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전력으로 달리는 와중에 눈앞에 물음표 모양의 불꽃이 일자, 라임은 곧바로 자빠지듯 몸을 뒤로 젖혀 등으로 땅을 쓸며 흙먼지를 잔뜩 피웠고, 그대로 미끄러지며 손에 잡히는 돌멩이를 집어선 불이 난 장작을 향해 집어던졌다. 무슨 일이냐는 목소리는 들었으나, 사실, 그 불꽃이 물음표 모양으로 떠오른 줄도 몰랐다.
"뭐하는 거야!"
그녀는 바닥을 미끄러지다가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맨발인 채로 불난 장작을 걷어찼다.
"이러다 다 죽는다고!"
라임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빈센트에게 항변하듯 절박히 소리치며 불씨를 흩날리는 장작을 맨발로 밟으려 하는 동시에, 그녀의 뒤쪽의, 빈센트가 바라보는 방향의 흙바닥이 쿠구구- 하는 굉음을 내며 커다랗게 솟구치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돌멩이를 장작에 집어던졌다. 빈센트는 무슨 의도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 행동이 불을 끄기 위한 것이었다면, 오히려 불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보다도 더 안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헌터의 힘으로 던진 돌멩이에 모닥불이 부서지고, 저 하늘 높이 불씨와 불붙은 장작들이 날아올라가서,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문 풀밭 위에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당장 꺼져야 할 불씨는, 어느새 100제곱미터 가까이의 땅에 옮겨붙어 새 장작을 찾고 있었다.
"...음. 이건 좀 큰일이 나겠는데요."
빈센트는 마도로 불을 만들어서 불이 난 지점 근방을 빠르게 지져서 태울 것이 없어지게 만들며, 상대방에게도 말하려다가 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고 놀란다.
빈센트는 그제야, 느리지만 확실한 자신의 지성과 지능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눈치껏 파악한다. 빈벤스튼 이곳이 완전히 안전해져서 불 피우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빈센트의 행위가 아무 문제도 없어보였던 숲의 정령이건, 나무의 탈을 쓴 촉수생물이건, 하여튼 무언가를 건드렸고 그것 때문에 지금 저 사람이 엄청 큰일이 난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저 뿌리가 사람을 죽일 것 같아서, 빈센트는 파이어볼을 만들어 쏴버렸다.
쾅! 나무뿌리가 터져버리고, 빈센트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저 나무뿌리가 더 화나기 전에, 어떻게든 불을 끄는 것보다, 불을 최대한 넓게 퍼뜨려서 저 나무 괴물의 뿌리가 괴사한 잿더미 속으로 걸아나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불을 더 퍼뜨리기로 하고 베로니카를 불렀다.
>>156 빈센트는 느리지만 확실한 판단이라 생각했으나, 그의 높은 영성은 다른 이보다 수 배는 빠른 사고로 난해한 상황 속에 명확한 탈출구를 제시해 주었다. 그가 쏘아낸 불덩어리는 하나의 굵다란 나무뿌리를 터뜨려버렸고, 그것이 사그라든 뒤쪽으로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게이트의 출구가 희미하게 보였더랬다.
그가 퍼뜨린 불길은 지면을 뚫고 올라오는 나무뿌리들을 움츠리게 만들었고, 개미지옥처럼 주변 일대를 집어삼켜오는 거대한 흙손아귀를 빠져나갈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희미한 빛으로 일렁이는 출구를 보고 살길을 찾은 라임은, 자신을 빈센트라 소개하며 따라오라 하는 남자를 흘금 돌아보며 작게 속닥였다.
"라임."
라임은 그 한마디를 툭 던져놓고서, 아까 이리 달려올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그것이 그녀의 이름인 줄은 현명한 빈센트도 몰랐겠지. 조력자를 호출한 빈센트는 별 탈 없이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앞에는, 앞서 달려간 소녀가 흘린 화살이 하나 떨어져 있다. 그것은 보통의 화살보다 무게가 꽤나 나가는 물건이다. 두 사람은, 1월 11일, 미리내고 특별반에서 다시 마주치지 않았을까.
[ 의념에는 다양한 부류가 있지만, 특히 개인의 미련이나 무언가로 인해 시간과 관련된 의념 속성을 각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또는 과거에 대한 추억, 또는 즐거운 기억에 대한 망집 등이 모여 이러한 시간계 의념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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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시간계 의념의 사용자들은 과거, 또는 미래에 있을 사건이나 행위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형태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과거에 큰 사건을 겪은 의념 각성자이다.
...... 중략 ] [ 그렇기에 시간계 의념의 사용자들은 천천히 의념이 강해짐에 따라 스스로가 겪었던 일을 수정하려 한다는 성향을 보인다. 과거로 되돌아가기 위해 망념의 폭주를 겪으면서도 시간을 되돌리거나, 어떤 사건을 겪기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억지로 돌아보려 한다거나.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시간과 관련된 의념 속성을 각성하였다 하더라도 결국 누구도 각성의 순간이나, 자신이 겪은 일을 되돌릴 정도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것은 의념 각성자들이 겪는 '의념의 한계'라는 것으로 칭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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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인해 시간계 의념 각성자라 하더라도, 결국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은 허가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시간계 각성자 멜턴은 수백개의 중화제를 이용하여 결국 과거를 잠시나바 볼 수 있었지만, 그곳에 간섭하려 하는 순간 강한 힘에 의해 결국 튕겨나고 말았고 그는 망념 붕괴를 통해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이유로 아무리 시간계 능력자라 하더라도 과거를 바꾸는 것은, '의념'이라는 힘 차원에서 거부하고 있단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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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계 각성자들은 그런 이유로 의념 속성에 더욱 깊어질수록, 의념을 더욱 강하게 각성할수록 과거나 미래에 대한 미련을 조금씩 잊게 된다. 이러한 점은 결국 어느 순간에 와 각성자의 발전을 막아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시간계 의념 각성자의 부작용은, 점점 마모되어가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기억이나 다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