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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곤 '실수했다.'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과 실수에 대한 통감이 묻어나오는 말투로 말했다. 식사하다 목이 막힐 수도 있고, 목이 마를 수도 있으니 물은 필수라고 주원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굶진 않아. 배고픈건 싫거든. 거의 요리를 하기보단 사먹는게 많지만."
"솔직히 귀찮거든." 하고 덧붙이며 조금 부끄러운듯 "헤헤." 하고 짧게 웃는다. 이어 카레에 대해 이야기하다 주원이 단맛의 카레가 좋다고 하자 그녀는 한 번 시도해봐야 할까 하고 말한다.
"바몬드 카레는 부드럽고 달아서 좋아. 어쩌면 내가 강한 맛 카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걸지도?"
카레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쪽이냐고 한다면 바몬드쪽이 좋았다. 그녀가 한 입 먹은 것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빠르게 그릇을 비워가는 주원. 그러다 취향차이라는 말에 먹던 것을 멈추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다행히도 슬혜는 안 좋아하는 맛이 아니라며, 그저 해본적이 없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다행이다. 언젠가 슬혜가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내가 만든 것보다... 음..."
주원은 고개를 대각선으로 홱 돌려 "음..."하고 생각할 때의 목소리를 흘리다가
"6배는 더 맛있을테니까!" 하고 이유 모를 배수를 덧붙인다. 아무래도 몇 배나 더 맛있을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모양이다. 그것을 어떻게 배율로 환산한건진 모르겠지만.
"휴우으 정말 다행이야. 맞아. 그리고 그런 슬혜가 좋아."
좋아, 라고 말한 뒤 스스로도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갑자기 얼굴을 접시의 카레보다 빨갛게 붉히곤
"아냐! 그게 아니라, 솔직한 슬혜가 좋다는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응. 나한테는, 응. 연기할 필요 없으니까."
하곤 정정한다. 그 뒤 주원은 빠르게 한 그릇을 비운 뒤 그녀가 자신이 만든 카레를 먹는 모습을, 부드럽게 미소짓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기특하다는듯이, 귀엽다는듯이.
"맛있게 먹어줘서 정말 기쁘다. 왠지, 왜 요리를 하는지 조금은, 깨달은 기분이 들어. 헤헷."
솔직하게 말하고도 부끄러운지 두 볼을 붉히며 맑은 미소를 짓는다. 거짓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고 작은 진심을 부끄러워 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그런 미소였다.
"아, 혹시 부족하면 더 말 해. 4인분 만들어 놨으니까."
주원은 아직 그녀의 카레가 반쯤 남았는데도 더 먹이고 싶은 맘을 참지 못했는지 부족하면 더 말하라며 눈을 빛낸다. 먹어주는것 만으로도 굉장히 기쁜 모양이다.
대체 어느부분에서 그렇게 생각해야 그리 연결되는걸까? 알순 없지만 둘은 어쩌면 인간이 불을 발견한 것 만큼의 위대한 발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다가 호련이 웃는것에 맞춰 연호도 푸핫 하고 웃음을 뱉어냈다. 왜 웃는지따위는 모른다. 그저 재밌었을 뿐이다.
" 오호. 그러면 뭔가 맛있나? "
바람을 먹으면서 콜라맛을 생각한다면 그건 콜라맛 바람인가? 바람맛 콜라인가? 라고 중얼거리듯이 말해봤지만 그가 말하는것이야 언제나 그랬듯이 무시해도 상관없는 말이었다. 딱히 중요한 말도 아니었으니까.
" 응. 그것도 그렇지. "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것은 아니다. 호련의 말처럼 구름이 흘러가듯이 그저 시간을 보내기만 하는것도 좋은 휴식의 방법이다. 어쩌면 그것은 한우를 먹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들을 풀어내는 일. 그것이 현실에 쫓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 맞아. 나도 후배님이랑 이렇게 있으면 좋아. "
그도 호련을 향해 고개를 삐딱하게 돌리며 웃음지었다. 난간에 팔을 걸치고 나른하게 늘어지면 더이상 아무 생각도 필요 없었다. 어느새 붉게 물들었던 하늘은 조금씩 거뭇거뭇해지고 있었지만 딱히 상관 없었다. 황혼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좋았다면 밤하늘은 고요하고 단순해서 좋은 법이니까. 하늘이 좋은데 이유따윈 필요하지 않을것이다.
" ......어두워졌다. "
머릿속을 거치고 나온 말은 아니었다. 생각이 들자마자 자동적으로 목소리로 전해진 말. 별 의미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연호는 가끔 이런 무의식을 즐기곤 했다. 어느새 달빛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야.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지. 습기를 머금어 촉촉해진 수건이 손바닥 위로 흘러내린다. 태어날 때부터 가슴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양으로 살기에 결코 간단히 메울 수 없는 지독한 공허함, 상실감, 외로움. 비가 오는 날은 유독 그런 것들이 자리를 넓히기 쉽다. 적어도 새슬에게는 그랬다. 그럴 때는 본래도 정처 없이 맴돌던 발걸음이 한층 더 어지러웠다. 무언가를 찾듯이. 삼켜질 것 같은 고독을 피해 하염없이 잠에 빠져드는 것도 지겨워 처음으로 내리는 비에 몸을 맡겼던 날, 오늘과 같이 홀딱 젖어 돌아왔던 날. 무엇을 해도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시릴 정도로 깨달은 날.
알 수 없이 침묵하는 얼굴을 새슬은 잠시 바라보았다. 본다 과묵한 성격인가 싶지만, 어쩐지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는 것은 착각인가. 새슬이 말 없이 시선을 내려 문하의 손에 들인 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받을지, 받지 않을 것인지 찰나의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새슬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거절이었지만.
“나는.. 이대로가 좋아.”
묘하게 가라앉은 음성. 새슬이 다시 옅게 웃었다. 고열로 지난 밤들을 기억한다. 흐릿하게 일그러진 기억조각들 사이로 밤마다 찾아오는 외로움을 떨쳐내지 않아도 되어, 오히려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기억. 차라리 그렇게라도 되면 적어도 오늘 밤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한없이 자기파괴적인 생각이 문득 새슬의 머리를 스쳐지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이래서 좋은 거다.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흐르고 좌초해도 딱히 상관이 없으니까.
그래. 어지러운 물살에 뜬 나뭇잎이 이리저리 부딪고 어딘가의 둔치에 닿듯이, 잔뜩 헤맨 결과 이런 종착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은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옥상을 벽을 타고 오르는 게 아니라 계단을 통해서 올라오면 상당히 편하게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벽으로 등반했으면 조금 진이 빠져서 이렇게 경치를 구경하는 건 못 했을 거야.
"조용한 거 좋아하는 성격이었슴까―? 신기해라. 큭큭."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쭈 우 우 욱. 맞은편 본관 건물에서 야자를 하는 어떤 학생도 하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거리에서까지 하품 전염이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나갔던 체전에서의 선전이 주효했던 덕분에, 나는 야자를 면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야자하는 모습들을 살펴보니 참 딱하다는 느낌이다.
".... 언젠가는,"
나도 단언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 지나가듯이 한 말이었지만,
"우리 학교들의 모든 바보들을 다 여기 옥상에 모아서 저녁놀 구경을 해 보죠."
이게 내가 이날 옥상에서 이야기한 마지막 말이었다. 슬슬 옥상 문을 잠글 때가 되어서 숙직 선생님이나 수위에게 쫓겨나거나 옥상에 갇혀 버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서, 나는 이제 내려가나고 선배를 재촉했다. 휴식을 하니 도로 몸이 근질근질해져서, 먹는 걸로 다시 에너지를 쓸 때가 됐으니까!
별관의 1층으로 내려오고 나서야 우리는 등잔 밑에 매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그건 또 나중의 이야기.
이대로 좋다는 상냥한 거절에도, 문하는 쏟아지는 빗속 가운데 우산을 받쳐든 채로 새슬을 바라보았다. 문하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원래라면 그렇구나 하고 뒤돌아서 가버릴 텐데. 그래야 정상인데. 이대로 좋다는데, 필요없다는데, 다시 비를 맞을 거라는데. 나와는 아무런 하등의 관계도 없는 애인데.
그럼에도 지금 우산 아래에서 멀거니 웃고 있는 이 흰머리 소녀가, 자신에게 남은 뜯겨나간 자국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텅 비어버린 그 막막한 하늘의 회색 빛깔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안다는 듯이 묘하게 가라앉은 음성에 뚫려있는 구멍이 자신에게 뚫려있는 그것과 어렴풋이 비슷하다는 것을 도무지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게 문하의 발을 돌이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래서, 지금 어줍잖은 동정심으로 치장한 자기만족이라도 집어먹을 참인가? 그래, 이게 그런 행동이라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문하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대로가 좋아, 하는 말과 함께 새슬의 얼굴에 끼어있는 옅은 미소. 이것을 이대로 뒤로 하고 떠나면 잠을 잘 때 이상하게 이 가라앉은 미소가 기억날 것 같았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잠을 설칠 것 같아서.
그렇잖아도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생각은 충분했다. 그게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은 사절이었다.
"잘만 걸리더라, 감기."
결국 문하는, 고집대로 자기 손에 들린 저지를 새슬의 목덜미에 얹으려 했다. 새슬이 저항하지 않는다면 문하는 한 손으로 저지 자락을 새슬의 어깨에 씌워주기까지 했을 것이다. 우산을 고쳐잡으며 문하는 말햇다.
"...가자. 데려다줄게."
귀갓길이 늦어지는 것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대로 새슬을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가봐야 거기에는 콘크리트 아가리를 벌리고 공허한 독방형을 선고할, 집의 모양을 한 석관만이 있을 뿐이다. 오늘의 독방형이 미뤄지는 것은 오히려 문하에게는 감사할 일이었다.
>>744 (시트 다시 읽어보고옴) 음음 그렇군요... 그리고 한가지만 더요...! 싫어하는것에 갑작스럽게 들이대는게 있던데, 연호처럼 활기차게 대하는건 어떻게 생각할까요? 들이댄다는게 '상대를 꼬시려고 하는 행동' 인지 아니면 그냥 '친한척 하는것' 인지 조금 헷갈려서요...!
>>745 갑자기 들이대는 건 길 가다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이유 없이 말 건다거나 그다지 친하지 않은데 플러팅 하는 그런 걸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간단한 질문 같은 거 하려고 만나서 친한 척을 한다면 좀 많이 어색해하긴 하겠지만 막 싫어하진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