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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문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고도 나늘은 눈꺼풀을 천천히 깜박, 감고서 빙글게 웃었다. 그래도 처음 들어왔을 때의 시든 식물 같던 표정보다는 훨씬 생기있지 않나, 멋대로 넘겨 짚으며. ...하지만 곧 그의 영혼 없는 대답에 나늘은 또 입꼬리를 축 떨어뜨렸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열심히 했는 걸. 좀 더 기뻐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게다가 자장가의 대한 대답으로 려문의 표정에서 나타난 뚜렷한 거절의사에 나늘의 뒤엔 먹구름과 천둥번개가 쳤을지도 모른다. 나름 자신 있었다.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노인공경이니까 자리 바꿀까."
나풀나풀한 려문이 걸터 앉은 침대에서 스르륵 떨어져 쪼그려진다. 나늘은 그 모습을 깜박 바라보며 '어르신'이라는 단어에 웃는 모양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어금니를 깨문 채로 한마디를 지지않고 려문에게 덤벼드는 것이다. 또 다른 얘기를 하자면 직업병에서 오는 것으로, 려문이 쪼그려 앉는 것에 '무릎 관절 다 나간다'며 자세를 고쳐주고 싶었지만 어르신은 그런 거 몰라. 그래서 하얀 백발의 어르신은 몸의 방향을 틀더니 려문이 앉았던 침대 위로 상체만 풀썩 누워버린다. 다리는 침대의 끝에 걸쳐진 채로 반만 누워서는, 고개를 돌려 려문을 물끄러미 보고.
"..혹시 결벽증있니?"
보건실은 학생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니 침대가 깨끗하지 못할까봐 저렇게 쪼그려 앉아있던 것일까 저 아이는. 나늘은 진지한 얼굴로 손을 턱에 가져다대고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잠깐 생각난 게 있는지 언제 시무룩했던 얼굴이 무색하게 맑게 갠 얼굴로 상체를 일으키고 벌떡 일어나 손을 침대에 걸터놓고 려문의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려문이 아직까지도 쪼그려 앉아 있었더라면 려문의 근처로 나늘의 머리카락이 사락거리며 보송보송한 향을 풍겼을 터다.
"내 거야."
향의 주인을 말하는 듯했다. 좋은 향이 난다고 인정받은 듯한 기분에 나늘의 눈은 방긋 휘어진다.
거 봐. 사하의 투비컨티뉴에 지구는 기다리기라도 한듯 반사적으로 짧은 말을 튀어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뭔가 고르는 것 같더니, 결국 다 가지기로 했나보다. 그다지 기대를 하고 한 질문은 아니었기에 어물쩡 넘어가도 똑같이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애초에 사하가 이건 싫어! 하고 말했더라면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했을 거다.
"바보 은사하 귀신은 안 무서워."
저를 바라보는 행동에 지구는 덤덤한 얼굴로 사하에게 짧게 혀를 내밀어주고 고개는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그도 그럴게..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 굳이 이유를 덧붙여 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꿈에 나와서도 어디 꽈당 넘어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지구는 고개를 내저었다. 옆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사하는 정말 제 여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도 같다고 생각하며 눈을 반쯤 감았다. 분명 같은 19살이 맞을텐데. 사실 아니라해도 믿을 수 있다.
"먹을 거 준다고 사람 따라가지 마."
사하의 입발린 말에 지구는 지금이라도 한 대 쥐어박아줄까 하다, 그저 어릴적에 여동생들에게 해주었던 얘기나 되풀이해주었다. 사하에게 꼬리가 있었으면 지금쯤 무진장 살랑거렸을 거라고 장담한다. 초콜릿을 사각사각 씹어먹으며 사하와 나란히 걸어 다시 본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들은 여전히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뛰고 있었고, 또 간간히 흩날리는 바람에 꽃잎들이 살랑이고. 아까와 다른 점은 진득한 단 내가 희미해졌다는 것. 사실 바닐라향은 따뜻한 계절에는 더운 색이긴 하다. 그래서 아까 찰나의 순간에 조금 더운 기분이 들었던 걸까.
"너 데려다주고 점수 좀 얻어야겠다."
땡땡이 친 은사하 잡아왔습니다- 까지 덧붙여 말하며 웃음을 흘렸다. 혀에 닿아 녹아내리는 초콜릿이 너무 달고, 날씨는 너무 맑았고. 조금은 친해졌을지 모르는 친구는 여전히 옆에 있다.
"구십 대 마라토너도 있는데 나이로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건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이 아닐까요?"
건강과 나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표하는 데엔 본인도 있었고. 지금도 잠깐 자세 좀 쪼그려 앉았다고 허리랑 다리가 아프다. 빼앗겼다고 중얼거리면서 쪼그린 자세 그대로 뒤만 돌아 침대에 누우신 어르신. 아니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어르신께, 아니고 선생님께 이렇게 말대꾸를 꼬박꼬박 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반이 있었으나 참대에 누우신 보건 선생님을 보고 있자니 그런 마음이 살살 녹아 사라지는 듯한... 유교사상 어떻게 된 일이야.
결벽증? 자신은 이불 빨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하고 보았더니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아무렇지도 않게 앉기도 했고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어찌 해명하면 좋을까 뭐라 말을 고르기도 전에 어르신 아닌 선생님은 명쾌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아 네. 좋은 향기가 나셔서 집에서 이불 빨래라도 하셨나 하고."
그리고 결벽증은 없어요.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조곤조곤 덧붙였다. 다시 가까워진 거리에 맡아지는 비누냄새. 덜 마른 이불 냄새. 머리카락에서 나는 걸까? 그는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유심히 보았다. 머리가 길면 향을 품기 쉬운 걸까? 저한테서는 딱히 향이랄 게 맡아지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