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피부가 탄다는 상황이 자기만큼의 걱정거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지만, 햇볕에 까맣게 타는 걸 생각하니 왠지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서. 굳이 이런 걸 해줄 필요가 있나- 하는 있을 법한 의문도 한 점 갖지 않고, 문하는 뭐라 말도 않고 새슬의 얼굴에 조심스레 선크림을 발랐다. 어설프고 기묘한 호의였다. 선크림을 발라주는 동안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흘러나온 웃음소리가 왠지 간질거려서, 문하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 혼란스러웠다.
"...난 화상을 입거든, 피부가 까매지는 게 아니라."
호의를 드러내는 방식은 어설펐지만, 선크림을 바르는 손길은 그럭저럭 익숙해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의 피부도 머리도 가만히 바라보면 낯설 정도로 창백한 흰색이다. 아마 국한적인 백색증이 남긴 흔적이겠지. 그것이 그나마 점심때의 태양빛에 따뜻하게 잠겨있어 덜 창백해 보인다. 새슬이 그를 태양빛 속으로 이끌어준 덕분에.
문하는 새슬의 옆에 걸터앉아서 고개를 새슬에게로 돌린 채로, 새슬이 빙긋이 웃으며 건네는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문득 햇빛을 한가득 머금어 반사하는 페리도트 빛깔의 눈동자가,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멍하니 새슬을 바라보다, 문하는 새슬을 따라 하늘로 눈을 돌렸다. 빛 한 점 머물지 못하고 빨려들어가는 텅 빈 구멍으로만 보이던 까만 망막 위에도 빛이 맺힐 정도로, 날씨가 좋다.
사하가 원한 건 딱 한 번이었는데, 예쁘다는 말이 생각한 것보다 많이 돌아왔다. 멍석 깔아주면 도리어 민망해 하는 사람이라 데룩데룩 눈만 굴린다. 그래도 칭찬은 칭찬인지라 기분 나쁠 리 없다.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가 좋은 기분을 대변했다. 와, 나 보고 예쁘대. 빈 말이라도 좋았다.
"시아라고 부르면 되나? 만나서 반가워요."
따라 걷다 고개를 기울이며 눈 맞추고 웃는다. 아까는 작은 단어장이라도 가져와야 했을까 고민했는데, 사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조금은 집 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 사라진 지 오래다. 오랜만에 밤바다도 구경하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여름 좋은 거였네.
"낮에 바다 구경을 제대로 못 했거든요. 지금이라도 구경 좀 하려다가……."
다음으론 아직도 물 떨어지는 신발 보이고선 어깨를 으쓱인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보이는 처참한 결과. 다 마를 때까지는 슬리퍼만 신고 돌아다니게 생겼다.
시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즐겁게 웃었다. <고마워요.> 덩달아 한쪽 눈 찡긋한다. 서툰 탓에 양쪽 눈이 다 감기긴 했다. 역시 혼자는 좀 심심하다. 에어컨 바람 맞으면서 누워있는 게 아닌 이상은. 사실 그때도 옆에 한 사람쯤 있으면서 헛소리 받아쳐주는 게 좋아.
>>60 비설 한조각에 있는 화자가 비설의A가 한 말이고, 진단에서의 ""는 연호가 한 말이에영ㅎㅁㅎ '죽으면 안돼!' 라는 말에 반응한거죠. 3번 연호는... (연호 봄)(안봄) 아마 알상에서는 절대 안나올 연호일겁니다...? 아랑주 말씀대로 느와르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3
문하의 말을 잠잠히 듣던 새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ㅡ 그러면 잘 챙겨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겠네. 화상은 아프니까. 봄날의 것보다 짙게 내리쬐는 햇살이 소년의 흰 얼굴을 물들이는, 지극히 낯설게 느껴지는 광경. 새슬의 시선이 천천히 맴돈다. 불현듯 무언가 떠오른 것처럼 새슬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곤 갑작스레 말을 내뱉는 것이다.
“발라 줄까? 선크림.”
아무래도 소년이 이미 선크림을 바르고 왔다, 라는 선택지는 아직 새슬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은 것 같았다. 하도 나 발라 줬으니까. 오늘 햇빛ㅡ 좋지만, 오늘은 화상 입을 정도로 많이 센가? 미안, 나 이런 건 잘 몰라서. 아주 작은 멋쩍음이 담긴 미소.
음ㅡ. 길게 늘어지는 울림. 제 무릎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한참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던 새슬이, 끝내 무언가 생각해내지 못 했는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대뜸 자리에 드러눕는 것이다. 이럴 때는 다ㅡ 방법이 있지ㅡ. 어느새 하늘을 정면으로 마주한 새슬의 고개가, 다시금 약간 기울어 문하를 향했다. 눈이 마주치면 헤실거리는 미소. 새슬이 아무렇게나 바닥에 뻗어 있던 두 팔을 들어올려서, 하늘을 향해 손가락으로 작은 네모를 만들었다.
“이렇게 누워서, 뭔가가 생각날 때까지 하늘을 보는 거야.”
그냥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들 있잖아. 터무니 없어 보여도, 지금 바로 할 수 있겠다 싶은 거. 그런 것들을 하나둘씩 떠올리는 거야. 그러다 졸려지면 잠에 빠져들고. 아니나 다를까, 말을 마치자마자 작은 하품이 터져나왔다. 앗, 나 지금 좀 졸릴지도. 헤ㅡ( ᐛ ). 태평한 얼굴로 노곤한 웃음을 지었다.
>>82 크윽.... 초커.. 초커 사실 저도 진짜 좋아하거든요............. 새슬이한테 자주 달아주고 싶을 정도로....() 구속 싫어하는 애 초커(목줄) 채우기.... 짜릿하잖아요..... 그치만 이러면 넘 싸패같아보일까봐(대체) 뇌에 힘주고 참고 있읍니다 하지만 픽크루로 다크새슬 묘사할 때는 종종 넣곤 해요 ^.^ 초커 진짜 최고맛잇는것
문하는 새슬을 따라 풀썩 드러누우며, 고개를 반쯤 이리로 돌려오고는 나직이 대답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새하얀 후드집업을 입은 채로 같이 나란히 드러누워서 잠잠히 바라보는 그 모습이, 마치 어디선가, 지금 여기와는 아직 멀리멀리 있는 겨울 한가운데를 뚫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온 몸이 서리와 눈에 뒤덮인 큰 개 한 마리가 따스한 여름 햇살 아래로 끌려나와서 꼬리를 천천히 흔들며 누워있는 것 같았다. 새슬이 선크림을 발라주려 한다면, 그 손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채로.
"상관없어, 더 발라도. 좋을 대로 해."
내가 어쩌다 그런 것들을 방에다 사놓게 됐는지, 기억났다. 헤헤 웃는 새슬의 미소는 문하에게서 무언가를 잊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뭔가를 야금야금 채워넣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뭐라고 표현하기에 그는 어휘력도 감정에 대한 경험도 그렇게 풍부하지 못한 편이었지만, 그냥, 이러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2주간의 힘든 선발전이며 자신의 앞에 놓여있을 어두운 나날들이 머릿속에서 가려지는 것이다.
1. 『널 축복할게』 누군가의 뒤를 비추어주는 것은 언제나 씁쓸함이 묻어나왔지만 그녀는 딱히 동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흔들릴만한 일도 아닐뿐더러 자의건 타의건간에 어차피 자신의 손을 떠난 것이니 그 뒤에 대해 묻지 않기로 한건 그녀 아닌가,
"그래요? 잘된 일이네요."
언제나 그랬듯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일이다. 오히려 그동안 그것을 무겁다고 착각하고 있던 자신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지. 확실하게 굳어진 결정이라면 흩날릴 일 또한 없었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것은 금방 잊는 것 또한 사람이니까,
"혹여 경사라도 생기거든, ...꼭 불러주세요?"
하지만 먼지를 털어냈을 때 재채기가 나오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2. 『이제 만족해』 "됐어요. 이걸로 충분하니까요..."
사실은 더 채우고 싶었지만 적당히 끊는 것 또한 미덕이었다. 사시사철 곁에 둘수 있는 꽃이라면 굳이 코를 가까이 들이밀어 만끽할 필요가 없으니까, 시간제한이 있는 테이블마냥 음식을 입에 욱여넣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저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를 옆에서 느낄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아직 부족하시다면야..."
그리고 돌아오는 것은 당신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제 자신은 만족했으니, 어떤 것이든 들어줄수 있을만큼의 심적여유 정도는 있었을까? 벨벳같이 부드러운 데본렉스를 상냥하게 어르듯 살짝 떠있는것 같으면서도 확실하게 당신의 얼굴에 닿은 손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3. 『고마워』 언제나 감사함으로 가득한 마음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때가 있었겠냐만은 원래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배가 될수록 더 깊게 각인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으니, 그녀에게도 미약하게나마 그런 감각이 있다면 분명 소중히 할만한 기억임엔 확실했다.
"고마워요. 전부 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그렇기에 오늘도 말하고 싶어졌네요."
표현이야 좀 서투를지언정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동안 품어왔던 생각들도 모두 다 한곳에 가지런히 놓여있었으니까. 마음 한구석마저도 먼지끼거나 빈 공간 없이 정리해두는 것은 유난스럽게 깔끔떤다고 볼수 있었지만 그만큼 어떻게 해서든지 당신에 대한 생각들을 최대한 많이 쌓아가고 싶다는 그녀의 버릇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지금 선크림 없으니까, 빌려 주라ㅡ( ᐛ ). 말갛게 웃는 얼굴로 너무나도 자연스레 던지는 말이 제법 뻔뻔하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이들의 만남이 고작 두 번째에 그친다는 것에 경악하리라. 그러나 상대는 새슬, 웬만한 시선에는 굴하지 않는 자. 새슬이 선스틱을 받아들면, 뚜껑을 열고 서툴게 문하가 자신에게 해 준 것을 떠올리며 흉내를 낼 것이었다. 이렇게... 어ㅡ이렇게? 얼굴과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감촉들을 따라서, 그래도 기억나지 않을 때에는 자신의 얼굴에 발라 보는 시늉까지 해 가면서.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선스틱을 얼굴에 문지르는 걸 다 끝내고 나서야 뒤늦은 물음을 던 져 올 것이다. 그리곤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펴 바르겠지. 와ㅡ 나, 다른 사람 얼굴 만져 보는 거 엄청 오랜만인 것 같아. 간혹 키득거리는 소리를 흘려 가면서, 서툴지만 세심했던 소년의 손길과는 또 다른 서투름으로. 근데 이거 잘 발리고 있는 건가. 마무리로 자신이 보기에 뭉쳐 있는 부분들을 조금 더 문질러 주고서, 그제서야 손을 떼었다. 짠ㅡ 다 됐습니다!
“그럼, 같이 있자.”
둘이 할 만한 게 떠오를 때까지. 그날과 같지만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닌 말 한 마디를 던지고서, 다시 한 번 새슬이 늘어지게 작은 하품을 했다. 그래도 있지ㅡ, 내가 혹시라도 잠들어서 일어나지 못 하면 두고 가도 괜찮아ㅡ. 잠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눈을 꿈뻑이며 하늘을 바라본다. 아, 해 나왔다. 잠시 흐르는 구름에 가리워졌던 햇빛이 얼굴을 내밀자, 눈동자에 들이치지 않는데도 어쩐지 눈이 부신 기분이 들어서 손바닥을 들어 이마를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