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경찰이 아니라, 가디언들이 와서 헌터를 잡아갔을 테고, 감옥에 처박히건 정신병원에 처박히건 의념의 힘을 남용한 범죄자가 응당 받아야 할 처분이 내려졌을 테니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빈센트도 베로니카와 똑같은 헌터였고, 하필 그 베로니카를 관리하는 책임을 빈센트가 받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저 여편네 좀 어떻게 해보라고 말해도, 네가 살려놓고 무슨 소리냐는 말만 나올 게 뻔했다. 빈센트는 이곳으로 오고 있을 베로니카가, 제발 아무 미친 짓도 하지 않기를 빌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탄산수로 부탁드립니다."
돈 씀씀이가 꽤나 좋은 사람이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옛날에는 비상한 머리로 주식 트레이더 쪽에서도 일했지만, 순발력이 부족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고 결국은 돈을 많이 버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이렇게 사주는 사람이 있으면 고마웠다.
수가 있을 순 있겠지만, 아무래도 찬영이 도움을 주기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찬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사내에 대해 더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있을 수도 있다고 했지. 찬영은 언제든 반응할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켰다. 스토커가 사내는 공격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심기가 건드려진 스토커가 찬영을 무사히 두진 않을 것 같았다.
"네. 그럼 구운 닭과 탄산수로 부탁드립니다."
"네~ 구운 닭 하나와 탄산수 한 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자본주의의 친절함으로 무장한 직원이 사라지고 적발의 미남과 평범한 정찬영이 남았다. 탄산수가 눈 앞의 사내에게 심심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진짜 도울 수가 없나. 찬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헌터입니다. 1월에 미리내고 특별반에 입학할 예정이고요."
헌터치곤, 또 나이치곤 제법 강하다는 것을 어필하는 내용이었다. 스토커는 피해자가 강하게 나서면 어쩔 줄 몰라하는 경우도 많으니 괜찮다면 자신을 이용하라는 의도가 내포된 말이기도 했다.
빈센트도 특별반으로 입학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딱히 대단한 것은 없었다고 생각했고, 결과도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다보니 특별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들 말로는 헌터치고는 대단한 것이라는데, 그럼 눈 앞의 사람도 대단하겠구나, 대충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상대방의 레벨이 높다라, 그것도 사실이었기에 빈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도 특별반입니다. 이것 참 반갑게 되었네요. 제가 끌고 다니는 그 친구가 폐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빈센트는 그렇게 말했다. 그 년 때문에 빈센트의 인생까지 끝장날 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피냄새를 맡고 광분해서 제발 죽일 것을 달라고 빈센트에게 매달려서 애원했고(물론 그 때 주변에 "죽일 것"이라고는 초등학생들밖에 없었다.), 피냄새를 맡고는 미쳐버리고 나서,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차마 사람을 죽일 수 없어 그 사람이 기르고 있는 닭 수백마리를 전부 찢어죽여버렸으니 재산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 그리고 이번에도 혹시 민폐를 끼치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아, 잘 먹겠습니다."
식사가 도착하고, 빈센트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로스트 치킨을 포크로 쿡 찌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표정을 굳힌다.
상대방에 대한 레벨이 높은데 공권력이 제제하지 않은 상황. 이젠 진짜 찬영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찬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적당히 익힌 면발과 탱글한 새우가 입에서 씹혀 음식에 대한 평가가 박한 편인 찬영의 입에도 제법 괜찮았다.
"글쎄요.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오겠습니까?"
...라고 말하기 무섭게 은은한 살기가 느껴지는 여자가 식당에 들어서 사내의 뒤로 섰다. 벌레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이 생긴, 긴 장발이 어울리는 귀족적이고 단아한 인상을 가졌지만. 스승께 배워서 분명히 안다. 이건 진심으로 사람을 죽이겠다는 의사를 가져야만 가질 수 있는 살기다.
공공장소에서 사람을 죽일 생각을 가진 스토커라. 사내도 특별반이라고 했으니 찬영과 수준이 크게 다르진 않을 텐데. 사내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말했으니 솔직히 승산이 없다. 스승이라도 불러야 하나. 애초에 여기서 싸우면 주변에 피해가...
"...편하게 드십시오."
복잡한 속을 한숨으로 다스리며, 찬영은 사내에게 말했다. 스토커가 아무리 돌았어도 사람이 많은 식당에서 전투를 위해 의념을 쓰진 못할 것이다.
상대방의 호의는 잘 알았다. 상대방은 분명, 차가워보이면서도 상대에 대한 호의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호의만으로는 그 미친 인간을 통제할 수 없다. 특히 탄산수 한 잔 같은 호의로는, 잠깐 어울려주는 수준의 호의로는. 빈센트는 닭다리 한쪽을 뜯어서 씹고 나서 뒤를 바라보았다. 단아한 모습이 아름다운 여자가 서 있었다. 식당의 다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며 감탄했지만, 빈센트는 남들이 감탄할 동안 최대한의 감정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여기서는 안 되는데..."
빈센트는 자신이 온 곳이 정육점도, 횟집도 아닌 식당임에 감사했다. 만약 그런 곳이었다면 벌써 사람 몇 명 죽었을 테니까. 빈센트는 목걸이를 통제할 수 있는 단말의 앱을 실행하고, 일어나서 뒤를 바라보았다.
"...베로니카."
"...빈센트."
베로니카는 남들이 다 보는 곳에서 하는 사랑 싸움이라 생각하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지만, 빈센트는 남들이 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그 괴물의 통제가 오로지 자신의 손 하나에 달려있다는 것에 긴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