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하신 모디카님은 존재의 갈등 속에서 길 잃은 어린양을 돌보시고 인도하시되 직접 간섭하지는 않으니 인간된 자는 대신 손을 뻗어 존재의 성립을 이룩하라. 그리하면..그 다음이 뭐더라? 어제는 엄청 멋있으니까 이걸로 해야지 점찍었는데 왜 기억이 안 나지? 지엄하신 모디카님 명 받들어 나름 머리 굴려 멋진 교리를 생각했지만 마지막 문단이 매일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어린양 인도하게 도와달라는 기도를 마칩니다. 이왕 시간도 남는 거 특별반 밖으로 나와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벌레를 먹고 선지자는 일찍 나와서 지리를 익힙니다. 익힐수록 찾아가기는 수월해질 것이며, 돌아가는 길 정도야 알고있으니 고된 길을 걷는 다른 형제자매를 찾아내며..찾아내며..그러니까 그..찾아내면..뭐냐 그게. 포교할까? 그래. 포교하자. 지금도 딱 길 잃은 자매가 있지 않나요.
"예에."
뒤돌아 서며 손을 모아 뒷짐을 집니다. 혹시 학생처럼 보이지 않았던 걸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서로의 키를 보니 피차일반입니다. 어딘가 고요한 자매의 부름은 한참의 침묵 이후로 용건을 뱉습니다. 길 아시나요. 간절히 바라던 질문이 들려와 새빨간 눈 휘어 웃어보입니다.
"암요. 길 잃은 어린양은 명 받은 목동이 인도해야 하는 법. 당연히 안내해드릴 수 있어요."
어린 양을 인도하도록이라는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한은 무교에 가까우니까요. 그래도 생각보다는 변화가 쉬운 편이지만요? 길 잃은 어린양과 목동이라는 것에서 제일 수가 많은 종교(=기독교 계열)을 생각한 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의 말을 합니다.
"네." 꼭 필요한 말만 하고는 입을 다무는 편이지만. 생각보다는 표정이나 의향이 드러나는 분위기죠. 예를 들자면 데일리 향수가 아쿠아 디 파르마 오스만투스(=금목서)라서 어디 헤어스프레이를 쓴 걸까 하는 호기심이 드는 부드럽고 은은한 오스만투스 분위기의 향이 난다거나... 꽤 조심스럽게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특별반 분이신 건가요?" 옅은 호기심을 담은 말을 하며 고개를 기울인 아실을 바라봅니다.
어린양을 찾았으니 포교하자는 계획 한번 무색케도 말이야 쉽지 누가 넘어올까 싶습니다. 한눈에 봐도 어려보이는 소년이 갑자기 존재의 성립은 그분의 거룩하신 손길로 이루어지니, 이 진리를 같이 탐구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하면 요즘엔 짠 눈으로 보니까요. 어린 애가 어쩌다 사이비 종교에 말려들어서 눈 뒤집어져 이런 포교를 할까 하는 시선이 오지 않아 다행입니다. 자매는 어조가 무뚝뚝하나 향과 시선은 그렇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다행히 제가 지리를 알고 있답니다. 따라오세요."
하여 발걸음을 늦춰 앞장서지 않고 옆을 나란히 해 걸음합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질문에는 성실히 답하는 것이 인도자의 의무이자 인간의 상호적인 기본 예의일 테니, 뒷짐 진 손을 꼼지락거리다 말갛게 웃습니다.
"네에. 시험에 통과했어요. 긴장치 않게 평온하도록 기도하여 그 신임을 얻었음으로 비롯된 일이죠. 자매님과는 동문이 되겠네요."
손을 앞으로 모아 기도하듯 깍지를 낍니다. 그분의 총애는 언제 받아도 아름다운 것이니 느슨하지 않도록 정진하며 그 감정의 풍파를 이겨내야 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늘 함께하실 테니 담담하며 또한 담대해야 합니다. 말이야 쉬운 일입니다. 특별반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다시금 벅차올라 지금이라도 기뻐 뛰고 싶은 심정을 꾹 참아누릅니다.
"이리 만난 것도 연이에요. 저는 라크리모사. 모디카님의 명 받아 내려진 거룩한 이름이에요. 자매님은요?"
지리를 알고 있다는 말에 미약한 표정이지만 분명 안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수 있는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히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지한은 천천히 따라가며 발을 맞춥니다. 확실히 같이 가다 보면 안정적인 소리가 들려올 것이니까요.
"동문이라고 하기엔 애매할지도 모르지만.." "네 맞네요." 동문이 아니라 그냥 찾아온 건가 싶은 말을 하다가 휙 틀어서 동문이라고 말을 잇습니다. 자기소개의 시간이 되는 걸까. 자기를 소개하는 것은 오랜만이라 살짝 긴장한 티를 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을 소개하는 건 지한에게는 좀 부담스러운 경험이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1세대 각성자인데다가 할아버지인데다가 서산신가의 가주에 준영웅급 앞에서 긴장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려나?
"저는 신지한이라고 합니다." 라크리모사라는 이름을 듣고는 진혼곡인가. 라고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슬픔이라는 형용사를 이름에 쓰다니. 조금 독특하다. 라는 정도의 감상이었을까요? 한국어로 따지자면 김슬픈 정도의 이름이니까?
안도합니다. 어린양을 인도합니다. 지금은 한치 앞길도 모르지만 곧 특별반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소리가 들릴 겁니다. 활기찬 소리에 귀기울이면 새 인연이 찾아올 거고, 그게 학교의 매력입니다. 포교하기 딱 좋죠.
학문은 세간과 보통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배움으로 같은 길을 걷는 것은 같기에. 소개하기 위해 거룩한 세례명 대니, 본명은 발설하기 어렵습니다. 긴장하는 것인가 싶어 어조는 느릿합니다. 평온은 모시는 신이고 일평생 그분 땅에 내리우사 그 이전에 이 대지에 행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니 이 작은 어조 하나로도 충분히 그 담담함을 묻어나오게 합니다.
"세례명이에요. 본명도 다를바는 없지만요."
소개를 들으니 신씨입니다. 다만 세상에 동성 많으니, 추측 무성하여 짧은 식견을 굴려봅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대단한 가문 사람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듭니다. 여기는 그만큼 대단한 곳이니까요. 그렇다고 귀히 대하지도, 낮게 대하지도 않는 것은 배려 아닌 천성입니다. 일평생 살아오며 누군가의 귀천을 구분한 적도 없으며 사람은 사람이라 평합니다. 경외를 가질 것은 오로지 이 신념 다 바치는 한분 뿐이니 다른 분께는 애석히도 이리 내색하지 않고 평등히 대합니다. 오히려 이게 나을수도 있습니다. 부담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손 모아 다시 말갛게 웃습니다.
특별반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할 생각은 많지 않지만. 그 소리들은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포교에 대해서 지한이 알지는 못해도.. 그런 거를 거절하는 걸 못할 리가 없습니다.
"대단한 명가도 있지만 평범한 가정도 있는 법이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한이 후자로 보이도록 슬쩍 흘린 말이었다는 점과 그녀가 실제로는 후자보다는 전자에 가까운 게 조금 미스였을까요? 세례명이라는 말에 기독교 쪽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설마 특별반에 열망자라던가 그런 쪽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다차원시대에 들어서면서 종교도 매우 다양해졌다 보니...
"잘 부탁드려요 라크리모사." 잘 부탁한다는 말에 의례적으로 고개를 숙입니다. 말에서 느껴지는 건.. 글쎄요. 진주빛? 자판기같은 게 있으면 하나 마실레요? 라는 물음을 특별반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자판기를 보며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