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인지 유감인지, 그녀는 새빨간 머리카락의 남학생이 별안간 모래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기묘하고도 진귀한 장면을 눈에 담지 못했다. 심지어 그 학생은 같은 반이기도 했으니 여간 당혹스러운게 아니겠지만 한편으론 이해할수 있는 부분일까?
종종 사람의 범주를 넘어선 비범한 행동을 보이는데 머리만 내놓고 모래 속에 있던 사람이 들고 일어나는게 게양대를 타고 오르는 것보단 더 가능성이 있을테니 말이다.
그 남학생, 그러니까 당신이 먼저 이쪽을 눈치채고선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오자 그녀 역시 돌아보며 한손을 살짝 들어보였다.
"별일이네요. 이시간까지 놀고계셨다니,"
아니면 단순한 밤산책일까,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그 뒤에 들려온 말에 잠깐 놀랐는지 마트료시카의 윗부분이 손에서 튕겨져나갔을까? 그걸 또 휙 낚아채선 다시 텁 하고 조립하는 모습도 태연하기 그지 없는 행동이었다.
"헤에... 그런가요? 역시, 같은 반이라서 이런걸 쉽게 캐치해내신 거려나..."
자신의 마니또가 당신이었다면 어느정도 말이 된다 생각했는지 스스로 몇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있는 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굴려보길 두어번 반복하고나서 다시 당신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웃는다 보기엔 좀 애매했지만 그래도 나쁜 표정은 아니었을까? 마니또로서의 이름을 당신과 대조해보면 전혀 쌩뚱맞은 것 같지만... 원래 들키지 않으려고 지어내는 이름이니 어느정도 성공한 셈이겠지.
"꽤 마음에 드는 선물이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있답니다."
물론 대형견만한 글쎄에게 밟힐 뻔하고 물릴뻔한 것만 몇번인지 셀수도 없는 위기에 처한 마트료시카였지만 꿋꿋하게 흠집 하나 없이 잘 있는게 용할지도,
경아는 자연을 제법 좋아하는 편에 속했다. 어쩌면 아이들 사이를 빠져나온 경아가 해변가까지 걸어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뭇가지가 늘어진 숲길을 따라 바닷바람이 부르는 쪽으로 가다보면, 금세 검은 하늘과 바다가 보인다. 달이 밝다. 해수면이 잔잔히 흔들리며 제멋대로 빛난다. 흰 포말이 발치에 와 부서진다.
바람이 불어오며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다. 경아는 엉망이 된 머리를 고칠 생각도 않고 바다를 바라본다. 여름임에도 서늘한 기분이 들어, 가져온 가디건을 걸친다. 문득 하늘을 바라본다. 몇 번 눈을 깜박이자 어둠에 적응한 시야에도 흰 포말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별들이 저마다 제자리를 찾는다.
그 모습이 사뭇 아름다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다. 혹은 제 생각 속에 깊이 빠져 그러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다가온다 해도 모를 것이 분명하다.
// >>174 늦었지만, 답레는 언제 줘도 괜찮아요, 규리주. 푹 자고 좋은 꿈 꾸길 바라요. 내일 뵈어요~
문하의 얼굴에 또 다시 새롭게 피어나는 표정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던 새슬이, 다시금 눈을 휘며 웃는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서 콕, 하고 소년의 볼을 찍어 보려 하는 것이다. 그대로 부루퉁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오는 시선과 눈을 맞추고 있다가, 머리칼을 쓰다듬는 손길에 기분 좋게 헤ㅡ 하고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자전거ㅡ. 배워 놓는 게 좋을까아.”
자주 타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눈을 감은 채 쓰다듬는 손길을 만끽하며,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곧이어 한참 잠꼬대라도 하는 양 어떡하지,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고민하던 새슬에게서 나온 답은 ‘나중에 배우고 싶어지면 배울래’ 였다. 있잖아, 처음은 역시 하가 먼저 태워주라. 작게 키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뻔뻔하게 부려 보는 작은 응석.
“핸드폰은, 왜?.
그렇게 물으면서도, 제 주머니를 뒤져 순순히 핸드폰을 건네 주었다. 주인의 성질을 입증하기라도 하는 양 여기저기 구르고 긁혀 엉망진창이 된 낡은 스마트폰. 자ㅡ, 하며 커다란 금이 중앙을 가로지른 화면을 켜 내밀고는, 문하가 제 핸드폰을 살펴 볼 동안 새슬은 천천히 문하를 살필 것이었다. 절반쯤 이마를 덮은 흰색 머리칼이라던가, 살짝 내리깔린 속눈썹이라던가, 화면의 불빛이 머물고 있을 흑색 눈동자 같은 것들을ㅡ 멍한 눈으로 그저 가만히.
과장된 말이지만 과장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가 가끔씩 보여주는 가라앉은 모습을 제쳐둔다면, 그는 거의 24시간을 쉬지 않고 놀러다닐 수 있었다. 다만 그건 놀러다닌다는 가정이 있을때다. 재미없는 수업에라도 들어간다면 곧바로 배터리가 0%를 찍고 잠들어버리는 그를 발견할 수 있을테다.
" 그러는 슬혜야말로 이시간까지 뭐했어? "
그냥 보면 마트료시카를 가지고 놀고있는것 같지만... 설마 지금 이 시간까지 저것만 만지작거리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하기에. 그리고 지금까지 혼자 있지만은 않았을테다. 연호 자신이 그랬던것처럼 슬혜도 다른 누군가를 만나 함께 놀았겠지.
자신이 마니또라는 말에 마트료시카를 놓치고, 또 그걸 다시 낚아채는 모습에 그는 감탄한 듯이 가볍게 손뼉을 몇 번 쳤다.
" 응? 어떤거? "
그는 슬혜가 뭘 말하는건지 캐치하지 못했다. '이런거' 라니. 자신이 선물해준 것들 중에서 슬혜의 무언가를 캐치했다고 할만한게 있었던가? 고양이와 관련이 있었다는것 말고는 캐치하지 못했다. 사실 슬혜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거나?
" 뭐 아무튼. 내가 그 아메리카노였다는 말씀이야. 나름 힌트를 심어놨는데 몰랐으려나? "
몰랐을 만 하다. 그것은 한 번 꼬아진 힌트였으니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커피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건 거의 불문율의 수준이다. 하지만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의 붉은색 칵테일도 있다. 같은 이름이지만 커피와 술의 차이는 크다. 미성년자가 그걸 알아내는것도 신기하지. 바텐더가 꿈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아내기란 힘들 것이다.
"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나름 고심해서 고른건데. "
연호의 입장에서 일반 마트료시카들은 귀여움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그래서 제일 귀여운 고양이로 타협한 것이다. 슬혜를 보면 어딘가 고양이가 연상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것도 한몫 했을까?
노력하고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잘하는 거지이. 덧붙이며 빵긋 웃었다. 그리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 ...그래도 역시 과자랑은 다른 거얼. ”
아랑도 바삭하게 구워는 봤다. 과자랑 비슷... 비슷할 순 있다고 쳐도 역시 과자랑 고기는 다르다.
*
칭찬이라면 기쁘지만, 그건 너무 과장된 대답인걸.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냥 연호가 먹는 모습을 보는데... 울먹... 거린다...?
-맛있어... 너무......
-매일아침 나한테 된장찌개를 끓여줘...
“ 누가 굶겼니이...? ”
며칠 만에 – 혹은 몇달 만에 - 처음으로 집밥 먹어본 사람 같네에. 청혼대사 같은 말 -청혼대사 같다고도 생각 안 했다. 금아랑네 아버지는 ‘끓여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끓이게 해줘.’ 라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보다 울먹거림 쪽을 좀 더 신경 쓰며 고기를 좀 더 연호 쪽으로 밀어 주었다. 2~3인분 기준으로 잡고 요리하고, 내 걸 0.7인분으로 담길 잘했지. 후라이팬에 남은 밥과 냄비에 남은 국도 연호한테 주는 게 좋겠다.
“ 으응, 특기라고 해도 될 것 같아아. ”
천천히 느긋하게 고기를 먹는다. 0.5인분으로 담을 걸 그랬나 봐.
“ 직접 만들어서 보람을 느끼는 거 아닐까~? ”
원래 야외에서 먹는 건 평소에 끓여먹던 라면이어도 2~3배는 더 맛있다고들 하니까. 그 탓도 없진 않을 것이다. 연호가 해변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고 아랑도 해변에 시선을 주었다. 파도가 밀려와 부스러지는 소리, 그리고 달빛이 내리는 밤바다와 백사장은 퍽 낭만적인 광경이다.
“ ...응, 나도 그래. ”
조금 대답이 늦었을까. 낭만적인 배경을 두고 너무 귀염성 없는 대사를 했을까?
“ 좀 더 귀염성 있게 말해주자면,”
“ 같이 먹는 게 연호 너라서 평소보다 더 맛있게 느껴져. ”
방금 거 귀염성 있었니? 연호와 마주 보는 상태에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을 반쯤 둥글게 접는다. 반쯤 접힌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오묘하게 반짝거리는 게 낮에 보는 것과도 노을이 질 때와도 다른 느낌으로 아름다웠을까.
아랑은 고개를 바로하며 샐쭉 미소했다. 그리고 볶음밥을 냠 떠먹었다. 귀염성 있는 대사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낯간지럽게 들리기도 해.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으므로. 말을 더 걸지 않으면 밥 먹는 데에 집중하겠지.
어라아. 확인해주는 걸까? 확인해줄게, 라는 말 대신 행동으로. 무릎을 굽혀 손으로 살살 훑어내는 것을 보고 샐그러지게 미소했다. 매너 있네, 라고 생각하지만. 매너 있다는 표현보다도 자상하다는 표현이 더 나을까.
“ 확인해주는 거야~?
애교 있게 물어보는데서 기쁜 기색이 살짝 묻어나왔을까. 알긴 알았다. 확인은 해주지만, 바닥을 밟는 것은 내 선택에 맡기리란 것도. 아랑은 살짝 무릎을 굽혀 하늘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응, 역시 바닥에 조개나 유리조각이 있는 지 확인해주는 것 같지이.
“ ...갈색 모래 쪽이 그런 거구나아. ”
라고 뭔가 새로운 걸 깨달은 것처럼 말했다. “ 백사장 쪽이 더 하얘서 무해해 보이는데, 갈색 보래가 더 안전한 거였나봐. ” 신는 게 낫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빵긋 웃는 모습이 ‘알아.’, 라고 말하는 것 같지.
음, 생각보다 좀 더 먼데까지 확인해주네. 역시 고맙다고 해야겠다. 평소와 같은 톤으로 감사를 전할까 하다가, 역시 차분한 톤이 더 감사한 마음이 더 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서.
“ 고마워, 하늘아. ”
평소보다 차분한 톤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후에 생글 미소했다.
“ 방해는 아냐, 춤...까지는 아니고 가벼운 스텝만 밟아보려고 했으니까아. 맞아~ 별 보기엔 해변이 좋지이. 하늘도 밤도 쪽빛으로 물들어서... 경계가 조금 흐릿한 게 낮에 보는 거랑 또다른 아름다움이 있으니까아. ”
바다를 봐도, 밤하늘을 봐도 쪽빛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남색이 보이겠지만. 바다는 흰 파도가 부서지고, 하늘은 별이 반짝이니까 둘 다 다른 느낌으로 예쁘지이. 나지막하게 덧붙이며 작게 미소했다.
그리고 모처럼 확인해준 건데 밟지 않는 것도 아깝다 싶어 하늘이 확인해준 모래 위를 가볍게 밟았다. 한 걸음 성큼, 또 한 걸음 성큼, 걸었다가 가볍게 턴하는 동작이 꼭 깃털이 살랑거리는 것 같다. 이 소녀가 맘 먹고 추는 춤도 깃털 같을까, 의문이 들게 하는 모습이었을지도.
“ 가볍게 스텝만 밟아본 건데에, 어때~? ”
별사탕 같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 아랑이 평소보다 조금은 더 장난꾸러기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무슨 대답을 해줄지 조금 기대해도 돼?
// -무슨 대답을 해줄지 조금 기대해도 돼? 는 아랑이 마음 속 생각이지, 직접 말로 표현해서 질문한 건 아니에요 ㅎㅁㅎ ! 쪼꼼... 장난쳐보고 싶은 기분이 든 건 사실이긴 하겠지만.... >:3 (금아랑은 그걸 티내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210 마이페이스일지도 모른다기에 쪼꼼 장난기 있는 대사를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D (와하하) (하늘이도 조금 장난기가 있나요...? 스다가 궁금해졌어요 <:3) 심한 장난끼는 없지만, 이따금 소심하고 쟈근 장난 정도는 하고 싶은 금아랑... <:3
>>214 예쁜 말을 골라서 해준다구요....? (심쿵....) (털썩.... ㅇ<-<) 예쁘게 생긴 애가 예쁜 말 골라서 해준대... (금아랑이 부러워 죽을 거 같다...) 부끄러워 하는 것도 좋지만, '그거 말고 다른 좋은 말 할걸...' 하면서 앓이하는 것도 예뻐요.... (부여잡는 가슴팍)
>>215 맞워여........ 스불재긴한데 행복한 스불재인가..... (파스스 될 미래를 예감한다) 맞아요 다들 와랄랄라 하고 싶어....!!!!!!!!! (와랄랄라 짤ㅇ르 찾아보자) 엔딩 직전에 청혼이면 겨울이겠군요. 겨울까지 즐겁겠어요...!! ㅎㅁㅎ (훈훈한 미소) (흡 - 족)
"나도 잘 아는 건 아니야. 갈색 모래는 아무래도 조금 더 단단하니까 보통 발이 묻히거나 하는 일은 잘 없으니 날카로운게 있어도 바로 눈에 보일 것 같지 않아? 나중에 선생님에게 물어볼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크게 생각한 적이 없는 사안이었고, 방금 전도 그냥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조금 궁금하긴 한지 하늘은 괜히 모랫바닥을 가만히 바라봤다. 백색과 갈색을 비교를 해보다가 결국 그 답까진 잘 모르겠다는 듯 하늘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내용까지 교과서에 나온 것 같진 않았기 때문에 생각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고맙긴.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걸."
그저 모래 속에 잠시 손을 넣어서 날카로운 것이 없는지 확인해본 것 뿐이었다. 천천히 속을 훑었기 때문에 손이 베일 일도 없었고, 설사 조금 찔린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큰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고작 그 정도로 피아노를 칠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깊게 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나 만화 속의 이야기일 뿐이었으니까.
아무튼 방해는 아니라는 그 말에 하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 특별히 무슨 말을 더 하진 않았다. 꽤 감성적이네. 이름을 알고 어느정도 대화는 하지만 전혀 모르던 사실 하나를 머릿속으로 인지하기로 하며 하늘은 괜히 다시 한 번 손을 털어 조금 남아있던 모래를 제 손에서 떨어뜨렸다.
깃털 같은 느낌의 스탭은 적어도 서투른 솜씨는 아니라고 하늘은 생각했다. 턴의 자세, 발을 밟는 모습까지. 머릿속으로 리듬을 그려보다 하늘은 미소를 작게 지으면서 닫아뒀던 입을 열었다.
"너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다지 없었는데 말이야. 오늘 두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네. 스탭이 아니라 제대로 추면 진짜 멋질 것 같은데? 따로 배운거야? 아니면 그냥 취미야? 아니. 어느쪽이건 상관없겠네. 중요한건 네가 밟은 스탭이 상당히 멋졌다는 거고, 여기에 음악이 없다는게 조금 아쉽다는 것 정도니까. 가볍게 밟는 모습이 정말로 능숙해보였어."
휘파람으로 아주 가볍게 살랑거리는 멜로디를 불어보이던 하늘은 손에 쥐고 있던 에이드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살며시 고개를 돌려 저 위의 하늘을 바라봤다.
고개를 갸웃하던 아랑이 “ 으응, 나중에 선생님께 물어보는 게 좋겠어~ 역시 물리? 지구과학 선생님한테 물어보는 게 좋겠지이? ” 하고 웃었다. 공부는 나름 열심히, 나름 잘하는 편인 아랑도 거기까지는 모른다.
“ 고마워 해야지. 네가 해준 게 배려라는 걸 아는데, 모르는 척 그냥 넘어가진 않아~ ”
방긋 웃으며 하늘의 손을 시선으로 약간 꼼꼼히 살폈을까. 천천히 훑어서 그런가 원래 조심스럽고 야무진 편에 속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약간의 모래만 묻고 만 것 같다. 다행이지. 피아노 치는 사람의 손인데, 확인해 준다고 모래 훑다가 다치면.. 많이 미안했을 테니까.
내가 가지고 온 손수건 있는데 이따가 손 털라고 줘야겠다. 두 장 가져왔으니까 한 장은 주고 한 장은 나 써야지.
아랑은 감성적인 말을 하지만, 현실적이기도 하다. 가져온 손수건 두 장을 알맞게 분배할 생각도 하고 있으니까.
-너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다지 없었는데 말이야. 오늘 두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네. 스탭이 아니라 제대로 추면 진짜 멋질 것 같은데? 따로 배운거야? 아니면 그냥 취미야? 아니. 어느쪽이건 상관없겠네. 중요한건 네가 밟은 스탭이 상당히 멋졌다는 거고, 여기에 음악이 없다는게 조금 아쉽다는 것 정도니까. 가볍게 밟는 모습이 정말로 능숙해보였어
“ 고, 고마워어....? ”
예상 외의 칭찬...이라고 할까 길게 해주는 칭찬 비슷한 것에 아랑이 고개를 기울이며 고마워라고 했다. 끝이 의문처럼 올라간 게 조금 당황한 거 같아 보였을까 싶다가도.
“ 따로 배우진 않고, 유튜브 보고 연습한 거니까아. 취미겠지이. 그래도 멋지고 능숙해 보인다니까 쪼꼼... 보다 살짝 더 기쁘네에. 음악은 네가 휘파람 불러줬으니까아, 그걸로 충분해~ ”
금방 빵긋 웃어보이는 것이다. 손을 뒤로 감추는 모습이 조금 쑥스러워 하는 모양새처럼 보였을 테지만.
-별들이 내는 스포트라이트가 있어서 그런지. 뭔가 은은했을지도 모르겠네.
그 말엔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하늘을 따라서 하늘을 본다.
“ 음, 별빛이 주는 특수효과란 게 있나봐. 덕택에 은은해 보였다면 좋은걸까아? ”
그것은 잘 모르겠다. 갸웃갸웃하다가 그냥 생글 미소하고 말았다. 그러더니 아랑이 양쪽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그리고 꺼낸 손수건 중 하나를 하늘에게 건네며.
아랑이 고기를 자신의 쪽으로 밀어준것을 바라보다가, 조금 감동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이게 아니지,' 라며 고개를 몇번 젓고 늑대같은 표정(대충 그런 표정이었다)을 지으며 눈을 빛낸다.
" 그러니까 네 팔도 한입 먹게해줘! "
또다시 거절당할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하지만 자신도 거절당할 거라는걸 알고있는지, 금방 다시 웃으면서 고기와 밥 등을 먹는다. 한입 먹을 때 마다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 그런가? 하긴. 원래 직접 만들면 맛있는거라고들 하더라. "
가정시간에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그랬다. 연호는 그때 다른애들걸 먹고, 연호것은 다른애들 먹여주느라(보통 안먹겠다는 애들 입 안에 젠틀하지않게 넣어주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먹어볼 기회가 적었다. 직접 먹는다고 해도, 그것은 혼자 있던 때다. 혼자서 먹는 밥은 맛이 없었다.
" ...... "
아랑의 귀염성 있는 대답을 듣고 나서, 그는 눈이 살짝 커져서는 아랑을 마주본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아니, 조금 움찔 한것 같기도 하다. 그의 마음속에 울리는 말을 옮겨적어보자면, '향이 조금 사라진것 같아....' 어떤 향을 말하는걸까?
" 마음에 드는 말인걸. "
아랑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나온 말이었다. 웃고있는 그의 붉은빛 눈은 달빛을 받았다곤 하지만 주변의 어두움에 잠겨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도 마냥 어두운 것만이 아니라, 눈 안의 어딘가에 밝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 그럼 나도 귀염성 있는 말을 해줄까? "
고기를 한점 더 집어먹고, 꼭꼭 씹어 삼키고서 턱을 괸 그는 웃는 얼굴 그대로 다시금 아랑과 눈을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