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그 말에 멈칫했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앞서 결국 질문을 해버리고 말았을까. 고향이 그리워서 힘들었냐는 말에 에이론은 잠시 침묵한 채로 고민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젓는다. 외롭거나 힘들진 않았던 걸로 기억했다.
" 처음에는 그랬지만... 그래도 난 기댈 구석이 있었거든. 그래서 그런지, 별로 힘들진 않았어. "
종교라는 것은 비록 거래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있는 것 하나만으로 의지할 수 있었다. 이유는 모른다. 신이 항상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아니었다. 신도들이 자신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일 역시 없었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믿고, 믿는 대상이 자신을 비호해준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힘이 되었으니까.
"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친구를 사귀는 덕도 있었지. "
혼잣말하듯 말하며 잇카를 빤히 쳐다본다. 친구라고 공인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인정받기엔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친구라는 사이를 인정받고 싶었는지 일부러 잇카를 바라보며 친구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의념이 없이도 가능한 것이니까.' 제대로 발을 디디는 것에 신경을 쓰다보면, 발소리와 인기척 하나 없이 걷는 것이 가능합니다. 걸어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실제로 움직이기 때문이겠지요. 그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걸어가는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가벼움이 깃털이 걸어가는 듯 사뿐하게 특별반 앞까지 다다랐습니다.
'...특별반' 문을 잠깐 올려다보고는 문을 열자.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교실 안쪽에는 사람이 존재했습니다. 그것에 조금 움찔하기는 했지만 고개만 까닥여 인사하고는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 사람과 조금 떨어져 있으면서도 수업을 잘 들을 수 있는 교탁과 적절히 가까움 자리로 향하려 합니다. 확실히. 지한의 키를 감안하면 앞자리에서 보는 게 더 괜찮겠지요?
생각해보면 의념으로 시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별 문제는 없어보이긴 하지만 물리적인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뒤쪽에서 느껴질지도 모르는 시선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의자에 앉고는 간단한 책자를 읽으려 꺼냅니다. 책자는.. 그냥 평범한 겁니다. 특별하거나 그렇진 않아요.
사람에게는 거리감이라는게 있습니다. 초면인 사람들은 보통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대화를 나누는게 시작이지요. 심지어 대화를 나누는 것 역시 쉽지 않을겁니다. 특히나 이렇게 과묵한 소녀가 책자를 꺼내 읽으면서 집중하는 잔잔한 분위기의 흐름을 깨트릴만한 강심장은 몇 없을겁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김정수가 막 들어온 소녀를 가만히 둘거라는 뜻은 아닙니다. 잔잔한 분위기는 잔잔하게 깨트리는 방법이 있거든요. 주인공 자리(창가 맨뒤, 태호꺼)에 앉아있던 정수는 발소리를 죽이며 지한에게 다가갔습니다. 누가봐도 거리감이 이상하지요? 어느 정도냐면 그녀의 물 빠진 백색 머리카락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보이고, 흑색 머리카락에 가려진 귓가에 바로 닿을 정도였을지도 모르죠. 혹은 그 이전에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알게 뭔가요.
"저기 있잖아"
그렇게 접근한 정수는 소녀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무슨 소릴 할거냐면요. 별 말 안해요. 그냥 장난치는 거에요. 보통 이러면 놀라기 마련이니까요.
가끔은 이렇게 친구를 사귀는 덕도 있었지. 말이야 혼잣말이었지만 그 말과 함께 앞머리의 그늘 사이에서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냥 넘기기에 지나치게 선명했다. 이 말에 모른 척 고개를 끄덕이면 언제부턴가 둘은 친구가 돼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어물쩡 친구가 되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괜찮은 일이겠지. 하지만 잇카는 일부러 그 말을 짚고 넘어가는 쪽을 택했다.
"굳이 혼잣말로 말할 필요 없어. 친구 맞아.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사이잖아? 그러면 친구인 편이 좋지. 아까도 말했잖아. 이름을 가지면 특별해지는 거야. 관계도 그래. 이름을 붙이면 특별해지는 거야, 에이론."
아예 이름이 없는 관계일 거라면 그것도 좋았다. 소녀에게 그렇게 순간순간 맺어졌다 날이 새면 사라진 관계들도 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굳이 관계를 규정할 거라면, 확실하게. 자신의 의념이 흘러넘치고 나서도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확실하게 해 두고 싶었다.
거리감이라는 것은 그런 법입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데에 시간이 걸리는 타입도 있고,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한이 어느 쪽이냐면 역시 전자에 가깝지요.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오면 교탁에 볼 일이 있거나 혹은 본인에게 볼일이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가왔을 때까지 눈치채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만나서 반가워 라는 말 때문이 아니라 훅 치고 들어온 플래시 때문에 순간 의념을 발휘해서 정지를 걸어버리려 합니다. 행동의 정지..라는 거지요. 뭐 걸리지 않게 자리를 옮겼다면 걸릴 리가 없지만요. 그리고 지한이 정수를 바라보면.. 정수는 지한의 눈 색이 검은색이 아니라 보라색으로 보일 거에요.
"어..음.. 미안해요?" 만일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사과는 할 겁니다. 걸렸으면 으악 안움직여. 미안해요. 였겠지만.
섬광의 의념을 지닌 그 답게 플래시가 훅 치고 들어오면, 보통은 이렇게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행동의 정지. 네, 현명하네요. 정수는 그대로 몸이 굳어 미안해하는 지안의 눈에 비친 자신의 보라색 눈동자 색을 보면서 사과를 들을 수 밖에 없었죠. 으악 안움직여.
"근츤으"
그런데 혀가 안움직이는건 좀 심했다. 사과 한 번 더 하세요. 자아 일단 겨우 움직이기 시작하자 정수는 허리를 쭉 피면서 스트레칭을 하더니 가볍게 손을 털면서 지한이를 바라봤습니다. 짧게 '안녕' 이라고 굳이 또 인사를 날리면서 말이죠. 대충 상황이 정리되어도 정수는 자리를 뜨지 않을겁니다, 세상에 사람을 멈추게 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니 굉장히 흥미롭잖아요 놀릴거리가 잔뜩있잖아요.
"그런데 방금 정지로 몸이 좀 아프다. 야 이거 장난 아닌데? 잠깐 여기서 좀 쉬어야겠어."
그렇게해서 정수는 근처 책상에 걸터앉으며 지한이를 내려다봤어요. 거리감은 줄였으니 다음은 뭘 해볼까 생각하면서 말이죠
1. 진행 시간은 오후 11시부터 1시까지. 두시간정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2. 하다가 시간이 늘면 늘지 줄지는 않습니다. 특별한 타이밍에 끊는 것이 아니라 캡틴의 몸상태에 따라 진행 시간이 결정됩니다. 3. 첫 진행은 입학 직후로 시작하며 여러분은 특별반에 입학하여 첫날에 교관을 만나게 됩니다. 4. 교관에게서 몇 가지 시스템적인 상식과 이야기를 듣고, 질의응답을 한 뒤 첫 진행은 마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