연락이 되지 않으면 나를 찾아달라고 아는 가이드에게 부탁해놓기는 했지만서도... 그저 이 불안감이 이전의 트라우마 때문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

반쯤 열린 집 문 안에서 낮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적막감에 이 저택에는 이 사람 혼자 있는 것일까 생각하며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조명 사이, 황량할 정도로 넓은 거실 사이에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며 현은 생각했다.

아, 역시 센티넬들이란.

편견 어린 시선으로 큰 후드티를 편하게 입고 소파에 늘어지듯 앉아있는 그 모습은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첫인상으로 치면 마이너스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센티넬들이란 원래 오만한 족속들이므로, 그리고 그가 고용된 철저한 을의 입장이라는 것도 그 생각을 겉으로 들어나지 않게 했다.

담배 연기에 마스크를 쓰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에 깊은 빡침이 올라왔지만 그저 참았다. 돈이 필요하니까.

"그건 이전에 다 설명한 것 같지만, 다시 설명하자면 하현, 26세, 남자고 지금은 임시 가이딩 일을 하고 있는데 오늘 계약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아직 계약을 다 끊진 않았습니다. 오늘 계약 사항을 보고 차차 정리를 할지 안 할지는 생각해 보도록 하죠. 물론 갑자기 다 정리 하기는 어렵고 2주일 정도는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그 센티넬들도 다른 가이드를 찾아봐야 하니까요."

현은 사안을 설명하며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안내 드렸다시피 계약서를 적어 왔고 추가적인 부분은 아래에 더 적을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일단 읽기 전에 가이딩 테스트부터 해보죠. 테스트가 잘 되지 않으면 어차피 계약은 할 수 없을 테니까."

현은 지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손을 잡는다면 현이 가이딩을 시도해볼 것이고 서로 파장이 잘 맞는다면 미약하게나마 능력을 사용한 이후 올라오는 불쾌한 감정들이 조금은 사라질 것이었다. 물론 현도 그것을 미약한 피로감과 함께 같이 느낄 것이고. 일일 뿐이지만 가끔 왜 스킨쉽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게 꽤나 번거롭다는 생각과 함께.

230 이름 없음 (WU.YkNd2lg)

2021-11-19 (불탄다..!) 08:48:14

갱신

231 이름 없음 (5NtriZggck)

2021-11-19 (불탄다..!) 21:31:28

" 오늘은 정말, 정말이지 긴— 하루였어. "

서늘한 지하실에 한 여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습하고 축축한 그곳이 과연 인간의 거처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싶지만, 무던한 여자는 그런 조건을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닌 듯 싶었다. 날카로운 굽소리가 정적을 찌른다. 여자는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가죽 장갑을 벗어던졌다. 이내 여자는 느릿히 껌뻑대는 먼지 쌓인 형광등 아래로 몸을 굽혔고, 의자에 단단히 묶인 상대를 똑똑히 바라보며 마치 연극같은 과장된 손짓으로 제 미간을 짚어냈다. 허니, 조용히 좀 해봐. 여자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웅얼였다.

" 허니, 자기야, 나 오늘 몹시 피곤해. "

피유, 여자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몹시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하며 힐긋 고개를 돌리니 헐거워진 밧줄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자기도 참, 말썽쟁이야. 여자는 항상 당신을 자기, 혹은 허니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그저 단어만을 빌려오는 것이 아닌 꽤 무거운 사랑이 실린 호칭이었다. 아마 지나친 장난에 불과했을테지만. 그녀의 속을 누가 알까.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제 왼뺨에 튀어 굳어버린 핏자국이 거슬렸던 것일지, 한참이나 왼뺨을 긁적이던 여자는 이내 손을 털고선 새로운 밧줄을 찾아 당신을 더욱 단단히 묶어둔다.

" 조금만 참아. 나도 자기를 풀어주고 싶어. "

여자가 다정한 어투로 말했다. 허나 목소리와는 대조되게 다소 거친 손길이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단단히 밧줄을 묶던 여자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 것일지 한참이나 결박된 당신의 두 팔을 내려다 본다. 아무래도 이정도 결박은 또 하루이틀 집을 비운 사이 난장판을
피워 끊어버릴 거 같고. 한참을 고민하던 여자가 이내 당신이 앉은 의자를 끌어 햇볓이 들지 않는 작은 창문 아래로 끌기 시작했다. 당신의 무게가 실린 의자가 무겁지도 않은지 가뿐한 얼굴과 몸짓이다. 벽면으로 의자를 밀어낸 여자는 근처에 있던 쇠사슬을 들어 창문 창살에 묶었고, 사슬의 끝머리를 의자 다리와 묶어 연결한다. 흠. 여자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대며 의자를 살폈다. 그리곤 이내 만족한 듯 맑은 웃음을 짓는다.

" 그치만, 이 밧줄을 풀자마자 날 찢어죽일 거잖아! 안 그래? "

사랑스러워라. 여자가 당신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 당신 동료들이 모두 머저리인 건 아니더라고. "

여자가 멀지 않은 곳에서 의자를 끌어왔다. 철제 의자와 더러운 시멘트 바닥이 맞물리며 시끄러운 금속음을 내질렀다. 여자는 의자에 앉아 당신의 눈을 똑똑히 마주한다.

" 한 놈이 좀, 애를 먹였지. 그 놈 죽이느라 내 네일이 부러졌어. 볼래? "

손마디를 만지작대며 슬픈 어투로 말하던 여자가 대뜸 제 오른손을 들이민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교차된 네일팁 사이로, 반쯤 뜯긴 검지 손톱이 눈길을 끈다. 나참, 이게 얼마 짜린데. 여자가 말 끝을 흐렸다. 시선 역시 그 손톱에 꽂혀내리고 만다.

" 뭐랬더라, 맞아. 케이시랬나? 케이시? 케이틀린? 아무렴.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자기가 아는 사람이야? "

본인 입으로는 자기랑 아주 친한 동료랬는데 말야—. 난 자기가 다른 여자랑 어울리는 게 싫어. 여자가 천진만난히 웃으며 물었다. 형광등 아래 반짝이는 머리칼 사이로 검붉은 핏자국이 또 다시 눈에 띈다.

# 히어로를 납치한 미친 빌런 느낌! 어떻게 받아주던 상관X!

232 이름 없음 (hXoqYBhQ3g)

2021-11-19 (불탄다..!) 23:22:24

>>229

반쯤 소매 덮인 양손을 넓적다리에 모아 걸쳐 놓은 자세로 여자가 비교적 바쁘게 움직이는 당신을 하나의 뻔한 운동 경기라도 관람하듯 바라본다. 단정히 빗어진 흑발, 더러더러 필요가 있을 때 이쪽을 보는 푸른 눈동자, 열리는 가방과 탁자에 더해지는 얇디얇은 종잇조각...... "그렇게 하죠." 본인이 요구한 두 번째 소개임에도 자칫 말하는 자 무안할 만큼 무념하며 또 서늘한 낯으로 듣던 여자가 당신이 제시하는 2주일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 가이딩이라 해도 그 명수가 설마 열 손가락이나 넘어갈 것인가 하는 판단에. 더구나 2주 정도면 잠깐 눈 감고 잊으면 그만인 짧은 시간일 것이다. 물론 이쪽에 일체의 지장만 가지 않는다면의 이야기다. 그래서 여자는 이윽고 덧붙였을 따름이다. "단 이쪽 일엔 방해가 없도록 하시고요." 하고 말이다. 처음부터 그랬듯 성의라곤 느껴지지 않는 어투였다. 그리고 그 뒤로도 그랬다.

"계약을 할 수 없다라..."

무릎에 팔을 얹으며 여자가 허리를 숙였다. 닿으면 차가울 손이 당신이 내민 손 위에 무게 없이 얹혔다. 그러나 금안이다. 금안이 또렷하게 당신을 쳐다본다. 정확히는 기억의 원천이 담긴 머리털 너머를. 그 다음으로는 점차 각도를 낮춰 사람의 숨의 원천. 숨이 지나치는 통로를 눈에 담으며 생각에 잠긴 양 입맛을 다셨다...... 파장 일치의 신호는 제법 조속히 찾아왔다. 여자는 눈을 내리감으며 먼저 손을 치우려 했다. 검은 머리를 빗어 불안하게 어깨에 걸린 한 움큼을 제대로 앞으로 넘겼다.

"네, 이제 계약서 내용 알려주세요."

233 이름 없음 (q9Hll4RUvE)

2021-11-20 (파란날) 13:16:18

>>232
현은 제 손을 잡은 뒤 입맛을 다시며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슬쩍 눈을 피했다. 제 손이 따뜻한 편이라서 그런지 지원의 손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리고...

맹수. 이 여자는 맹수였다. 자신은 피식자이고. 맹수 조련사는 무슨. 현은 파장을 확인하고 조금의 피로감을 느끼며 지원이 빼는 손을 붙잡지 않았다. 속으로 의아함을 느끼기는 했다. 보통 가이딩이 급한 센티넬은 테스팅 때도 질척거리는 경향이 있으니까. 지금 상태는 꽤 괜찮은 편인가?

"계약 사항은..."

현은 찬찬히 계약서에 적힌 내용을 설명했다. 처음 지원이 제시한 거주지 제공부터해서(거주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거부할수 있음을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계약 위반시의 위약금 등 문의로 나눴던 대화 내용이 다 꼼꼼히 담겨있었다. 또한 키스 이상 스킨쉽 금지도 적혀있었다.

간략히 설명을 마치고 현이 말했다.

"일단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국가가이드가 아닌 임시가이드를 이용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해주세요. 불법적인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해도 비밀은 지켜드립니다."

필요하시면 비밀유지각서도 써드린다며 현이 비밀유지각서를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렸다.

234 이름 없음 (5aOdxq6ieE)

2021-11-20 (파란날) 14:45:34

>>231

" 또 너였나. 아니, 이런 짓을 벌일 대책 없는 년은 너밖에 없겠지. "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던가.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 것을 듣긴 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일이 한두번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편이었다. 한가지 의외인 점이라면 예상했던 것보다는 늦게 일을 벌였다는 점이었을까. 아무튼 현재는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 단단히 결박되어 미친 빌런을 눈 앞에 두고 앉아있게 된 상황이라는 것이겠지.

두려움, 애초에 이쪽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것은 잊은지 오래였다. 그런 것을 품고 있어봐야 죽을 시기를 앞당길 뿐이니까. 세간에서 말하는 히어로의 고귀한 정신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영웅심에 취해 움직여봐야 개죽음 당할 뿐이지.

" 케이시, 최근 주목 받기 시작한 히어로 중 한명이지. 꽤나 능력이 있긴 한 녀석이라 친하게 지내긴 했어. 근데 그녀석 죽었구나. 그래도 쓸만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뒤에서 추잡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걸 알아도 아직 쓸모가 있는 줄 알고 데리고 다녔는데 계획했던 처리시기랑은 어긋났지만 너라는 말이 끼어들어줘서 탈 없이 처리하긴 했네. "

입술을 모아 후- 하고 바람을 뱉어내 흘러내린 앞머리를 넘기곤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웃어보여. 어차피 처리하려고 했던 말이 죽어버렸다는 사실은 내게 아무런 감흥이 없으니까. 그걸로 흔들어 보려고 했던 네 계획이 깨져서 꽤나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르겠다. 히어로란 이름을 달고 더러운 짓거리나 하는 녀석 따윈 내 알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처리' 하려고 했으니까.

" 그래서 이렇게 멋진 곳에 또 데려와준 이유가 뭐야? 아, 사업 이야기라면 들어줄게. 너랑 뭔가 해보는 것도 덜떨어진 쓰레기들을 청소하는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

반쯤은 도박이다. 확실히 눈 앞의 이 미친 여자는 한순간 기분이 엇나가면 내 목을 꺾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싸우는 능력으로만 따지면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분명 죽이는 방법에 있어선 내 위의 존재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리스크를 걸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도 없는 법이다. 몇년간의 삶으로 그것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 아, 어쩌면 네가 내 마음을 얻을지도 모르지. 내 이야기를 듣고, 내 손을 잡고, 네 성질머리를 죽이고 나와 일을 해본다면 말이야. "

그러니까 쫄아서 비 맞은 강아지처럼 굴지 않는다. 더 당당하게, 잃을 것이 앖는 사람처럼 나가는거다. 어쩌면 고스란히 그것이 내게 돌아와 목을 꺾고 숨을 앗아갈지도 모르지만. 그건 자업자득이지.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려는 것은 그런 것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니까.

" 어때, 이야기 해볼 생각이 들었어? 자기야? "

의자에 묶인 검정색 단발을 한 적안의 여자가 곱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머리가 이리저리 헝클어져 엉망이었음에도 아리따운 얼굴을 한 체.

235 이름 없음 (7I0J4jhPKU)

2021-11-21 (내일 월요일) 21:20:26

ㄱㅅ

236 이름 없음 (HTA4Bg/wFI)

2021-11-23 (FIRE!) 21:51:57

>>233

/안녕, 지원주야. 많이 기다렸지ㅠ_ㅠ 다름이 아니라 개인사정 때문에 빨리 잇기가 어려워졌는데 어떻게 하는 게 현주한테 편할지 묻고자 지금이라도 급하게 갱신하게 됐어. 1. 여기서 마무리하거나(+현주가 새로운 상대 구해도 물론 가능) 2. 기간은 장담 못하지만 반드시 돌아오는 조건으로 상극을 동결해놓거나 둘 중 하나로 해야할 것 같은데 현주는 어떻게 생각해? 어느 쪽이든 편할 쪽으로 부담없이 이야기해줘. 이런 소식 들고 와 정말 미안해ㅠ_ㅠ

237 이름 없음 (OlDz7JtQzk)

2021-11-23 (FIRE!) 22:32:48

>>236

/아이고 ㅠㅠㅠㅠ 개인 사정이 있었구나. 현생이 바쁘면 어쩔 수 없지. 원래 상판은 취미생활이니까 느긋하게 하거나 편할 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해줘서 너무너무 정말정말 고마워! 이야기하기 힘들었을텐데 말이야.
아마 새로운 상대는 안 구할 것 같아. 그리고 지원이의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니 2번 안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동결은 어느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나에게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혹시나 내가 갱신을 놓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네 ㅠㅠ 여기는 공동 스레라서 갱신했는데 못 보고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새로 스레를 세워두는 것이 좋으려나?
이부분에 대해서는 지원주가 편한 대로 해줘! 이곳에서 기다릴지 아니면 새로 스레만 세워두고 동결할지 말이야!

238 이름 없음 (HTA4Bg/wFI)

2021-11-23 (FIRE!) 23:17:01

>>237

/아이고 나야말로 너무 고맙지ㅠ_ㅠ... 뭐가 고맙냐면 그냥 다...(?)
나도 현이의 이야기가 정말 궁금했던지라 현주가 나중에라도 이어가자고 말해주니까 내심 기쁘기도 하네. 동결은 일단 3개월...을 바라보고 있긴 한데 이건 혹시 몰라 넉넉히 잡은 거고 그보다 일찍 돌아올 수도 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기간이 예상이 안 가네ㅠ_ㅠ 그래도 가끔 들러 생존신고하거나 가볍게 잡담할 시간은 낼 수 있을 거 같아. 퀼트처럼 답레 조금씩 이어맞춰서 느린 텀이나마 나중에 이을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생존신고용 임시 스레라도 파두는 것이 서로에게 심적으로 편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네. 만약 현주도 같은 생각이라면 스레를 세우는 건 혹시 부탁해도 괜찮을까? (염치없음...) 제목이나 그런 건 현주 임의로 해도 정말정말 좋지만 혹시라도 상의가 필요하면 말해줘.

239 이름 없음 (gOL743NOOI)

2021-11-23 (FIRE!) 23:40:53

>>238
/얍! 임시스레 팠어. 제목은 임시로 정했어~ 나중에 정식 오픈하면 바뀔수도 있구. 현생 힘내구 늘 편하게 갱신해줘!
>1596377096>

240 이름 없음 (DBAXlru2.U)

2021-11-24 (水) 00:30:58

>>239

/응응, 고마워. 제목 진짜 멋지다! U_U* 현주도 좋은 나날 보내고 갱신은 모쪼록 편하게 해줘~

241 이름 없음 (wJQsnbys5s)

2021-11-28 (내일 월요일) 02:15:26

흰 구름과 그 사이로 서서히 저물어가는 저녁 노을, 코 끝과 귀가 붉어질 정도로 차가운 겨울 바람, 그르륵거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사방에서 진동하는 시체 썩은내. 아, 오늘도 참 평화로운 하루다.

입구가 핏자국으로 난도질된 아파트 단지, 거기서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간, 창문의 모든 면에 신문지를 붙이고 청테이프를 덕지덕지 도배해둔 401호에서는 오늘 평소와 다르게 분주한 소리가 났다.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 책가방 같은 배낭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제 봇짐을 점검하는 소리였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누군가가 배낭에서 먹다 남은 감자칩을 빼내며 쳇, 혀를 차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손을 넣어 뒤적이다, 제 무릎 옆에 놓여있던 소꿉놀이 세트의 냄비 하나를 신경질적으로 집어넣는다. 이정도면 됐겠지. 후드를 눌러쓴 누군가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배낭정리에 신경을 쏟은 탓에 어느덧 저녁 노을이 겨울바람에 밀려 땅 아래로 몸을 숨기고야 말았다. 잠시 신문지를 들쳐올려 시꺼면 밤거리를 바라보던 누군가가 작게 욕설을 중얼인다. 아무래도 제가 훼까닥 미쳐버린 게 분명한 것 같다. 이 시간에 안전지대를 벗어날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이미 오늘 저녁, 편지 속에 네놈을 찾아가겠노라 선전포고를 날려버렸으니 어쩔 수 없을 일이 아니겠는가. 하여튼간 쓸데없는 자존심이 문제지. 창 밖 세상에서 눈을 떼낸 누군가가 새하얀 볼캡을 고쳐쓰며 배낭을 들쳐맸다. 하여간, 만나기만 해봐 새끼 염소. 볼캡을 눌러쓰고 그 위로 후드 모자까지 뒤집어써 도통 누군질 알 수 없을 인상착의였다만, 다소 거친 욕설이 익숙한 인간이라는 것은 알아챌 수 있었다.

좀비들의 시간을 빼앗아쓰려는 인간에게는 제법 많은 제약이 걸렸다. 첫 째, 숨소리도 들키지 말 것. 둘 째, 불빛을 사용하지 말 것, 셋 째, 달리기를 뒤지게 잘 할 것. 물론 순전히 볼캡을 눌러쓴 그 '누군가'가 지어낸 공식일 뿐이었다. 제약을 어기면 어떻게 되냐고? 사람 고기를 좋아하는 시쳇덩어리가 되는 수 밖에.

좀비떼를 피해 자세를 낮추어 걸음을 옮기던 누군가가 잠시 멈칫였다. 그리곤 길목의 끝머리에서, 슬며시 고개를 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이내 재빠르게 발을 굴러 한 낡은 마트의 광고판 앞으로 숨어든다. 마트는 제법 규모가 컸으나 관리를 멈춘지 오래된 듯 낡고 지저분했다. 게다가 과거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반짝였을 전광판이 반파되어 이름조차 잃어버렸으니, 지금은 그저 초라한 폐건물일 뿐이다. 누군가가 휴, 작게 숨을 들이켰다. 야구 방망이를 쥔 오른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길게 뻗은 자태가 아름다운 방망이에는, 누구의 것일지 모를 지저분한 핏자국이 흉측히 튀어있다.

" 어디있냐, 새끼 염소... "

야구방망이를 쥔 누군가가 작은 보폭으로 고장난 자동문을 향해 몸을 옮겼다. 전기가 끊긴 탓에 커다란 자동문은 손님을 보고도 굳건히 제 입을 걸어잠구고 있다. 누군가가 몸을 일으켰다. 시커먼 마트 내부에는 그 무엇도 보이질 않는다. 허탕인가? 마트의 외벽에 몸을 붙인 채, 마트의 내외부를 모두 경계하며 인기척을 살피던 누군가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닌데, 분명 여기 있을텐…

" 여깄냐?! "

이 갑오징어놈아! 큼지막한 야구방망이가 또 다른 누군가의 몸을 막아섰다. 볼캡을 푹 눌러 써 보이진 않았으나, 방망이의 주인은 제법 의기양양한 눈빛이었다. 조금 마른 듯한 체구에, 혼자 신이 나 무어라 중얼거리는 그 사람의 정체는…

" 어린이 공원은 개뿔. 너 내가 여기 있을 줄 알았지. "

푹 눌러 쓴 후드 모자를 걷고, 볼캡을 조금 들어올리자 '누군가'의 얼굴이 환히 드러난다. 신이 난 듯, 혹은 신경질이 난 듯, 화난 고양이처럼 사나운 눈매를 가진 여자였다. 여자가 한 발짝 한 발짝 당신에게 다가가며 야구방망이를 건들댔다. 한가운데가 움푹 파여 불길한 분위기를 뽐내는 방망이가 당신의 몸에 닿을 듯 말 듯, 얼쩡거린다.

" 마지막으로 하실 말은? 새끼 염소씨. "

여자가 당신을 향해 성큼 다가서며 물었다. 살긋 지어내는 미소가 당신에게 자애롭게 비쳐보였길 바란다.

#편지 스레에서 넘어온 상황극입니다! U.U

242 이름 없음 (29/.b2D0Vg)

2021-11-28 (내일 월요일) 22:52:12

볶음밥은 맛있었다. 심하게 짜지도 않고 적당히 단 맛.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김밥햄을 썰어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아침에 안 깎았다고 수염이 꺼슬하게 나는 자신과는 달리 아직 어린 당신한테는 싱거울지도 모르겠지만.

포슬포슬한 달걀볶음을 고봉밥 위에 얹어 식탁에 올린다. 그리고는 당신을 부른다. 먹어. 적당히 먹을 만치는 될 거다. 볶음밥의 맞은편 의자에 비뚜름하니 앉는다. 삐그덕대는 허리 탓에 절로 신음소리가 나온다.

"나이가 죄지. 나이가 죄야."

혼잣말 또한 시간을 맞이한 사람만의 특권일 터다. 지그시 눈을 감고 세월을 음미하려니 쌉싸름한 담뱃내가 곁들임에 제격이다. 손떼 묻은 케이스에서 한 개피를 꺼내본다. 입술 새로 담배를 끼운다. 그제야 저가 방금 전 어린 아이한테 밥상을 차려줬다는 것을 깨닫는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는 담배가 대중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기호품이고 따라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때와 상황을 가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어린아이 앞에서 담배를 자제할 정도로 배려심이 깊지는 않았다.

"한 대 피워도 되지? 그러니까... 흠, 꼬마야."

입술을 움직임에 따라 담배 끝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는 이미 손에 낡은 라이터를 쥐고 있다. 허락이 떨어지기만 한다면,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있는 팔뚝을 당장 옮겨 벌건 불을 피워낼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으니까.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

제 집에 함께 있는 어린아이가 전생에 가진 이름이 무언지는 안다.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전생에 지녔던 이름이고, 지금 저 아이가 그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이니, 어쩌면 저 아이를 부르기에 더 적합한 호칭이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만약 저 아이가 제 기억과 다른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주길 원한다면 남자는 거기에 맞추어줄 의향이 있었다. 새로운 인연을 쌓아가는 것도 뭐,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이먹은 아저씨캐가 환생한 과거의 인연(아이)을 만났다는 상황이야! 과거에 어떤 관계였는지/너참치의 캐가 전생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생각해둔 게 없으니 자유롭게 이어주면 고맙겠어. 물론 맥커터는 사절!

243 이름 없음 (29/.b2D0Vg)

2021-11-28 (내일 월요일) 22:59:27

>>242 // 추가) 아이라고 서술하긴 했지만 내 캐가 보기에 어려보여서 아이라고 했을 뿐이지 사실 더 나이들었다고 해도 좋고... 아무튼 자유롭게 이어줘!

244 이름 없음 (usmIn/tky6)

2021-11-29 (모두 수고..) 11:42:59

>>242 체격에 들어맞지 않는 의자 위에 덩그러니 던져지듯 앉은 모습이 퍽 우스웠다. 잘 관리된 머리카락과 그 위로 매듭지어진 벨벳리본, 인근 사립 학교의 학생복에 새하얀 레이스 양말까지 척 봐도 값나가는 차림을 하고 있었음에도 그 꼬마 애의 모습은 영 궁상스럽기 짝이 없었다. 지저분한 상처와 흙먼지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바닥에 닿지 않아 덜렁거리는 다리만 봐도 볼품없는 꼴이지 않은가. 꼬마 애는 뜨거운 김이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밥과 달걀을 두고 빤히 쳐다봤다가는, 이내 그 커다란 눈을 데록 굴려 남자를 바라봤다. 처한 상황이 무색하게 제법 어린애다운 맑은 눈동자였다.

“아저씨. 여기 어디예요? 집에 가고 싶어요.”

이마에서 눈으로, 그 다음은 코. 바로 밑에 위치한 인중에서 입술로 이어지는 선까지 차례대로 천진하게 훑던 시선이 손에 쥐어진 물체들 앞에서 멈춰섰다. 담배와 라이터였다. 별다른 감흥 없이-조금은 신기하다는 듯-그것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던 꼬마 애는 곧 한 대 해도 되겠냐는 물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로 매운 연기를 싫어하는 그 나이대 꼬맹이임을 감안하면 참 희한한 반응이었다. 담배의 지독함에 익숙했다기보다는 차라리 한 번도 그 냄새를 맡아본 적 없어 무지한 사람의 태도에 가까웠다. 꼬마 애는 그보다도 다른 데 관심을 더 많이 보이는 듯했다. 앉은 채로 집 안의 곳곳과 가구들을 훽훽 살펴보며 그 애가 말을 이었다.

“혹시 여기 우리 집이에요? 아저씨 우리 아빠예요?”

뜻밖에도 제 집 살림은커녕 본인의 아비도 못 알아보는 황당한 발언이었다. 자신의 말이 얼마나 기가 막혔건 간에 그 애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 어설픈 장난이나 치려는 투는 결코 아니었다. 의심할 틈도 없이, 바로 다음 던져진 남자의 말에 꼬마 애는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어버리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제가, 사실은 아까 전에요. 아저씨랑 오는 길부터 이름이랑 학교랑, 엄마 아빠 이름이랑 다 생각해보려고 그랬는데요, 자꾸 생각이 안 나요.”

그 애의 말로는 사고를 포함한 그 이전의 일들은 까만 잉크라도 엎지른 듯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집 주소나 부모의 번호는 고사하고 제 이름까지 모른댄다.
톡톡, 손끝으로 테이블 위를 두드리는 소리가 귓가를 건드린다.
어느덧 김이 멎어들었을 즈음이 됐음에도 볶음밥은 그대로였다. 꼬마 애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주제에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테이블 위의 식사 자리를 영 불편해하는 듯했다. 불편함보다는 불안함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고. 기억은 잃었다 하니 꼭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두 캐릭터 다 환생한 상태에서 아저씨만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지, 내 캐릭터만 (아저씨 기준) 이번 생에서 죽고 환생한 상태인 건지 애매해서 일단 후자로 잡고 초등학생쯤 되는 캐릭터를 들고 와봤는데 나이는 좀 더 올려서 상상해도 괜찮아! 아무 이유 없이 남의 집에 왔을 것 같진 않아서 대충 내 캐릭터가 모종의 사건(범죄든 사고든)에 휘말린 상황에서 아저씨랑 조우하고 따라오게 됐다는 배경을 상정했는데, 뭣하면 스루해도 좋아 ^-ㅠ

245 이름 없음 (dTU5tk4EcQ)

2021-11-29 (모두 수고..) 20:38:00

>>244

"아빠라니."

라이터에 불이 붙지 않았다. 천부당만부당한 단어가 생소하고 낯설어 부싯돌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던 탓이다. 아빠라니? 우리 집이라니? 하늘과 과거와 자신의 여성 편력에 맹세코 절대 그럴 리 없었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부러 강하게 담배의 첫 숨을 내뱉어본다. (다행히, 라이터에 불을 붙이려는 두 번째 시도는 성공했었다.) 식탁에 뿌연 연기 가득 메우는 이유는 좋게 표현해 검소하고 나쁘게 말해 궁상맞은 제 집 가구에서 아이의 관심을 불러오려는 것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네 말에 나는 하나도 동요하지 않았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내심 당황스러웠다.

"너, 어디 가서 그 말 하지 마. 알겠니 꼬맹아? 너는 길바닥에서 상처투성이로 구르고 있었고, 나는 그런 가-엾-은- 아이를 불쌍히 여겨 경찰이 데리러 올 때까지 잠시 집으로 데려와 따뜻한 밥과 아늑한 쉴자리를 제공해줬을 뿐. 그 뿐인 관계야, 알았어?"

아빠라니 무슨... 중얼거리다가.

"그리고 납치당했다고도 하지 마."

제 발 저려 그리 덧붙인다. 툴툴거린다. "안 그래도 벽 얇은 싸구려 아파트라 방음의 ㅂ도 없단 말이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이 근처 사립 학교에 다니는 모양인데 그런 비싼 학교에 아이를 보낼 작자가 이런 다 허물어지는 건물에 세 들어 살 리가 없지. 아이의 행색을 보며 그가 차분히 생각했다.

기실 남자의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아이를 불쌍히 여겨 데려왔다기에는 상처에 연고 하나 발라주지도 않고 하물며 흙먼지조차 털어주지 않고 있지 않은가. 경찰을 운운하긴 하였으나 남자는 아이를 만난 뒤로 핸드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신고하지 않았다. 무얼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과거의 인연이 있다 하여─그저 닮았을 뿐이란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데려오긴 하였으나,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남자는 혼란스러웠다.

"뭐야?"

그리고 그 혼란은 아이의 황당한 기억상실 선언 때문에 곱절은 증폭되었다.

"얌마, 그걸 나더러 믿으라는 거냐으아...거니?"

기가 막히다 못 해 머리카락 꽉 막힌 배수구처럼 되는 바람에 원래 쓰는 말투가 나와버린다. 중간에 정신 차려 급하게 상냥한 말투로 선회하긴 하였으나 겁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자. 참아. 잘생기고 착한 내가 참자. 제 이름까지 모른다는 아이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깊이 빨아들인다. 아, 이제야 뇌가 맑아진다. 니코틴의 힘을 받아 팽팽 돌아가는 생각세포가 말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그러나 싸구려 소설이나 삼류 영화도 아니고 그저 상처 조금 생겼을 뿐인 아이한테 갑자기 기억상실이라니? 차라리 어제 긁은 복권이 1등 당첨인 게 훨씬 현실성이 있겠다. 먼 치에서 눈으로 살피기에 머리 쪽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 같지도 않았기에 더더욱.

얘가 뭔 이유로 저런 말을 한담. 정말로 기억상실이기 때문에? 아니면 다른 이유로? 남자는 아이가 손도 대지 않은 볶음밥을 내려다본다. 검지손가락은 남자의 의식과는 상관 없이 식탁 위를 두드린다. 톡톡. 아이와 남자의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합주가 남자의 신경을 건드렸다. 젠장, 몇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 전두엽을 괴롭힌다. 토할지 말지를 결정 못한 옛 추억을 목구멍 뒤로 삼키기 위해 남자는 대신 담배 연기를 토하기로 했다.

"꼬맹아. 집에 가기 싫다고 그런 거짓말 하는 거 아니예요."

식탁 위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어버린다. 뭉툭해진 담배 끝을 아이한테로 향한다. 삿대질한다.
저 징글맞은 놈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아이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할 뿐인 속 시꺼먼 놈인지는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자신도 모르는 척을 한다. 모르는 척을 하며 살살 긁어보다가 수상한 정황이 나오면 덥썩 물어 캐물어야지. 콱 이빨로 물어버리는 것도 좋겠고.

남자는 자신의 계획이 퍽 만족스럽다.

"학생복 입은 걸 보아하니 요 근처 초등학교에 다니는 모양인데... 거기 가면 너 누군지 바로 알 수 있거든? 아저씨 놀리려고 하면 안 된다."

자, 이제 어쩔 테냐.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 앗앗 나도 후자로 생각하고 상황 제시했었어! 설명이 애매했던 것 같은데 잘 들어맞아서 다행이다 ^ㅁ^) 흥미진진하게 상황 받아줘서 고마워.......!!!

246 이름 없음 (Y8F8Q8bo6I)

2021-11-30 (FIRE!) 23:01:29

(장갑 낀 양 손으로 화단에 쌓인 눈을 퍼올리고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듯한 당신에게로 다가간다. 음흉한 미소를 한껏 지으며.) 손님, 주문하신 설빙 아이스 나왔습니다.

247 이름 없음 (jU0tpr./NM)

2021-12-05 (내일 월요일) 19:03:08

새벽 세 시가 넘어가는 야릿한 새벽의 어느 감성주점이었다. 우당탕탕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시비가 붙은 취객들이 벌여놓은 한바탕 소란이 잦아들고, 쯧쯧 혀를 차며 거들먹거리는듯한 걸음으로 당연스레 그 곁을 지나오던 이가, 얌전히 테이블에 앉아있는 당신 앞에 문득 멈춰선다.

"술을 처 자실거면 곱게 마셔야지, 저게 뭐야. 그치요?"

너저분해 보이는 묶음머리를 한 그 또한 적잖이 술이 들어간 것 같아뵈지만, 그는 당신이 제지하기도 전에 자연히 몸을 뉘듯 당신의 앞자리에 앉아온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이 소란에도 아랑곳 않는 당신을 한 번 훑고 지나간다.

"... 아! 너... 그. 뭐야. ... 그래. 배신자!"

곧, 말까지 더듬으며 황급히 당신을 떠올려낸 그는, 반가운 목소리로 당신을 배신자라 부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뾰족 든 검지로 당신의 얼굴을 찌를 듯이 가리켰다.

"아니아니. 싸우잔 게 아니라. ... 벌써 몇 년도 더 된 이야기잖냐."

그는 당신이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먼저 손사래를 치며 당신에게 악감정이 없음을 피력했다.
그래. 벌써 몇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십수 년 전, 몇몇 인간들에겐 자연의 섭리와 물리법칙을 한참 벗어난 기이한 능력이 발현되었고, 그들은 한때 인류의 희망이라 추앙받기도 했었고, 사상 최악의 악당이라며 비난받기도 했었다.
지금은 인류의 기술이 발전하여 법적으로 능력 사용이 금지시 됐을뿐더러 당시 인류를 위해 제 몸을 불살랐던 이들은 약간의 보조금이나 받으며 유흥거리나 찾아다니는 백수 한량이 되어버렸으니. 선이고 악이고 모두 인위적인 흐름으로 빚어 만들어진, 인류의 화합을 위해 이용당했을 뿐인 기구한 인생들일 뿐이었다.


"하... 시발거. 인생에 낙이 없어, 낙이."

한 잔 빌리자며 당연하단 듯이 당신의 술병으로 손을 뻗는 그의 추레한 모습은, 한때 당신이 가장 존경하고 시기하고 증오하고 남몰래 연모했던 것과는 이미 한참이나 동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는, 너는 어떻게 그때 그대로냐. 내 머리가 많이 길어서 못 알아보겠지? 하고 시답잖은 농을 던지며 털레털레 웃어버리고 만다.

248 이름 없음 (oF6AZmsyT6)

2021-12-05 (내일 월요일) 21:36:01

>>247
온갖 소란이 지나가는 동안에도 여자는 주점 한 구석을 고요히 지킬 뿐이었다. 아주 한참 전에는 저런 작은 일에도 나서 사람들을 말리고 했다만...지금과는 영 상관 없는 이야기다. 여자는 남은 술을 입에 털어넣고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갑작스레 다가온 이만 아니었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길게 드리운 앞머리 사이로 얼핏 보이는, 푸른 눈동자가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는 이미 당신이 누군지 기억한 모양이다. 배신자라 소리치는 말에도, 찌를 듯 다가온 손가락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

"그렇다는 사람이 삿대질부터 하시나요."

조금 쉬고 갈라진 목소리기는 해도 어투는 또렷하고 정중하다. 비록 그에 담긴 내용이 그렇지 않더라도. 비꼬듯 이야기했어도 사감이 남지 않은 것이 이쪽도 매한가지인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다만 머무름이 길어질 것이라고 직감하기라도 했는지 몸을 등받이에 편히 기대앉는다.

그녀는 당신의 한탄에 답하지 않고, 당신의 모습을 관찰이라도 하듯 샅샅이 훑는다. 과거와는 달리 추레한 모습이다. 외려 당신이 아니라 그녀가 과거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건 꽤나 웃긴 일이다. 선의 편이었던 당신이 아니라 악에 가까웠던, 배신자니 악당이니 불리었던 그녀가 겉모습으로나마 그 당당하고 꼿꼿한하던 태도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던데, 그래도 많이 변하긴 했네요."

겉모습도 그렇지마는 그 속 또한.
과거 치열하게도 싸웠던 당신과 여자가 이리 마주보고 대화라는 걸 하고 있다는 점만 해도 그렇지 않나. 그녀는 비웠던 잔에 다시 술을 따를 요량인지, 손을 까닥이며 쓰고 돌려달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249 이름 없음 (1MG403nWmQ)

2021-12-06 (모두 수고..) 00:40:33

>>248
당신이 훑는 시선을 한껏 즐기며 입에 머금은 술을 곧바로 삼키지 않고 느긋하게 입안에서 혀를 굴리던 그는, 당신의 손짓에 목구멍으로 닁큼 술을 넘기고서 들고 있던 술병을 내밀었다.

"이야... 독하네."

그는 혼잣말처럼 감탄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입술을 가볍게 훔쳐내는 것으로 안주를 대신한다. 독하다고 할 적에 당신의 푸른 눈동자를 흘금 바라보는 것이, 당신을 겨냥한듯싶기도 하다.

"이리 마주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이냐."

측은하게 빛나는 초록 눈동자는 당신을 또렷이 응시하고 있지만 그 시선의 끝은 과거의 한때를 가리키고 있다.

"차라리 그때, 네 손에 죽었다면 이따위로 살고 있진 않았을 텐데."

조금 분하긴 했겠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순직한 놈들이 참 부럽단 말이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이 옳다고 믿고 믿었을 테니까.
평화를 위한답시고 정부에 헌신하며 꾸역꾸역 살아남은 대가로 이런 짐덩이 취급을 받을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겠지.
손등에 턱을 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런 이야길 중얼거리던 그는, 느른하게 손을 뻗어 빈 잔을 흔들어 보였다.

250 이름 없음 (XCdoGZ7vEU)

2021-12-06 (모두 수고..) 10:24:10

지금은 2X세기, 21세기의 누군가들이 많이도 예측했던 캡슐 형식의 가상현실게임 기기가 출시된 시대.
다른 콘솔 게임은 오래된 게임 매니아들의 유산이자 무덤이 된 지 오래됐다. 이미 수많은 가상현실 게임들이 게임계에 혜성처럼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중에는 외계인을 고문했다는 소문이 도는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게임도 있었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휴양 대신 선택한다는 자연스러운 그래픽과 감성적인 디자인이 유명한 작품도 있었다.
그리고, 맨 처음 등장했을 땐 수많은 겜덕후와 민간인들의 돈을 빨아먹었지만 지금은 고인물만 남아서 썩어들어가는, 한 져가는 별도 있었다.
<슈팅 스타 온라인>.
커뮤니티 내 별명은 '노인정'과 '별'을 합쳐서, '별인정'.

[특별]약초줍는노인 :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특별]약초줍는노인 : 심심 산천에 백도라지
[특별]약초줍는노인 : 한두 뿌리만 캐어도
[특별]약초줍는노인 : 대바구니 철철철 다넘는다

이 플레이어, 약초줍는노인도 같은 처지였다.
쓸모없는 고인물이라는 뜻이었다.
흔히 노인들이 쓰곤 하는 오색찬란한 꽃무늬 두건을 써 머리카락을 완전히 가렸다. 체구는 작지만 부푼 천옷으로 몸을 완전히 가려, 정말 등 굽고 작은 노인 커스텀 캐릭터인지 어린아이 커스텀 캐릭터인지 알 도리가 없다. 손잡이를 두 개 엮어 등에 맨 망태기에 1골드짜리 약초가 가득 담겨 있다. 그야말로 '약초 줍는 노인'이라는 닉네임에 걸맞는 컨셉질이다.

[확성]혜진아칭칭나 : 약초 또 난동이네 예쁜아기가
[확성]꾸워어꾸우워 : 니 산삼 캔 거 안궁금ㅗ

여느 고인물이 그렇든 약초줍는노인도 트롤링을 했다.
게임사가 손 놓아버린 이 게임은 심각한 수준의 버그가 아니면 패치되지 않았다. 수많은 버그를 줄줄 꿰는 고인물이 갖고 놀기 딱 좋았다.
그 수단은 히든 플래그. 게임 판타지 소설이 그러했듯 이 게임에도 히든 플래그가 있었다. 무협의 기연처럼 영약을 얻거나 히든 클래스를 계승하는 이벤트가 발생하는 것.
하지만 악랄한 이 게임은 기연도 거저 주지 않았다. '히든 플래그 발생권'을 구매해야 했다.
가격은 게임 내 화폐가 아닌 결제 화폐인 크레딧으로 200,000크레딧.
일반인이 사기엔 크게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게다가, 히든 플래그가 무조건 구매자에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히든 플래그를 바로 발생시키는 게 아니라 조건이 랜덤하게 정해진 히든 플래그가 새로이 생성된다.
재수 없으면 발생권을 사 놓고도 히든 플래그를 놓칠 수도 있단 거였다.
발생권으로 생성된 히든 플래그의 조건은 최대한 구매자한테 맞춰진다고 하지만, 확률도 나와 있지 않은 불확실한 확률놀음을 누가 믿을까.

[히든 플래그 발생권 x1 구매완료.]
[히든 플래그 발생권 x1 사용합니다.]

하지만 약초줍는노인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이벤트를 '100%' 발생시킬 자신이 있었다.

[약초줍는노인 님이 '만년설삼'을 획득했습니다!]
[특별]약초줍는노인 : 뿡
[확성]혜진아칭칭나 : 아 냄새 火'口'

약초줍는노인이 얼마전에 발견한 오류.
발생권으로만 발생하는 히든 플래그 중 오직 약초줍는노인과 같은 채집 특화 캐릭터에게만 출현하는 '영약재 발견 이벤트', 속된 말로 '심봐'다.
완성품 영약이 출현하는 기연 이벤트와 달리, 비교적 다른 방식으로도 수급하기 쉬운 영약의 원재료가 정해진 장소에 나오는 히든 플래그. 거의 꽝 취급받는 이벤트.
하지만 이 이벤트에는 '히든 플래그 발생권을 사용할 경우 다른 이벤트와 함께 무조건 다시 리젠된다'는 오류가 있었다.
다른 히든 플래그가 얼마나 생기든 무조건 심봐도 같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히든 플래그는 종류 불문하고 누군가 습득하면 전 월드에 요란한 이펙트로 축하 메세지가 뜨며, 획득자가 전 월드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 확성기를 1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원래 자랑용으로 쓰였어야 할 이 확성기는 히든 플래그 발생권을 무더기로 쓰는 약초줍는노인에 의해 전 월드 대상 테러수단이 되었다. 심지어 '특별'하기 때문인지 신고나 차단도 먹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약초줍는노인은 전 월드에 명성과 악명을 떨치는 유쾌하고 불쾌한 어그로 네임드 고인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약초줍는노인 님이 '인형설삼'을 획득했습니다!]
[특별]약초줍는노인 : 허허허... 유교 국가에서 감히 노인한테 대들다니 요즘 것들은 버르장머리가 없구료...
[확성]메리볼셰비키 : 약노제발죽어약노제발죽어약노제발죽어약노제발죽어약노제발죽어약노제발죽어약노제발죽어약노제발죽어약노

'음?'
그런 약초줍는노인의 눈에 누군가 들어왔다.
이곳은 '만년설삼'과 '인형설삼'의 고정 출현 장소인 예티 설산. 약초줍는노인 같은 괴짜가 아니면 올라올 일이 없다.
혹시 뉴비? ...일 리가 없다. 온갖 공략과 정보가 넘치는 썩은물 게임에, 이 가혹한 환경 근처에 위치한 유일한 스타팅 포인트인 레멘세 마을에서 시작할 플레이어가 얼마나 될까? (그 전에 이 게임에 들어오는 뉴비는 없다.)

[일반]약초줍는노인 : 에베레스트 등반 컨셉충인가?

혼잣말도 마이크 안 켜고 채팅으로 하는 게임 과몰입충 그 자체인 약초줍는노인이었다.

'이벤트인 척하고 놀려야겠다.'
약초줍는노인은 머리에 쓰고 있던 꽃무늬 두건을 벗고 복면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추위 면역'효과가 사라졌습니다.]
['물리 면역'효과가 사라졌습니다.]
['현혹하는 환상'효과가...]
[인간의 능력으로 저항할 수 없는 겨울신의 분노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능력치가 99% 감소...]
[현인신만렙 칭호의 효과로 상태이상에 저항합니다.]
['돜키돜키 산돜키 가면'의 효과로 '현혹하는 환상'효과를 얻습니다.]
['돜키돜키 산돜키 가면'의 효과로 닉네임, 길드명, 레벨 효과가 가려집니다. 장비를 해제할 때까지 일반 채팅, 길드 채팅, 비밀 채팅이 불가능합니다.]
[마이크를 활성화했습니다.]

'유령이니까 하얀색으로 할까? 아니다, 눈이 하도 많아서 안 보이겠지. 머리카락과 눈색은 검은색으로 해야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겠다.'
어느새 눈밭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새하얀 피부에 새까만 흑발, 흑안 청년 모습으로 변하고 다리가 투명해진 약초줍는노인, 아니, '유령'은 스킬 '제 3의 손'의 효과로 살짝 떠서 날아가듯 눈 속의 형체를 향했다.

251 이름 없음 (zw286CnU1E)

2021-12-07 (FIRE!) 20:57:17

>>249
술병을 건네받은 여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잔이 끝까지 차도록 술을 붓는다. 자신을 겨냥하는 것인지, 술을 향한 것인지 모를 감탄사에 한쪽 눈썹만 쓱 올렸다. 마치 무슨 소리냐 묻는 듯 말이다.

여자는 당신의 말에 곧바로 답하는 대신, 술잔을 기울였다. 모순적이나, 폭력이 만연하던 과거를 영광의 때라 회상하는 이는 많았다. 영웅이니 대악당이니 하고 추앙받던 그 시절에는 영광이나 두려움을 손에 쥔 자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그 모든 전설들은 한낱 과거의 산물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 되었다. 정의는 부정당하였으며 악은 그 근간을 잃은 지 오래다. 당신이 빈 잔을 흔들어 보이자, 여자는 당신 앞에 술병을 밀어주며 말한다.

"그리 후회한대도 과거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난 당신 죽일 생각 없어요, 여자는 짧게 덧붙인다. 모호한 어투다. 지금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인지, 혹은....그 과거에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것인지. 혹은 아무것도 아닌 농인지. 여자는 당신을 바라보다, 작게 혀를 찼다.

"...그러게 내가 경고하지 않았나요, 맹신하지 말라고."

언젠가는, 그래. 그런 말도 했더랬다. 한낱 배신자의 말을 듣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252 이름 없음 (GpaEsLtKWU)

2021-12-10 (불탄다..!) 00:54:01

그가 죽던 날에는 세찬 눈보라가 내리쳤다. 항상 —올해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렸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달고 살던 사람이었다. 그의 바람대로 그날 밤에는 아주 많은 눈이 내렸다. 그는 새하얀 눈밭 위로 새빨간 피를 흘리며 천천히 식어갔다. 나는 그 옆에서 시체처럼 눈밭에 파묻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이름을 움켜쥐고 있었다.

*

" 어디… "

[기억소생프로그램]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있어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는 [기억소생프로그램]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미리 보험이라도 들어두면 어때? —그래, 나쁠 건 없지. 그 뒤로 모든 것은 재빠르게 진행 되었다. 복잡한 장치를 쓰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보험사의 직원은 컴퓨터 화면에 떠오른 보라색 구체를 가리키며 이것이 우리의 기억이라고 했다.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주셔야해요. 그때 그가 내뱉었던 감탄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현대 과학이란. 메리가 나직히 중얼였다. 꺼림칙하고도 사랑스러운, 현대 과학이란.

메리는 제 몸집보다도 커다란 상자를 끌어안았다. 바깥이 제법 추워 상자를 빠르게 옮겨야할 것 같았다. 혹시라도 그가 춥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이는 추위를 잘 타는 사람이었으니까. 초겨울에도 꼭 회색 머플러를 두르던 사람이었다. 회색 머플러에서는 항상 그의 향기가 났다. 서랍장 안 쪽에 모셔둔 머플러에서는, 더이상 그의 향기가 나질 않았다. 그 위로 그가 아끼던 향수를 제아무리 뿌려본들 품에 안겼을 때 코끝에 닿았던 그 향은 나지 않았다. 그의 향기를 잃고 난 무렵부터 메리는 머플러를 찾지 않았다. 이제는 그의 향기보다도 메리의 향이 더욱 짙게 나는 것만 같았다.

메리는 한참의 시간을 들여 상자를 집 안으로 들이는 것에 성공했다. 바깥에 조금씩 날리는 눈발 덕에 상자가 조금 축축했다. 메리는 가볍게 상자 위의 물기를 털어낸 뒤, [Remember-Reunion] 이라는 로고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보험회사를 찾아가기까지 꼬박 석 달이 걸렸었다. 그마저도 그를 떠나보내고 나서 집안에 틀어박혀 꼼짝않던 두 달을 제외한 시간이었다. 보험회사의 직원들은 메리를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그러니까, 다행히도 사망 1주 전까지의 기억이 업데이트 되어 있으시네요. 직원이 작게 미소 지으며 건넨 말에 메리는 쉽게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소생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약 세 달이 지났을 무렵, 아무도 찾지 않는 메리의 휴대전화로 한 통의 문자가 들었다. <벤자민 포트만 님의 안드로이드가 제작 완료 되었습니다. 원하시는 배송 장소를 말씀해주세요.> 메리는 둘만이 알고 있던 설원 속 별장의 주소를 적어보냈다.

메리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박스를 열었다. 한 겹의 박스를 열자 새하얀 플라스틱 완충제가 와락 쏟아져나왔다. 두 번째 박스를 열자 고운 천으로 마감된 고급 상자가 보인다. 메리의 손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두 눈가는 붉게 물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메리, 당신은 감정이 너무 잘 들어나 탈이라니까. 어렴풋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메리는 두어번이나 얼굴을 감싸쥐고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메리가 숨을 들이켰다. 바깥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지막 상자를 열자, 그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기억에 오롯이 살아있던 그 모습이었다. 그녀를 향해 환히 웃어주던, 입을 맞추어주던, 부드럽게 안아주던 그의 모습이었다. 메리는 조심스럽게 안드로이드의 얼굴 위로 손을 댔다. 인간의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감촉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차가웠다. 눈보라 아래로 식어가던 그의 손처럼 차가웠다. 메리의 손가락이 굳게 감겨진 눈꺼풀 위로 향했다. 그는 곤히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메리는, 관자놀이쪽의 작은 스위치 버튼을 눌러도, 그가 미동 없이 누워있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 …벤자민, 베니… "

메리가 황급히 제 두 손을 감싼 채 두 눈을 감아내렸다. 간절하게 부르는 그 이름이 낯설다. 그러면 안되는데. 적막이 감도는 별장 속에서 작게 기계가 가동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메리는 숨을 죽여, 그의 모습을 본딴 안드로이드가 작동되기를 기다렸다. 그의 모든 기억을 가진 안드로이드, 그의 성격과, 취향과, 사랑을 모두 이어 받은 그 꺼림칙한 안드로이드가 다정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길.

253 이름 없음 (/q8rQw7cII)

2021-12-10 (불탄다..!) 00:57:58

>>252
# 들어나 -> 드러나... (머리탁)

254 이름 없음 (TnRNR2tfks)

2021-12-20 (모두 수고..) 19:09:17

>>252 상황 너무 취향인데 지금이라도 이어봐도 될까? 시간이 많이 지나서 혹시 몰라 물어볼게 ㅠ_ㅠ

255 이름 없음 (czdbZ.uNuM)

2021-12-20 (모두 수고..) 20:23:38

>>254 헉 나 >>252 야! 이어주면 나야 넘 고맙지! >_< 아무도 안 이어줘서 흑흑 별로인가... 하고 슬퍼했어... ㅎ.ㅎ 대환영대환영!!

256 이름 없음 (kRv3oWI7TE)

2021-12-20 (모두 수고..) 20:28:12

>>255 아직 있었구나! 답해줘서 고마워~ 손 가는대로 이어오도록 할게 +_+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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