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그땐 봄이었고 이젠 여름이네. 정신없이 지내서 시간이 가는지도 잘 몰랐는데. 너가 말하는걸 들으니까 정말 시간이 빠르게 간 것이 체감된다. 기말고사도 끝났고 이 바닷가에서의 휴가가 끝나면 여름 방학이고 ... 여름 방학엔 좀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저축해둬야지. 학기중엔 일을 많이 못하니까 야금야금 까먹는 돈을 감당하기가 힘들다.
" 저녁 시간이니까 바로 가야겠지? "
이르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고 딱 적당한 시간이다. 네가 손을 잡자 살짝 잡아 당겨준다. 그리고 손을 잡고 가도 괜찮다는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손을 잡고서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뷰가 있는만큼 조금 고지대에 있어서 축제장을 벗어나서 오르막을 올라야하는 길이라 음악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들린다.
" 좋아하는 음식 있어? 코스요리로 나오긴 하는데 코스 중간에 있는 음식은 선택하는거거든. "
가서 직접 보는게 빠르겠지만 그래도 기호 정도는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그런 비싼 곳은 처음 가봐서 어버버버하겠지만 어제 인터넷으로 정보는 다 얻어놨으니 남은건 실전뿐이다. 축제장을 벗어나자 완만하게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나왔고 나는 홍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오, 약간 근육냥이인거야?? 매일 집사가 잘 때마다 덤벨 조지는 주인님이신가? (?) 아가들이랑 노는 것도... 대강 그런느낌이지! 말 안통하는 것도, 똥꼬발랄한 것도, 자주 토라지고 앵앵거리는 것도 다 고앵이 닮았어! 글리코겐ㅋㅋ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른 채우고 와라!!
외모 칭찬은 조금 어색해서, 아주 잠시 얼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뻣뻣하게 웃으며 다시 녹아내렸다. 껍데기뿐인 말이라도 칭찬은 듣기 좋다. 특히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냥 해본 말에도 목 언저리가 붉어질 수 있다.
"그래, 너 그거 잘 어울려."
후드집업에, 말아올린 바지, 슬리퍼. 정장에 비하면 조금 초라한 옷차림이다. 교복이라도 입고 왔어야 했나봐. 해변에는 어울리지만, 춤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거 입고 수영한거야?' 괜히 한 마디 더 얹는 류의 질문을 던졌다. 좋지 않은 버릇이다.
"잘 부탁해."
규리가 리드했다면, 서툴게, 얼기설기 따라갔을 것이다. 최민규가 조금 더 멋을 부리는 성격이었다면, 튀는 말, 혹은 농담으로 받아쳐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 잘 부탁드려요, 미스터.'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최민규는 그런 성격이 못 되었다. 결국 담백한 말로만 마무리지었다.
좋은 것엔 자꾸 욕심이 나는 법이다. 그건 분명 그녀 또한 알고 있는 개념이었고, 알고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자꾸만 채우려 했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연기가 아닌 감정은 역시나 컨트롤하기 어려운 것인지, 마치 욕심 많은 고양이가 제 몸만한 물고기를 물고 가는 것처럼... 더욱이 사랑이란 감정은 인간의 미각 중 단맛에 자주 빗대어지듯 그 중독성과 여운, 금단증상 또한 상당했기에 자신에게 파고드는 당신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수 있는 그녀였다.
"음~ 그거 괜찮은데요? 분명 둘만의 무언가도 있을거구,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도 있으니까요~"
'보는 눈도 없을 거고...'라는 말을 덧붙이며 얄궂은 시선을 보냈을까, 정말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해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것은 나중의 일로 미루어둬야겠지. 지금 전부 다 즐겨버린다면 이래저래 놓쳐버리는게 많을 것이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너무 빠른 스텝은 언젠가 꼬이기 마련이니까.
"음~ 그렇다고 정말 투정 안부리신다면 그것도 그거대로 곤란한데~?"
생각 외로 금방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자 놀란듯 눈을 깜박이는 그녀였지만 얼마안가 평소대로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한껏 투정부리다가도 금방 얌전해지는 모습이 내심 귀여웠는지 가벼운 손길로 등을 살살 쓸어주려 했을까? 다만 그 뒤에 들려오는 물음엔 온몸이 정지해버린듯 잠깐 굳어있다가 헛기침을 하며 살짝 시선을 돌렸다.
"흐음... 뭐어, 그대야만 괜찮으시다면... 집에 좀 커다란 고양이가 살고 있긴 한데 보러 오셔도 좋구요...?"
작은 사람 수준의 크기를 가진 고양이이긴 하지만 어쨌든 고양이는 고양이었기에, 본의 아니게 '우리 집 고양이 보러 올래?'같은 느낌이 되어버렸지만 그전에 당신이 고양이를 좋아할지는 알수 없는 부분이었다.
사람 한명, 대형묘 한마리가 산다고 해도 여전히 넖은 집이었기에 조금은 한산함을 느꼈을까?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에 그렇게까지 큰 거부감은 없었고 그녀와 함께 사는 고양이 또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했다. 어차피 고양이의 입장에선 자신의 시중을 들 집사가 더 늘어난셈이니까,
"후후후... 그런 마음가짐만으로도 이미 자신이 넘친다 볼 수 있는걸요?"
자신은 없지만 걱정하지도 않는단 당신의 말에 그녀는 상냥하게 웃어보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확실히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걱정보단 무언가의 기대감에 더 가까운듯 했고,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용기로 비춰질수도 있는 무언가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거, 나름 기대해도 되는 부분인가요?"
조금 장난스러운 톤으로 이야기 했을까? 살며시 머리를 쓸어주면서 다정하게 속삭이곤 마무리로 입맞춤까지 잊지 않는 당신에게 푸스스 웃음을 흩어내며 내밀어진 손을 잡아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또 다른 재밌는 일이 일어날것 같네요~ 뭐, 포크댄스 정도면 금방 따라할수 있을 거니까요? 열심히 해보자구요~ 서투르대도 즐기면 그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