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슨 지 배 안고프면 챙겨주겠다는 소리다. 문제는 한창 성장하는 운동선수인 선하가 배 안 고플 일이 거의 없다는 점에 있다. 다행히도 선하 자체가 워낙 변덕적인 탓에 내키면 챙겨주고는 하니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 역시 아니다. 혹시 몰라? 언젠가 처들어와 입에 사탕이라도 밀어넣을지.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네? 서운하다. 나 제법 착하게 굴지 않았나? 나랑 놀기가 그렇게 싫을 줄이야."
이 말을 끝으로 선하는 투덜거리는 것을 멈춘다. 투덜거릴 시간이 없었다. 젓가락을 고쳐잡은 선하의 얼굴에 웃음이 깃든다. 주인이 플라잉디스크를 던지기만을 기다리는 개처럼 눈이 기대감에 반짝거렸다. 이 행위를 일종의 놀이라고 여기는게 틀림없었다. 거기에 자신이 이기면 상까지 주어지는.
"그러면 나는 다정하게 위로해줄게."
나는 착하니까... 선하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정말로 자신이 착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양심이란게 있기는 한 걸까? 하기사 처음 보는 사람의 튀김을 뺏어먹은 것부터가 인간 실격이다. 깊이 들어갈 새도 없이 선하가 젓가락을 내뻗었다. 야채튀김을 향한 것으로 솜씨 좋게 튀김을 낚아채려한다. 젓가락이 순간 매의 발톱처럼 날카러워보였다면 착각이 아닐지 모른다.
.dice 1 100. = 82
//내가 시스템 착각했나봐요~!! 아까... 비랑이 뺏겼다 어쩌구는 무시해주세요.... 제가 이해력 딸려서 그런 것 ㅠㅠ
아랑의 말에 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나름대로 어쨌건 납득한 모양이다. 문하는 과자들을 쥔 채로 몸을 일으켰다. 말갛게 웃는 아랑의 얼굴이, 문하의 공허하게 텅 비어 있는 검은 눈동자에 소리없이 담긴다. 호의와 오지랖이라... 문하는 입 안으로 아랑의 말을 가만히 뇌어보았다.
"나도 잘 모르겠는걸..."
하고, 문하는 자기도 모르게 힘없이 웃었다. 호의라느니 오지랖이라느니, 남에게 그런 것들을 베풀 만한 마음의 여유라는 것을 모르고 자란 문하에게는 아직 어려운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기력한 웃음마저도 평소의 무시무시할 정도의 무표정에 비하면 상당히 사람다운 표정이다. 적어도 아랑이 자기를 위해주는 마음만큼은 문하에게 제법 보람있게 가서 닿은 모양이다. 아랑을 바라보며, 정말이지 많이 사랑받고 자란 모양이다-라고, 문하는 생각했다. 다른 이들에게 저렇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주는 게 문하의 눈에는 오늘 본 그 무엇보다도 신기하게 보였기에.
나른해보이는 눈동자를 보고 생각한다. 이 애 갑자기 잠들지는 않을까? 어김없이 이상한 데로 뛰쳐나가는 생각을, 사하는 그냥 보고만 있는다. 뒷덜미 잡아채기엔 생각이 달리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래서 사하는 생각을 멈추는 대신, 곧바로 다른 생각을 내보냈다. 잠들면 어떻게 받아주지? 역시 고개부터 받쳐주는 게 중요하겠지. 머리는 중요하니까. 새슬 모르게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책까지 마련한 사하가 편안한 마음으로 클로버 하나를 꺾었다. 새슬의 허락이 떨어진 것도 맘 편하게 먹는 이유가 됐다.
"고마워."
클로버가 제 것 아니라 해도 옆자리 내주는 일은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흥얼거림 듣고 있다 덩달아 작게 콧노래 부른다. 가사 없는 노래. 작곡은 은사하. 그냥 아무렇게나 지어낸 곡이란 뜻이다. 그래도 분위기는 제법 경쾌하다.
"낭만적인 말이네."
<너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아.> 중얼거린 사하가 웃었다. 이유 모르게 따뜻하게 볕 드는 숲을 지나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빨간모자 아니고 연두색 모자 쓰고서. 새슬이 가는 길따라 나 있는 네잎클로버. 따라가면 과자로 만든 집이 나온다. 똑똑 문을 두드리면… 어라, 왜 내가 나온담. <과자 먹을래?> 하고 묻는 저와 그 앞에 서 있는 아랑. 엔딩은 함께 과자집을 다 먹어치우고, 네잎클로버를 몽땅 모은 뒤 팔아 부자가 되는…… 까지 생각하다 멈춘다. 옆에서 들리는 작은 탄성에 시선이 새슬의 손으로 갔다. 새슬이 꺾은 건 세잎클로버. 행운은 아니어도 행복이다. 눈에 들어오는 표정도 제법 즐거워보이고.
"이름 예쁘네. 나는 은사하."
대답한 사하도 <와.> 짧게 뱉었다. 세잎클로버인 거 알고도 그랬다.
"짝꿍아, 우리 행복 부자 되겠는데."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운 세잎클로버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넌 행운 찾으면 어디에 쓸 거야?> 문득 궁금해져 묻는다.
>>790 아이고 예쁘게 봐줘서 고마워 -////-......!!!! 내가 말할 타이밍인가 아닌가 고민하다 말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제 말하는데 문하 레스는... 가끔 좀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이 할미는 문하가 꼭 행복해졌음 좋겠어요.. 물 탁탁 털어서 햇볕 드는 데다 말려주고 싶어ㅠ >>791 이 맛에 스레 돌린다........ㅠㅠ 네이비 아랑이 왜 아랑주가 맘에 들어했는지 알 것 같아..... 저의 심장 중앙에도 꽂혀버렸읍니다.. 버릇까지는 아니구 생각나고 말이 되면 가끔.....? >>793 선하 속눈썹도 그렇구 내 맘속에서 공설 미인이라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쁜 사람 보면 제가.. 주접이 절로 나와요.......
>>797 안 써도 알아보는 미인이었던 거지 ㅠ 하 선하 애인 대기표 뽑고 기다리는 나....... 내 차례가 당도하던 해 내 나이 8573세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쏴버리면 어떻게 해 ㅋㅋㅋㅋㅋㅋ 사하.. 예쁘장하다곤 생각하는데 은근 취향타지 않을까 생각하구 있읍니다
>>800 헉.... 선하야 난 준비됐어.......!!!!!!!(선하: 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 덕분에.. 취향 안 타는 미인이 되었읍니다.... 사하야 인사드려라... >>801 내가 미래를 보고 왔는데 문하 아주 뽀송합니다 햇볕 냄새가 폴폴 나는 게 아주 행복해보이더라 홀홀..
비랑은 선하의 말에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으쓱합니다. 자기는 배고프면 안 주겠다면서, 나도 배고픈 걸 빤히 알면서 달라니... 정말, 정말... 비랑을 닮았군요. 아마 비랑이 먼저 다 먹어버렸으면 선하의 것을 탐냈을지도 모르니까요. 단지 선하가 선빵(?)을 날렸을 뿐입니다.
"말이 안 통하네. 누가 안 놀고 싶댔어?"
절레절레. 사람이 하는 말을 거짓말 취급하다니, 하고 비랑은 생각합니다. 능글맞다, 천연덕스럽다, 능청스럽다, 그런 단어들로 수식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원래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장난으로 밀리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을 꺼리는 것도 있던가요?
"네 방식의 다정함이 궁금하긴 한데 좀 무섭다?"
비랑은 바람처럼 젓가락을 뻗고, 선하는 매처럼 젓가락으로 낚아챕니다. 매는 바람을 타죠. 직선과 곡선이 겹친 단 한 점에서 승리한 것은 선하의 젓가락이었습니다. 비랑은 순간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되돌리네요.
"...괜찮아, 난 야채튀김 싫어해!"
뭐, 튀겨 놓으면 신발도 맛있다는 말처럼 사실 비랑은 야채튀김도 좋아하지만요. 그렇다니까요. 비랑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음 사냥감을 물색합니다. 평범한 튀김에 비하면 무겁지만 나름대로 고기와 야채가 들어 있어 가치있는 것, 바로 튀긴 만두군요. 아주 신중하게, 자신이 노리고 있다는 걸 숨기다가 단번에 젓가락을 뻗습니다.
비유가 안 좋았다. 아니, 상황이 나쁘게 흘러갈 것이라는 건 아니지만, 간식을 이상할 정도로 접하지 못해 제리뽀를 모르는 문하였기에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다. 다행히 앞서 말한 젤리라는 말 덕분에 대충 그게 젤리 일종인가? 하는 짐작 정도는 해볼 수 있었지만.
"아무튼... 알았어."
코대답을 하며, 문하는 아무 생각 없이 규리의 뒤를 따라 화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화방의 풍경에 잠깐 소리를 잃고 말았다.
아름답게 걸린 족자들과 표구들, 자신의 하얀색과는 다른 고운 하얀색으로 걸려있는 화선지들,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며 걸려 있는 염료며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늘어놓어져 있는 화구들이며 어디에 사용하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을 연장들. 공간을 수놓듯이 걸려있는 동양화풍으로 장식된 모빌들까지. 그것들이 놓여 있는 그 화방은 마치 기억 속 저편으로 떠나보낸 머나먼 옛 시골집처럼 정취가 넘치는 목재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어서.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일순간 시간이 멎은 것 같아 문하는 숨을 죽였다.
그러다 규리의 젤리뽀 찾아달라는 말에, 문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게 뭔데?"
하고 반문하며, 문하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 그 색채들과 형상들의 개울로 의식을 던졌다. 이리저리 살펴보다, 문하는 웬 연두부 팩 같은 것들이 색색깔별로 밀봉되어서 차곡차곡 담겨 있는 상자를 찾았다.
조곤거리는 목소리로 답하고 힘없는 웃음에는 해사한 미소로 되돌려준다. 힘없이 웃는 모습이 조금 안타까웠을까, 생각하지만 밝게 미소하는 얼굴에 티는 전혀 안 냈다. 아마 저 애는, 안타까움을 호의가 아닌 동정으로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어. 그 감정은 때론 동정이 아니라 호의에서도 생기는 거고 다른 감정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직 내게도 어려운 문제니까, 지금은 구태여 안타깝다고 표현하진 않을래. 다만 –상처투성이 유기견일지라도- 이제 막 발을 내딛는 너를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볼거야. ...상처투성이 늑대라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볼 수도 있겠지. 나는 지금도 늑대가 무섭지만, 인생을 살면서 꼭 무서운 늑대만 만난다는 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됐으니까.
너도 과거에 어떤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눈으로 만든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만나게 될 모든 사람이 널 눈으로 만들지는 않을 거야. 그러길 바라.
-노력은 해볼게.
아랑은 빵긋 웃는 얼굴로 문하에게 쥐여준 과자 위를 폭, 살짝 눌렀다 뗀다. 당신의 머리를 폭 눌렀다가 뗀 거랑 비슷한 동작인지도.
“ 그래애~ ”
계산대로 향하는 문하를 느긋한 걸음으로 뒤따라간다. 음, 포카칩 오리지날은 약간 짭짤하고, 더블딥 빼빼로는 풍성하게 달고, 꼬북칩은 고소하니까... 나름 안 겹치게 잘 골랐네에!
>>792 써왔어요! 이제 거의 막바지에 도달한 것 같아요! ㅇ.< 문하가 아랑이한테 안 으르렁 거려줘서, 아랑이가 문하가 덜 무섭대요.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고도 싶대요! ㅎㅁㅎ (와! 지뢰 안 밟고 끝날 거 같아서 너무 좋다!)
>>793 아랑이는 가족전체를 좋아합니다. 엄마아빠좋아걸이기도 하지만 오빠여동생좋아걸이기도 함 ㅎㅁㅎ ((마마파파걸 친구가 될 가능성도 쪼꼼 보이기 시작했음)) ㅋㅋㅋㅋㅋ 아뇨... 아랑주의 수많은 금명한짤을 보십시오... (마니또 확신하고 틀렸던 사람...) 적중률 50%정도지 않을까..?
>>796 (영업천재 새슬주 스담) 큽... 저도 언젠가 성공한 영업왕이 될 테야... >:3
>>795 (뭐 사하주 심장에 꽂혔다구?) (일단 잘했어 금아랑) 말이 되면 가끔.... 큽... 아랑이도 사하 애칭을 얻을 날... 물 떠놓고 기도할게요.... (전에 사하주가 이케 기도하신 거 같다..)
그 말이 진실로 기쁘다는 듯 활짝 웃었다. 문제될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맥락과는 조금 어긋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이내 어깨 한 번 으쓱이고는 비실비실 웃었다. 하기야 누가 일찍 오고, 누구 잘못이건 뭐가 중요할까. 어떤 상황이건 선하는 제 잘못 없을거라 딱 잘라 생각할 것이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래?"
선하는 그 말에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다정하게'란 상냥한 표정과 세심한 손길로 상대를 위로하는 행위 아닌가? 여러번 검토해봤지만 딱히 문제될 소지 없어보인다. 그래서 선하가 히죽이며 덧붙인다. "그냥 등 좀 토닥이고 슬픈 척 해줄 생각인데 왜, 부족하면 뽀뽀라도 해줄까?" 아주 못하는 말이 없다... 장난기 가득한 말투이었으나 사실 원하면 못해줄 것도 없을 거라 생각중이다.
야채 튀김 싫어한다는 말에 콧웃음쳤다. 무사히 젓가락 끝에 안착한 야채튀김을 한 번 훑고는 그대로 시선을 비랑에게 고정한다. 그 이후로 눈 하나 깜빡, 눈동자 한 번 안 굴리고 쳡쳡 튀김을 먹는다. 분명 아까처럼 흠 없을 정도로 완벽한 식사예절을 구사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얄미울 수 있는 걸까...?
다음은 튀긴 만두인가. 선하는 야채 튀김을 꿀꺽 삼키고서는 분주히 젓가락을 놀렸다. 가히 무림 고수의 젓가락 싸움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809 (문하랑 돌리면서 폭 머리에 손 올리는 금아랑 봄) (안 봄) 뺨콕은 실례지만, 쓰담은... 자제 못하면 튀어나가는 행동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약간 아가한 사람이나, 약간 소동물 같은 사람은 쓰담해보고 싶잖아요. 사회 예절이 있어서 참는 거지. <:3 (그리고 내가 아니고 내 캐가 당하는 거면 ok임) 앗... 감사합니다... <:Q (이상할 정도로 라는 수식어가 맘에 들었따)
너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아, 하는 말에 새슬의 고개가 조금 기울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그리 기분은 나쁘지 않다. 우선은 생강 쿠키로 만들어진 문부터. 거기에 커다란 프레첼 창문, 초콜릿 굴뚝, 호박파이 쿠션에 반짝이는 캔디 전구까지 다 먹어치우고 나면, 부른 배를 두드리며 옆에 있던 들판에 누워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거야. 그리곤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빠져들자. 결코 이루어질 리 없는 터무니없고도 달콤한 상상, 새슬이 아무 말 없이 웃었다. 풀잎이 스치는 소리와, 사하가 흥얼거리는 소리만이 남았다.
“사하.”
잇새로 흘러나오는, 고운 은색 모래같은 이름.
“사하도 예쁜데.”
울림이 좋잖아. 혼잣말하듯 조곤거리며 손을 뻗어 클로버 수풀을 쓸었다. 네잎클로버에 행운이라는 뜻을 제일 처음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 오래도록 찾다 발견했을까? 길가를 거닐다 한 눈에 들어왔을까? 처음으로 뜻이 깃든 클로버는 정말로 행운을 가져다 주었을까ㅡ 따위의 생각이 머릿속을 흘러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면서, 몇 송이의 클로버를 수풀 사이에서 드러내고 다시 묻기를 반복하기를 몇 번.
“나? 생각 안 해 봤는데.”
행복 부자라는 말에 덤덤히 웃다가, 대답했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길래 왔어. 재미있을 것 같잖아ㅡ. 아하하, 나지막한 웃음. 소리가 그친 뒤 새슬이 되물었다. 사하는, 행운이 필요해서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