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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뭐-" 하던 문하는, 목소리를 갈아서 도라에몽 흉내를 내는 규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규리가 내고 싶었던 것은 도라에몽 흉내였던 모양이지만, 애석하게도 문하에게 규리의 인상은 쉐오고라스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이상한 가방이네, 그거."
바싹 가까이 다가온 규리를, 문하는 슬며시 꾹 밀어냈다. 아무래도 눈높이가 2cm 정도 더 높은 사람이 이렇게 다가오니까 약간 부담스러웠다. 물론 너무 멀리 밀어낼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 거의 2인3각 수준으로 다가붙으면 걷기가 힘들어져서. 규리의 권유에 문하는 고개를 짧게 저었다.
"아니- 거절한 건 그 브라우니. 줄이고 있어서, 탄수화물."
문하의 죽어있는 까만 눈이 가만히 규리를 바라보았다. 왜인지 별나게도 다른 사람과 거리를 쉽게쉽게 좁혀버리는 규리의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부럽게 느껴졌던 탓이다. 물론 그라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거나 하는 일에서 예외는 아니겠지. 그렇지만 이 친구의 마음은 나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같은 일에도 상처를 덜 받고, 같은 상처도 더 빨리 털고 일어서는 그런 아이겠지. 규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문하는, 질문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학생회라고 딱히 수고하는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사람들이 신경 써줄때는 하는 보람이 있다. 학생회 선거 연설 때는 내 맘대로 할꺼라고 장황하게 말했는데도 뽑아준걸 보면 사실 귀찮은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을 뽑은게 아닐까 싶지만. 물론 사실 내가 너무 장황하게 얘기해서 일부러 이야기의 핀트를 흘려버린 것도 있긴 있었다.
" 약학부에서 주는 격려의 선물이라고 할께. "
안먹는다고 하면 할당제로 n등분해서 강제로 먹여야지. 오랜만에 학생회 사람들을 괴롭힐 생각에 신난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웃으면서 사탕을 주머니에 챙겼다. 조금 크긴 하지만 그만큼 효과가 좋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다만 쓰지만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비타민 정제중엔 쓴 것도 있으니까.
" 그럼 이만! 다음부턴 관리 잘 부탁할께? "
문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과 함께 가벼운 윙크를 건네고서는 부실을 나온다. 아, 이건 학생회에 주는 선물이니까 특별히 학생회장님한테 좀 더 주는걸로 할까. 지구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다시 학생회실로 향한다.
>>67 그니가요.........정말.........정말.......궁금한데.......지구의 무엇을 내드려야 알 수 있을까................ 여러분들이 지구 혼자 사물함이 .혼자. 텅 비어있을까봐 상냥하게 챙겨주시는 것 같기두 하지만서도.....착하신분들(왈칵!
그럴 수 있다. 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40대가 다 되어서 자기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찾은 경우도 있지 않던가. 그러고도 행복하게, 온 세상을 가진 듯 굴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하나 걱정되는 것은, 성공을 하는 데에 드는 시간이다. 네가 너무 바쁜 나머지 하고 싶은 것을 알아가기 위한 시간조차 가지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민규는 눈을 정확히 두 번 깜박였다. 오지랖이다. 알고 있다. 모두가 원하는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집착하는 건 내 아집일까.
"나중에 찾게 되면 알려줘."
그래서 혀 끝에서 얌전히 도륵거리는 질문을 삼켜버렸다. 잘 넘어가도록 물도 한 모금 마셨다.
"글쎄다."
작게 웃었다. 웃음에 묻어나는 것은 은은한 애정이다.
"사실 말이야, 진짜 평가가 박했으면, 서울까지 올라오지도 않았어."
그리고 신뢰다. 그래, 니 한번 서울 가서 공부 해봐라. 니 간다 카면은 내도 따라갈테니끼네. 어데까지 가나 함 보자. 최민규가 언젠가 툭 내뱉었던 말에는 막연한 기대와 믿음이 대롱대롱 맺혀 있었다.
시아는 선하가 시선을 내리깔곤 웃음을 지어보이는 것을 응시하며, 마주 웃어보였다. 왠지 묘한 기분이 드는데, 싫은 느낌은 아니여서 자연스레 눈을 마주하게 된다. 왠지 어느샌가 둘이서 비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 같아서 절로 목소리가 작아졌지만, 이건 이것 나름대로 즐거운 느낌이었다.
자신의 수긍에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선하를 바라본다.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 하지만 지금 굳이 서로의 입 밖에 내뱉을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저 서로를 보고 웃어보이며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 ... 하긴 그런가요.. 그나저나 선배한테선 꽤나 좋은 향이 나요. 봐, 더 짙어졌어 "
기대어버린 자신을 받아낸 선하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맞춰오자, 잠자코 눈을 마주 하던 시아가 선하의 대답에 풋 하고 웃으며 속삭인다. 어차피 체육관엔 두사람 뿐이라서 소곤소곤 말할 필요가 없을텐데도, 왠지 모르게 작아지고 만다. 어째서일까.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선하의 손길에 한순간 떨리는 눈동자. 하지만 싫지는 않은 듯 그저 선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띈 체 킁킁 하고 향을 맡으며 속삭일 뿐이었다. 그리고 선하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자 방금 전까지 운동을 해서 그런 것인지, 살짝 열기를 띤 시아의 숨결이 선하에게 전해진다.
" 선배랑 같은 향...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
자신의 팔을 쓸어내리는 손짓에 반응하듯 작게 떨면서도, 슬그머니 자신의 등을 조금 더 선하의 가슴팍에 밀착한 시아가 살며시 자신의 팔을 쓸어내린 선하의 손을 감싸쥔다.
" 뭐 하고 놀고 싶어요..? ...조금 더 조용한 곳으로 가는게 좋으려나. "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 이야기 하기 좋잖아요? 시아는 고개를 살짝 들고선 그렇게 칭얼거리는 선하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곤 매혹적으로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선하가 도움을 줬으니 얼마든 어울려주겠다는 듯.
찾지 못하고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샌가 늙어있을 확률도 높기는 하지만. 부정적인 말은 일부러 하지 않는다. 우선 돈부터 많이 벌고 생각해보자, 라는 주의였으니까. 내가 살면서 돈을 얼마나 벌지는 알 수 없지만 로또에 당첨될수도 있는거니까. 그래도 인생 긍정적으로 살아야한다는데 돈 많이 번 미래나 상상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 그래도 동생을 좋아하긴 하나보네. "
말에서 느껴지는 동생에 대한 애정과 기대. 그렇기에 가족들이 아무 말 없이 동생을 따라 상경한 것이겠지. 동생만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기 쉽지 않을텐데 민규의 말과 다르게 동생은 상당히 똑똑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노력파일지도. 뭐가 됐던간에 가족들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 그럼 동생은 고1 이겠네. 왜 우리 학교로 안왔어? "
산들고등학교 정도면 명문인데. 물론 너무 자유분방한 분위기라서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미끄러지는 결과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형이랑 같은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학교에 갔을수도 있겠지. 형제 사이에서 그런 일은 의외로 흔하더라.
" 베네치아에 꼭 가보고 싶었어. 사진으로 봤는데 진짜 아름답더라고. "
물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베네치아. 전에 사진으로 한번 봤을때 그 풍경에 매료되어서 한동안 그것만 찾아본적이 있었다. 나중에 꼭 가겠다는 마음을 갖고서. 한 30대 쯤이면 가볼 수 있지 않을까.
" 혹여 베네치아에 가면 나한테 꼭 사진 날려줘. "
한쪽 눈으로 살짝 윙크를 하면서 얘기한 나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슬슬 점심시간 끝날 시간이네. 땀도 제법 말랐겠다, 나는 에어컨을 끄면서 얘기했다.
" 이제 갈 시간이야. 이따 학교 끝나고선 할 일 없으니까 지구랑 농구 실컷 해도 돼. "
>>108 헉 슬혜와의 선관 저도 너무너무 조와요 슬혜가 유선이의 플러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미래가 밝을지 어두울지() 선관 짜는 편이 재밌을지 초면인 편이 나을지가 정해지겠네~~~ 혹시 슬혜의 반응 미리보기와 슬혜주가 혹시라도 염두에 둔 관계성을 들어볼 수 있을까?
>>113 쪼와 가예와는 일상으로 만나자구 >.0!
>>121 예약은 열린 문~~~~~~~~~~~~~~~~~~~~~~~~~~~~~ 받아놨어~!~~ 천천히 생각해도 좋다구 모든 관계성 환영~~~!~~!
>>129 대충 거시기 머시기 어장관리식 플러팅...🤔 뭐 양아치(슬혜)도 그렇게 앞뒤 꽉 막힌 애는 아니라서 대부분 '생각 없음 + 나랑 상관 없음'으로 일관하긴 하는데 누가 봐도 문어발 치려고 이애 저애 건드리면서 양아치까지 건드리면 양아치가 싫어하는게 다중연애라서 바로 극혐 뜰거 같어... 그냥 선 넘지 않는 플러팅 수준에서 끝나는 거면 뭐, '아, 얘는 원래 이런 애인갑다.' 하거나 도리어 양아치가 카운터치지 않을까? 얘는 애초에 말보다 행동파라서 말로 하는 플러팅은 거의 안먹히기에... 그렇다고 행동으로 해도 본인이 싫으면 바로 쳐내는 애라서 거의 뭐 그냥 고앵이... 일단 상황과 조건에 따른 반응은 이정도고,
유신이의 기타란에서 추출할수 있는 공통점이... 민초좋와? 둘 다 기숙사생이거나 둘 다 아니면 서사 짜기가 한결 더 수월했을텐데 동긎생이니만큼 자주 마주쳤다는 정도 아니면 쫌 애매하다잉, 아, 혹시 유신이는 산들고 입학 전에 어디 해외나 다른 지방이나 그런데 가서 오래있던적 있었어? 비설이나 아직 공개 못할 설정이면 굳이 말 안해도 되구!
>>146 일단 말로 플러팅 하고(체크)...각 재다 행동 플러팅도 하곤 하고(체크,,)... 선을 넘는가...🤔 사실 유신이가 선 넘는 짓을 엄격히 차단할 거 같진 않기 때문에(대충 무례를 판단할 줄은 알지만 분위기 타면 이렇고저럴수 있다는 내용) 딱 잘라 답하기는 애매하고, 만일 선관을 짠다면 '아직까지는' 선 안 넘음vs선 넘은 전적 있음 사이의 빅매치가 되겠네. 어느 쪽이든 매력적이라 고민이야...(((유신주가 불호 요소가 굉장히 없는 편이라 그렇지 혹시 싫은 관계성 있으면 말해주고)))
슬혜도 민초단...참고하겠음 일단 설정 자체는 서울 토박이 어쩌고기 때문에 다른 지방 오래 있었다면 뭐 명절로 인한 하향이라든지 여행 따위의 이유가 되겠네🙃 해외는...몇 번 여행 정돈 해본 적 있을 듯하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모습과는 달리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슬혜. 하지만 사람에는 본디 여러가지 모습이 있는 법이다. 다만 바깥에선 남들에게 보여주긴 한 가지 모습으로 통일할 뿐. 그런 뜻에서 생각하면, 어쩌면 슬혜의 '본심'에 조금씩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혜는, 요즘은 반찬을 사먹거나 레토르트를 먹는 경우가 많다며 투덜거리면서도 주원이 만든 카레를 입에 넣곤 금방 행복한 얼굴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어쩌면 슬혜가 스스로 몰랐던 취향을 알게 된걸까? 그렇다면 기쁘네.' 하고 생각한 주원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아냐아냐. 매운만 자체는 좋아해. 매운 카레도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굳이 카레로 본다면 이쪽이 좋다는거라. 매운 카레도 먹어! 응."
매운맛은 피하는게 좋을까 하고 고민하던 슬혜에게 주원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곤 싫어하진 않는다 말한다.
"아냐아냐. 이건 슬혜가 만든 갈비찜과 내가 만든 요리를 직접 비교한 결과라구. 6배!"
주원은 카레를 우물거리다 숟가락을 놓곤 오른손 손가락 전부, 왼손 엄지 손가락를 펴서 6을 만들어 슬혜에게 강조하듯 제스쳐를 보여주었다. 그 뒤 이어지던 식사에 갑작스런 고백 - 아마 표현이 잘못된 - 에 그녀가 놀라는 소리를 내자
"푸흡. 무슨 소리야 그건."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쿡쿡 웃는다. 정말 고양이와 함께 밥을 먹는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면 다행이야."
억지 감정을 내세우진 않는다는 말에 굳이 더 캐묻지 않으며 열심히 숟가락을 움직인다. 자신의 빈 그릇을 굳이 더 채우지 않고 부드럽게 미소지은채 슬혜가 먹는 모습을 보던 주원은
"응. 누군가 먹어준다고 생각하며 만들면, 그건 '즐거운 것'이구나."
어쩌면 본의 아니게 하고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하는 부의 활동을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주원은 스쳐 지나가듯 생각했다.
부족하면 말하라는 주원의 말에 슬혜는 놀리듯 먹을까 말까 하며 숟가락을 입에서 떼었다가, 도로 가져갔다를 반복한다. 그걸 몇 번 보던 주원은 "우으으으." 하고 실눈을 뜨고 짐짓 화난 얼굴을 했다. 그리곤 손을 부드럽게 뻗어 그녀가 먹던 손과 숟가락을 잡으려 했다. 만약 슬혜가 순순히 잡혀준다면 입을 벌리라는 듯 "아~" 하는 소리를 내곤 그녀의 손을 손가락 한 마디 쯤은 더 큰 주원의 손으로 감싸고 먹여줄 것이다.
>>177 분위기 타면 뭐 그럴 수도 있긴 하지 ㅇㅇ... 정말 뜬금포 아닌 이상 양아치도 오케이고, 아니다 싶은건 내가 사양하기 전에 양아치가 먼저 사양할 거야. (?) 확실히... 선넘은 전적이 있다는 관계면 양아치가 혐관 씨게 박을거 같긴 한데 정말 서로 험한말 (물론 기준 지켜서) 오가도 상관 없을 정도로 얘 없으면 내 감정 쏟아낼 애가 없다 수준의 긴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그건 좀 피하구 싶엉... 싫은 관계성이라... 일단 과거사 때문에도(양아치위키 보는게 편할거야!) 유사애인이나 전애인 같은 연애 관련은 못짜구... 그거 말고는 좋싫란에 적힌 강제성있는 행동, 다중연애 의심되는 행동, 과할 정도의 터치가 아니면 그럭저럭 오케이? ...뭐야, 그냥 서로 투닥거리는 찐친 아니면 동갑내기 루트네! 명절이나 여행 말곤 없다... 일단 그 부분은 오케이! 그렇게 알고 있겠어!
등어리를 감싸안자 여자도 자연스레 물러나는 기색 없이 바싹 붙는다. 다음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일까, 가벼운 수락의 제스쳐일까. 정확히 묻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지만 해인과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해소되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기에 그 답을 듣는 것을 유보하고 싶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에 파묻고 있는 네 뒷머리를 천천히 쓸었다. 날 목줄에 건다라,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각인되는 순간 서로의 목에 목줄을 거는 게 아닐까? 우리한테 있어서 그런 구속은 곧 안정감의 보장이라고 볼 수 있으니 손해보는 일은 아니지. 그중에 나라는 양이 원하는 건 아까 학생회실에서 말한 거고."
그래서 생각해보라고 한 거야. 본인의 의견을 길게 늘어놓고 일전에 한 말을 재차 부상시킨 여자는 깊이 파고든 손가락으로 두피를 건드리고 결을 따라 머리칼을 빗긴다. 이 자색 머리칼은 가로등 불빛보다 달빛 아래에서 보면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 나도. 시간은 많잖아?"
늑대의 재능을 선망하는 동시에 원망했으니 모호한 대답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각인이란 여자에게 있어서 재난과 증오의 사슬이었기 때문에. 양은 밤바람에 희게 질려 차가운 손을 늑대의 목에 천천히 얹으며 해인의 옆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맞다, 미자는 야간 못하지. 그 사실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흘러가는 말투가 이어지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깨 정도야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지. 대신 아프면 옷 좀 쥐어도 될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걸친 가디건을 열어 팔 언저리로 떨어뜨려 어깨를 드러낸 채 셔츠 위로 걸쳐진 맨투맨을 슬쩍 보며 말했다.
생각하는 듯한 사하의 표정을 물끄럼보다 고개를 슬쩍 돌리며 낮은 음으로 능청스럽게 중얼거렸다. 이 정도로 그녀가 당황하지 않을 것쯤은 예상된다. 오히려 수긍할 수도 있는 거고. 지구는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겠다 생각했다. 미움받는 것도 별 건 아니지만, 싫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이쯤에서 선을 넘고 싶진 않아졌다.
"좋아해?"
단순한 선호도를 묻기 위해 그리 말하긴 했지만 그보단 <재밌어?>에 가까운 어투였다. 이전에 물었던 질문과 이어져서 대화 내용이 묘해보이는 착각이 들기도 하지만 넘어가자. 바다가 나오는 영화는 정말 많다는 것은 것을 누구나 알 텐데. 그 중에서도 저 영화를 바로 생각해 내어 꼽을 걸 보니 꽤 아끼는 영화인지 궁금해져서 그리 반사적으로 물었다. 그러고보니 사하가 영화 관련 부 였던 것도 같다. 그래서 그런가. 다음에 사하에게로 땡땡이를 치러 간다면 틀어줄지 문득 호기심이 생긴다. 그나저나 안경인가. 안경 속 바다를 떠올려보다 볼을 긁었다.
"너는 인질로 잡히면 안 되겠다."
나름 물을 좇는 사하를 보는 것이 재밌어질 때 쯤 그녀의 빠른 사과가 굴러온다. 지구는 떨떠름한 얼굴로 사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공손한 사하의 손 위에 물컵을 살포시 내려주며 사하의 머리 위에 손을 턱 올리고 쓰다듬는 척 헝클이려 하였다. 굴복이 빠른 건 어찌보면 똑똑한 걸까. 그래도 같은 편은 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보통은 자존심을 먼저 지키지 않나, 그런데 눈앞의 사하는 냉큼 목적을 달성한다. 한 편으론 저것도 능력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지구 역시 물과 타이레놀 한 알을 꿀꺽 삼킨다.
별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은밀해진다. 자연스럽게 마주친 눈을 따라붙는다. 우묵한 두 눈이 그늘져 푸른 빛이 조금 짙어진다. 온 몸의 신경이 시아를 향해있는 것마냥, 선하는 시아의 행동 물밑처럼 조용히 가늠하고 있었다. 눈이 도르륵 굴러간다.
"네가 원하면 자주 맡게 해줄게."
향이 더 짙어졌다는 말에 선하는 그저 웃음을 지었다. 배부른 짐승처럼 목소리가 낮게 목을 기었다. 선심써주는 투인지 납작 업드려 알랑거리는 투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선하가 시아의 말을 기분좋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었다. 고개 숙이자 그늘진 얼굴 사이로 푸른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시아의 숨결에 움찔 눈을 떤것빼고는 눈은 미동이 없었다.
"포옹이라도 할래? 싫지 않다며."
쓸어내린 팔이 거미다리처럼 가볍고 느리게 시아의 팔을 올라탔다.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시아의 손에 잡혀 멈추어선다. 저항의 뜻은 없어보였다. 선하는 순순히 손을 멈추어섰다. 손 끝을 슬 움직여 시아의 손가락을 문지르는 행동은 불경했으나, 전체적으로 시아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감상이었다.
"단 둘이? 왜, 나랑 비밀이라도 나누게?"
기어코 선하가 시아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천진한 질문 내용과 다르게 히죽거리는 미소가 영 불순하다. 애교라도 부리겠다는 심산인지 얼굴을 부비기까지 했다. 시아의 어깨와 선하의 이마 사이에 낀 머리카락이 고장난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아마 고개를 들어올리면 정리를 좀 해야할 것이다.
"네가 원한다면 어디든 좋아. 기꺼이 따라갈게."
//너무 늦어서 일단 올려봅니다 과한 스킨십...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수정하겠습니다...!!
" 선배가 절 자주 만나준다면 그때마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속삭여줄 수 있어요. "
너무나도 은밀해진 대화였지만, 그런것 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태연하게 눈을 마주한 체로 속삭인다. 잔잔한 파도 같은, 그러면서도 마치 가느다란 손을 잡으라는 듯 살랑이는 듯한 목소리로 속삭인 시아는 마주한 눈을 곱게 접어 웃어보인다. 그러면서도 곱게 접힌 눈매 속에선 초콜릿색 눈동자가 푸른 빛이 감도는 선하의 눈을 여전히 마주하고 있었다. 마치, 그 푸른 눈동자를 자신에게만 잡아두려는 것처럼 천천히 장미덩쿨을 뻗어 옭아매는 듯 했다.
" 흐응...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요, 선배.. 제 향은 어때요? "
분명 땀냄새라도 날까 부끄러워 하던 시아였지만, 오묘해져가는 분위기에 어울려주려는 것인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가는 선하의 말에, 천천히 혀 끝으로 말라가는 자신의 입술을 보란듯 훑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대답을 돌려준다. 역으로 자신을 즐기는 것은 어떻냐는 듯한 대담한 말이었다. 그러다 자신의 숨결에 움찔 눈을 떠는 것을 알아차린 시아는 장난스런 미소를 짓더니 후 하고 한번 더 선하의 목 쪽으로 바람을 불어준다.
" 포옹이요? ... 해주시려구요? 저 확실히 안기는 건 좋아해요."
시아는 자신의 팔에 올라탄 선하의 손을 잡은 체, 선하의 손가락이 자신의 손가락을 문지르는 부드러운 느낌에 웃음을 흘리며 대꾸를 하곤 얼마든지 안아보라는 듯 몸을 살짝 틀어, 선하가 안기 좋은 자세로 바꾸어준다. 잡고 있던 손에도 장난스레 힘을 빼는 것은 덤이었다.
" 어쩌면 선배랑 비밀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요.. 누구든, 어떤 사이든 비밀 정도는 가지고 있는 법이잖아요? "
시아는 얼굴을 파묻으며 히죽거리는 선하에게 여전히 음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상냥하게 대답을 들려준다. ' 그러다 땀냄새라던가, 땀이 묻어나겠어요. ' 꺄르르, 작게 웃음을 흘리며 시아가 상녕하게 손을 뻗어 자신의 어깨에 부비적대는 선하의 뒷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 손길은 상냥하기 그지 없어 간질거리는 느낌마저 주었을 것이다.
" 왠지 멀리 가자고 하면 선배가 꽤나 답답해 할 것 같으니까, 저긴 어때요? 체육도구 창고.. 이 시간이면 저희 말곤 아무도 안 올거에요. 체육관 열쇠도 제가 가지고 있고. "
다시 한번 자신의 입술을 천천히 훑어낸 시아가 뒷머리를 매만져주던 손길을 멈추곤 살짝 선하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게 만들고는 눈을 마주한 체 고혹스런 미소를 지어보였다.
뒷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안정감일까, 얼마전 만월때도 이런 감정은 느끼지 못했는데. 나도 모르게 긴 함숨이 터져나온다. 마치 몸의 긴장이 탁 풀릴때 나오는 한숨 같은. 각인이 안정감의 보장이라 ... 그녀가 하는 말은 전부 맞는 말이었다. 각인을 하게 되면 더이상 늑대의 감정과 양의 외로움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지지. 그렇기에 그녀가 하는 말은 꽤나, 아니 굉장한 유혹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만약 우리가 그런 관계가 된다면, 나는 얼마든지 너가 원하는대로 해줄 용의가 있어. "
머릿결을 따라서 손가락이 빗질을 하고 있다. 모든 감각이 머리로 집중되고 몸에 조금 힘이 빠지는 느낌이 나서 그녀의 등어리를 조금 더 꾸욱 안는다. 페로몬의 향이 더욱 짙게 느껴지고 나는 그것을 만끽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싶지 않다, 라는 소유욕이 더욱 커지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한채. 만월이었으면 아마 견디지 못했겠지.
" 시간은 별로 없을꺼야. 나는 ... 많이 지쳐있거든. 더이상 붙잡을 곳이 내겐 없어. "
처음으로 남에게 뱉는 내 속마음. 하지만 얼마든지 기다릴 용의는 있었다. 다만 기다리는만큼 내가 점점 지쳐갈 것이라는게 문제였지. 밤바람에 차갑게 되어버린 그녀의 손이 목 언저리에 닿는 것이 느껴진다. 갑작스러운 차가움에 몸이 움찔했지만, 이내 드러난 어깨에 그런 것들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고 하나의 본능만 남게 된다.
" 얼마든지. "
그녀의 대답을 돌려주며 어깨를 가볍게 문다. 조금 강해지려는 힘을 어떻게든 조절하고자, 최대한 잇자국만 내고자 노력했지만 쉽사리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깨뿐만 아니라 그녀의 팔뚝 윗부분까지 나는 나의 자국을 내고 있었다.
만약 그녀에게도 50가지의 그림자가 존재한다면, 가능성이 있을까? 라고 물어도... 속박쪽에는 취미도, 취향도 없는데다 경멸하는 부분이었으니 기껏해야 수시로 오락가락하는 감정선의 변화가 전부일테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론 어떤 것이든 전부 그녀의 본심, 혹은 그와 유사한 무의식일 것이다. 설령 이런 표정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그녀가 사실 속으론 어떤 생각도 없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녀가 이 행동을 하기 싫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진심을 내비치고 싶은 대상에겐 자신의 무미건조한 면을 드러냈을 것이고, 실제로도 그에게 몇번인가 단편적으로 보여주었을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에게 그런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되도록이면 피했던 모양이지만 말이다.
"음~ 그럼 번갈아 먹는 걸로 하죠~ 아니면 한단계씩 올리거나 낮춰가면서... 이것도 패턴이 질리거나 할수 있으니, 그냥 그때 먹고 싶은 걸로 만드는게 낫겠네요~"
그래도 싫어하진 않는다며 도리질을 해보이는 그였기에 그녀는 조금 더 화사하게 웃어주었다.
"음~ 글쎄요~ 선배님께서 그러시다면 그런 거지만... 쉽게 와닿진 않는 수치인데요?"
6배라니, 그것을 강조하듯 제 손가락까지 꼽아 말하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거랍니다~ 세상 그 어떤 감정이든, 강제성이 담기면 그 의미를 잃고... 요리에 마음을 담지 않는다면 자신이 먹는다 해도 볼품없는 요리가 될 뿐이랍니다.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그 사람에게 맞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만들다보면, 정말 마법같이 맛있어지는 경우도 있다구요~ '요리를 함에 있어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대충 그런 것이죠~
...음~ 그런 의미에서도 선배님이 야채를 좀 잘 드시면 좋겠는데..."
그녀는 곧이곧대로 좋은 말만 늘어놓는 성격은 아니었다. 감동할만한 말 뒤에는 항상 어깃장을 놓곤 하는 버릇이 있었으니까, 대개는 자신의 본심을 차단시키기 위해서였지만, 이 경우에는 단순히 농담이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앗..."
역시 놀려먹는다는걸 그가 눈치챘는지 살짝 앓는 소리와 함께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과 숟가락을 잡아오자 그녀는 눈에 띌 정도로 뺨이 붉어진 채 잡힌 손을 바라보았다. 물론, 지금의 성격(보통의 여학생)이었기에 가능했던 반응이지만 말이다.
"...... 아..."
이것은 먹여주는 것인지, 먹는걸 도와주는 것인지, 나름 우스꽝스러워보일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홍당무가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마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면 그녀 나름대로의 망상회로가 타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222 사실 미자인 학생끼리 서로 저희 각인했어요~^^호호 하면서 학교에서 하루종일 붙어있고 하는 게.. 평범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아마 몇년 뒤 졸업 후~ 이런 식으로 묘사되어야 하지 않을까요ㅠ▽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엔딩쯤에도 아이들끼리 각인하는 걸 보기 어렵겠....네......요 (그생각을..미처..못했읍니다..) 악
사하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거 말고 저거, 검정 아닌 하양. 그런 식의 사고방식으로 머리가 굴러가는 편은 아니었다. 이것과 저것 사이의 무언가나 검정과 하양 사이의 회색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짚어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쪽에 가깝지."
<확실한 의사표현.> 덧붙인 사하가 씩 웃는다. 꽤나 짓궂은 얼굴이다. 심지어 어딘가 거만한 구석까지 있었다. 꼭 <봤지?> 하고 묻는 것처럼.
"좋아해."
대답이 빠르다. 싫어하는 영화 찾는 게 더 쉬워서 그렇다. 남들 다 조는 영화도 졸음 솔솔 와서 좋아했고, 비명 지르는 영화는 심장 떨어지는 맛에 봤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구린 영화는 자꾸 웃음이 나서 . 물론 제일 좋아하는 건 영화가 나오는 공간이긴 했다.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건조하고. 사람들 눈에 빛이 들어오는 곳. <엄청 평화로워. 밥 먹고 얘기하고 바다 나오고 그래.> 영화 장면 떠올리던 사하가 말했다. 생각난 건 해변에서 다 같이 모여 정체불명의 체조를 하는 장면이긴 했지만. 조용한 와중에 들리는 바다소리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인질로 잡을 만큼 아는 게 없을 텐데."
집 나간 현실감각이 돌아오는 길에 발을 들였다. 인질도 뭐 아는 게 있어야 잡아다 몰아붙일 보람이 있을 텐데, 저는 눈이나 끔뻑일 것 같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그 자리에 있던 게 잘못이라는 말도 하고, 안 되면 빌었다가 무릎도 꿇어봤다가 하면 질려서라도 보내주지 않을까. 그렇게 제 목적 달성하고 유유히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그림이 그려졌다. 맞다, 현실감각 돌아오다 다른 길로 샜다.
"너 어디 아파?"
물을 한 모금 입에 물고 있던 사하가 꼴깍 삼키고 묻는다. 뒤늦게 타이레놀 먹는 지구를 본 탓이다. 대답을 기다리며 사하가 알약을 털어놓고 물을 마셨다. 목구멍으로 익숙한 게 넘어가는 느낌이 났다. 양으로 사는 거, 어지간히 귀찮은 일이 아니다.
다음 번엔 학생회장 정도가 아닐 수도 있는데 본인의 미래를 걸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발언을 덜컥 하는 것을 보니 여자는 평소보다 더 궁금해졌다. 페로몬이 어떤 느낌이길래 최소한의 계산도 하지 않고 이런 발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건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정적.
잠시 말을 잇지 못했던 이유는 약간 놀라서였을 뿐이다. 더이상 붙잡을 곳이 없다니. 가족은? 친구는? 양은 서늘한 시선으로 늑대의 얼굴을 훑었다. 나한테 관계의 우위를 점하게 해주는 이유가 뭘까? 늑대의 결핍이라는 것은 해결점이 눈 앞에 보였을 때 이렇게나 맹목적으로... 끝에 몰린 것 같은 가라앉은 성음이 입가로 비실거리는 웃음을 자아낸다. 치열로 짓눌리는 감각이 유쾌하지 않았기에 얼마 가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물린 것은 딱 예상한 만큼의 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점점 강해지더니 끝까지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던 예상이 무색하게 꽤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단순한 송곳니의 박힘이 아니라 집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위에 잇자국을 내는 행위, 슬슬 그만할 때가 됐다는 듯 해인의 등에 있는 옷자락을 자국이 남을 정도로 틀어쥐었지만 멈추라는 말을 입밖으로 뱉고 싶지 않았다. 고독이라는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공백의 충족감이 그렇게 하게끔 했다. 네 정신을 들게 하기 위해 말을 걸어보려고 애썼다. 뭐가 있었지. 그래,
>>257 놀랍게도 그렇답니다 >.0 아마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데리구 나가거나.. 적어도 가족 한 명은 꼭 대동했겠지요 (주 피해자: 사촌형)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회장님 얼굴 꾹꾹이해서 펴드리고싶구만요.. 지구는 자기 얼굴이 무섭게 변하는 거 알구 있으려나요
가벼운 잡담같이 카레에 관한 이야기가 오간다. 어찌되든 상관 없는 이야기,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엔 분명 '앞으로'가 담겨있었다. 지금만 보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계속'
"응. 네가 만드는 거라면."
주원은 슬혜의 화사한 미소에 베시시 미소로 화답한다. 그 순간 가슴이 따뜻하게 두근 하고 통한 것같은 느낌이 든 것은, 마음이 맞은 것같은 기분을 느낀다.
"알기 쉽게 표현한다면, 내걸 먹으면서 맛있다! 라고 한 번 생각한다면 슬혜가 만든 갈비찜을 먹을 땐 맛있다라고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으니까. 아, 그럼 6배가 아닐지도?"
속으로 세어보진 않았지만 6번으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었다. 주원은 6을 만든 손을 상 밑으로 거두고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방금 그 얘기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인 이유는 오늘 그것을 처음 느꼈기 때문이겠지. 오늘 바몬드 카레를 만들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조리대로 만든 것은 아닐테니. 필시 슬혜와 함께 먹을 것이라 기대하며 그녀가 맛있게 먹어주길 마음을 담아 만들었을테니까. 그러나 야채의 이야기가 이어지자 "윽."하고 바늘에 찔린듯한 소리를 내며 눈을 슬쩍 아래로 피한다.
"그으래도 여기 야채 들었잖아? 감자도, 양파도, 당근도..."
그렇게 말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고 슬쩍 한 숟갈 먹는다. 본심을 차단시키기 위한 그녀의 장난스런 말이란 것은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그저 야채를 잘 먹으라는 훈계로 들린 모양이다. 그렇게 주원은 식사를 끝내고, 슬혜가 먹을듯 말듯 장난치다 주원에게 손을 잡히자 그녀의 두 볼이 붉어지고, 시선은 주원에게 잡힌 쪽으로 향했다.
주원은 재크와 콩나무의 거인이 걸을 때 만큼 큰 소리로 자신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들키진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조심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굳게 잡은 손을 천천히 움직여 "아~"하고 수줍게 벌린 입을 향해 그녀의 손을 잡은채로 숟가락을 옮긴다. 심장은 떨리고 있었지만 그 떨림이 손까지 손까지 전이되지 않게 마음 속으로 안간힘을 다해 평정을 유지하려 한다. 숟가락의 둥근 부분의 그녀의 입 안으로 옮겨지고, 만약 그녀가 입을 닫는다면 부드럽게 당길 것이다. 그리고 입술이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숟가락의 가장 둥근 부분이 입술에 걸릴 때 쯔음 숟가락의 잡은 쪽을 살짝 위로 당겨 숟가락의 카레를 전부 입 속에 담을 수 있도록 할것이다.
단순히 먹여주는, 입 안에 숟가락을 넣었다 빼는 것이 아닌 제대로 숟가락의 모양을 생각해 제대로 먹을 수 있게, 입술이 아프지 않게 하는 배려 가득한 손짓이었다.
한 숟가락 먹여준 다음, 만약 그녀가 그것을 무언으로 허락한다면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받아 다음으로 먹여줄 준비를 할 것이다. 한 번으로 끝이 아니라는듯이. 자신이 먹던 양이 아닌, 슬혜가 먹던 것을 보던 것은 그냥 보던 것이 아니라는듯 밥의 양과 카레의 양을 그녀가 먹을 때와 같이 떠 입이 비었을 때에 다시 그녀의 입으로 숟가락을 옮길 것이다. 이번엔 슬혜의 손을 잡은채로가 아닌, 주원 본인만의 손으로.
https://picrew.me/image_maker/481747/complete?cd=GxDWZlfkQL 비랑이 성별반전 윤비영(다른 게 없어 보인다면 기분탓) 비랑이가 예쁜 남자에 속하니 비영이는 잘생긴 여자에 속함 근데 예쁘거나 잘생기진 않았고... 그냥 그런 쪽의 평범한 외모 성별반전 비랑이는 신문부 성격은 지금과 그리 다르진 않지만 정말 미묘한 차이가 있었으려나.
오늘의 TMI 방출 시간 비랑이 동아리 고민했던 것 중 신문부와 오컬트부가 있었어. 신문부는 좀 더 "내 삶에 재능같은 건 필요없어!"라는 마인드가 강했다면 + 사람들에게 관심이 강했다면. 오컬트부는 지금은 명확하게 없는 설정인 '괴담을 정말 좋아해서 익명 단톡방에 자작 괴담을 자주 업로드한다'라는 설정이 붙어있었다면 이쪽으로 갔겠지. (지금처럼 캐주얼한 게임이 아니라 무덤에서 시체 파내는 수준의 고전똥겜을 좋아해서, 친구들한테 네크로맨서 소리 듣는다는 것도 오컬트부였으면 있었을 설정)(근데 여기 익명 단톡방이 그렇게 흥하진 않더라고)
문하주 사하주 민규주 별하주 슬혜주 안녕. 유신주 힘내....🥲 플러팅을 연구할수록 내가 모자라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아 >>203 같은 체질로 같은 사건을 겪었다는 전제 하에.... - 조금 더 e스포츠에 치중한 취미 - 훨씬 더 내성적, 시니컬, 까칠까칠 - 운동부족 - 자존심은 높지만 자존감 낮음 - 좀 더 악에 받혀서 "연애 안해!" 하는 편
그는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에게 뭔가 와닿는 일이 없었다면 딱히 이렇다 할만한 계기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학교는 체험하기엔 좋은 곳이지만 동기부여가 생기기에는 알맞지 않았다.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는 성향이 강한 아이들에게는 오직 체험에만 특화되어 있는 곳은 큰 도움이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다.
>>275 인사가 귀여워... 별하주 안녕~~! 별하가 사하랑 같은 은씨라 반가운 맘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밝혀보아 -///- >>280 신문부 비랑이는 뭔가 특종 엄청나게 잘 찾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ㅇ.< 적폐 캐해석이라면 사과하겠읍니다...... >>285 헉 자존심 높은 자낮캐? 이 미슐랭은 무엇이죠....? 운동부족인 건 정반대네! ㅋㅋㅋㅋㅋㅋ
등 뒤의 옷자락을 강하게 쥐어잡히는 느낌. 아무래도 힘 조절이 잘 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번 깨물어버린 이상 그만두기는 힘든 일이었다. 가예 또한 옷자락을 쥐는 것 말고는 그만두란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허나 곧 들려오는 가예의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입을 때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등어리를 감싸고있던 손이 풀리며 목을 감싸고 있던 손을 양손으로 잡아 풀면서 얘기했다.
" 양은 없었지만 늑대의 편에 붙은 양은 있었지. 애초에 그들에게 나는 도구 그 이상의 가치는 없었으니까. "
좋지 않은 기억이라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서있어서 다리가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옆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청소년기에 그런 취급을 받다니 미치지 않은게 다행인걸까. 아무래도 나름 고급 재산이라 생각해서 취급을 특별하게 해준 것일지도 모르지. 이젠 그들에게서 거의 벗어났지만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다.
" 나한테 뭘 시킬줄 알고 그러냐고 물었지? "
아까는 대답하지 않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목을 가다듬는다. 길게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올리고서, 나는 가예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 아까도 말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를테면 사기 같은 행위만 아니면 뭐든 괜찮아. "
아까보다 훨씬 충만해진 감정에 만족스러움을 느낀다. 가예도 이런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겠지. 동시에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면서.
" 다만 이건 너랑 나와 각인을 하겠다는 약속이 없이는 불가능해. 서로가 서로에게 목줄을 거는 상황이라면 뭐든 받아들이겠어. "
일방적으로 이용 당하는건 사절이었다. 그렇게까지 이용 당해놓고 또 호랑이굴로 제 발로 기어들어가는 격이니까. 하지만 가예라면, 1년동안 봐온 그녀라면 지금까지 봐온 그 어떤 누구보다도 나를 믿고 맡길만 했다. 내 재능을 누구보다 여과없이 잘 사용해줄 사람일테니까. 나는 내 재능을 나에게 사용하기를 포기했기에.
" 너가 내것이 된다면, 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어. "
속삭이듯이 얘기한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결정을 지금 내리지 않아도 좋았다. 그 대답이 Yes 이던 No 이던 그것도 상관 없었다. 그녀의 확답만 나는 기다릴뿐이다.
>>284 하려고 하면 그대로 늑대전형으로 취업할 만한 재능이니까 비랑이보단 진지하게 목소리 쓰는 직업을 생각해봤겠지. 비랑이는 재능과 함께 사는 삶도 재미있다고 넘기는 쪽이라면, 비영이는 재능이 날 묶어놓는지 그저 아무것도 아닌지 긴가민가한 정도? 반은 현실도피고 반은 진심. 비랑이보단 인간관계를 무겁게 여기는 편이야. 비랑이는 에너지가 표출되고 비영이는 잠재되는 느낌이라 치밀한 정의감에 불타올라서 종군기자를 꿈꾼다는 가능성도 있어. 괜히 찝찝해지는 거 위주였겠지만)( 지금 비랑이도 무서운 이야기 해주면 흥미진진하게 들을 거야! >>289 그런가...?! >>290 땡큐땡큐!
>>321 (급 수척해짐) 자기랑 안어울리는 엄청 색이 짙은 애여서 억지로 떼어놓기 위해 별의 별 쇼를 다 하고 상처까지 입혔는데도 떨어질 생각을 안하니까 '대충 울트라 궁극 초 하이퍼 필살기(조율 필요)'를 써서 떨어뜨린다음 떠나가니 그때서야 자기도 좋아했었다는걸 깨달은... 그런 서로 비참한 관계여도 좋다면 츄라이를... 물론 여기서 '그 아이'가 아직도 양아치를 마음에 두고있다. 라는 설정이면 엄청 죄책감 느끼면서도 이전보다 잘해주려고 할거구, '그 아이'도 마음이 떠났으면 평범한 관계 정도가 될지두! 근데 플롯 꼬기로 '사실 그 아이도 떠나서 딱히 좋은 삶을 살진 못했었습니다 짜잔~' 하면 뭐... 양아치 복장 터지는 거지. 사실상 상대방이 양아치한테 일방적 혐관 꽂혀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였슴다...
지구는 더 다가가지 않고, 그쯤에서 겨우 만족하고 물러 서는 듯했다. 이만하면 됐다고. 방문 기록 차트에 정갈한 글씨로 온지구와 은사하를 나란히 적을 뿐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드니 확실한 의사표현이라며, 짓궂게 웃는 얼굴의 사하는 여우보다는 늑대를 닮았다는 기분이 든다. 단순한 머리색 때문인가. 확실한 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이 길들여지는 애완동물 류는 아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제게 칭찬을 바라듯, 거만하게 구는 사하의 태도는 그 생각보다 귀엽게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불과 아까 전만 해도 건방지다고 그랬으면서. 지구는 그저 픽 웃고 말았다.
"너 사실 다 좋아하지."
보건실 책상 위에 나늘이 어질러놓은 듯한 서류를 정리해두고 있던 지구가 문득 든 생각을 무심코 툭 내뱉었다. '그리고 싫어하는 것도 없지.' 그런 평탄한 어조의 질문을 조용히 덧붙이며 지구는 자리를 깔끔히 정리하고, 마셨던 종이컵을 쓰레기통 안으로 구겨 넣었다. 추측성 발언일 뿐이지만 그저 이제껏 그녀가 했던 우유부단한 행동들을 종합해보면 꽤 그럴 듯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실이라면 싫어하는 건 싫어한다고 해, 라던가 좋아하는 쪽에 가깝다, 같은 얘기는 물거품이 되는 거겠지. 지구는 왠지 퍼즐 조각을 찾아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사하를 건너보았다. 전부를 좋아한다면, 그 중에서 저 하나가 특별한 것은 없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딘가 바다의 맛이 나는 것 같다.
"길동무 정도는 되주겠지."
아는 것이 없어도. 무슨 길동무인지는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런 살벌한 말을 뱉어놓고 지구는 무심한 얼굴로 다 챙겨먹었으면 (나늘이 돌아와 귀찮아지기 전에) 돌아가자는 눈짓을 보낸다. 그는 가기 전에 시계를 한번 확인했다가 갑자기 보건실의 맨 윗 서랍을 뒤적이고 곧 그것을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온난화로 아파."
지구의 두통이 생긴 원인을 설명하려면 옥상에 가득하던 사하의 달콤한 바닐라향 이야기부터 거슬러올라가야 했으니 대충 귀찮아진 지구는 그런 말장난으로 넘겨버리고 다 마신 종이컵을 달라는 듯 사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하가 알약을 삼킨 순간부터 그녀의 몸 속으로 녹아들고 있는지 점점 잦아드는 바닐라향에 지구는 그제서야 얕았던 숨을 깊게 들이쉰다. 솔직히 한 입만 깨물어 먹어 봐도 됐었을 텐데. 뒤늦게 아차싶긴 했지만 간절하진 않았으니 넘기기로 했다. 이제 이대로 학생회실에 돌아가면 혼나려나.
>>365 대충 그 아이에 대한 매커니즘이라던가 대강의 캐릭터성은 가장 최근 독백 보면 단편정도는 알수 있을 거야~~~~~~~ 왕 치대기 좋아하구, 활발하구, 막 사람 세세하게 챙기는거 좋아하구... 부분부분은 시아랑 꽤 비슷한 캐릭터일 수도 있겠네! '아무튼 대충 헤어진 이유 필살기'에 대해 기발한 씽크빅이 있다면, 각잡고 짜볼 생각이 있다면 선관스레를 두드려주소서...
>>425 어릴 때는 지금보다 성적이 좋기도 했구 후뿌뿌뿌하기에는 애가 좀 덜 착한 것 같아서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후뿌뿌뿌는 뭔가 엄청 대인배에 햇살 같은 친구들이 갈 것 같읍니다..... 선샤인~~ 민규는 후플푸프 넘 잘 어울려..... 퀴디치 잘할 것 같은데 맞나요
>>183 일단 슬혜주 써준 건 꼼꼼히 읽어봤고...... 음, 이렇게 되면 특별한 관계는 딱히 떠오르지 않게 되네. 일단은. 혐관이라 해도 단유신은 웬만하면 대놓고 적대하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얘 없으면 내 감정 쏟아낼 애가 없다'<-가 성립되기 힘들어보이고 말이야. 슬혜가 일방적으로 극혐하는 관계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슬혜주가 어케 생각할지를 모르네🤔 그 밖에는 아직 떠오르는 관계가 없네😭😭😭 초면인 편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그나저나 지방이나 해외 관련 질문 워째서였는지 궁금해용...뭐였떤 거임...알고 싶음...(흡사구걸
간만에 사하가 입 다무는 시간이 찾아왔다. 지구가 나란히 적는 글자들을 쳐다보고 있던 덕이다. 남의 손으로 적히는 제 이름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음 학기에는 옆에 앉은 애한테 교과서에 이름 써 달라 해볼까. 미래의 짝이 질색할 생각도 짧게 해본다.
"좋아하는 게 많은 거랑 다 좋아하는 거랑은 다른 거야."
사하가 지구의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말투는 거의 선생님이다. <거기 자는 애 좀 깨워라. 여기 시험에 꼭 나오니까 빨간 줄 그어.> 하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지구가 정리하는 종이를 따라 시선이 왔다갔다 움직이다 컵에 조금 남은 물로 향한다. 거의 바닥에 몇 방울 남아 있던 걸 마저 마셨다. 몰랐는데 목이 말랐나 싶다. 도와줄까 물어보기엔 이미 늦은 것 같고, 사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히 서 있었다. 하는 일이라곤 지구의 살벌한 말에 입을 벌리는 것뿐. 아니, 끊어졌던 머릿속 영상을 다시 재생하는 것도 있었지. 유유히 범인들의 손을 빠져나가던 –상상 속의– 사하가 뒷덜미를 잡혔다. 탈출에 실패한 –역시 상상 속의– 사하는 딱 봐도 수상한 건물로 끌려들어간다. 아까 갇혀있던 거기다. 문이 쿵 닫히고, 페이드 아웃. 배드엔딩이다.
"…만약에 내가 생각하는 길동무가 맞으면 맨날 네 꿈에 나타나서 악몽 꾸게 할 거야."
사하가 사납게 눈을 치뜨며 말했다. 물론 오래 가진 못했다. 아픈 이유로 댄 게 너무 터무니 없어서 웃음이 났던 탓이다.
"저런. 내가 분리수거 더 열심히 해볼게."
지구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보던 사하가 그 손을 잡아 가볍게 악수하려 했다. 양호실까지 끌고 와준 것에 대한 감사와 분리수거 발언에 대한 약속의 의미였다. 지난 번엔 실수했지만, 이번엔 분명히 악수요청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곤 홱 돌아 쓰레기통에 제가 쓴 종이컵을 버리고 다시 돌아왔다.
>>438 참고로 본 오너는 불호 요소가 0에 수렴한다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거의 모든 관계성을 환영하니 그 점 부디 알아주시고 그..럴까? 일상 조질까>:3! 낮까지는 내가 딴 일정이 있어서 조금 힘들겟고, 그 다음부터는 비록 텀이 있는 편이지만 괜찮은데 슬혜주는 어떨까??? ㅇㅎㅇㅎ 그랬던 거였군 궁금증이 풀려 행복하구먼^ㅇ^
피부 표면에서 얇은 살결이 떨어지자 저도 모르게 가늘게 벌린 잇새로 날카롭게 공기가 들이쉬어졌다. 전보다 한층 과감해진 행위는 일전에 우리가 만났을 때보다 네가 극에 몰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고, 또는 페로몬에 취한 상태에서 감당하지 못할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각인을 해서 영영 묶어둘까, 싶다가 손이 잡아 풀렸다.
"그랬구나."
재능을 보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았다더니 그런 일이. 여자는 해인이 상대가 본인을 이용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아두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대강 넘겨짚을 수 있었고 대신 말을 아꼈다. 누구나 속사정이 있고 드러내기 민감한 부분이 있으니까. 네 손짓을 보고 같은 자리에 다시 착석했다. 팔뚝 위에 피가 몰려 울혈이 남았지만 동복 착용 기간이 남아있으니까. 흔적을 멀뚱히 내려다 보다 다시 겉옷을 추스르며 시선을 마주헸다. 물꼬가 트이고 있었다.
"남을 속이는 행위만?"
네 재능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를 꼬아 상대를 설득하는 것인데도. 의문을 표시하면서 만족스러운 침음을 냈다. 그렇단 말이지. 여자는 땅바닥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일말의 속삭임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말을 아끼다가 쩝 하고 입소리를 내더니 가볍게 입을 연다.
"해인아,"
깊은 호흡이 오고 간다.
"매력적인 제안이야. 내가 좀 더 나쁜 사람이었다면 그 제안을 여기서 받아들였겠지만 기회를 줄게. 그 발언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요지는 이것이었다. 권하고 있었다, 페로몬을 발산하고 있는 상태인 본인을 앞에 두지 않은 상태로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것을. 이 시간 이후로 지금 생에 있어 최약의 실수 중 하나로 남을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지 다시 생각해볼 것. 대신 이것이 왜, 어떻게 실책이 될 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것까지 알려줄 정도로 착한 사람은 또 아니라.
"난 내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사람을 절대 놔주지 않아."
본연의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게 한 음절 한 음절 짓씹듯 내뱉는 건 착각일까, 여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말이 없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해인의 팔 언저리를 정답게 두드리더니 가자, 늦었다. 더없이 낭랑한 목소리로.
평소의 무정한 텐션과 딱딱한 어조로 돌아왔을 뿐 지구는 딱히 화가 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질문을 하고 있으면서도 끝말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사하가 명확하게 선을 그어 설명했으므로 그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을 뿐이다. 그래서, 과연 너는 뭘 싫어하는데? 부지런하게 움직이던 지구의 손이 멈추고 사하를 건너보며 눈을 느릿하게 깜박였다. 찰나의 순간이었고 지구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제 할일을 마저 치룬다.
"사하가 나오는 꿈이 악몽인가?"
사하가 사나운 눈을 하고 있지만 지구의 눈매는 평소와 똑같이 삐딱한 선으로. 탁한 바닷빛의 푸른 눈은 능청과 장난보단 순전한 호기심이 담겨있다. 매번 제 꿈에 나타나서 괴롭히기라도 한다는 이야기일까. 그래봤자 저 조그만 것이 무얼 한다고. 잠깐 상상하다 픽 웃으며 시답잖은 농담으로 넘긴다. 해봤자, 딸기 케이크 위에 딸기를 먹어 치운다던가 가는 길에 바나나를 깔아 둔다던가 우산에 구멍을 낸다던가 하는 그런류일까. 그는 그녀를 얼마나 얄궂게 보는지.
"뭐.. 그래. 상이다."
뜬금없이 악수를 하는 것에 습관적으로 미간이 잠깐 찌푸려졌다가 사하가 직접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오자 곧 반듯하게 펴졌다. 지구는 그런 사하에게 잘 했다는 듯 머리를 툭툭 (건성으로) 쓰다듬어 주려 했고, 그가 손을 뗀면서 그녀의 머리 위에선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을 거다. 보건 선생의 간식을 능청스럽게도 턴 지구가 300원 짜리 본오본 초콜릿 과자를 까서 입에 넣는다. 초코 과자 덕에 무표정의 얼굴로 한쪽 볼이 볼록해진 지구는 사하에게 가자는 듯 손짓하며 먼저 몸을 움직였지만 그녀가 그를 따라 잡는다면 금방 걸음을 맞춰주었을 테다.
모르겠다. 라는 수식어를 붙인것 치고는 그녀 또한 꽤나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익숙해진 것인지는 몰라도 아마 그의 꾸준한 움직임이 그녀 역시 조금씩 움직이도록 만들었던게 아닐까, 어쩌면 그녀 역시 그부분을 인지하고 있기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아가는 부분은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어느 방향인지는 그녀로서도 알 수 없지만.
"음... 그건 좀 상대적이라 애매한데요..."
맛있다 라는 생각을 여러번 하는 것으로 그 맛의 차가 주어질수 있다면... 솔직히 말해 지금 그녀가 먹고 있는 카레도 자신의 10배쯤은 맛있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맛있다 생각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말이다.
"후후... 어느정도 선배의 동아리 활동 취지와 비슷하지 않나요? 스스로도 즐거움, 뿌듯함, 성취감을 느끼지만,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눌수 있는 거라구요?"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었다면 그걸로도 오케이인 셈이다. 아얘 모르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사람을 더 성장하도록 만들곤 했으니까, 어쩌면 그의 동아리인 아무튼 즐거운 것을 하는 부도 설립취지는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타인을 통해서인가, 자신만을 놓고 본 것인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후후후... 선배님은 참 재밌는 분이란 말이죠..."
아마도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모양인지, 눈 딱 감고 먹는 모습은 투정을 부려도 어쨌든 먹긴 하는 아이의 모습과 겹쳐져보이기도 했다.
"......"
보통 이렇게 보조로 손을 잡아줄 때는 어긋나기 쉬울텐데, 그럼에도 그의 손길은 꽤나 매끄러워서 숟가락 안에 든 것을 문제없이 입에 물고, 씹고, 삼키는 것에도 문제는 없었다. 단지 이런 낯뜨거운 행동은 거의 해본적이 없던 그녀에겐 지금 일어나는 상황이 대관절 무엇인지 알수 없을 뿐이지만 말이다. 설마 '밥먹여준다.'는게 이런 의미였던 걸까?
그 뒤에 이어진 것은 누가 봐도 떠먹여주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버릇처럼 그녀가 움직여왔던 패턴대로, 숟가락에 담던 양대로, 흐트러짐 없는 오차로 그것을 자신에게 내미는 것일까.
본오본 쪼꼬렛 저거 맛있지 청소년센타에 봉사하러 갔을 때 비치되어 있던 걸 줏어먹은 기억이 나 :3
유치원생 때 미래에 나올 수 있는 기술 상상해 보기에서 내가 칭찬받았던 게... 생각하는 대로 그림 나오는 칠판... 기술자들 뭐하는 거야()
생각해 본 건데 결혼과 각인이 꼭 같이 가는 건 아닐 수도 있겠지....? ;3 늑대는 문어발 각인이 가능하다는 말도 있구.. 각인을 통해 양에게 주어지는 대가가 '외로움의 해소'인데 오히려 각인 맺은 늑대가 여기저기 다리 걸치고 다니면 외로움이 배로 심해져서 애정관계에서 처음으로 성난 양이 뿔로 받아 버리는 상황 나오는 걸까
누군가 이득을 보려면 누군가가 손해를 보는 구조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한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는건 도덕적 , 윤리적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자신이 인생을 망친 모든 이들에게 보상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수를 크게 늘리기는 힘들었으니까. 어느 누군가는 변호사가 되어보라고 했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상대에게는 무기력한 것.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해버렸다.
" 내가 보기엔 넌 이미 충분히 나쁜 사람인데. "
나쁜 사람들은 지겹게도 보아왔기에 가예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도 대강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는 그들만큼 그런 분위기를 낼 수 없었기에 한층 옅은 감도 없지 않아 있었고. 발언을 회수할 기회라 ... 사실 지금의 내게는 그런 기회를 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쳐가는 심신을 더이상 어떻게 회복할지 감도 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한계치가 슬슬 눈에 보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 안심해. 나갈 생각은 없으니까. "
한층 여유로운 웃음. 감정의 회복이 충분해서일까 초조함과 불안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피로도 말끔하게 사라진 기분이었다. 정말 피로가 사라진건 아니고 기분 탓이겠지만. 그렇게 팔을 두드리며 가자는 말에 나는 그녀를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주었고, 기숙사 앞에서 그녀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얘기했다.
" 생각보다 시간은 없을꺼야. 아마도. "
기회가 왔을때 바로 잡으란 뜻이었다. 내가 언제 생각이 바뀔지 모르고,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게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고 학교를 빠져나온다. 집가서 그냥 자야지.
// 막레이거나 다음이 막레가 되겠네요! 편한대로 하셔도 괜찮습니다! 긴 일상 수고하셨어요 :3
>>502 "씀배임 운동할때 무표정짓지 않씀다!! 공 뜬질때 회전 200번 느주십쑈!!"(버럭버럭) 같은 느낌이지만 맘속으로는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하고있습니다! 캐치볼 그건.... 만화에서 총알 물어서 막는거 보고 예행연습 하는거임... DX
>>506 "마 골댕이! 댕댕력으로 승부다!!!"(?) 뭔가 말로 하기 힘든 동질감 비슷한걸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3 근데 그게 막 친밀감으로 나타난다기보다는 라이벌 의식같은걸로 나타난다고 해야하나...
>>507 빨갱이라고 불리는건 싫지만, 그렇다고 머리색을 바꿔버리면 그걸 의식하는 느낌이라 더 싫은것... 남 눈치 안보고 살고싶은거죠! 그래도 자기 머리색을 좋아하긴 한답니다! 머리색보다는 머리 스타일에 대해 고민중... 나중에 꽁지머리도 시켜볼것임!
>>511 명실상부 여름!! 여름에는 수영장 같은것도 있고... 찜질방 들어가서 수련(??)할 수도 있고... 뭔가 할수있는게 폭이 넓다는 이유로 좋아합니다! 겨울엔 물 얼어서 수영 못한다고 싫어함... 수영장보다는 자연 계곡이나 바다같은델 좋아해서요!
>>512 첫 일기를 쓰기 시작한건 10살부터에요! 첫 일기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XD [오늘은 일기를 쓸 마음을 먹었다. 근데 까먹었다가 오늘이 지나기 전에 쓰고있다...] '오늘 했던 기억에 남는 일' 을 쓰라고는 들었지만 하루하루 막사는 아이들에게... 하루를 기억하라는건 힘든 일이었다나 뭐라나... 습관이 된건 한 1년정도 썼을 무렵이겠네요! 괜히 안쓰면 신경쓰이는 그런 때...
오늘의 지구가 마니또의 선물을 발견 한 건 밥을 먹고 난 후의 점심시간 즈음이었다. 그야 오늘은 책상 서랍에 손을 댈 일이 없었으니까. 체육도 껴 있었고. 지구는 먼저 농구를 하러 간 친구를 보내고 책상 서랍에 넣어 둔 초코비를 꺼내 친구와 나눠 먹을 생각이었다. 또 농구를 하다보면 아슬아슬하게 수업시간에 도착하니 미리 다음 교시의 책도 꺼내놓을 겸. 그런데 서랍에 손을 넣자마자 무언가 낯선 촉감에 지구는 속으로 기겁했지만 겉으론 눈을 한번 깜빡했을 뿐이다. 점심시간이라 해도 반에 남아 있는 아이들도 꽤 있었고.. 또 그렇듯 주위를 살펴 보았지만 지구와 눈이 마주치거나 지구를 살펴보고 있는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또 상체를 숙여 책상 서랍 안을 살펴보니 무언가 납작한 게 들어있다. 덥썩 잡고 꺼내니.. 왼쪽의 장갑 두 개. 의문스러운 표정의 지구는 뒷목을 쓸어내리며 쪽지를 마저 찾아 꺼내 펼쳤다.
<~.... 옆에 서서 같은 바람을 맞아 주실 건가요, 도련님? 그러실 리가 없지요.> -🌠🌠🌠
쪽지를 다 읽은 지구는 약간 복잡한 얼굴로 머리를 헝클였다. 뭔가 미움 받은 걸까. 쪽지를 180˚ 돌려 읽었다가 이내 파란 포스트잇과 샤프를 꺼내어 반듯한 글씨를 적어내려갔다.
<업히는 건 싫어?>
그 여섯 글자가 다였다. 그가 그녀를 업는다면 바람개비는 그녀의 두 손에 쥐고, 지구에 떨어지는 별 조각들을 함께 볼 수 있지 않을까. 거절 당할 것 같긴 하지만. 지구는 상상한 그 그림이 꽤 좋았다. 남녀가 업고 있는 뒷모습을 그려 넣을까 하다, 친구가 아래에서 기다릴 것 같아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가방을 뒤적거린다. 곧 그의 너른 손에 담긴 파란 초승달 모양의 키링은 곧 그의 서랍으로 옮겨간다. 꼭 초승달이 돌고래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이대로만 놔두면 전달이 되지 않을 것도 같아, 잠깐 천장을 보며 미간을 찡그리더니 이내 메모지의 끝자락에 조그만 지구와, 그 곁을 맴도는 달을 그린다. 그리곤 친구의 인내심이 터져 운동장을 지구의 이름으로 가득 메우기 전에 교실을 뛰어 나갔겠지.
부끄러워 하는 슬혜를 보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아 그저 불그스름해진 볼을 힘껏 당겨 수줍은 미소를 지어 스윽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이상하네. 가슴속이 간질간질해. 긁고 싶지만 닿진 않을 것 같아.'
이어 투닥투닥(?)오가는 몇 배로 맛있냐는 이야기에 주원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거니까, 어쩔 수 없으려나? 하지만 나에게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 정말 맛있었어."
하곤 결론을 짓듯이 말한다. 눈 앞의 슬혜는 반대로 스스로 만든 요리보다 방금 주원이 만든 카레를 맛있다고 느끼는 것에는 전혀 눈치채지도 못한 채.
"맞아. 내가 찾는 것일지도 몰라. 어쩌다보니. 하지만..."
하지만, 하고 말을 잇지 못한다. 그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말로 했다간, 그대로 사라져버릴까봐. 요리를 즐겁다고 느낀 것은 순전히 슬혜 덕분. 다른 것이 아닌, 오직 한 사람 때문이니까. 주원은 두려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 '네가 아니면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거야.'라고,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을 삭힐 뿐이었다.
"나도 슬혜가 재밌어. 같이 있으면 질리지 않는걸."
야채 얘기로 언제 풀이 죽었냐는듯, 재밌는 분이라는 얘기에 고개를 홱 들어 짓궂은 미소로 부끄러운 마음을 어떻게든 무마하려 하지만, 그 배싯거리는 얼굴의 볼은 슬쩍 달아올라 있어 부끄러움을 무마하려고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능숙하게 슬혜의 손을 잡고 한 번 먹여준 주원은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받아 그녀가 먹던 양 그대로 카레와 밥을 숟가락에 담아 그녀의 입 근처로 옮긴다.
부끄러워하며 슬혜의 눈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망치지만 주원의 흔들리지 않는 태도 때문인지 그녀는 한 번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눈을 감았다.
그런 모습이 어찌나도 귀엽게 느껴졌는지 주원은 소리 없이 환하게 미소짓곤 눈을 질끈 감는다. "크으으윽..." 슬혜에게 들릴듯 말듯 마음에 입은 타격을 입으로 힘겹게 흘리는 소리를 내곤 천천히 눈을 뜬다.
주원은 천천히 숟가락을 그녀의 입으로 옮긴 뒤 눈을 감은 그녀가 알 수 있게 숟가락의 앞부분부터 입술에 갖다댄다. 그리고 방금 한 번과 같은 움직임으로 그녀가 숟가락의 카레와 밥을 전부 입으로 옮긴 뒤 부드럽게 위로 호를 그리며 숟가락을 빼낸다.
그렇게 한 숟갈 더 그녀에게 카레를 먹여준 주원의 얼굴은 두 눈은 초승달이 되어 떠있고, 입술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흰 이를 드러내며 밝게 미소짓고 있었다.
>>542 글게유 그러고보니 정확하게 만난 시점을 안 정햇엇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 언제가 좋으신가요 사실 개차반이엇다가 사람됐다구 해도 외부에서 보이는 차이는 눈치 빠른 사람 아니면 눈치 못 챌 정도긴 혀요 민규 입장에서나 엄청나게 바뀐 거라서
지구의 말에 사하가 입을 꾹 다물었다. 후보군 몇 개를 두고 재는 것처럼 굴더니, 드디어 말하려는 듯 입술이 벌어진다.
"…다음 이 시간에."
뜸 실컷 들여놓고 맥 빠지는 대답이다. 들을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처럼 웃는다. 어쩐지 분한 마음이 들어 한 대 콱 쥐어박더라도 똑같은 얼굴을 할 거다. <아야.> 하고 짧은 소리 정도는 뱉겠지.
"쌍쌍바 이상하게 뜯어서 작게 남은 쪽 줄 건데?"
<기껏 만든 눈사람 얼굴에 흙으로 볼터치 해주기>, <3색 볼펜 색깔 바꿔놓기>, <결말이 중요한 얘기 결말 빼고 다 얘기해주기>……. 사하의 입에서 칼을 간 복수 계획이 줄줄이 나온다. 그렇게 얘기하가 문득 떠올랐는지, 지구를 바라보며 묻는다. <귀신은 존재 자체로 악몽 아냐?> 겁이 없는 편인가. 눈 끔뻑이며 생각한다. 아니면 그런 걸 즐기는 사람인가. 공포영화에서 천천히 기어오는 귀신 인상 쓰고 쳐다보다 결국 웃음 터뜨리고 마는 저처럼.
"나 처음부터 네가 착한 애라고 생각했어."
머리 대충 쓸어줄 때까지만 해도 공 물어온 강아지 취급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는데, 바스락 소리와 함께 손 위로 올라온 초콜릿 과자를 보자 그 기분 싹 사라진다. 샐샐 웃으며 아부성 짙은 말을 뱉었다. 300원짜리 과자에도 사하는 쉽게 제 자존심을 팔아넘겼다. 껍질 까서 입에 넣은 과자가 꽤 달콤해서, 그런 보람이 있었다 생각했다. 지구의 손짓에 쪼르르 쫓아 나간다. 공 물어온 강아지를 자처했다.
가벼운 승리. 실망스러움 가득한 얼굴을 보아 기쁘다기보다는 안심되는 느낌이 맞겠지. 뭐랄까 보건 선생님을 상대로 이겨 보건실의 침대를 뺏었다고 해서 기쁜 것도 이상하니까는 어쩐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복잡 미묘한 표정이었다.라고는 해도 승리의 여운(...)에 잠길 틈도 없이 정신은 손에 쥐여준 무언가에 팔려 금방 잊어버렸지만.
"... 네엡."
이젠 대답에 영혼을 버리기로 했다. 본디 장난이라 함은 상대의 반응을 즐기는 게 아니던가? 그것을 일일이 떠올리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의미는 없는 게 아닌가 싶지마는. 복잡한 머리는 비우자. 생각하다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생각하고 포기하고를 반복하며 느린 발걸음으로 선생님이 안내하는 쪽으로 졸졸 따라갔다. 흰 간이침대와 침대들을 서로 가린 얇은 커튼. 침대에 걸 터 앉고 나서야 양호실에 왔구나 싶은 느낌. 피곤한 건지 들뜬 건지. 자장가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짜게 식은 얼굴로 답했다.
잼잼, 주먹 진 손에 약과 초콜릿을 쥐었다 손을 벌렸다 반복하는 사이에 물과 함께 등장했다. 등장해서는 갑자기 자세를 낮추는...
"감사합니다 어르신, 제가 했어도 되는데... 너무 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나름대로의 복수. 작은 장난. 걸터앉은 침대에서 스르륵 내려와 자세를 낮춘 선생님과 시선이 맞을 정도로 쪼그려 앉았다. 가까우니 느껴지는 냄새. 라기보단 향기라고 하던가? 아까 다가와 이름을 확인했을 때도 그랬었지. 기분 좋은, 향기로운, 깨끗한...
한 번에 다수의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여자도 꺼려졌다. 뒷감당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벌이는 건 여자의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 해인의 조건과 우연찮게 맞아떨어지는 셈이었다. 충분히 나쁜 사람이라는 말에 다소 당황한 얼굴로 응시하다가 눈썹을 늘어뜨리며 웃는다.
"글쎄."
나쁜 사람들 중엔 착한 축에 들 걸. 무뢰한이었다면 널 다치게 해서라도 피를 머금게 했을테니. 우습게도 여자는 머리에 이러한 선택지가 떠오른다는 것만으로도 글러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대가 자신의 편인지 아닌지 가늠해보는 것에 질릴 정도로 익숙해진 백가예는 희게 웃었다.
밤바람이 차다. 이제 헤어져야겠지.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 네 말을 알아듣고 빤히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손을 흔들고 학교를 빠져나가는 네게 같이 손인사를 해주고 잠시 뒷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일상 고생했어~~! 역시 산들고 친구들은 다 잘생기고 예쁘다는 사실 배워갑니다..... 배우긴 뭘 배워 사실 첨부터 알고 있었다 이겁니다 ㅇ.<)~* 우리 친구들 완성형 미모라서 할머니는 기쁘다...... >>527 헉 첫 일기까지 공개해주는 연호주는 천사........?? 1년만에 습관으로 자리잡다니 ㅋㅋㅋㅋㅋㅋ 일기 쓰는 게 제법 즐거웠나본데... 연호 일기 언제나 귀엽게 보고 있다구 '-^ 앞으로도 기대해요~~!
>>52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댕댕력으로 승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왠지 주원이는 연호 보고 아마 자신은 재능으로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섣뿔리 다가갈 수 없는데 거침없이 행동하는 연호를 보고 열등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아마 자신은 가짜인데 쟤는 진짜구나 하는...?
>>528 이 때의 민규랑 만나 친해진거구나!!! 넘모!!! 기뻐!!!
>>536 해인이 매력터진다...! 으아악 전 픽크루 고...아니 잘 못해서 다른 분들거 보고 행복해할게요...
'이 바보야, 잘 모르겠으면 이것만 명심해! 호흡은 짧게, 거리는 가깝게, 힘은 그것만을 위해 내며, 막는 것은 곧 흘리는 것. 그리고 오른쪽 조심!'
검도부장이 알려준 검도의 팁을 마음속으로 새기며 나는 호면 속에서 숨을 가다듬었다. 찝찝한 땀과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났다. 안타깝게도 체력과 근력은 내 재능이 아니었고, 그 부분에 한해서 나는 순전히 노력으로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눈'이다. 상대방의 타격을 받아치거나 막는 건 내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궤적이 잘 보였다.
심리전이랍시고 걸어 오는 얄팍한 흘리기도! 비어 있는 오른쪽 손목도!
"끄랴―!"
탁, 하고 기분좋은 소리가 났다.
잽싸게 죽도를 바깥으로 한 바퀴 둘러 손목을 치고 물러나왔다. 한판을 선언하는 팔이 내 쪽으로 올라왔다. 이겼다! 죽도를 든 채로 깡총깡총 뛰며 좋아했는데, 저번에 이러는 나를 보고선 '이건 패배한 상대방의 신경을 긁는 행동이니까 꼭 하는 게 좋다'고 부장이 말한 적 있다.
그 뒤로는 얌전히 마주보고 목례를 하고, 포디움에 올라서 웃으며 브이자를 그리고, "수고씀다―." 하고 시무룩한 검도부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통로로 나와서 제 갈 길을 가면 되는 것이었다.
.... 이 날만큼은 예상치 못한 손님이 있었지만.
"별하, 왔었어?" 앉아 있는 친구의 사각에 은근슬쩍 들어가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별하를 보고 놀란 만큼 나도 놀라게 해 줘야지. 무릎을 짚고 허리를 살짝 구부렸다. "연락하지 그랬어! 나 우승했다아?"
옆에 앉을지 말지를 살짝 고민했지만, 역시 앉아 있는 건 질려 버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아 일으켜 주려고 별하에게 손을 뻗으며 나는 말을 이어 갔다. "밖에 비 와? 클났다. 우산 없는데."
오늘의 포장지는 초록색이었다. 역시나 조심조심 뜯어 가방에 넣었다. 다이어리 꾸미기 같은 취미가 있었으면 알차게 썼겠다 싶다. 슬프게도 부지런하지도, 미적 감각이 뛰어나지도 않으니 편지 모아두는 상자에 고이 보관하는 수밖에 없다. 나중에 죽고 나서 같이 태워달라 하겠다 하면 좀 무섭겠지. 누가 들으면 기겁하고 지나갈 생각하며 히죽 웃는다. 포장을 뜯은 귀마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쪽지를 먼저 펼쳐 읽었다. 적힌 글씨를 죽 훑어 읽는데 이 애 엄청나게 섬세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에 맞는 학용품이라니. 사하에게 그런 게 있던가? 잘만 나오면 그만인데. 귀마개 같은 건 써 본 적 없지만, 이 정중한 마니또의 취향에 왠지 신뢰가 간다.
<뽀송아, 수능 잘 보면 네 덕이야.>
오늘은 책상에 적었다.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
진홍색 무언가가 책상 위에 있다. 뭐지, 인형인가? 가까이 가서 확인하니 쿠션이다. 포장 위로 꾹 눌러보니 제법 단단하다. 오늘 푹 자라는 신의 계신가. 어디에서도 먹히지 않을 생각을 한다. 정말로 잘 생각은 없다. 대학은 가야지……. 이번엔 포장 푸는 대신 쪽지를 먼저 편다. 특이하게 생겼다 싶더니 안쪽에 뭐가 있는 것 같았다. 쪽지에 적힌대로 포장을 뜯고, 안쪽에 손을 넣어 당겼다. 담요가 빠져나오며 사탕 한 알이 책상 위로 또르륵 굴렀다. 자두 사탕이다. 그리고 담요 사이에는 쪽지 하나. 펼쳐보니 새콤한 냄새만 났다. 레몬으로 쓴 편지인가. 어디 불 구할 데 없나 생각했다가, 다음 선물을 위해 간직하라는 말에 고이 접는다. 알려주기 전까지는 뭐 안 해보고 잘 가지고만 있을 생각이다.
<뽀송아, 오늘은 내 사물함 확인하고 가.>
책상에 적은 사하가 사물함에 쪽지와 오렌지주스를 넣었다. 쪽지엔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최민규는 벚꽃 책갈피를 손 안에 꾹 쥐었다가 펴보았다. 어쩌다가 봄을 선물받아버렸네. 작게 웃었다. 겨울을 사는 사람에게, 봄이 무슨 의미일까. 언젠가 다다라야 하는 곳, 아니면 영원히 닿지 못할 곳. 하지만 이번에는 네가 '반드시' 온다고 말했으니까, 그렇게 믿기로 했다. 땅보다 구름에 더 가까운 겨울산에도, 언젠가 꽃이 핀다고 말이다.
려문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고도 나늘은 눈꺼풀을 천천히 깜박, 감고서 빙글게 웃었다. 그래도 처음 들어왔을 때의 시든 식물 같던 표정보다는 훨씬 생기있지 않나, 멋대로 넘겨 짚으며. ...하지만 곧 그의 영혼 없는 대답에 나늘은 또 입꼬리를 축 떨어뜨렸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열심히 했는 걸. 좀 더 기뻐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게다가 자장가의 대한 대답으로 려문의 표정에서 나타난 뚜렷한 거절의사에 나늘의 뒤엔 먹구름과 천둥번개가 쳤을지도 모른다. 나름 자신 있었다.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노인공경이니까 자리 바꿀까."
나풀나풀한 려문이 걸터 앉은 침대에서 스르륵 떨어져 쪼그려진다. 나늘은 그 모습을 깜박 바라보며 '어르신'이라는 단어에 웃는 모양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어금니를 깨문 채로 한마디를 지지않고 려문에게 덤벼드는 것이다. 또 다른 얘기를 하자면 직업병에서 오는 것으로, 려문이 쪼그려 앉는 것에 '무릎 관절 다 나간다'며 자세를 고쳐주고 싶었지만 어르신은 그런 거 몰라. 그래서 하얀 백발의 어르신은 몸의 방향을 틀더니 려문이 앉았던 침대 위로 상체만 풀썩 누워버린다. 다리는 침대의 끝에 걸쳐진 채로 반만 누워서는, 고개를 돌려 려문을 물끄러미 보고.
"..혹시 결벽증있니?"
보건실은 학생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니 침대가 깨끗하지 못할까봐 저렇게 쪼그려 앉아있던 것일까 저 아이는. 나늘은 진지한 얼굴로 손을 턱에 가져다대고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잠깐 생각난 게 있는지 언제 시무룩했던 얼굴이 무색하게 맑게 갠 얼굴로 상체를 일으키고 벌떡 일어나 손을 침대에 걸터놓고 려문의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려문이 아직까지도 쪼그려 앉아 있었더라면 려문의 근처로 나늘의 머리카락이 사락거리며 보송보송한 향을 풍겼을 터다.
"내 거야."
향의 주인을 말하는 듯했다. 좋은 향이 난다고 인정받은 듯한 기분에 나늘의 눈은 방긋 휘어진다.
거 봐. 사하의 투비컨티뉴에 지구는 기다리기라도 한듯 반사적으로 짧은 말을 튀어내며 어깨를 으쓱였다. 뭔가 고르는 것 같더니, 결국 다 가지기로 했나보다. 그다지 기대를 하고 한 질문은 아니었기에 어물쩡 넘어가도 똑같이 넘어가 줄 수 있었다. 애초에 사하가 이건 싫어! 하고 말했더라면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했을 거다.
"바보 은사하 귀신은 안 무서워."
저를 바라보는 행동에 지구는 덤덤한 얼굴로 사하에게 짧게 혀를 내밀어주고 고개는 다시 정면으로 돌렸다. 그도 그럴게..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 굳이 이유를 덧붙여 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꿈에 나와서도 어디 꽈당 넘어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지구는 고개를 내저었다. 옆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사하는 정말 제 여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도 같다고 생각하며 눈을 반쯤 감았다. 분명 같은 19살이 맞을텐데. 사실 아니라해도 믿을 수 있다.
"먹을 거 준다고 사람 따라가지 마."
사하의 입발린 말에 지구는 지금이라도 한 대 쥐어박아줄까 하다, 그저 어릴적에 여동생들에게 해주었던 얘기나 되풀이해주었다. 사하에게 꼬리가 있었으면 지금쯤 무진장 살랑거렸을 거라고 장담한다. 초콜릿을 사각사각 씹어먹으며 사하와 나란히 걸어 다시 본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들은 여전히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뛰고 있었고, 또 간간히 흩날리는 바람에 꽃잎들이 살랑이고. 아까와 다른 점은 진득한 단 내가 희미해졌다는 것. 사실 바닐라향은 따뜻한 계절에는 더운 색이긴 하다. 그래서 아까 찰나의 순간에 조금 더운 기분이 들었던 걸까.
"너 데려다주고 점수 좀 얻어야겠다."
땡땡이 친 은사하 잡아왔습니다- 까지 덧붙여 말하며 웃음을 흘렸다. 혀에 닿아 녹아내리는 초콜릿이 너무 달고, 날씨는 너무 맑았고. 조금은 친해졌을지 모르는 친구는 여전히 옆에 있다.
"구십 대 마라토너도 있는데 나이로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건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이 아닐까요?"
건강과 나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표하는 데엔 본인도 있었고. 지금도 잠깐 자세 좀 쪼그려 앉았다고 허리랑 다리가 아프다. 빼앗겼다고 중얼거리면서 쪼그린 자세 그대로 뒤만 돌아 침대에 누우신 어르신. 아니 선생님을 올려다보았다. 어르신께, 아니고 선생님께 이렇게 말대꾸를 꼬박꼬박 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반이 있었으나 참대에 누우신 보건 선생님을 보고 있자니 그런 마음이 살살 녹아 사라지는 듯한... 유교사상 어떻게 된 일이야.
결벽증? 자신은 이불 빨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하고 보았더니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아무렇지도 않게 앉기도 했고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어찌 해명하면 좋을까 뭐라 말을 고르기도 전에 어르신 아닌 선생님은 명쾌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아 네. 좋은 향기가 나셔서 집에서 이불 빨래라도 하셨나 하고."
그리고 결벽증은 없어요.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조곤조곤 덧붙였다. 다시 가까워진 거리에 맡아지는 비누냄새. 덜 마른 이불 냄새. 머리카락에서 나는 걸까? 그는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유심히 보았다. 머리가 길면 향을 품기 쉬운 걸까? 저한테서는 딱히 향이랄 게 맡아지지 않았으니까.
학교가 끝나고, 뉘엿뉘엿 기울어지는 노을에 의한 황혼마저도 모두 저버려 이제는 달빛밖에는 남지 않은 학교. 그는 오늘 집에 가지 않았다. 몰래 학교에 남아 해가 질 때까지 옥상에서 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잠을 자거나, 경치를 감상한다던가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떨어져서 이젠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게 되었을 때 드디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옥상의 문은 당연하게도 잠겨있어서 계단으로는 내려갈 수 없었다. 그에게는 딱히 상관 없는 일이었다. 창문이나 난간을 타고 넘어다니는건 그에겐 익숙했으니까.
그렇게 바닥으로 내려온 그는, 지금까지 기다려온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만큼 덤덤히 학교 밖으로 향했다. 또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서 다시 학교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새하얀 가루가 수북이 쌓인 수레가 붙들려있었다.
수레를 가지고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멈춘 그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 곧바로 하얀 가루들을 뭉치기 시작했다. 뭉치고, 뭉치고, 뭉치고... 계속해서 뭉치다보니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구가 되었다. 그의 무릎까지 올 만큼 큰 공이었다.
그것을 제쳐두고 남은 가루들을 다시 뭉치기 시작한다. 그것은 또다시 하나의 구가 되어, 첫번째것 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큰 공이 되었다.
큰 공 위에 작은 공을 올리자, 누구나가 생각할법한 그런 모양이 되었다. 눈사람. 그래. 그가 가져온 것은 대량의 얼음가루였다. 그것을 뭉치고 뭉쳐 어떻게든 눈사람으로 만들어서 운동장 한가운데에 세워놓은 것이다.
그의 허리정도 높이의 작은 눈사람을, 이번에는 꾸미기 시작했다. 검은색 중절모를 씌워주고, 나뭇가지로 팔을 만들어주고, 눈과 코와 입을 만들고서 목에 목도리까지 둘러주었다. 그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만들어진 눈사람 옆에 털썩 주저앉아서 하늘 높이 떠있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 ......키킥. 전혀 안보이겠다. "
조금은 아쉬운듯한, 그래도 즐거워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밤바람이 차가웠던 덕분일까, 눈사람은 아이들이 아침에 등교할 때 까지 녹지 않았다고 한다.
oO (왜 미안하지?) (왜 싫어하면 어쩌지라고 생각하지?) 역시 뭐든 물어봐야 알 게 되네요! 우리집 금아랑은.. 만월 다음날 연호 서랍 안에 과자 소매넣기 하러 갔을 거예요! <:3 새벽에 몰래 은혜 갚는 다람쥐처럼 과자들이랑 "고마워." 라고 적힌 다람쥐 포스트잇 놓고갔을 거예요.
>>668 양아치네 집안이... 그런거에 되게 -꼰- 이어서... 시아랑 제대로 연애하고 싶으면서도 그러지 못했던 이유가 양아치 스스로가 감정에 무자각하다는 것도 있지만 여자애들끼리 만나고 관계가 깊어지고 그러는걸 절대반지 반대 했기 때무네...... 사실상 여성성을 강제당하는 느낌으로 자란거지 뭐, 그래서 양아치의 수많은 성격 속에서 남들이 보는 여성스러움,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도 있는 것이야...
시아의 대담한 말에 선하는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부탁만 잔뜩이고 막상 본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심보가 고약하기 짝이 없다. 예쁨받는 거야 항상 좋았으나 굳이 찾아가고픈 마음은 별로 없었다. 지 딴에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나 뭐라나.
마주한 눈이 제 영혼을 옭아맨다. 아까와 사뭇 다른 시아의 태도에 선하는 의문을 표하지 않고 얌전히 자세를 낮추었다. 순종하고 복종하는 일은 익숙했다. 선하가 입을 벌리고 웃는다. 미묘하게 초조해보이는 건 기분탓이 아닐 것이다. 떠오른 무언가를 분명히 원하는 자의 얼굴이었다.
"시아야, 난 네 땀냄새밖에 맡지 못했는데."
그건 향이 아니잖아. 선하의 기대는 페르몬에 걸려있었는데, 반쯤 시아를 양이라 확신-이라 쓰고 멋대로 희망이라 읽는다-하고 있었다. 킁킁거리는 몸짓이 짐승같다. 냄새를 맡기 위해 시아 품에 파고드는 모양새가 되었으나, 선하는 아랑곳 않고 있었다. 동시에 입술을 핥는 찰나를 악착같이 쫓았다. 선하의 목이 떨려왔다. 오래지 않아 선하는 시아를 안을 수 밖에 없었다. 시아의 팔과 허리 사이로 선하의 하얀 팔이 지났다. 처음 선물 받은 인형을 꼭 안는 아이처럼, 선하의 자세와 태도 역시 같았다. 흔히들 백허그라 부르는 포옹이었다.
"장소는 그다지도 중요하지 않잖아. 나는 네가 궁금해져버렸는 걸."
선하는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다. 대신 선하는 수줍은 양 시선을 피했다. 헤 벌려진 입을 손끝을 두드린다. 아까 수줍어하던 모습이 이제 막 해가 뜬 아침의 화사함이었다면 지금은 꽃 시든 밤의 음습함을 닮아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뒷골을 찌르고 지나간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눈만 깜빡인다.
시아의 제안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비밀이 자신에게 흥미로울지, 그렇지 못할지 가늠하는데에 모든 정신을 쏟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와중에 감히 거절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손을 잡고 가볍게 끌어당겨 일으켜 주었다. "온다고 말이라도 해 줬으면 더 멋지게 따냈을 텐데! 손목이 아니라 정수리를 팡, 하고. 헤헤. 그래도, 와 줘서 고마워." 감사의 표시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던 손이 잠깐 별하의 이마 앞에 떠서 망설였다.
그렇게 싱글싱글 웃고 있다가 안겨 오는 손길을 받고, 나는, 그러기를 원치는 않았지만 정말로 당연하게도, 살짝.. 아주 살짝, 떨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억제제를, 안 먹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그 향이 풍긴다면.... 어떡하지. 숨이라도 참아야 하나. 그러는 와중에도 웃는 얼굴은 귀여워서, 애써 미소를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바짝 긴장한 채로 포옹을 끝내자 별하가 들어올리는 우산에 눈이 간다. 들고, 온 거구나!
".... 가, 앝, 이, 쓰고 가도 돼?!"
조금은 기대하는 눈빛이 되어서 두 주먹을 가지런히 모으고 물어보았다. 나도 참, 이렇게 들뜨면 안 되는데. 좋은 일이 있었으니까 조금쯤 들뜨는 거야 용서받을 수 있겠지만. 승리의 과정 자체는 시시했어도, 그래도 죽도 케이스에 우걱우걱 집어넣은 상패는 묵직해서 든든한 느낌이었다.
"오늘은 이긴 날이니까 저녁 연습 빠져도 되거든. 가는 길에 뭐라도 먹자! 상금으로 내가 살―게."
무릎을 구부려, 별하가 펼친 우산 밑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아직 우산을 들 만큼의 힘은 남아 있었으니까 가능하면 대신 받아들려고도 하면서. "학생부라서 문상이지만, 헷." 품에서 종이봉투를 살짝 꺼내 보여 주며, 코를 찡긋하면서 웃고 덧붙였다.
>>699 아랑주 안녕! ;3 련: 인간적으로 편한 건, 나랑 똑같은 바보! 련: 불편한? 딱히 없엉. 히히― 련: 나를 불편해하지 않아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우니까. 련: 성격 말고 진짜로 '불편' 이야기라면, 난 페로몬 없이 살기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억제제를 안 먹은 양들은 조금 곤란할 수 있지만....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는 선하를 바라보는 시아의 눈동자. 하지만 무언가 말하지 않고 그저 미소를 지어보인다. 적어도 선하가 어떤 성격인지는 조금 알아차린 듯 했다. 그래서 시아 역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 어머, 부끄러워라.. 누구는 좋은 향을 맡게 해주고, 저는 땀냄새만 맡게 하고. "
킁킁거리는 선하의 몸짓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그것을 막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의 품에 파고드는 선하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려줄 뿐이었다. 왠지 향을 찾아 킁킁거리는 그 몸짓이 애처로워 보여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간절하게 자신의 것을 원하는 것 같아서일까. 자신을 백허그로 끌어안고 향을 맡으려는 선하에게 장난스럽게 등을 부비적대는 것은 슬그머니 선하를 자극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젠 조금씩 앵초향이 흘러나오고 있을지도 몰랐다.
" 중요하지 않지만.. 제대로 알아보려면 집중할 수 있는 곳이 좋잖아요? "
선하의 말에 가볍게 동의를 표하면서도, 부드럽게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지어보인다. 선하가 점점 조급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반쯤 어둠에 잠긴 창고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자신의 제안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 선하의 손등을 손 끝으로 어루만져주며 나아간 시아는 창고 안에 들어왔을 때, 몸을 돌려 선하와 마주보곤 조금 안쪽으로 선하를 끌어당겨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사각지대로 들어선다.
" 자, 일단 제 향은 어떤 향인지 알아보는건 어때요, 선배? "
천천히 선하에게서 떨어진 시아가 방긋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하나로 묶고 있던 머리를 풀고는, 양팔을 선하에게 벌려보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마치 꽃이 벌을 달콤한 꿀로 유혹하는 것처럼, 아주 조금 어둠 속에 잠겨진 미소 속에서, 시아의 초콜릿 눈동자가 선하를 바라보며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주말에 선물 안 보내도 된다고 했건만 4번째 선물이 있는 것을 보고 이건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 싶어서 잠깐 갱신할게! 사정상 오늘도 내일도 집에 오기까지 활동은 불가능해서 답변레스는 지금은 못 올리고 혹시 또 보낼거라면 갔다와서 한번에 묶어서 올려줄게. 내가 바빠서 미안해 8ㅁ8
다른 이들도 어제 불태운것 같던데 푹 쉬고 어제 술 먹고 생각나서 여기 와서 감사인사 와랄랄라 할까 하다가 그랬으면 난 분명 박제되고 월요일부터 셀프 행방불명 될거라고 생각하며 꾹 참았는데 잘한거겠지? 그냥 그 충동이 큰걸 보면 내가 캡틴과 여기 참치들 완전 좋아하나봐. 암튼 마니또도 다른 이들도 다 고맙고 난 오늘 일정 보러 가니 다들 즐거운 일요일 보내라!
부러 크게 웃어버린다면 달아오른 뺨 정도는 가릴수 있으려나? 그를 보면 그럴만도 싶었지만, 자신의 경우엔 확실치 않다는 느낌뿐이었다. 그저 시선을 피한 그를 살피며 그의 감정선을 대략적으로 유추할뿐, 기류에 따라 변하는 그녀의 성격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남들과 다르게 억지로 어긋나고 싶은것까진 아니었다.
"음~ 뭐, 선배님 말씀도 일리는 있으니까요~"
그녀 스스로도 그의 음식이 더 맛있다 생각했으니, 어쩌면 정말로 상대적인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렴, 아무리 맛좋은 음식이라도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둘쯤 꼭 있지 않을까?
"물론 진짜는 선배님께서 직접 찾으셔야 하는 거지만요~ "
하지만, 이라고 운을 떼려다 그냥 줄여버린 그의 말에는 꽤 여러 의미가 함축된듯 싶었다. 그 이유를 그녀가 알 턱은 없었지만 아마 이때까지의 그의 행동을 보면 자신과의 연관도 없잖아 있었겠지.
"후후후... 다행이네요 그건..."
같이 있으면 질리지 않는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관계의 지속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녀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니, 단지 서로의 감정을 부딪히는게 어려울 뿐이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녀는 본인의 감정에게조차 눈길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
어디선가 살짝 앓는 소리가 난것 같은데, 기분탓일까? 스스로 밥을 떠먹을수 있는 나이인 사람이 둘인 이 상황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벌이는데엔 아마 그렇게까지 거창한 이유가 있는건 아닐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얼굴을 제대로 들기 힘들테니까,
"역시 이거..."
...이미 들기 힘들어진 모양이다. 눈까지 초승달처럼 호를 그리고, 기쁜 마음에 이까지 드러난 그와는 달리 그녀는 거의 부끄러워 죽어가기 직전이었다. 아무렴, 평정심을 찾은 성격의 경우면 몰라도 지금의 성격인 그녀에겐 감당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제가 먹을테니까요...!!"
홍당무까진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귓가에까지 발갛게 물들은 모양새는 누가봐도 필사적인 만류일까, 고작 몇숟가락 떠먹여진 것만으로도 패닉상태가 된 모양이다. 사지 멀쩡한 사람이 별 이유도 없이 이런 행동을 한다면 부끄러운건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방과후를 마친 지구는 친구와 가볍게 농구를 뛰고 남은 시간은 학상회실에 바칠 생각이다. 별관에 있는 학생회실로 돌아가니 소수의 아이들이 익숙하게 남아있고, 지구는 자신의 자리로 향하니 웬 반짝한 선물이 제 자리에 놓여있었다. 지구는 눈을 한번 꿈뻑하고 주변 아이들을 살펴보았으나 지구에겐 그 누구도 눈길 주지 않고 있으니 학생회 아이들 중엔 아닌듯했다. 짐작가는 인물은 없고.. 선물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떼어 내용을 읽으니
<~....P.S. 담배 말고 이거 물어! ٩(๑`^´๑)۶>
혼난 걸까? 뒷머리를 긁적였다. 자리에 앉아 흰 리본을 풀고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으니 그 안엔 우주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지구도 함께였고. 이런 선물은 언제든 익숙치 않아서 그 자리에서 한참을 뚫어져라 보기만했다. 이거..먹는 건가? 그제서야 결론에 도달한 지구는 12개의 행성 중 당연하게도 푸른별 지구가 담긴 막대 사탕을 골라 들고 물끄러미 안을 들여다본다. 덤덤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지구의 칙칙한 눈동자 안에 그 푸른별이 담겨 있었을까. 알록달록한 행성계가 모여 우주가 되는 거니까, 먹기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파랗고 빨갛기만 하던 지구 젤리보단 훨씬 낫다는 생각도. 그 지구 젤리는 놀림받듯 선물 받아 이때까지 몇 개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담배 대신이라고 하니 먹긴 먹어야 할 텐데 먹기가 아깝다. 그냥 집에 장식해둬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둔다면 여동생들이 하나씩 훔쳐 먹겠지만. 남이 먹을 바엔 제가 먹는 게 낫지. 또 맛이 궁금하기도 해서 투명한 포장지를 부스럭거라며 벗겨내고 지구는 지구 사탕을 입에 물었다. 그냥 투명한 설탕 맛 이겠거니 했는데 지구에선 딸기맛이 났다. 달고, 베이직한 맛이다. 사탕이 담겨 있는 상자를 자세히 읽어보니 각 행성의 이름 밑에는 영어로 맛이 적혀 있었다. 지구는 strawberry. 그 옆의 태양은 cherry. 상당히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먹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먹기가 아깝다. 사실 먹는 용이 아닌 거 아닌가. 메모지에 담배를 대신 하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지구는 절대 먹지 않았을 것이다. 사탕 치고는 지나치게 예쁘지 않나. 아깝다. 이미 지구의 입에 물려 있지만. 지구는 지구가 먹어 버렸으니 한 칸의 빈 자리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보내준 사람은 먹으라고 보낸 것 같은데.. 남은 사탕들이 다 사라지기 까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아깝잖아. 그나저나 어떻게 사탕에 지구를 넣은 걸까, 반으로 쪼개도 지구는 지구일까. 그런 생각으로 멍을 때리고 있으니 저편에서 다른 아이가 '선배, 저도 주세요' 한다. 지구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말없이 포장을 덮었다. 그러고보니 선물해 준 아이와 나눠먹으면 좋을 텐데, 그 아이가 또 이 곳에 와줄까. 애초에 이것을 보고 제 생각을 해주었다니 받은 이의 입장에서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옆에 있었다면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었을 텐데- 적힌 거라곤 스펠링이 다고. 뒷목을 만지작거리다 붙혀져 있었던 노란 포스트잇에 책상위 제 볼펜을 들고 그 아래에 작게 끄적거렸다.
<넌 뭐 좋아해? 지구는 내가 먹어버렸어. 미안>
걱정 고마..까지 반듯하게 적다가 낯간지러운지 슥슥 줄을 그어버렸다. 그 아이가 다시 돌아와 보지 않는다 해도 이렇게 써 놓으면 남들이 손대진 않겠지 싶었다. 기지개를 쭉 키고 담긴 상자를 자리에 보기 좋게 세워두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지구는 여전히 입에 지구를 물고 그렇듯이 정리할 서류를 꺼낸다.
주원은 눈을 감은 슬혜를 향해 한 숟가락 더 먹이고 나서 주체할 수 없는 가슴 속 간지러움과 몽글몽글한 감정에 환하게 미소짓는다. 그러자 슬혜는 어지간히도 부끄러웠는지 "역시 이거..."하고 입을 떼더니 그냥 자기가 먹겠다며 얼굴을 잔뜩 붉히곤 말한다.
"푸흡..."
원래대로라면 흐름에 맡겨 슬혜의 카레와 밥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먹여줄 생각이었지만 저렇게까지 부끄러워하는 슬혜를 보니 미안함과 귀여움을 참을 수 없어, 순순히 숟가락을 슬혜의 접시 위에 올려두곤 손을 거두어 쿡쿡대며 어떻게든 웃음을 참으려 했다.
"미안, 미안. 푸흐흡... 잠깐. 푸흡... 푸하하하핫!"
주원은 배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여 끅끅대다, 그 다음엔 고개를 홱 쳐들고 웃음을 크게 터트린다. 먹여준 별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별 의미 없는, 하지만 마음에 따른 그 행동에 저리도 부끄러워하고 -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 올곧게 반응하는 것이 그의 마음을 얼마나 간지럽혔는지 크게 웃음을 터트리곤 두 눈에 찔끔 나온 눈물을 닦아내었다.
"미안해. 웃긴게 아니라, 그..."
도저히 '귀엽다.'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못한 주원은 그저 컵의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커흑, 크흠." 빠르게 마신 탓에 살짝 사래가 들린 그는 어색한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조심히 그녀와 시선을 다시 맞춰본다.
"아, 배부르다."
그리곤 어색한 기류를 날려버리기 위해서인지 배부르다며 중얼거린다. 음식의 양은 평소의 주원에게라면 조금 적은 편에 속하긴 했지만 그가 배부르다고 하는 것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아마 음식뿐만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함께 포만감을 느끼게 된 것이겠지. 주원은 어색하고 따뜻한 기류 속에서 슬혜가 남은 카레를 전부 먹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고양이 그림이 붙은 디퓨저라... 이 한눈에봐도 '고양이 친화적'인 선물은 그녀에게 있어선 '상당히 좋은 선물'임에 틀림없었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쁨 이상의 무언가려나? 단순히 고양이를 키울 사람처럼 보여서, 아니면 고양이를 키운다는 소문을 들어서, 그녀가 고양이 같아서, 아니면 그녀의 본질을 꿰뚫고 있어서 그러한 선물을 준것인지는 선물을 준 마니또 당사자가 아닌 이상 모르는 일이었다.
<커피가 아닌데 아메리카노라... 그럼 캡틴아메리카인가요? 🤭 아무튼 선물 감사드려요~ 제가 동물들이랑 산다는건 어떻게 아신 건진 모르겠지만... 모르셨대도 그런 부분까지 마음써주시는 것에 대한 보답은 언젠가 꼭 해드리고 싶네요~>
그렇게 적고나서 마니또의 선물 답례를 위해 놓아둔 것은 어떤 레스토랑의 VIP패스권이었을까?
<가족끼리도, 아니면 연인끼리도... 인원 따지지 않고 사용할수 있는 듯하네요~ 식사도 자유롭게 가능하구요~ 아무쪼록 좋은데 사용하시길 바랄게요!>
주원이 간질거리는 마음에 웃음을 터트리자 슬혜는 토라진 얼굴과 함께 화난 고양이와 같은 소리를 내었다. 이럴때 보면 그녀는 정말로 고양이의 환생이거나 고양이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대로 그녀는 주원을 보고 멍멍이 같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래도 주원은 자신의 멍멍이 같음과, 슬혜의 고양이 같음을 생각하면 자신이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진정하려고 마신 물 한 컵에 사래를 들린 주원을 보고 슬혜는 쌤통이라며 '베에'하곤 혀를 빼 내민다. 그 모습에 더 사래가 들려 "켈록, 켈록."하고 연달아 기침을 하다가도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것으로 어떻게든 두근거림을 중화시키듯 물을 섞어 가라앉힌다.
"나는 그것보다 더 말했으니까 말이야? 갈비찜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외쳤으니까 100번은 될걸!"
서로 도대체 무엇으로 승부를 하는건지. 그럼에도 주원의 모습은 꽤나 진지했다. 그 진지한 얼굴로 양 손을 펴 10을 만들어 그녀에게 펼쳐보인다. 압도적으로 손가락이 부족해 보이지만, 그것으로 100개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겠지.
그녀가 식사를 끝내자 주원은 기다렸다는듯
"정리할게. 그릇 가져가도 돼?"
하고 물어본다. 아무래도 곧바로 먹은 사람의 그릇을 가져가는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나보다. 그것이 실제 매너기도 하고. 주원은 그녀의 대답을 듣곤 "편하게 쉬고있어. 침대든 소파든 어디를 써도 괜찮으니까." 하고 말한 뒤 슬혜와 자신의 그릇을 가져가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즐겁다는듯 정체불명의 콧노래를 부른다. 그릇이라고 해봐야 카레와 김치, 나물을 담은 작은 그릇이었기에 길게 걸리지 않았다. 설거지를 마친 주원은 곧바로 잘 빤 주방행주를 적셔 방금 식사를 마친 상을 깨끗하게 닦은 뒤 방금 사용한 주방행주를 잘 빨아 행주걸이에 걸어둔다.
뒷정리를 마친 주원은 슬혜가 쉬던 곳으로 걸어가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그녀의 옆에, 그렇다고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 조심스레 앉는다. 식사는 마쳤고, 이제 무얼 해야 하는지. 무슨 얘길 해야 하는지. 사실, 식사 다음에 뭘 할지는 마땅히 정해놓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 '물어봐야만 하는 것.'이 있었기에. 다만 곧바로 그걸 묻기에는, 조금 뜬금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하고, 주원의 머릿속에선 이 다음의 스텝을 찾는 것으로 가득이었다.
지구 반응 보곤 실실 웃으며 말한다. 아주 잘 뽑힌 예고편을 보여준 사람 같다. 모든 건 까 봐야 아는 거라고, 예고대로 정말 알찬 내용일지 속은 텅 비었는지는 나중에야 알 수 있겠다.
"비대칭 쌍쌍바 열 개쯤 받으면 마음 바뀔걸."
그마저도 모양이 제각각인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며 무서워 보일법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고개 젓는 지구를 보니 이번에도 딱히 무서워할 것 같지는 않다. 겁이 없네. 쩝, 입맛 다시며 생각한다. 그러다 눈을 깜빡. 한 방 먹은 얼굴로 지구를 봤다. 얘는 내가 다섯 살쯤으로 보이나.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안 받아."
자존심 팔아넘기는 것도 아는 사람 한정이다. 인질범이라면 고민 좀 해보겠지만. 사하와 아는 사람이 되는 건 꽤 쉬운 일인 것도 맞지만. 줄줄이 딸려오는 생각을 놓고 보니 지구가 한 말이 꽤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사실 다섯 살이었나 봐. 응, 열두 살은 무거워서 집에 두고 왔어. 말했다간 진짜 꿀밤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 입은 다물었다.
여전히 살랑이는 바람에 꽃들이 흔들렸다. 쏠리는 시선 없으니 마음 편히 꽃구경 실컷 했다. 팔랑팔랑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저거 잡으면 소원 이루어진댔는데.> 하고 중얼거리다, 지구를 쳐다본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배신감. …튈까. 선생님 눈 피해 재빠르게 먼지만 숨기고 도망가는 일에도 성공했는데, 학생 하나 못 따돌릴까 싶다. 전자가 떡볶이를 위한 도망이었다면 이건 도망을 위한 도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근데 어디로 가야 하지. 이대로 옥상까지 뛰기엔 체력이 모자랐다. 왠지 뒷덜미 잡힌 채 끌려가던 아까 전 상상이 떠오른다. 실패확률이 높은 건 빠르게 포기하기로 한다. 역시 애원하는 쪽이 낫겠다.
"잘못했다니까. 내가 바다도 알려줬잖아."
<쌍쌍바 큰 쪽 너 줄게.> 덧붙인 사하가 지구의 눈치를 살폈다. 돌아가게 되더라도 제 발로 돌아가는 것과 잡혀가는 건 기분이 사뭇 다를 것 같았다. 이래서 영화 속 범죄자들이 매일 놓으라고 하는 거였구만.
비건? 인터넷에 검색해보았더니 채식주의자라는 뜻이 떴다. 비건식품은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식품이고... 이런 게 있네. 간식을 잘 사먹진 않지만 있으면 맛있게 먹기 때문에, 준 사람이 마니또여서 일상 속의 반가운 이벤트처럼 느껴졌다. 한쪽에 Go veggie라고 적힌 포장을 뜯어 념념 먹으며 답장을 작성해 사물함 벽에 써 붙였다.
<오랜만의 간식이네. 맛있다. 먹으면서 쓰는 중. 네 취향이라서 사준 거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비건 젤리를 골라온 거야? 채식주의에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알았어. 우리 집 주변에 비건 레스토랑도 있더라. 빈 손으로 보내기 미안하니까 이거라도 가져갈래? 비건은 아니지만 수중에 있는 게 이거밖에 없네. 채식주의자라면 다른 걸로 줄게.
아, 구렁이가 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있어. 저번 주말에 친구랑 카페 놀러갔는데 고양이가 있더라고. (테이블 위에 늘어진 회색 태비 사진) 전부 인화를 맡겼는데 이 사진만 따로 먼저 인화해달라고 해서 가져왔어. 맘에 들면 가져가도 돼. 좋은 하루 보내.>
사실 멍멍이보단 구렁이에 가깝지 않을까, 자신이 괴롭히는만큼 그 역시 은근슬쩍 한방 먹이곤 했으니. 아니, 반대의 경우가 더 크려나? 어찌되었건 마냥 지는 것만도, 마냥 이기는 것만도 아닌 상황은 썩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에게 있어선 그런 적당한 밀고 당김이 하나의 즐거움이었으니까. 마냥 우위에 서는 것도, 항상 깔리는 것도 그녀의 성미엔 맞지 않았다.
"흐음... 이거 끝나지 않는 싸움이 될거 같은데요...?"
10을 강조해서 어떻게든 100을 표현하려는 그의 제스처에 영 탐탁찮은 표정을 보이다가도 이내 웃어버리는 그녀였다. 어찌되었건 그가 재미를 느끼면 되었고, 자신도 그리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기 때문일까?
"네~ 잘먹었습니다~"
밝게 웃으며 그의 말대로 정말 편하게-그 자리에 뻗어서- 쉬고 있던 그녀는 내심 도와줄만도 하건만,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설거지를 하는 그의 분위기를 딱히 깨고 싶진 않았는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여느 고양이들이 그렇듯,
"......"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상까지 제대로 닦아내면서 정리하던 그가 다 끝마친듯 자기 근처,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앉아 무언가 고민하는듯 하자 그 미묘한 기류에 그녀 역시 머뭇거리면서도 이내 빙글거리는 미소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뭔가요 선배님~? 설마, 후식이라도 필요하신 건가요~?"
'식탐꾸러기'라는 말을 덧붙이며 야살스레 웃던 그녀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나른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밖에서 먹어도 되는걸 굳이 이렇게 직접 만드시면서까지 저녁초청을 하신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겠죠~?"
여느 고등학교의 기숙사생들은 주말에는 집으로 거의 돌아가는 편이지만 그날따라 산들고의 기숙사에는 공부하려 남아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중간고사가 임박했기 때문에 백가예도 예외는 아니었고 주말 오후에도 잔류 인원에 포함되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6시간 넘게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있는 복장 중 가장 편한 체육복을 입고 빠르게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주말이고 시험기간인 만큼 복도 또한 한산했기에 맞은편에 누가 오는지 신경을 쓰지 않고 본인과 같이 기숙사생인 친구와 답을 맞춰보기로 한 상태라 문제집에 신경을 거의 집중한 채였다.
방 사이가 가깝지 않아 시간 절약을 위해 경보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앗, 하고 짧은 단말마가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와 몸이 부딪쳤다. 상황 파악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의 소지품으로 보이는 물체가 떨어졌고, 작은 구슬같은 부피감을 가진 딱딱한 것들이 바닥재 위로 잔뜩 떨어지는 소리가 따랐다.
"미안, 내가 주울게. 괜찮니?"
다리를 굽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두고 내용물을 하나씩 집어 다른 손에 담으며 보니 알약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김새와 색깔이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분류를 해놓지 않은 채였다.
"약...?"
작게 중얼거린다. 양이 복용하는 억제제와 비슷한 것도 섞여 있는 것 같아서. 뭐 워낙 흔한 디자인이긴 하지만. 고개를 젓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마저 줍는데 열중한다. 방금 떨어뜨려서 약의 종류가 섞인 게 아니길 속으로 간절히 바라며.
/억제제와 영양제가 섞였다는 설정이 있어서 사용해봤는데 꺼려지시면 억제제는 아니었다고 편하게 해주세용!
시간은 마치 마구 풀어둔 실타래처럼 늘어져 흐르는지, 흐르지 않는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느긋하고, 태양은 저 멀리서, 그러나 확실하게 둘이 함께 있는 방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초침만이 흐르는 조용한 방엔 둘이서 만들어낸 은은하게 간지럽고, 단내나는 분위기가 흘렀다. 적어도 주원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후식? 글쎄. 냉장고에 뭐가 있던가?"
과자나 마실건 많은데. 하고 생각하던 그는 잠시 뒤 그녀가 말하던 후식이 그 후식이 아니란것을 깨닫곤 감전된 것 마냥 몸을 떨곤 퐁 하고 머리 위로 달아오른 수증기를 뿜어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얼굴을 붉혔다.
"아, 아하. 그건, 일단, 그, 슬혜도 만들어 줬으니까 나도 요리를 대접하는게 맞지 않을까 하고오..."
주원은 눈을 맞추지 못한 채로 이리저리 도망가는 생쥐같은 변명을 해보지만 고양이 앞에서 그것이 통할리가 없겠지. 아마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을터이다.
어쩌면 주원은 무의식 속에서 이러한 것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패치로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늑대의 외로움. 밑빠진 독마냥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항아리와 같은 외로움을, 그 채울 때 만큼은 느껴지는 만족감을 느끼는 것.
설령 그것을 바라고 있다고 해도, 주원에게는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다른 양과 늑대에게 어떻던, 주원에게는 그만의 가치관과 생각이 있었으니까.
"저어... 일단, 그, 말이다... 며칠 전의... 그... 만월..."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말의 꼬리를 몇 번이나 흘리며 한마디로 이어진다고 판단하기도 어려울 단어들을 나열나간다. 아마 만월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그녀에겐 전달될 터.
"일단... 응... 그, 고맙... 다고 해야하나, 미안하다고 해야하나..."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않은채로 어쩔줄 몰라하며 두 손을 깍지껴 잡았다가 풀고, 무릎을 만지작거렸다가, 볼을 긁적인다.
"...그게 아니라! 그...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인사치레같은 말 뒤에 드디어 본론을 꺼낼 맘이 들었나보다.
"그 때 했던 말..."
'그대야, 원한다면 언제든지 속삭여줘요. 지금이 아니어도, 정말 나중의 이야기라 해도... 원한다면 언제든지, 저는 준비가 되어있답니다?'
주원은 그 날에 들었던, 그리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되뇌인 그 말을 떠올렸다.
" ...무슨, 의미야? 그리고..."
혹여나 주원이 생각했던 의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그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슬혜를 부른 것 또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주원은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지금까지 낸 적 없는 용기를 끌어내어 혼자 술을 몇 병이나 들이킨 사람처럼 붉어진 얼굴로 슬혜의 얼굴을 응시했다. 올곧은 눈을 하고 슬혜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속엔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다.
"...내가 아니어도, 그렇게 말 했을거야?"
그가 말하려는 것은 과연 슬혜에게 닿았을까. 그리고, 그녀가 입으로 말하는 대답은 과연, 어떤 대답일까. 몇날며칠을 고민하고 생각해도 알 수 없었던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그것은 주원 혼자만의 착각인 것일까. 아니면, 자신과 같은. 혹은 비슷한 마음일까. 그저 슬혜의 입 밖에서 나오는 대답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홍현에게 주말이란 이랬다. 집으로 가서 쉴 때도 있지만 영양제 조합을 하루 종일 찾거나 약학 관련 공부를 하는 게 좀 더 자주 겪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운 좋게도 동아리실이 비어있는데다가 심지어 실습을 해도 괜찮다는 허가까지 받아냈던 것이다. 물론 실습하러 모이긴 했지만 중간고사로 다른 부원들은 1시간도 안되어 돌아갔고 홍현은 지난번에 해보려다 말았던 억제제를 이용한 실험을 하기 위해 자신의 방을 잠시 들르게 되었다. 물론 자신이 먹던 영양제와 함께 뒤섞여 어떤 게 억제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에 좀 많이 챙겨 가기로 했다. 중간 정도 사이즈의 플라스틱 통 안에 약을 적당히 채우고 빨리 동아리실로 가기 위해 정신없이 빠른 걸음으로 가던 홍현은 문제집을 들고 자신과 똑같이 빠르게 걷던 밝은 갈색 머리의 여자와 부딪히게 되었다.
"아.. 괜.. 괜찮으세요..?"
충격에 잠시 뒤로 조금 물러난 홍현은 자신의 약들이 든 통이 부딪히면서 쏟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홍현은 급하게 약들을 주워 플라스틱 통으로 넣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약을 주워 담는 걸 도와주는 여자에게 홍현은 말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알아들었던 그가 이내 본래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부르르 떨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이 꼭 폭발하기 직전의 무언가 같았다. 마치 어디든 콕 건드리면 그부분이 퐁, 하고 터져서 수증기를 내뿜을 것처럼
"음... 그런가요? 그럼 그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네요~"
좀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듯 입술을 비죽이던 그녀는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못한채 어떻게든 애매한 기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도 싱긋 웃어보였다.
역시나 그때의 일이 신경쓰였던 걸까? 물론 그저 아는 사이, 눈여겨두기만한 사이에서 그녀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고 친근하게 대하기 시작한건 아마 그때즈음이었을 것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서로 조금은 무안해진 상황이었을까? 몇번이고 늘어지는 말꼬리가 그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고 있는만큼, 그녀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 그거 말인가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황은 다 꿰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만월의 기억이 날아갈 리는 없으니까, 오히려 뇌리에 남는다면 모를까.
기억이 겹쳐지는 순간, 생글생글 웃던 표정은 싹 사라지고 그때 잠시 보았던 고압적인 표정이 대신 그녀의 얼굴에 자리잡혀있었다.
"선배님은 참 재밌는 분이란 말이죠... 고작 저같은 여자애 말 한마디에 이날 이때까지 고민하시고..."
벽이라도 있었으면 짚고서 그를 밀어붙이려 했을까? 아니면 그의 목덜미쪽 옷을 잡아 얼굴을 가까이하려고 했을까? 어느쪽이라고 해도 갑작스레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 또한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낮선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어느쪽이냐면... 그렇네요.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을까요? 딱히 별다른 의미는 없답니다. 하지만, 선배님께만 할수 있었던 말은 맞아요.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셨는진 저는 모르겠지만..."
다른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의 턱선을 따라긋듯 손가락으로 사악 훑고선 자신의 입가로 가져가 비릿하게 지어보이는 웃음, 그 모습은 어딘가 일그러진듯한 모양새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해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 건 아니랍니다. 제게 베풀어주셨던 은혜를, 때에 맞는 방식대로 도왔을 뿐이니까요..."
그러고선 옷속에 있던 목걸이를 찬찬히 드러내 그 끝에 걸린 것을 그에게 보여주었을까? 익숙한 열쇠, 그녀는 그가 주었던 것을 이렇게나마 간직해두고 있었다.
"모든 일엔 응당한 보상이 있는 법이고, 저는 그것에 충실할 뿐이랍니다 그대야...
하지만 이 경우에는 조금 예시가 다르죠.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이렇게 어둡고 칙칙하기만한 저를... 끌어내주려고 하셨으니까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계시면서도,
다시 말해..."
그녀는 조금더 몸을 기울이고선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저를 풀어주신 댓가인 셈이죠."
새하얗게 이가 드러날 정도로 웃어보이던 그녀의 키득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귓가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그가 그랬듯 느슨하게 힘을 주어 언제든 그가 떨쳐낼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주시는게 좋아요. 한번도 포식을 하지 않은 늑대에게서 느껴지는 이 달큰한 망설임... 아... 정말 유감스럽네요... 안타까워요... 안타깝고 안타까워서 제가 가르쳐드리려고 했지만... 그렇네요... 역시 못할 짓이잖아요? 양이 늑대를 가르친다니... 후후후후..."
>>936 루트가 두개가 있습니다 선생님! A: "어차피 본능일 뿐이니까," - 슬혜의 거래를 수락하고 만월 때의 기억을 되살림 (슬혜가 무작위의 날짜에 열쇠를 돌려줌) B: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냐." - 슬혜의 거래를 거절하고 긴밀한 친구관계 유지 (주원이가 달라고 하기 전까진 열쇠 가지고 있음.)
사실 선하는 땀냄새도 썩 싫지 않았다. 날 것 그대로의 상태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운동하는 애들끼리 몸 부둥기고 다니면 따라붙는게 땀냄새였다. 그건 격렬한 연습의 증거였고, 어떨때는 승리의 부산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니까. 내가 좋다고 말했잖아."
땀냄새를 뒤로 앵초향이 따라온다. 선하의 시야가 취한듯 혼몽해진다. 선하의 얼굴에 파문이 인다. 당장이라도 추잡하게 등에 코를 박고 향을 갈구하고픈 충동이 일었다. 고요하고 깨끗하던 호수를 헤집어 놓으니 흙탕물만 남았다. 선하는 약간의 잔떨림 있는 손으로 더듬더듬 시아를 떼어냈다. 혀에 사탕 올려놓고 혀를 굴리지 못하는 형벌을 받은 기분이었다.
선하는 시아를 따라들어갔다. 시아의 비해 느린 걸음걸이었으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움직임이었다. 시아가 끌어당기는대로 순순히 몸을 움직인 선하가 얌전히 깍지를 끼고 시아를 바라본다. 기도를 하는 신자처럼 무해하고 유순한 얼굴이었다. 선하는 볼을 붉히며 작게 답했다. 가늘게 뜨인 눈을 짙고 하얀 속눈썹이 덮는다.
"난 네 몸에서 설령 시궁창 냄새가 난다 해도 좋아했을거야."
선하의 눈에는 머리카락 가닥가닥이 너무나도 잘 보였다. 검은 실처럼 가느다랗고 가벼운 머리카락이 허공에 잠시 유영한다. 만약 앵초향이 연기였다면 이 공간에 자욱하게 깔려있을터였다. "앵초향. 달달하고 새콤해." 우두커니 어둠 속에 서서 선하가 선을 뻗는다. 시아의 긴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조심스레 코를 가져다 댔다.
"왜 그렇게 분위기 잡아? 설마 키스라도 하려구?"
비밀이라는 시아의 말을 몇 번 즐기고말 유희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설령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해도, 선하는 그걸 신경쓸정도로 세심한 성정이 못되었다. 툭툭, 피아노치듯 제 입술을 친다.
찾고 있는 책은 역시나 도서관에도 없었다. 집 근처 도서관이며 서점을 찾아봤는데도 보이지 않았지. 인터넷에도 재고가 남아있지 않아 곤란한데. 기다랗지만 골격이 잡히지 않아 다부지지 못한 손가락이 불만스럽게 키보드를 통통 두들겼다.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배경. 책이라는 건 단순 규칙적으로 찍힌 잉크 자국이 전부일뿐 아닌가. 알량한 값으로 하나의 우주를 사려 했다면 지나친 오만이다. 수많은 무의식이 뒤엉켜 만들어낸 범람이 작디작은 활자 안에 전부 담겨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읽고 싶어지는 건 말이지. 그는 도서관에 비치된 컴퓨터를 뒤로하고 모퉁이를 돌아 책장을 더듬더듬 살피기 시작했다.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장 사이의 먼지를 들이마시고 오래된 책의 굽굽한 냄새를 맡으며 찾으려 하는 것은 덧없다. 구질구질한 집착이 빚어낸 의미도 가치도 없는 행동인 것이다.
"아얏,"
운도 지지리 없지. 툭 튀어나온 책 한 권 잘 못 건드려 발등을 맞고. 발등과 발목 사이 관절은 급소라던데 그래서 더 아픈 건가 생각하며.
" 보통 사람들은 땀냄새 같은거 별로 안 좋아하니까요. 그래도 그것까지 좋아한다고 말해주니까 기쁘네요, 후훗. "
왠지 선하가 안절부절 하는 것이 느껴지는 것을 아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것은 모르는 것인지 태연하게 속삭이면서 자신의 향이 조금 더 퍼져나갈 수 있게 둥을 살살 부비적대며 대답을 돌려준다. 왠지 선하를 보고 있자니 애를 태우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짖궂게 굴고 마는 것은 어째서일까.
자신을 떨리는 손으로 떼어낸 선하의 손을 잡아 이끌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체육창고의 어둠 속으로 슬그머니 스며든다. 둘만의 장소인 것처럼 천천히 문을 닫아버린 시아는 선하를 보며 고혹스럽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 그건 제가 싫으니까 봐주세요, 선배. 그런 냄새가 제 몸에서 난다면..정말 슬플거에요. "
시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고개를 저으며 답하곤 맑은 웃음을 흘린다. 그것만은 사양하고 싶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저어보인 시아는 머리를 풀자,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는 선하를 초콜릿색 눈동자로 응시한다.
" ...키스.. "
시아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미소를 조금 더 짙게 하며 웅얼거린다. 하지만 그것의 의미는 거절은 아니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입술을 물고 웃어보이는 선하에게 물 흐르듯 다가가 가느다란 두 팔로 목을 끌어안곤 귓가에 속삭였으니까.
" 그러면... 선배의 2교시 수업이 시작되겠네요.. 선.배? "
바람을 불어넣듯 선하의 귓가에 간드러지게 속삭인 시아는 천천히 얼굴을 선하의 앞으로 되돌리곤 고혹스런 미소를 띈 체 자신의 입술을 혀 끝을 이용해 훑어보였다. 시아의 입술이 윤기를 띄고 반짝였다.
까르르 웃으면서 시치미떼는 말에 문하는 가방에서 브라우니가 나온 시점부터 그렇게 평범한 가방은 아니라는 반론을 하려 했으나, 문하는 이내 자기 가방에는 구급낭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과장되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던 문하는 규리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감정의 채도가 극단적으로 낮은 자신과는 달리 규리의 감정의 채도는 극단적으로 높았기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것만큼이나 시선을 맞추기 힘들었던 탓이다. 물론, 그렇다고 감정의 채도를 자기에게 맞춰달라고 억지를 부릴 수도 없는 일이므로 문하는 말없이 시선을 돌리고, 자신이 받고 있는 느낌을 들키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조용하고 빠르게 이 만남을 끝내는 게 가장 좋은 해결법이라고 생각했다.
"─뭐, 고마워."
문하는 규리의 말에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마 그 동영체육관 근처에 있는 화방에 도착하면, 거기서 헤어지면 될 성싶었다. 문하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아직까지 관장님이 정해주신 시간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