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이벤트이자 자신에게 있어선 정말 원없이 피아노를 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우정을 약속한 친구와의 시간도 그렇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던 포크댄스도 지나가고 하늘은 슬슬 집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나름대로 콘도에서 시간을 보냈다. 진실게임을 하거나, 가볍게 잡담을 나누거나, 혹은 방에 누워서 동영상 사이트로 음악을 듣거나, 그것도 아니면 근처를 돌아다니거나 하면서 하늘은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밤에 별이나 구경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하늘은 핸드폰과 이어폰을 챙기고 방 밖으로 나섰다. 김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오렌지 에이드를 하나 주문한 후, 그 시원함을 손으로 꼭 쥐며 해변가로 향했다. 역시 바다에서 별을 보려면 해변가만큼 좋은 곳도 없었다.
바다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또 다른 바다가 하늘에 펼쳐진 광경이 하늘의 눈에 들어왔다. 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넓고 넓은 별로 만들어진 그 바다를 바라보며 하늘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쥔 에이드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모래바닥으로 걸어가니 적당한 부드러움이 그가 신고 있는 샌들 밑으로 느껴졌다.
"......?"
거기까진 좋았다. 허나 곧 그의 눈에 들어온건 예상하지 못한 인물의 모습이었다. 같은 반 여학생인 금아랑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맨 발로 모래밭을 밟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말 없이 바라보던 하늘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그런데 뭐하고 있어? 맨발로 산책하다가 조개조각이나 유리조각을 밟으면 위험하니 가능하면 신발 신고 다니는게 낫지 않겠어? 잘못 밟으면 피는 둘째치고 되게 아플텐데."
/하늘주. 실제로 밟아봤는데 그 아픔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라고 하더라. 차라리 레고가 낫지. (흐릿)
가끔 고양이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에서 생각하기에 그럴뿐, 사실은 가만히 있다 갑자기 풀쩍 뛰어오른 고양이가 날벌레를 잡았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꽤 자주 있곤 하니까. 물론 그게 사람에게까지 적용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하지만 마굿간 고양이 신드롬처럼 조금씩 미세하게 영향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접혀진 파라솔 위에 앉아 고양이 마트료시카를 만지작거리는 그녀 또한 딱히 이상할 일은 없을 것이다.
"......"
그래도 바다쪽 별은 나름 예쁘다고 했던가. 멀리 수평선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걸친 별무리들을 보면서도 손은 계속 움직이기 바빴으니, 어쩌면 그녀는 들고 있는 것을 심심풀이용 장난감처럼 여기며 여름이 되기 전의 일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그리고 고양이. 물론 첫번째는 고양이의 이름과 같은 도넛이었지만 자신이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혹은 고양이를 키우는 건지 알고 그랬던 모르고 그랬던 고양이에 연관된 물건을 몇번 보내주었던가... 그걸 알고 있어도 신기하고 모르고 준거라면 더 신기했기에 살짝 복잡해진 마음에 먼곳을 바라보듯 살짝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하지만 때때로 음식처럼 생겼지만 음식이 아닌 것들에 대한 욕구는 참기 힘들었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받아들이지만 눈이, 그리고 입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맛있어보이는 것들은 입에 넣어보고 싶어지니까... 그래도 어찌어찌 잘 참아내고 있는걸 보면 이 증상(?)을 치료하는데 문제는 없어보인다.
"모르는 소리! 바삭하게 구우면 과자처럼 된다구! "
해본 적 있다는 말투로 자신만만하게 대꾸하는 것에 묘한 신빙성이 느껴졌다.
" 당연하지. 고기에 볶음밥에 된장찌개라니. 너무 완벽해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방긋 웃으며 아랑이 만들어낸 볶음밥과 된장찌개를 먼저 한 입씩 맛보았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서 그것을 음미하고는 삼키고서 울먹거렸다.
" 맛있어... 너무...... "
" 매일아침 나한테 된장찌개를 끓여줘... "
그게 어딘가에서는 청혼하는 말이라는걸... 연호가 과연 알까? 하지만 그만큼 맛있었다는 이야기일테니 특급 칭찬이라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편할 것이다.
" 다행이네. 고기 굽는건 내 특기라서. "
하긴, 그가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뭔들 안해봤을까. 굽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다는 말 처럼 그는 정말 모든 것을 시도해 봤을 것이다. 그 중에서 선정된 굽는 방법이니까 믿을만 하지. 다 먹고도 부족하다면 아직 고기가 남아있으니 얼마든지 구워줄 수도 있을테다.
" 바다에서 내가 직접 구워먹으니까 더 좋다. 더 맛있고. "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으며 아랑을 보다가, 해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색의 파도가 밀려와 부숴지는 것을 달빛이 은은하게 비춰주었다. 그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눈을 감았다. 그런 와중에도 입은 쉴새없이 고기를 탐하고 있었지만.
"일단 주변을 제대로 훑어본 후라면 괜찮을거야. 꼭 유리조각이나 조개조각이 있다는 법은 없으니까."
말을 마치며 하늘은 무릎을 굽힌 후에 괜히 주변의 모래를 살살 손으로 훑어내렸다. 딱히 조개나 유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그는 괜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럼에도 결국 어떻게 할지는 그녀의 몫이라는 듯, 그는 굳이 더 말을 이어가진 않았다.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가 그런 위험한 것을 밟지 않는 것을 속으로나마 기도해주는 것 뿐이었으니까.
아무튼 춤추는 사람 영상을 봤다는 그 말에 그는 괜히 고개를 갸웃했다. 영상 속 사람이 맨발로 모래를 밟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하긴, 동영상 사이트를 보면 그런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그는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갈색 모래라는 그 말에 하늘은 다시 말을 이었다.
"갈색 모래라면 뭔가 파묻혀있을 위험이 아무래도 백사장보다는 덜할테니 그런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백사장은 깊은 곳은 그냥 발이 쑥쑥 들어가니 말이야. 아무튼 안전성만 따져보면 신는게 낫다고 생각을 하지만..."
뒤이어 그는 괜히 무릎을 굽힌 후, 다시 한 번 모래를 살살 손으로 훑어보다가 괜히 손을 안으로 넣어보기도 하면서 잠시 발을 움직였다. 모래 속에 손을 넣고 있는만큼 걷는 속도가 상당히 느릿했다. 그러다가 손을 밖으로 빼낸 후, 그는 손을 가볍게 털어보이며 이야기했다.
"적어도 이 근방은 딱히 그런건 안 느껴지니, 이 근방이라면 괜찮을거야. 아무튼 춤이라도 추려고? 방해한 건 아닐까 모르겠네. 그러면 미안! 별이나 볼까 해서 나왔다가 어디가 좋을까 싶어서 해변으로 나왔거든. 별 보긴 여기만큼 좋은 곳도 없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