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의 코 끝에 스치듯 머무르던 풀내음 섞인 잔잔한 냄새가 방 안을 천천히 가로질렀다. 달칵, 문고리가 움직이는 소리. 막 방 밖을 나서던 발걸음이 일순 멎었다. 바래다줄게. 마룻바닥에 발을 디디는 소리. 새슬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본다. 다행히도 저번과 같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아니었다. 따지자면 오히려 평온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괜찮아ㅡ.”
여기서라면 그리 멀지 않으니까. 혼자서도 갈 수 있어. 안심시키듯 미소지으며, 완곡히 내두르는 거절. 미안해. 아직은. 작은 본심은 능숙하게 감추고, 방 안에 걸쳐 있던 남은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아직 문고리를 쥔 채 놓지 않은 손.
“앗, 그치만 현관 앞까지라면 괜찮아.”
배웅해줄래ㅡ? ( ᐛ )ㅡ?! 일부러 장난스러운 말을 던지며 천진한 웃음을 흘렸다. 남겨질 걱정을 조금이라도 떨치기 위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래서, 살며시 미소지으며 농담을 던지는 새슬의 장난에 하는 가볍게 어울려주기로 했다. 새슬은 자신이 굳은 얼굴로 잠들기를 바라지 않을 테니까. 그는 얼굴 표정을 조금 풀며, 마룻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그러자, 그 정도야."
하는 아직 문고리를 쥐고 있는 새슬에게로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그 날 이후로, 점심시간마다 옥상으로 어영부영 올라오는 사람이, 자유부에 입부를 희망하는 임시 부원이 한 명 더 늘었다.
"즐거웠다니까 듣는 사람도 기분 좋네. 내가 연 것은 아니지만, 일단 어느 정도 관계자니까 괜히 궁금했거든. 다른 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뭔가 애매하게 넘어가는 듯한 말투라고 생각했으나 그 이상 깊게 들어갈 생각은 하늘에겐 추호도 없었다. 즐거웠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자신의 피아노 연주가 다른 누군가의 즐거움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면 여기에 와서 노는 시간을 줄이며 피아노 연습을 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조금 더 입꼬리를 올리다가 표정 관리를 하듯, 하늘은 입꼬리를 아래로 내렸다. 허나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그의 입꼬리 끝은 움찔거리면서 흔들렸다.
"어디에 있었어도 볼 수 없었을걸? 콘도에 있는 홀 안에서 연주했고 음악은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서 중계한거니까. 내가 연주하는 것을 보러 왔으면 그 평범하고도 특별한 춤은 못 췄을거야."
시무룩해하는 눈썹을 바라보며 하늘은 괜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약하게 터트렸고 오른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그렇게나 아쉬운걸까? 자신이 연주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던가? 아니.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나름대로 이런저런 가능성을 추측하며 하늘은 곧 들려오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쯤에 음악부 애 하나가 교대해줘서 그때야 나왔거든. 재밌게 췄었지. 그걸 계기로 이후에도 조금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말이야. 물론 그 애는 나보다는 다른 이와 추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물론 확신은 없었다. 사실 그 당시의 분위기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허나, 어쩌면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늘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저 멀리서 빛나는 이름 모를 별 하나를 가만히 눈으로 바라보다 곧 미소를 작게 지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아니. 좋았어. 나랑 춘 그 애도 가능하면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믿으려고. 아무튼 그래. 즐거웠어. 좋은 추억 여러 개를 만들었으니까 그걸로 된거지."
바다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하늘은 두 손으로 깍지를 낀 후에 쭈욱 기지개를 켰다. 별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상당히 편안했다. 지금 이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듯이.
"내년에는 고3이니 아마 못 올 것 같다는게 아쉽네. 내년에도 포크 댄스 같은 거 춘다면 또 다시 연주자나 할까 생각 중인데 말이야."
“ 다들 즐거웠을 거야. 서툴게 추는 아이들도 있었고, 잘 추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다 즐거워 보였는걸. ”
난 춤추기 전에 영상이랑 다른 사람들 구경을 조금 했었거든, 덧붙이며 아랑이 조금 웃었다. 파고 들지 않아주는 점이 고맙고, 평소보다 움찔 흔들리는 하늘의 입꼬리가 아랑을 즐겁게 했을까. 조금에서 멈추려 했던 웃음이 좀 더 크게 번지고 별사탕 같은 웃음 소리가 꺄르륵 흩어진다.
“ 앗... 그건 쪼꼼... 치사한 거 아닐까아...? 좋은 연주를 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할 때 쳐다볼 수 없는 시스템이잖아. ...하지만 다들 춤 안 추고 연주자만 쳐다보고 있으면 연주자가 곤란해할 테니까 납득...은 할 수 있어. ”
마이크와 스피커 중계라니 모래사장에서 춤추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못 보는 시스템이었군. 그것은 조금 치사하다. 이런 좋은 연주를 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질 사람들이 연주자를 보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은. ...그러나 다들 춤 안 추고 연주자만 바라보면 연주자는 연주자대로 곤란함을 느끼려나, 싶으면 납득할 수 있는 시스템이기도 한 것이다. 시무룩 내려간 제 눈썹을 고치듯 슥슥 매만지더니 다시 빵긋 웃는다. “ ...그치만 역시 아쉽긴 해. ” 조그맣게 덧붙였다.
-마지막 쯤에 음악부 애 하나가 교대해줘서 그때야 나왔거든. 재밌게 췄었지. 그걸 계기로 이후에도 조금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말이야. 물론 그 애는 나보다는 다른 이와 추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 아니. 좋았어. 나랑 춘 그 애도 가능하면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믿으려고. 아무튼 그래. 즐거웠어. 좋은 추억 여러 개를 만들었으니까 그걸로 된거지."
아랑은 하늘이 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귀담아 들었다. 그 애는 나보다 다른 이와 추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말도. 침묵을 지켰다가 별을 담아두는 모습도, 좋은 추억 여러 개 만들었으니 그걸로 된 거란 말도.
“ 예기치 못한 일이 때로는 즐겁다는 말이 있거든. 너와 춤추는 게 예기치 못한 일이라 그 애도 즐거웠을거야. 인생에 종종 일어나는 작은 서프라이즈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잖아. ”
다른 사람과 추고 싶었을지도-라는 말에 긍정하는 것보단, 예기치 않은 상대와 추고 서로의 몰랐던 점을 발견하는 것 또한 작고 기쁜 서프라이즈라고 하늘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애가 누구냐고 캐 묻진 않는다. 그게 배려란 거지. 아까 하늘이가 손으로 모래 쓸어준 배려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기억하고 있지 않더라도 배려는 했겠지만.) 아랑은 평소보다 어른스러운 말을 하고, 조금 더 어른스럽게 웃었다.
“ 벌써 내년 일을 생각하는 거야~? ”
그리고 언제 어른스럽게 굴었냐는 듯 평소와 같이 해맑은 얼굴로 미소하며 애교 있게 말꼬리를 늘려 질문하는 것이다. 으음, 고3 되기 싫다아.
"괜찮아. 그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춤을 추는 이들이였으니까. 그때 하루 잘 즐겼으면 연주자로서는 기쁜걸."
피아노를 연주하는 자리인가, 아니면 춤을 추면서 즐거움을 나누는 자리인가. 그때의 자리는 따지자면 후자였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하는 것은 연주자가 아니라 춤을 춰야 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자신은 그때 홀에 있었던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하늘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애초에 과연 관심이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나름 피아노로 수상도 하고 그랬지만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그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며 하늘은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네 말대로면 특히 더 좋을 것 같네. 아. 물론 분위기가 어색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오히려 전부터 나름 친분있게 지냈다고 생각하거든. 오히려 이번 것을 계기로 더 친해진 것 같고. 아. 맞아. 전화번호 교환까지 따로 했으니까 좋은 거 아닐까?"
물론 자신이 누구랑 췄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도 묻지 않았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테니까. 숨기는 것은 아니었으나 굳이 먼저 말하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며 하늘은 아랑의 특유의 그 말투를 들으며 입을 꾹 다물고 웃음을 머금었다가 고개를 내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야지. 벌써 여름이잖아. 내년은 금방 온다고. 아. 어쩌면 내년에는 나보다 피아노 더 잘 치는 애가 입학해서 그쪽에게 맡기려나. 그건 조금 그러니까 집에 돌아가면 좀 더 연습해야겠네. 아. 그것도 그거지만 역시 여름이니까 좀 더 이것저것 하고 싶기도 한데 뭐부터 하면 좋을까."
가만히 팔짱을 끼고 고개를 다시 하늘로 올려 별로 가득찬 검은 바다를 바라보던 하늘은 그 자세를 유지하며 아랑에게 되물었다.
"너라면 뭘 할래? 이 여름에 말이야. 어떻게 보면 청춘이나 그런 것을 즐길 마지막 기회잖아? 고3이 되면 청춘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나 진로로 머리 아플 것 같으니 말이야."
저녁 념념하면서 답레 읽으면서 쪼꼼 적폐캐해인가 싶은 걸 하고 있는데 🤔🤔🤔 나랑도 번호교환 할래애~? 라고 물어보면 교환해줄 거 같은데, 본인이 먼저 교환하자라는 말은 안 할 거 같은 하늘이... (적폐캐해인가요?) 근데 금아랑의 모가 웃기길래 하늘이가 자꾸 웃음을 참는 걸까...? (눈썹?) <:3
그는 본인 스스로도 조금 의아했다. 그런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것이,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온 것인지. 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마음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 같은 그 기분은, 기분이 나쁘다. 라고 할만했으니까.
" 그렇더면 다행이고. "
그리고 이 또한 거짓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또한 의아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먹은 볶음밥은 맛있었다.
" 그렇다면, 특별히 쓰다듬을 권리를 하사하도록 하지. "
어딘가 엄숙한 분위기의 말투로 그리 말했지만, 그 한켠에 어려있는 장난기는 숨길 수 없었다. 그러고보면 이런 말투를 전에도 쓴 적이 있는것 같은데.
" 공주로써 그 정도 자비로움은 있어야지. "
어라, 내가 왜 공주더라? 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고보면 멀지 않은 과거에서, 자신을 공주라고 칭한 선배가 있었더랬다. 덕분에 자신은 그 선배를 왕자라고 칭하게 되었다. 남녀가 역전되어 연호 공주, 사하 왕자, 라고 호칭을 정하게 된 것이 생각해보니 어딘가 재미있어서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 나한테 공주님이라고 불러준 왕자님이 있어서 말이야. "
너도 알아? 은사하 선배라고. 라면서 키득키득 웃다가 아직 목에 걸려있는 상댕이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얘도 귀엽지? 라고 덧붙여서 느닷없이 물어본건 덤이다.
>>395 진짜 별 이유 없고 그냥 말하는 스타일이 귀엽긴 하네 정도로 생각하는 것 정도야. 웃음을 참는 것은 잘못하면 놀리는 걸로 생각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애써 소리가 안 나게 참는 것에 가깝다고 보면 좋을 것 같아. 귀엽다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칭찬일 수 있으나 어떻게 보면 되게 실례되는 발언일 수 있으니까! 적어도 하늘이에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