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이 아니었다. 구름이 잔뜩 낀 밤하늘에 걸린 달을 가리키는 것처럼 허공에 들어올려졌던 단태의 손끝이 금줄이 걸려 있는 숲 안쪽을 가득 메우는 어둠 속으로 향했다. 모조리 타들어갔지만 터지지 않는 뭔가를 끌어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머글들이 쓰는 비유를 해보자면 심지가 전부 타들어갔지만 터지지 않는 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기분. 차라리 터져버리면 깔끔할텐데.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얼굴 위에 머무르는 웃음을 거두지도 않고 단태는 히죽하니 입꼬리를 올려서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지만." 전혀 농담같지 않은 목소리로 덧붙혀낸 말이었다. 숲 안쪽을 메우고 있는 어둠 속을 손끝으로 가리켰을 때는 이런 표정이 아니었지만.
얌전한 웃음소리가 음습하게 들린 건 착각이 아닐테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욕과 집착은 상대가 관심있게 바라보는 대상을 부숴서라도 자신만을 봐야했고 자신만큼 상대도 자신에게 그만큼의 소유욕을 보여줘야했다. 내가 가지고 싶은만큼 그 애도 그만큼의 것을 보여줘야지. 누군가를 원한다는 건 소유욕의 다른 말 아니던가. "질문?" 금줄 근처에서 걸음을 멈추는 펠리체의 걸음보다 몇분 더 늦게 단태의 걸음이 멈추고 단태는 자연스럽게 익숙하다는 듯 양손을 등뒤로 돌려서 뒷짐을 지며 고개를 돌려서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반문했다.
앞선 말들에 대해서는 말을 얹는 것보다 입을 다무는 것으로 긍정을 대신한 상태였다. 금줄을 따라 걸음을 다시 옮기는 펠리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단태가 달을 올려다본다.
"내가 불안정해보이나? 나는 지금 굉장히 이성적인데 말야."
반시체같은 마법사를 만났던 날을 언급하는 목소리에 단태는 한참 생각해야했다. 아. 그날. 뒷짐을 진 채로 걸음을 옮기며 한손을 들어보인 단태가 자신의 입술 아래쪽을 엄지로 슬슬 문질렀다. 그러고보니 그때도 보름이었지. 옮기던 걸음이 점차 느려지더니 이윽고 그 자리에 멈췄다.
"그런 말이 있어. 자기야- 보름달은 사람의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다고. 내가 유난히 보름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라는 생각도 괜찮지 않아?"
그는 지금껏 살아오며 누군가의 도발에도 가만히 넘어가곤 했다. 상종하지 않으면 인생이 편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하게 넘어가면 된다. 사람들은 서로를 죽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건 그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녁과 목적이 같을 줄은 몰랐는데 말입세."
그렇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넘어가기 힘들다. 복학한 이후로 첫 순찰일 뿐더러, 청궁 기숙사에서 오던 순간부터 두통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또 대화를 하다 기절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그는 달링이 손 안의 쥐에게 관심을 갖자 손을 올려 쥐를 부리에 물렸다. 달링은 신이 나서 발톱으로 움켜쥐고 배부터 쪼아 물어뜯었다.
"정해진 규칙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지. 시간이 늦었지 않은가."
그는 잠시 손에 쥐어진 로켓을 만지작거린다. 아름다운 별과 곤충, 새소리라. 새같은 소리.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뒤로하고 미소를 지었다. 지금껏 살아오며 웃어본 적이 손에 꼽는지라 어색하고 딱딱한 미소는 차라리 짓지 않는것이 나았다.
"교내에 추종자가 들어선 이후 비상상황에 대한 대책 첫째. 사람이 죽었으니 모든 학생은 안전에 유의하고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통금 시간을 엄격하게 지킬 것."
그는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둘째. 학년 대표는 순찰을 강화하여 필요시 교수를 호출할 것. 또한 외부인을 목격하거나 금지된 숲으로 향하는 등 수상한 동향을 발견하였을 경우 즉각 신고할 것. 비상 상황에는 점수의 차감이 조금 더 강경해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더 얘기해야 하나?"
그는 달링이 내장을 끄집어내자 눈을 굴린다. 이 상황에서도 잘 먹기만 하는 이 큰까마귀가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손을 들어 달링의 날개깃을 한번 간지럽힌 그는 뺨에 쥐의 살점이 튀자 대충 손으로 쓸어 닦았다.
"나는 지금 상황에서 새니 별이니 하는 것에 신경쓰고 싶지 않네. 각시인지 뭔지 하는 원인이 제거되기 이전까지 머리에 꽃을 채우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지. 자네는 다를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숙사 사감에게 누를 끼칠 생각은 하지 말게."
1. 마법사와 머글, 어느 누구나 태어나면서 가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혈통이다. 인간이라 하는 이는 누구든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치며 태어나기 때문에, 그 몸에 흐르는 피에는 당연하게도 최초라 할만한 시작이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들 가문에 표현하자면 뿌리에 해당되는 부분이렷다.
그러나, 이것을 보는 그대는 알 것이다. 그대의 가문에는 이렇다 할 과거도 차곡차곡 쌓였을 가문의 나무도 없는 것을.
그럼에도 어째서 순혈 가문으로 불리우는지, 그리 받아들여지는지 생각해본 적은 있는가? 그 이유를 찾으려 해본 적은 있을런지? 허나 어떤 수를 써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 땅에서 솟은 듯 갑작스레 시작된 가문이란 것만이 그대가 알 수 있는 최선이었을거다.
그대가 그것을 얼마나 고민하고 탐구했을지 내 알 길은 없으나 이 말은 할 수 있겠다. 기뻐하게. 그대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을 의문에 답을 얻게 되었다.
현재 "스피델리"라 불리는 가문에게는 달리 뿌리가 존재했다는 답을.
2. 내 감히 그대의 기분을 예측하건데, 무슨 이런 일이 있느냐고 황당해하면서도 그럴 것 같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 이유도 어렴풋이 알 듯 하나 명확하게는 모른 채 이것을 받아들었을 것이다.
이것을 준 이로부터 어떤 첨언과 함께 받았는지까진 모르니 그대는 그대가 받은 조언을 유의하며 이 다음을 읽어가도록 하길 바란다.
"중장"
1. 현재, 그리고 그대의 세대에서까지 "스피델리"라고 불리우는 순혈 가문은 시작 이전이 존재한다. 없어보였어도 명백한 뿌리가 있었던 것이다.
"스피어리" 라고 불렸던 그 가문은 석산이자 꽃무릇의 형상을 가문의 문양으로 삼고, 순혈지상주의를 가문의 사상으로 내새우며 눈에 걸리는 모든 혼혈과 머글들을 해하는 것으로 악명이 드높았던 가문이었다. 옷과 지팡이에 새겨진 하얀 가문의 문양을 피로 붉게 물들이는 것을 즐기는 가문이기도 했다. 동시에 '매구'라 불리는 희대의 악인이자 어둠의 마법사의 추종자였으며, 나의 본래 이름이기도 하다. 베릴 R. 스피어리. 이제는 사라진 스피어리의 마지막 가주, 바론 R. 스피어리의 혈육이며 쌍둥이인 자의 이름이다.
스피어리는 그 시대 어느 순혈지상주의 가문에 빗대어도 모자라기는 커녕 차고 넘칠 정도의 악함을 지니고 있었다. 나 역시 어릴 적에는 그것이 당연하다 느껴지는 환경이었으니. 그러나 나와 내 반신은 그 중에서도 서로에게 의지해 서로를 지키고 있었다. 결코 우리가 먼저 남을 해하지 않았고, 부딪혀오면 피하거나 가문의 어른들처럼 참혹하게 대하진 않았다. 가문의 이름을 가진 탓에 억울하게 당하더라도, 항상 정도, 라는 것을 지키고자 했다.
당시에 그러했던 건 어리숙하게도 우리가 가문을 바꾸고자 하는 바람을 가졌었기 때문이었다. 가주인 어머니 아래 자식은 우리 뿐이었으니 다음 가주는 필시 우리 중 하나가 될 것이고 그리되면 가문의 실정을 바꿀 수 있을거라 헛된 꿈을 꾸었다. 그것이 헛됨을 모른 채 우리는 성년을 맞이했다.
같은 날 태어난 우리는 성년이 되는 날도 같이 맞이했으나, 그 비극 역시 같이 맞이하고 말았다. 우리의 성년을 축하할 물건을 받기 위해 어머니가 직접 외출하셨다가 때를 노린 습격에 당해 돌아가셨다. 매년 축복받아왔던 날이 가장 뼈아픈 날이 되버린 해였다.
2. 비극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라고 하던가. 그것 뿐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이 과거가 된 시점에서 보자면 어머니의 죽음은 더 큰 비극의 시작에 불과했다.
사고가 갑작스러웠던 만큼 가문 내의 가주의 부재 역시 그랬다. 울분에 찬 가문원들은 하루 빨리 새 가주를 세워 일을 행한 그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고 싶어했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내 반신과 함께 했던 다짐을, 어릴 적의 꿈을. 허나 내 반신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그는 함께 했던 꿈은커녕 일말의 정도조차 남기지 않은 채 돌변해버렸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되돌리려 애썼으나, 내가 하는 어떤 호소도 듣지 않았으며, 내 손이 그리 가지 말라 붙잡을 때마다 냉정히 내쳤다. 내치고 내치다 못해 나를 가문에 반기를 드는 반역자라며 내쫓았다.
어찌나 충격적이었던지, 이를 적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가 직접 내 멱살을 잡아 문 밖으로 내치던 때가 선명히 떠오른다. 더러운 배신자라며, 다신 가문 문턱을 밟을 생각도 말라 일갈하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나를 향한 눈에 선 핏발과 핏빛으로 보이는 눈물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3. 쫒겨난 후 달리 기댈 곳도 없었기에 어디든 발 닿는대로 정처없이 떠돌았다. 달이 지고 해가 바뀌어 갈 만큼의 시간이었다. 그래도 마법사의 세계란 어딜 가든 소식이 들려오기에. 거기서 나는 깨닫고 만 것이다. 나의 태생, 나의 핏줄은 벽 하나를 넘었다고 하여 다르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그렇다면, 그렇다면, 차라리 없애버리는게 낫지 않을까. 이미 너무 많은 피를 머금은 이름을 씻어낼 수단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깨끗이 없애고 나도.
그러나 결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극악무도하고 잔악한 가문이더라도 나의 가문이다. 나를 이 세상에 내보낸 곳이다.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 끝이 나인 것도 고민의 한자락을 차지했다.
다시 달이 뜨고 해가 바뀌는 시간을 방황했다. 방황 속에서 흘러온 소식을 듣고 나는 드디어 때가 왔음을 알았다.
매구가 일으킨 전쟁이 그것이었다.
4. 몇 해 만에 다시 찾은 세계는 전쟁의 불길이 가득해 마치 지옥 그 자체였다. 혼란 속에서 들은 바로는 나의- 스피어리 가 역시 매구의 추종자로서 모든 가문원이 전쟁에 나서 지팡이를 들었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젊은 가주가 아주 잔혹하다고,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바론, 나의 반신.
전쟁터에 발을 내디뎠을 때, 아니, 전쟁의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다짐은 이미 굳혔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정녕 그 길을 계속 가야겠느냐고 묻고 싶었다. 세상에 눈 뜬 순간부터 함께한 그를 나 이상으로 쉬이 내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의 눈을 피해 둘 만의 장소에서 그와 만났다.
그리고-
만남은 어찌 말할 것도 되지않았다. 당연했다. 우리는 그 날 너와 나로 갈렸을 때부터 이미 끝났던 것이었다. 이제, 더이상 망설일 것은 없었다.
5. 스피어리 가는 당시의 순혈 가문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마법 실력을 뽐내는 가문이었다. 그 재능은 금지된 저주를 쓰는 것에도 적합해 전쟁 훨씬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을 해했다. 순수 혈통의 마법사로 태어나 마법에 출중한 것에 긍지를 갖고 살아온 가문이니, 마법이 아닌 방식으로 죽는 것이 무엇보다 치욕스러우리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저주를 준비했다. 그들의 긍지를 빼앗고 가장 모욕적인 죽음을 안겨줄 저주를. 지팡이는 필요하지 않았다. 아주, 아주 날카로운 단도 하나만이 필요했다. 부정하게 만들어진 단도에 내 명을 깎아 그들을 해할 저주를 담았다.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전쟁은 가장 치열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좋은 시기였다.
...
양 측의 전투가 심화되었을 때, 나는 마법부의 오러를 흉내내어 전쟁 속으로 섞여들었다. 금지된 저주를 날리는 그들에게 거침없이 반격을 날리며 안으로,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한복판에서 나의 핏줄들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시작했다. 속죄이자 단죄라는 이름의 잘못을.
그 날 그 단검에 몇의 피가 스며들었는지 끝내 기억하지 못 한다. 확실한 것은 당시 스피어리의 이름을 이은 자라면 전부,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바론이었다. 내가 아니라.
6. 그 날, 나를 제외한 스피어리 가의 사람 중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철저하게 모든 이를 죽이고 가주이자 내 반신인 바론마저 내 손으로 직접 보내주었으니.
그러나 바론은 순순히 죽어주지 않았다. 그는 단검의 저주를 역이용해 내게 지울 수 없는 저주를 새겼다. 죽어가는, 그리고 죽은 자의 집념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의 지팡이로 내 가슴팍을 찌르며 남긴 것은 그가 추종자로써 받았던 문양이 흉하게 비틀려 새겨진 형상이었다. 그래, 지금 그대의 몸에 있을 그것 말이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 날 그 자리에서 죽지 못 했다. 아니면 죽음의 앞에서 덜컥 두려웠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지은 죄의 무게를 내가 알기에.
피를 피로 씻으려 한들 핏빛은 더욱 짙어질 뿐이라는 걸 왜 미리 알지 못 했을까.
이후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몸을 숨겼다. 다만 살고자 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눈을 뜨면 전쟁의 울부짖음이 들리고 눈을 감으면 내가 죽인 이가 내지르던 단말마가 시도 때도 없이 정신을 괴롭혔다. 그럼에도 죽지 못 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추하게라도 살고 싶었다. 문양이 욱신거리는 몸을 어떻게든 연명하다보니, 지독한 전쟁의 불이 꺼지는 날이 찾아왔다. 영원히 타오를 것만 같던 전쟁의 불이 꺼진 뒤에 남은 건 다 타버린 세상이었다.
"종장"
1. 전쟁이 끝난 후, 남아있던 스피어리의 잔재들을 처리하거나 처분해 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가문의 초상화도 태피스트리도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내 나름 철저하게 스피어리의 흔적을 지우고 그 위를 덮기 위해 스피델리라는 이름을 세웠다.
허술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그대는 알 것이다. 허술해보여도 그 뒤를 전혀 캘 수 없었던 것을.
없는 것은 찾을 수 없고, 설사 아는 이가 있더라도 쉬이 입에 담지 않았을테니.
모든 것은 혼란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졌고, 반대하거나 막는 이 하나 없었으니 순조롭기만 했다. 전쟁의 여파가 가라앉을 무렵에 새로운 이름을 조용히 세간에 흘려넣었고 나는 그렇게 스피델리의 초대 당주가 되었다.
2. 그 다음은 말할 것도 없다. 스피델리는 순탄히 가지를 뻗었다. 내가 정한 조건에 따라 문양을 가진 자식이 내 뒤를 잇고, 그 다음 문양의 소유자가 뒤를 잇고 다시 이어 그대에게까지 다다른 것이다.
문양을 가진 순혈 자식에게 가주를 넘겨줄 것.
그것이 스피델리의 가주를 잇는 조건이다. 그대가 기억해야 할 가문의 수칙이기도 하다. 그대가 이 가문을 존속해 나갈 것이라면 말이다. 하여 대답을 들을 수는 없지만 물음은 남겨두겠다.
당대의 가주가 된 그대여. 이 죄와 업을 짊어진 가문을 그대는 어찌할텐가.
오염에 물들어 그대로 끝을 맞이할 것인가. 독을 머금었을지언정 가지를 뻗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할 것인가.
내게 묻는다면 이리 대답하겠다. 지금도 후회한다. 그 날 그 무게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3. 내가 남길 말은 여기까지다. 이 수기에 뒤를 이은 가주들이 각자의 기록을 채우도록 해두었으니 모쪼록 그대에게 쓸모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대를 이어나갈 것이라면 그대의 후계를 위한 기록을 이어서 남겨주길 바란다.
만약, 만약이지만, 더이상 대를 잇지 않을 것이라면 이 수기는 그대의 명과 함께 끝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길.
"그렇지 않은가? 동화학원의 안전을 명분으로 한가로이 까마귀 사냥이나 즐기는 그대와 공석인 학생대표를 대신해서 자발적으로 순찰을 한다는 명분으로 밤놀이를 즐기고 있는 내가 과연 뭐가 다른가?"
물론 후자는 뻥이다. 사실 반정도만 뻥이다. 아성이 학생대표를 대신해서 순찰을 돈다는 것. 사실 건 사감도 모를 것이다. 왜? 1분 전에 그가 그 스스로에게 붙힌 명분이기 때문이다. 아성은 부디 그가 자신의 거짓말을 모르길 바라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대는 현궁소속인데 왜 청궁에 와서 순찰을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군. 내가 탈이라면 학생대표가 순찰을 포기한 현궁을 노리겠지. 안그런가? 친구"
아성은 발렌이 자신의 손안의 쥐를 까마귀에게 주는 것을 보고 역겹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굳이 내 앞에서 그럴필요가 있나 싶지만...뭐 사실 나도 고기를 먹고 하니 뭐라 할말은 없네."
아성은 슬슬 억지로 발렌의 말투를 따라하는 것이 지겹게 느껴졌다. 굳이 현궁 학생대표를 도발할 필요도 없다. 사실 발렌은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니까. 이상한 논리와 억지를 들이대며 자신의 무고함을 드러내는 스스로의 행동이 추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발렌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싶어졌다. 초면에 '자네'라고 부르며 하대하는 그 말투 때문인지 아성을 보는 발렌의 눈빛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네~ 죄송합니다.'하고 돌아가면 그날밤은 잠을 못 잘것 같았다.
발렌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로켓을 만지작거리더니 딱딱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성은 그 모습이 제법 웃겼는 지 씨익 웃으며 다시한번 그를 놀렸다.
"아 오케이 오케이 첫째 둘째 모르겠고 한줄요약하자. 돌아가지 않으면 점수를 까겠다는 거지?"
아성은 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탈 쓴 정신병자들이 이곳을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그리고 웃음기를 거두고 그에게 말했다.
"나도 하나 말하지. 네가 탈이었으면 넌 벌써 죽었어."
금지된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탈들은 그 마법으로 머릿수 차이를 극복하고 다수의 학생들을 가지고 놀았다. 사감과 학생대표가 함께 순찰을 도는 것도 아니고 학생대표 따로 순찰을 돌게한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설사 무사히 교수를 불러 탈들을 퇴치한다고 해도 최초 신고자인 발렌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 전 이전부터 그게 궁금했어요.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생명의 부재, 혹은 생명의 끝이 죽음 아닌가요?" " 그렇다면 생물이 죽을 때는 현무가 그에게 죽음을 주입하는 형태인가요? 아니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과 죽음을 각기 다른 사방신이 맡는 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물의 죽음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현무가 명이 다한 이에게 죽음을 주는 것인가 그렇다면 명이 다한 이라는 것은 청룡이 정하는 것인가 현무가 정하는 것인가.
" 그래도 상관없어요. 청룡이 생명을 주관하는 건 확실하고 결국 모든 삶은 그의 손에 있으니까요. 작은 벌레들부터 우리 학생들의 생명도요. " " 현무도 마찮가지에요. 그가 원한다면 누구도 죽지 않을테니까요."
건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속력을 올려, 청궁 상공을 천천히 날기 시작했다.
" 곤 사감쌤한테는 감초 사탕을 좀 많이 뿌리는 게 어때요? 항상 애매하게 뿌리니까 보복을 당하죠."
그리고 자기 주머니에 있는 사탕 반통를 청궁 상공에 뿌렸다. 사탕들은 학생들을 향해 입질을 시작했고 많은 학생들이 아파하며 사탕과 싸웠다. 결국 모두가 맛있는 사탕을 즐겼다.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까마귀 사냥이라는 말에 달링이 잠시 고개를 들어 당신을 빤히 쳐다보다 다시 쥐를 뜯었다. 원내의 쥐는 통통하기 때문에 특식이다. 본가에서는 잘 맛보지 못하는 것을 여기서라도 즐기는 것이다. 그도 딱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쥐를 잡는 건 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니플러를 잡아 뜯는 것보단야 훨씬 나은 선택이기도 했다.
공석인 자리를 대신하기보다 아예 눌러앉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 미심쩍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지만 생각을 읽는 재주는 없었기 때문에 "조만간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도록 하지." 하고 답했다.
"자네는 공석인 자리를 대신한다면 다른 학년대표의 순찰 루트에 겹치지 않도록 필히 알아야 할 텐데 내가 청궁, 주궁, 백궁, 현궁. 이리 마름모꼴로 순회함을 정녕 모르는 겐가?"
그는 진심으로 물었다. 순찰 자리가 겹쳐 다른 곳이 비는 것을 자처하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대표에게 자신의 순찰 루트를 미리 알려주곤 했다. 겹친다면 그것만큼 비효율적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겹치기라도 했다면 그는 가차없이 1점을 차감하려다 취소하고는 했다. 달링은 고개를 들고 당신을 바라보다 반도 먹지 못한 쥐를 발톱으로 쥐고 부리로 머리를 덥석 물었다. 그리고 뜯어내 한입에 삼켰다. 그는 "그러다 체하니 제발 천천히 먹어주련." 하고 달링을 달랬다. 이 영리한 새가 지금 상황을 알아듣고 삐진게 분명하다.
이제 달링이 토라진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는 오랜 시간동안 인내했다. 말투를 따라해도 마법을 쓰지 않았고, 비아냥거려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놔도 점수 차감 없이 넘어갔다. 그가 만약 수행하는 중이라면 깨달음을 얻고 득도했을 것이다! 가문 욕을 들어도 그러려니 싶었지만 국화주에서 결국 그의 인내심은 폭발했다. 이런 날이면 그는 마법을 쓰곤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러면 죽여보게."
그의 어색한 표정이 천천히 풀렸다. 진심이 담긴 미소였다. 감정이 서투른 그는 웃는 순간이 드물었는데, 화가 난게 분명했다. 뒤로 그가 앙상한 손가락을 들어 목의 한곳을 가리켰다.
"이쪽을 향해 섹튬셈프라를 쓰면 아무리 보호 주술이 걸려있다 해도 경동맥의 손상으로 시간이 지나면 죽을 테지. 탈이었으면 죽었을 거라 했나? 재밌군. 내 타 학생에게 듣기로는 살인 저주를 쓰지 못한다 들었네. 헌데 어떤 방법으로 죽일지 자네는 알고 있는 듯 하군 그래? 크루시오로 인한 쇼크사인가? 아니면 역시 과다출혈인가? 죽여본 적이 있나? 아니면 죽는 장면을 직접 보고 어설프게 따라해보려는 셈인가?"
우습군! 그는 하! 하고 날카롭게 헛웃음을 뱉었다.
"추모하는 시간동안 고작 다시는 국화주를 만들기 싫고 누군가 슬퍼하는 꼴이 보고싶지 않았나 보군, 그래. 그게 정상적인 태도지. 누가 깊게 이해하려 드나. 죽으면 끝이고 죽은 사람들만 앞날 창창했는데 아깝지. 탈 쓴 정신병자 때문에 또 무서운 일이 일어났어. 안 그래?"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아. 삶과 죽음의 경중에서 죽음을 감히 슬픈 것으로 취급하는 자. 죽었을 것이라고? 죽음을 뭘로 생각하길래 죽었을 것이란 말을 협박으로 사용할 수 있지? 그의 역린을 건드린게 분명했다. 아니면 달링이 옆에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다 날개를 펼쳐 저멀리 나무 사이로 숨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봅세. 원내에서 10명이 죽었네. 가장 안전하다 생각된 공간에서 마법부는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지킬 수 없으며, 탈이 죽이러 왔을 때만 반격을 할 수 있으니 그 순간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는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듣자하니 현궁 소속이었던 매구의 추종자가 아무렇지 않게 탈옥했다고 했다! 마법부도 믿을 수 없고, 학교에서는 임시 휴교라는 말만 했다. 그렇다고 탈이 안 올 것 같나? 정상인이면 안 가는게 맞지만 그들이 정상인이던가?
"내 자신을 과신할 수밖에 없네. 교수가 무얼 했지? 그동안 사감은 뭘 했지? 사람이 죽는 동안 뭘 했냔 말이야. 교장은 무얼 하고 있지? 계획이 있는 건가? 그러면 학생의 목숨을 내놓고 지금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는 말 아닌가?"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자네들이 그 빌어먹을 국화주를 만드는 시간동안 원내에서 희생된 10구의 시체를 직접 염을 하고 토막난 곳을 꿰맸네. 이미 뜯어먹혀 없는 신체 부위는 유족의 동의를 얻어서 솜과 밀랍으로 넣어 채웠고, 최대한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보내주려 했네. 눈 감지 못한 것을 죄다 눈 감겼고 수의를 입혀 관에 넣었어. 그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는가? 이 학원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일세. 원내의 보안이 이따위인데 이제 믿을 건 내 자신 뿐이 아닌가. 국화주를 더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나? 꿈 깨게. 앞으로 몇번이고 더 국화주를 만들게 뻔하니까. 그게 나만 될 줄 아나? 너도 될 수 있다 이 소리지. 머리가 아직 잘 돌아가고 눈치가 있다면 고작 3년 전만 해도 원내에서 미친 새끼 성질을 긁어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아즈카반에서 탈옥해서 뻔뻔하게 돌아다니고 있음을 자네도 알 텐데?"
손에 쥐여 매달렸던 로켓의 사슬이 손바닥을 타며 힘없이 늘어졌다. 로켓 사이에 무언가 끼워진게 분명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로켓 사이로 가느다란 실같은 무언가가 같이 살랑였다. 늘어진 로켓처럼 그의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잠시 소맷단으로 입을 가리고 밭은 기침을 했다.
아무래도 벨이 화난 포인트는 너 죽는다! 이게 맞긴 한데 정상인 입장에서의 날 지금 죽을 사람으로 보는거야? 보다는 원내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고 개미 하나조차 신뢰할 수 없는 마당에 지금 저 말이 나오나+여기 가문 사람들은 죽음이 하나의 문화인데 지금 나랑 죽음으로 토론하자 그건가+지금 네가 내 단 하나뿐인 여신인 달링을 역겹게 쳐다봤냐 이 복합적인.......무언가네요..🤦♀️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왠 숲 한가운데였다. 이상한 곳으로 끌려온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학교 앞 숲이었지만. 왠지 주저앉아있던 몸을 일으키자 주변에 숨어있던 니플러들이 우수수 도망간다. 그 모습들을 보며 키득이고, 일단 숲에서 나가는 것부터 했다. 오기 전에 샤워했는데 돌아가서 또 해야 할 판이었다.
휘적휘적 나무와 수풀을 비집고 나와보니 어느새 통금시간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아까는 분명 아니었는데.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며 학교를 향해 걷는다. 그리고 가는 길에 새로운 페인트볼을 발견했다.
통-
가벼운 소리와 함께 공을 차올려 그대로 손바닥에 안착시킨다. 어쩐지 요 말랑말랑함이 낮설지가 않은데. 하도 터뜨려서 그렇겠지. 약간의 위화감을 무시하며 공을 터뜨렸다.
"강제로 너의 하루가 다방면으로 전세계에 중계된다면?" 발렌타인: 정말 그런 짓을 하고 싶나? 내 자신도 떳떳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네만 자네의 그...관음하는 행위 말일세. 그래. 그 뒤틀린 성벽 따윈 알고 싶지가 않았네. 나를 중계해서 무얼 하려는 겐가. 그래도 굳이 중계하겠다면 네뷸러스로 숨어 사는수밖에 없겠군.
"어떤 초능력을 얻고 싶어?" 발렌타인: 그런게 굳이 필요한가?
"비밀요원이 된다면 코드네임은 무엇으로?" 발렌타인: 오,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네만. 코드네임이라. 귀찮으니 위스키*로 합세.
>>182 저, 저, 제가, 부빗을 받았어요!!!!🥰🥰🥰🥰 이렇게 기쁜 날은 없네요!((기뻐서 방방 뛰어요!!)) 제 다갓이 무섭다뇨! 다갓님께서 혼란만 점지하지 않는다면 저는 가장 무해한 벨주랍니다.🤨 그렇지만 크라임씬 캡틴은..((동의해요..)) 이번엔 과연 어떤 작대기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