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퀘스트(제한, 주의사항 확인 필수): https://www.evernote.com/shard/s662/sh/409d36f0-d625-4fa8-8df0-9df4bb9aee95/030cc87ff6ca3c1a1cd392b6299bf69c
10. 웹박수: https://forms.gle/mss4JWR9VV2ZFqe16
MA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음료는 계절에 어긋나게 싹을 틔워서 꽃을 피우는 국화꽃으로 만든 국화주다. 그렇기에, 그 신에게서 태어난 신수들을 모시는 동화학원에서는 학교의 학생이나 교직원이 사망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추모하고 MA에게 그들의 영혼을 잘 지켜달라는 의미로 국화주를 바치게 되었다.
그는 우물을 내려다본다. 이건 또 언제 만든 건지 모르겠다. 그는 우물 안을 들여다보듯 고개를 쭉 뺐다. 우물의 속은 깊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이대로 발이라도 헛디뎌 빠져들면 아무도 그를 꺼내주지 않을 것이다. 미쳤다고 들어갈 일이 있겠냐만은 누군가는 또 여기에 빠져들어 죽어버리고 싶다는 한심한 생각을 할 것 같았다. 저기 저 학생처럼 말이다. 저 멀리서 코를 훌쩍이며 아직도 눈물을 그치지 못한 학생을 감정없이 쳐다보다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해도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하면 그는 이 우물에 사람을 집어 던질지도 모른다.
그는 줄을 당겨 물을 긷기 시작한다. 물이 담긴 양동이는 무거워 한참을 낑낑대야 했다. 예상 외의 난관이었다.
하 가문의 사람들은 자신을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한 이들에게는 특별한 그림을 선물한다. 은으로부터 9대쯤 위에 있었던 것 같은 한 특출난 마법사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친구에게 11개월에 걸친 정보 수집을 걸쳐 완성한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선물했다고 한다. 보통의 초상화는 모델이 제일 좋아하던 구절을 내뱉고 평소 태도를 따라할 뿐이지만, 그가 만든 초상화는 철학이나 우주의 원리, 갖가지 신기한 상식들을 생전처럼 친구에게 알려 주었으며 그림으로 재현된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고뇌할 정도의 고차원적 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공감각의 형태로 나타나는 초감각이 유난히 짙게 나타났던 당대의 힘 덕분으로, 그는 친구의 주변인들과 친구에게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쓰던 물건을 보고 생전에 그린 오래된 초상화를 보면서 주변인들이 그를 어떻게 봤고 그가 순간순간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생생하게 느끼고 묘사할 수 있었다. 그 초상화는 쭉 친구의 저택에 걸려 있다가 친구와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한 후 본화의 의지에 따라 찢겨 생을 마감해,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 차 하, 중국에 머물던 하 가문 사람의 기록
삶이 있다면 그에게 엿을 주는 존재가 분명하다. 그는 요양하면서 침대에만 있었다보니 체력이 더 약해졌음을 깨달았다. 고작 물 한번 긷는 것에 온 힘을 뺐는지 숨을 돌리며 물을 병에 가득 담았다. 이걸 백궁으로 가져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정신이 아득하지만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 또 감 사감을 울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순결한 피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동일한 피를 섞고 섞고 또 섞는다는 뜻이다. 마법약은 동일한 재료를 자꾸만 넣으면 특정한 성질이 강해져 쉽게 다룰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순수 혈통의 피에 마법사 농도를 늘려야 한다고 처음 생각한, 그 후대에게 그 생각을 계속해서 물려준, 최초의 마법사-선대는 참으로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가끔은 참을 수 없는 광기, 어떤 열망을 느꼈다. 다른 성을 쓰고 다른 이름을 받았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있다는 것처럼.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깼다. 견딜 수 없는 생각에 잠시 저녁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 불쾌할 정돈 아니었지만 소음의 원인이 궁금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방을 나가 보니 바쁘게 드레스룸과 복도를 오가는 사람이 보였다. 내 누이, 도련님이다.
"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
막 깨어난 후라도 우아한 억양을 꾸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캐리어에 옷을 넣고 종이조각 하나를 한참 노려보던 도련님은 이쪽을 돌아봤다.
" 아, 군. 잠시 짐을 싸고 있었어. " " 여행이라도 가시는지요? " " 아니, 가출. "
가출이라. 이 도련님이 가출이란 말을 입에 담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여덟 살, 내가 여섯 살일 때 한국에 온 이후 도련님은 양친(養親)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는지 맹목적인 믿음을 버렸지만 여전히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내가 무엇이든 일찍 마치고 남은 시간을 불쾌하고 천박한 것에 쓸 수 있는 것과 달리 그는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 변덕이 드셨나 보군요. " " 변덕? 아니야, 군. 이건 계획된 거야. 부모님은 내가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 " " 계획이라. 머물 장소는 알아두셨습니까? "
그가 하의 피 때문인진 몰라도 어둠을 잘 가려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양친이 절대 그를 찾으러 가지 않을 어둡고 위험한 장소로 향하려 한다면 나는 양친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와 동등하지만 그의 부모에겐 은혜를 입고 있었으니.
" 쓸데없는 걱정이야. 이제부터 우리 가문과 그나마 친교가 있었던 가문인 임(恁)으로 갈 테니까. 그 집에서 나에게 손님방을 내어주기로 했지. "
그러고보니 한국에서 가출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풀이하면 집을 나간다는 뜻이었지. 하지만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가 직역한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더 드물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의구심을 품은 눈으로 도련님을 바라보았다.
" 친교가 있는 가문으로 가는 것이 어떻게 가출이 될 수 있는지가 궁금합니다만. " " 원래대로라면 미리 부모님한테 말하고 일주일 동안 곰곰히 생각해보란 말을 듣고도 바짓가랑이를 잡혔을 텐데, 임 가문의 장자를 통해 먼저 일을 진행시키고 후에 통보했잖아. 원래대로였다면 우리 부모님은 절대 남의 집에 묵고 오는 걸 허락하지 않았을 거야. 한 달 동안 꽤 외로울 테지만 그건 지금까지 날 새끼 쥐처럼 여리게 취급했던 대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
도련님이 떠난 후에 들은 것은, 도련님이 한 달 동안 마법적인 지식을 교류할 겸 가문 간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임 가로 잠시 수학(受學)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플루가루 타는 냄새가 났다. 양친이 우는 소리를 몇 번 한 이후 가끔 저녁에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주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연락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먹물을 잘못 떨어트린 종이를 손 안 대고 가루가 되도록 찢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무언으로 손짓하자 가루는 쓰레기통으로 빨려들어갔다. 새 종이를 꺼냈다. 저 도련님이 내 자리를 다시 빼앗을 걱정은 없어서 다행이다. 나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언제 손에 넣을지 모르는 그것을. 그러나, 저 도련님은 남의 것을 빼앗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 또한 손에 쥐어주는 것을 움켜쥐기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쥐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다고 알았을 뿐. 먹을 적신 붓을 죽 긋는다. 시원하다. 문득 도련님이 종이 앞에 서 있었다면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해졌다. 영원히 느낀 적 없는 그 감각이 궁금해졌다. - 미 하, 환영받는 이방인의 기록
한 편 더 쓰려고 했는데 귀찮아 (누워 있는 이모티콘) 평소라면 금손이란 말이 과찬이고 어쩌구 했겠지만 난 빅데이터 분석 결과 보통 자신이 글을 못 쓰고 다른 사람이 잘 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냥 각자 글에 차이가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고 금손이고 똥손이고 가릴 필요 없이 모든 사람의 글은 소중하다는 결과를 도출했기 때문에 그냥 누울 거야. 줄여서 데굴데굴.
미심쩍은 눈길로 책상에 놓아둔 공을 찬찬히 살핀다. 저한테 이런 공이 있었던가. 아니 무지갯빛으로 반짝이기만 할 뿐 이런 필요도 없는 공을 저가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굴러온 것일까. 공을 잡으려 손을 뻗다, 저번의 유리병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거둔다. 이 공이 비슷하거나 같은 것이라면. 무언가 어떠한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그때와 같은 장난은 한 번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스베타는 공에게서 관심을 끄며, 침대 끝에 앉다, 문뜩 벌떡 일어나며 침대와 손을 살핀다. 손에 눌리며 터진 그건, 또 다른 공이었다.
하루에 수업 하나. 오늘만큼은 이 패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모처럼 들은 수업 내용이 그다지 얻을 것이 없어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바로 다른 수업을 들어야 했다면 무단으로 쨌을지도 모를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숙사 점수가 깎인다고 한소리 들을테지만 알게 뭐냐. 쓸 일도 없이 쌓아둔 점수인데 뭐.
그렇게 수업이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돌아와 잠깐만, 이라며 엎어진게 문제였다. 설마 잠들 줄은. 누운 것도 아니고 그냥 침대 옆에 앉아 살짝 기댔을 뿐인데. 눈을 떴을 때는 방 안이 캄캄해 순간 리치가 또 눈 위에 꼬리를 얹었나 했다. 하지만 보들보들한 털의 감촉은 무릎 위에 있었고, 단순히 해가 져서 어두운 것 뿐이었다.
응. 망했다.
안 그래도 약에 의존한 며칠 때문에 밤잠을 잘 잘 수 있을까 어쩔까 애매했는데 저녁잠이라니. 최소한 일찍 잠들지는 못 하겠다. 저와 같이 깨어 꼬물거리는 리치를 쓰다듬어주며 한숨을 푹 내쉰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산책이나 나갔다 와야겠다.
"리치~ 산책 갈래?"
먀우우우...
혹시나 해서 한번 물어보니 추욱 늘어지는 감각과 함께 부정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 그래. 흐물렁거리는 리치를 안아 보금자리에 데려다주고, 촌스러운 도복 대신 깔끔한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가려는 곳이 근처 중에서도 외진 곳이었으니 설마, 하며 어깨가 드러나는 상의를 걸쳤다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상기하며 얇은 여름용 가디건을 그 위에 겹쳤다. 빛도 없고 하니 이정도로만 가려도 안 보이겠거니 하고. 그 다음은 반지 꼈는지 확인하고, 로켓은 옷자락 안으로 잘 숨기고, 마무리는 지팡이로 머리를 올렸다. 그리고 누구보다 조용히 방을 나서, 가능한 발소리가 나지 않는 걸음으로 백궁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금지된 숲은 초입구였다.
"음?"
금지된 숲 입구의 풀이끼를 몇번 밟기도 전에 그녀의 눈이 사람의 형상을 먼저 발견했다. 설마했는데 진짜 누가 있네. 거짓말 같이 들어맞은 상황에 그녀는 조심히 가디건의 자락을 추슬렀다. 그러면서 상대가 누구인지 판별을 한 결과, 아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한번 불러보았다.
"단태 선배, 맞으신가요?"
훌쩍한 키에 하늘색 머리카락은 개성 넘치는 학원 내에서도 보기 드문, 아니, 그녀의 눈에 드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이었으니. 그래서인지 경계 없는 모습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물음을 던져본다.
백궁에 도착한 건 꽤 늦은 시간이다. 한시 급하게 진행할 일도 아닐 뿐더러 거리가 조금 있기 때문이다. 물병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의 소리없는 발걸음과 달리 찰랑이는 물소리는 맑다. 귀를 기울이면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들릴 리가 없으니 쓸데없는 감상은 그만 하기로 했다.
그는 백궁에 들어선다. 백궁에 들어가본 일은 손에 꼽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순혈이니 혼혈이니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고, 단순히 하얀 색을 꺼리기 때문이었다. 내색하지 않고 그는 리 사감에게 도착한다. 신당을 중심으로 채워진 물이 현무의 것임을 쉽게 알아챘다. 이렇게까지 한기 서린 물은 원내에서 현궁을 빼면 없기 때문이다.
일은 순조롭다. 그는 물병의 뚜껑을 열고 리 사감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본다. 무얼 하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묻지 않는다. 집중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인내한다. 그는 그나마 체력이 남아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국화를 병에 담자 그는 뚜껑을 닫았다. 부적을 붙이는 걸 보며 보통의 것은 아니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자 그는 목례를 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술병을 감 선생에게 돌려주러 갈 시간이다. 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현궁의 것보다는 못하지만 제법 차갑다. 그는 오늘 봄과 여름, 가을을 겪었으니 이제 겨울로 돌아가야만 한다. 현궁으로 돌아가는 길은 여전히 혼자다. 앞서 서술하였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변할 일은 없다. 홀로 돌아가는 길, 그는 입속의 말을 빙빙 돌린다.
너는 빛으로 가야지. 절애하는 자야, 너만이라도 빛으로 가야지. 너마저 나락으로 가버리면 내가 무엇이 되겠니. 나를 따라오지 말고 너는 행복해야 할 텐데.
현궁에는 현무가 있고 현무는 죽음을 주관하며 겨울을 상징한다. 죽음은 전혀 차가운 것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고작 시체가 식는다는 것에 착안해 겨울을 죽음의 계절로 착각하곤 한다. 겨울이 길어 상대적으로 죽는 사람이 많다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날씨를 고려한다 해도 동사한 사람도 많으나 열사병으로 죽는 사람도 많다. 이젠 날씨가 죽음의 계절이 여름으로 바뀌어도 될 법 하지 않나?
그는 이 겨울=죽음이라는 집단지성에 대해 고찰해볼까 고심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늘 몇백년간 다져진 사람들의 아집을 깨부술 답을 내놓아도 들어먹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끝난다. 지금도 막 그 생각을 마치고 감 사감 앞에 도착했다. 그의 귀소본능은 제법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는 술이 담긴 병을 돌려준다. 이걸로 끝이다.
금지된 숲으로 들어서지 않고 근처를 맴도는 건 아무리봐도 정신나간 짓이라고 생각한다. 딱! 새된 소리가 귀를 흔들었다. 잘다듬어진 매끈한 손톱을 이로 세게 깨물었다가 놓고 단태는 그 손으로 금지된 숲 초입구에 있는 나무를 짚고 걸음을 멈췄다. 깊은 숲 안쪽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암적색 눈동자가 휙- 하고 하늘로 옮겨진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박혀있는 흐릿한 보름달이 눈에 들어오고 단태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열이 오른 머리로 인해, 눈앞이 붉게 물들어있는 착각이 든다.
지끈지끈하게 뇌를 헤집어대는 두통과는 명백하게 다른 어지러움이 누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누군가의 목소리는 분명히 고막에 닿아왔다. 보름달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단태의 암적색 눈동자가 느릿하게 굴렀다. "아." 누가 자신을 불렀는지 단태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펠리체였나. 절벽에서 다이빙을 한 것에 휘말린 이래 가끔 수업이나 탈과 대치할 때 봤었던 후배. 단태는 자신의 입가에 손을 대며 엄지와 약지를 이용해 눌렀다.
"오랜만이야. 자기야- 그러니까.. 펠리체 맞지? 잘 지냈어? 우리 자주 마주쳤었는데 제대로 인사할 시간이 없었네. 그치?"
손을 떼어내고 단태는 걸어오는 펠리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등 뒤에 닿는 나무에 잠시 손을 올렸다가 꽉 쥐면서도 얼굴 위에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웃음을 뻔뻔스럽게 떠올리며 평소와 다르지 않을 목소리로 재잘재잘 떠들었다. "산책이냐고 물어보면- 음! 맞아. 산책이지. 요즘 일이 많았잖아?" 하고 말을 덧대며 단태가 찡긋 윙크를 해보이고는 곧 나무에서 등을 떼어냈다. 한걸음 펠리체에게 다가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