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의 한 구석. 에이론은 조금 떨어진채로 쪼그려앉아, 밥그릇에 고개를 박고선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 털뭉치를 바라보았다. 아, 정정하도록 하자. 고양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고양이나 털뭉치나 거기서 거기이긴 하니 용어를 바꿔서 쓴들 무슨 상관이겠냐 싶겠지만은.
이야기가 딴 길로 새버렸지만, 하여튼 그는 고양이를 관찰하고 있었다.
" 맛있어? "
무감정한 말투로 고양이에게 말을 건다. 돌아오는 답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고양이의 행동만으로 충분이 답이 되었으니까. 그는 몇번 손을 뻗어 고양이를 쓰다듬고는 "데려가서 키울까..." 하고 작게 중얼거린다.
중얼거리던 찰나 기척이 느껴지길래 고개를 홱 돌려 기척이 느껴진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시선의 끝에는- 아는 사람이 서있었다. 사실, 정말로 알기만 하는 사람이었지만.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그가 생각한 것은 눈이 마주친 소녀를 향해 가볍게 "안녕." 하고 인사하는 것 뿐이었다.
지한이 그 골목길로 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지름길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한을 우습게 보는 이들은 이미 다른 어린이와 여자와 거지에게 후려맞아서 사라졌으니까 그런 걸지도 모르지.
"안녕이에요." 정말로 알기만 하는 건 지한도 마찬가지였기에. 건네는 인사에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내 고요해진 뒤, 인사를 받으려 합니다. 그리고는 꼬물거리는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멈칫합니다. 그 또래의 학생들 중 고양이에 대한 선호가 일부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지나쳐가지 못하고는 흘깃 보고는.
"밥을 주신 걸까요" 아니면 밥을 먹는 걸 발견한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밥을 먹는 고양이를 보지만 고양이는 지한이 낯선 것과 더불어 약하지만 향수와 비슷한 그런 향이 나서 경계하고 있을지도.
몸을 긴장시킨 찬영이 조용히 폰을 들어 찬영의 스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귀신은 우는 귀신보다 웃는 귀신이 더 무섭다고 했다. 찬영은, 그것이 사람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방금까지 살기를 내고도 헤실헤실 웃을 수 있는 미친 사람이 얼마나 존재하겠는가? 그 미친 사람이 찬영의 눈 앞에 있었다.
"스승님. 지금 하나뿐인 제자 목 위에 장식이 살짝 떨어질랑 말랑하고 있는데 와주실래요?"
흑선(黑仙) 신유원. 1세대 출신 헌터들 중에서도 가장 괴기하고 이상한 인물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남자. 유명세가 있고, 그만큼 강하다. 죽으면 죽었지 간섭받기 싫어하는 제자의 성격을 아니 곧 와주시겠지. 스승을 불러 별다른 일이 없으면 타박을 받고 끝나겠지만, 지금 저 여자와 싸우면 주변 민간인들까지 위험했다.
"정찬영입니다."
여자를 노려보던 찬영이 마찬가지로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언제라도 보호막을 칠 수 있도록 준비한 채였다.
이름을 듣자마자, 빈센트는 빠르게 고개를 돌리고 베로니카의 양 어깨를 잡앗다. 꺄...! 갑작스런 신체 저촉에 베로니카가 깜짝 놀랐다. 빈센트는 베로니카가 혹시 다른 여자를 만났느냐, 혹시 남자에게도 관심이 생긴 거냐, 저 놈 누구냐, 왜 나를 버려뒀냐, 같은 온갖 개소리를 지껄일 새도 없이, 빠르게 선수를 치고는 베로니카에게 말했다.
"베로니카. 지금 난 여기 있는 정찬영이라는 분이랑 식사를 하고 있어. 방금 들었겠지만, 엄청 유명한 스승님한테 교육도 받은 분이고, 헌터 세계의 다음 지성과도 같은 분이지. 그러니까 베로니카. 진정하고, 어디 앉아서 좀 기다리고 있으면 정말로 좋겠는데. 2시간이면 끝나. 끝내주는 구름다리가 있으니까, 끝나면 거기로 가자고. 응?"
"...내일 아침까지 같이 있어줄 거죠?"
또 이런 식이다. 빈센트의 우월한 영성이, 내일 아침까지 저 여자와 붙어있으면 피로가 엄청나게 쌓일 거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공수표라도 발행해야 지금 당장이 나아질 텐데. 빈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봐."
"기대할게요."
베로니카가 살의를 접고 뒤로 돌아섰다. 빈센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앉았다. 그리고 정찬영을 보며 말했다.
빈센트가 박력있게 베로니카의 어깨를 잡자 잠시 놀란 찬영이 빈센트를 몹시 가엾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2시간 후에 베로니카라는 괴물에게 내일 아침까지 던져지는 제물 꼴이군... 그것과는 별개로 찬영은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놀라셨을 스승에게 해명과 상황 설명을 해야했다.
"예, 스승. 상황 끝났습니다. 아뇨, 제가 사고를 친 건 아니고 어쩌다 휘말려서. (중략)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흔히 한숨을 쉬지않는 찬영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빈센트에 대한 걱정 반, 끝난 상황에 대한 안도 반이다. 찬영은 빈센트의 물음에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마주한 시간은 5분도 넘지 않겠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흔치않은 성정의 미친 사람이란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많이 고생하셨겠군요. 어쩌다가 만난 겁니까?"
찬영이 나가는 베로니카를 향해 눈짓하며 낮춘 목소리로 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제로 지난 시간이 길진 않아 파스타는 불어있지 않았다.
"당신을 탓하거나 그런 의도는 아닙니다. 다만 흔하게 볼 수 있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서요."
" 고양이에게 피해를 입거나. "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고양이를 싫어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는 말을 해봅니다. 고양이는 인간이 미소녀라고 부르는 눈 크고, 코는 작고 오밀조밀한 그런 외모를 지닌 편이니까요? 라는 생각을 하고는 밥을 줬다는 거나 달라붙었다는 것에
" 개냥이...? " 혼잣말처럼 말하지만 들리지 않기엔 꽤 가깝지 않던가요? 향수 향이라는 말에 헛기침을 하고는
" 향수나 바디로션 같은 걸 입고 다니니까요" 눈을 피합니다. 정답이다! 라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마도 아크릴로 만든 것 같은 니트와 모자를 쓴 지한이 쪼그려앉아서 고양이를 바라보려 하면.. 어떻게 보이려나?
빈센트는 손을 딱딱 튕긴다. 그와 동시에, 빈센트의 손에서 불꽃이 솟아오르고, 그 불길을 나이프로 옮기자 나이프 끝에 불이 붙으며 나이프의 날이 샛노랗게 달아올라서 녹아내리기 직전이 되었다. 그리고 손을 다시 튕기자, 노랗게 익은 나이프가 본연의 회색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빈센트는 자기가 영웅 놀이를 한 이유를 털어놓는다. 어차피 미리내고 특별반에서 만날 사람이면, 미리 말해놔도 문제는 없겠지.
"사람을 산 채로 고통스럽게 태워죽이고, 살려달라는 게 아니라 제발 죽여달라고 부탁할 때까지 고문해도 체포되기는커녕 박수갈채를 받는 유일한 직업은 영웅밖에 없거든요."
빈센트는 자신이 했던 일들도 말해주었다. 화재 현장에 달려가서, 도시에서는 거대한 불꽃이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게 아니니 화재현장 속으로 들어가서 화염술 연습을 했다. 그러다 누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면 심심하겠다 하는 김에 그 사람도 살려주었고, 범죄 조직이 사람들을 훔치고 있으면, 오랜만에 살인이 좀 하고 싶으니 조직원들을 영원히 타는 불 속에 가둬버리고 사람들을 구했다. 그런데...
"다들 그러니까 절 좋아했어요. 저한테 죽은 범죄자들이나, 4도 화상을 입고 팔다리를 절단한 아동성범죄자 친구는 생각이 많이 다르겠지만, 뭐, 정찬영 씨도 그 사람들 생각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중에서 절 좀 심각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게... 네. 저 사람입니다."
으응, 엄마. 저에요. 미이여요. 신한국이요? 신한국이라면 잘 도착하였어요… 비행기라면 견디기 힘들었지만 참을만 하였어요. 기내식도 맛있었고 승무원 언니들도 친절하셨어요? 다만 속을 여러번 비워내었을 뿐 그 외에는 안온하였어요. 그런데 이건 기압차에 의해서 좋던 싫던 누구나 생기는 거더라고 하니… 그러니 괜찮답니다. 비록 처음 타는 비행기였기에 고역인 부분이 있었지만 재미있던 시간이었어요. 제 상태는 안온하오니 걱정하지 아니하셔도 괜찮아요. 걱정 놓으셔도 되오니 부디 푹 쉬셔요? 네에… 네. 곧 있으면 들어갈 것이니 걱정 놓으셔요. 무리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푹 쉴것이니 괜찮아요? 간단히 먹고 돌아갈 것이니 부디 염려 하지 아니하셨으면 하여요. 미이는 정말로 괜찮답니다. 좋은 꿈 꾸세요 엄마. …저도 사랑해요. 안녕히 주무세요.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전화이었다. 어찌보면 정형화된 부모자식간의 대화라고 할 수 있겠고, 어찌보면 지나칠 정도로 옭아매는 듯 들리는 대화이기도 하였다. 건네여지는 말에 악의가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렇게 일일이 일과를 다 고해야 한다는 것은 다 큰 자식의 입장으로썬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이제 막 열일곱의 나이가 된, 그러나 아직은 미숙한 나이인 소녀는, 통화하는 내내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이것은 누구에게 잘못을 물을 수도 없는 문제였다. 말썽을 부리는 등으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소녀이었기에 결코 소녀의 잘못이 아니하였다. 그저 이것은 어찌할 수가 없는 현실인 것이다.
”하…… ”
통화를 마치며 깊게 한숨을 내쉰 소녀는 조용히 카운터를 올려보았다. 분명 이곳이 [ 카페 펠리시타 ] 란 이름이였던가… 그 이름에 걸맞게 각종 귀여운 이름의 음료와 디저트 메뉴들이 즐비하게 모여 적혀있는 메뉴판이 소녀를 맞아주고 있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카페 내부는 공부를 하러 왔거나 늦은 약속으로 모인 사람들로 북적이었다. 줄이 하나 둘씩 줄어들고 있었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되었다. 메뉴 자체를 고르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앉을 자리가 있지 아니하다는 것은 큰 문제이였던 것이다. 소녀는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주문하였다. 그린티 라떼 한 잔에 치즈케이크 한 접시로 부탁드리어요. 테이크아웃은 아니할 것이니 트레이에 부탁드려요? 네에… 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늦은 시간에도 북적이는 카페답게 메뉴 역시 금방금방 나와서, 어느새 소녀의 두 손엔 커다란 나무 트레이가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녀는 지긋이 앉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자리는 전부 선객들로 꽉 차있는지 오래라, 아예 빈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결국 소녀는 빈 자리를 찾기를 포기하고, 그나마 한쪽이 비어있는 자리로 가 이리 묻기를 청하고자 하게 된 것이다.
“저어, 언니. 실례지만 잠시 합석 가능하련지요. 죄송해요… 주변에 너무 빈 자리가 없어서. 괜찮겠지요? ”
혼자 앉아있는 여인에게 소녀는 잔잔하게 물어오려 하였다. 그리고 케이크와 음료가 든 트레이를 살며시 보여주려 하였다. 요컨대 소녀 딴에는 정말로, 정말로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음을 나름대로 어필하려 하였던 것이다. 물론, 정말로 이게 통할지, 허락해 줄지는 알수 없었다.
보통 없다는 말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 지한입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주는 곳에서는 더 좋았을까(팩트는 고양이는 쥐가 장난감이고. 쥐잡이개가 훨씬 더 잘 잡았다고 한다)
"개냥이.." 개냥이가 사람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는 말을 알기에 사실은 조금 걱정이 되긴 합니다. 혹시 누군가 나쁜 이들에게 걸리면 안되지 않을까요? 라는 걱정이 희미하게 표정으로 드러날지도.
"예전에 유명한 여배우가 그런 뉘앙스로 말한 게 있었죠?" 침대에서 잘 때 무엇을 입느냐는 질문에 샤넬 No.5를 입는다라고 말한 거라던가. 라는 것을 에이론도 떠올리기 어렵지 않을 겁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wear가 입다와 향수를 뿌린다 둘 다에 사용된다는 것까지 나아간다면.. 이상한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지한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를 마칠 적에. 고양이를 안아볼래? 라며 내미는 에이론을 보고는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부드러워" 귀여운 고양이를 쓰담쓰담하고 안을 수 있다니. 고양이는 생각보다 얌전할지도. 당연하다면 당연히. 의외라면 의외로 지한이 고양이를 안은 모습은 귀여움+귀여움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