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퀘스트(제한, 주의사항 확인 필수): https://www.evernote.com/shard/s662/sh/409d36f0-d625-4fa8-8df0-9df4bb9aee95/030cc87ff6ca3c1a1cd392b6299bf69c
10. 웹박수: https://forms.gle/mss4JWR9VV2ZFqe16
MA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음료는 계절에 어긋나게 싹을 틔워서 꽃을 피우는 국화꽃으로 만든 국화주다. 그렇기에, 그 신에게서 태어난 신수들을 모시는 동화학원에서는 학교의 학생이나 교직원이 사망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추모하고 MA에게 그들의 영혼을 잘 지켜달라는 의미로 국화주를 바치게 되었다.
하루에 수업 하나. 오늘만큼은 이 패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모처럼 들은 수업 내용이 그다지 얻을 것이 없어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바로 다른 수업을 들어야 했다면 무단으로 쨌을지도 모를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숙사 점수가 깎인다고 한소리 들을테지만 알게 뭐냐. 쓸 일도 없이 쌓아둔 점수인데 뭐.
그렇게 수업이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돌아와 잠깐만, 이라며 엎어진게 문제였다. 설마 잠들 줄은. 누운 것도 아니고 그냥 침대 옆에 앉아 살짝 기댔을 뿐인데. 눈을 떴을 때는 방 안이 캄캄해 순간 리치가 또 눈 위에 꼬리를 얹었나 했다. 하지만 보들보들한 털의 감촉은 무릎 위에 있었고, 단순히 해가 져서 어두운 것 뿐이었다.
응. 망했다.
안 그래도 약에 의존한 며칠 때문에 밤잠을 잘 잘 수 있을까 어쩔까 애매했는데 저녁잠이라니. 최소한 일찍 잠들지는 못 하겠다. 저와 같이 깨어 꼬물거리는 리치를 쓰다듬어주며 한숨을 푹 내쉰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산책이나 나갔다 와야겠다.
"리치~ 산책 갈래?"
먀우우우...
혹시나 해서 한번 물어보니 추욱 늘어지는 감각과 함께 부정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 그래. 흐물렁거리는 리치를 안아 보금자리에 데려다주고, 촌스러운 도복 대신 깔끔한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가려는 곳이 근처 중에서도 외진 곳이었으니 설마, 하며 어깨가 드러나는 상의를 걸쳤다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상기하며 얇은 여름용 가디건을 그 위에 겹쳤다. 빛도 없고 하니 이정도로만 가려도 안 보이겠거니 하고. 그 다음은 반지 꼈는지 확인하고, 로켓은 옷자락 안으로 잘 숨기고, 마무리는 지팡이로 머리를 올렸다. 그리고 누구보다 조용히 방을 나서, 가능한 발소리가 나지 않는 걸음으로 백궁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금지된 숲은 초입구였다.
"음?"
금지된 숲 입구의 풀이끼를 몇번 밟기도 전에 그녀의 눈이 사람의 형상을 먼저 발견했다. 설마했는데 진짜 누가 있네. 거짓말 같이 들어맞은 상황에 그녀는 조심히 가디건의 자락을 추슬렀다. 그러면서 상대가 누구인지 판별을 한 결과, 아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한번 불러보았다.
"단태 선배, 맞으신가요?"
훌쩍한 키에 하늘색 머리카락은 개성 넘치는 학원 내에서도 보기 드문, 아니, 그녀의 눈에 드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이었으니. 그래서인지 경계 없는 모습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물음을 던져본다.
백궁에 도착한 건 꽤 늦은 시간이다. 한시 급하게 진행할 일도 아닐 뿐더러 거리가 조금 있기 때문이다. 물병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의 소리없는 발걸음과 달리 찰랑이는 물소리는 맑다. 귀를 기울이면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들릴 리가 없으니 쓸데없는 감상은 그만 하기로 했다.
그는 백궁에 들어선다. 백궁에 들어가본 일은 손에 꼽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순혈이니 혼혈이니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고, 단순히 하얀 색을 꺼리기 때문이었다. 내색하지 않고 그는 리 사감에게 도착한다. 신당을 중심으로 채워진 물이 현무의 것임을 쉽게 알아챘다. 이렇게까지 한기 서린 물은 원내에서 현궁을 빼면 없기 때문이다.
일은 순조롭다. 그는 물병의 뚜껑을 열고 리 사감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본다. 무얼 하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묻지 않는다. 집중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인내한다. 그는 그나마 체력이 남아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국화를 병에 담자 그는 뚜껑을 닫았다. 부적을 붙이는 걸 보며 보통의 것은 아니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자 그는 목례를 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술병을 감 선생에게 돌려주러 갈 시간이다. 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현궁의 것보다는 못하지만 제법 차갑다. 그는 오늘 봄과 여름, 가을을 겪었으니 이제 겨울로 돌아가야만 한다. 현궁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혼자다. 앞서 서술하였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변할 일은 없다. 홀로 돌아가는 길, 그는 입속의 말을 빙빙 돌린다.
너는 빛으로 가야지. 절애하는 자야, 너만이라도 빛으로 가야지. 너마저 나락으로 가버리면 내가 무엇이 되겠니. 나를 따라오지 말고 너는 행복해야 할 텐데.
현궁에는 현무가 있고 현무는 죽음을 주관하며 겨울을 상징한다. 죽음은 전혀 차가운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고작 시체가 식는다는 것에 착안해 겨울을 죽음의 계절로 착각하곤 한다. 겨울이 길어 상대적으로 죽는 사람이 많다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날씨를 고려한다 해도 동사한 사람도 많으나 열사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다. 이젠 날씨가 죽음의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어도 될 법 하지 않나?
그는 이 겨울=죽음이라는 집단지성에 대해 고찰해볼까 고심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늘 몇백년간 다져진 사람들의 아집을 깨부술 답을 내놓아도 들어먹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끝난다. 지금도 막 그 생각을 마치고 감 사감 앞에 도착했다. 그의 귀소본능은 제법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는 술이 담긴 병을 돌려준다. 이걸로 끝이다.
금지된 숲으로 들어서지 않고 근처를 맴도는 건 아무리봐도 정신나간 짓이라고 생각한다. 딱! 새된 소리가 귀를 흔들었다. 잘다듬어진 매끈한 손톱을 이로 세게 깨물었다가 놓고 단태는 그 손으로 금지된 숲 초입구에 있는 나무를 짚고 걸음을 멈췄다. 깊은 숲 안쪽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암적색 눈동자가 휙- 하고 하늘로 옮겨진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박혀있는 흐릿한 보름달이 눈에 들어오고 단태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열이 오른 머리로 인해, 눈앞이 붉게 물들어있는 착각이 든다.
지끈지끈하게 뇌를 헤집어대는 두통과는 명백하게 다른 어지러움이 누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누군가의 목소리는 분명히 고막에 닿아왔다. 보름달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단태의 암적색 눈동자가 느릿하게 굴렀다. "아." 누가 자신을 불렀는지 단태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펠리체였나. 절벽에서 다이빙을 한 것에 휘말린 이래 가끔 수업이나 탈과 대치할 때 봤었던 후배. 단태는 자신의 입가에 손을 대며 엄지와 약지를 이용해 눌렀다.
"오랜만이야. 자기야- 그러니까.. 펠리체 맞지? 잘 지냈어? 우리 자주 마주쳤었는데 제대로 인사할 시간이 없었네. 그치?"
손을 떼어내고 단태는 걸어오는 펠리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등 뒤에 닿는 나무에 잠시 손을 올렸다가 꽉 쥐면서도 얼굴 위에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웃음을 뻔뻔스럽게 떠올리며 평소와 다르지 않을 목소리로 재잘재잘 떠들었다. "산책이냐고 물어보면- 음! 맞아. 산책이지. 요즘 일이 많았잖아?" 하고 말을 덧대며 단태가 찡긋 윙크를 해보이고는 곧 나무에서 등을 떼어냈다. 한걸음 펠리체에게 다가선 것이다.
하늘빛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길어보인다 싶었는데, 고개를 들고 있어서 그랬나보다. 단태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이자 기억 속의 그 머리칼과 얼추 들어맞는다. 얼추, 라고 한 건 사방이 어둑하니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였다. 그래서인가. 그녀를 향해 돌아서는 단태의 모습이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네, 맞아요. 보시다시피 잘 지내는 중이죠."
그녀의 이름과 함께 돌아온 대답에 보시다시피 라고 하며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요근래, 습격이 있어도 자진하지 않으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던 그녀였기에 잘 지냈는가에 대한 건 누구보다 잘 지냈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단태는, 그녀의 기억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이라면 검은 표범에게 물리는 모습이었다. 그대로 맞아준 탓에 제법 다쳤었을 걸로 보였지. 지금 보니 그 때의 부상은 다 나은 듯 했다. 처음부터 걱정도 안 했지만.
"마주칠 때마다 인사할 상황이 아니긴 했으니까요."
그런 거 치곤 수업 때도 인사를 안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부분은 알아서 적당히 생각해주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하며 나무에서 등을 떼는 단태를 본다. 저를 향하는 듯한 걸음을 보고, 다시 단태의 얼굴을 바라보자 올림머리를 지탱한 지팡이에서 은빛 석산 장식이 달랑거렸다.
"요즘 뒤숭숭하긴 했죠. 그래도 산책 장소로 여길 고르는 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금지된 숲의 초입구. 여긴 숲 안의 위험한 동물들도 동물들이지만 과거 몇번의 습격이 있던 곳이기도 했다. 바로 최근의 참사도 이곳을 넘어 저 안쪽에서 일어나지 않았는가. 그러니 위험하다면 위험한 곳이지만, 그런 곳에 그녀도 와 있었다. 가까운 현궁도 아닌 거리가 있는 백궁의 그녀가.
"뭐,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을지 모르니, 그런가보다 하죠. 저도 여기 있는 마당에 선배에게 뭐라 할 자격은 없고. 각자 원하는만큼 산책을 즐기면 되겠네요."
이 말 저 말 좀 하는가 싶더니 돌연 말을 돌려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바꿔버린다. 그리고 그녀를 향하는 단태와 달리, 그녀의 정면을 향해 두어걸음 내딛었다. 가볍게 뒷짐을 지고, 나홀로 산책을 즐기러 온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는 페인트볼을 멀리했다. 보이는 족족 지팡이로 툭 건드려 기숙사 밖으로 쫓아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쥐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렇지만 인생사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다. 그는 새 페인트볼을 발견하고 지팡이를 집어들려 했으나 그 옆에 가지런히 자리한 페인트볼을 움켜쥐었다. 그가 다시 욕을 뱉었다. "젠장!"
일단 시작부터 엿을 먹진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방에서 복도로 나가보았다. 그러자 이게 왠걸, 저번과 비교해서 더하면 더했지 덜한 상황은 아닌 상황이 기숙사 내에 한가득이다. 밖으로 나가니 더 혼란스러웠고. 온갖 동물귀와 꼬리와 새의 날개들과 그 속에 섞여 우는 아이들이란...
그만 정신이 아찔해져 짚은 난간에 때마침 페인트볼이 있었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익숙한 감촉에 손을 떼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