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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만 해도 날씨가 맑다 못해 말갰던 것이, 점심시간즈음 해서 불길하게 눅눅한 찬바람이 불어오더니 결국 늦봄에 꾸물꾸물 올라온 저기압이 온 하늘을 검게 찌푸리고 푸슬푸슬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호우주의보가 내려서, 야간자율학습도 하지 않고 학생들을 조기귀가시키기로 결정한 마당이니.
그러나 조기귀가를 시켜준다고 비가 멈추는 건 아니다. 일기예보에 쓰인 강수확률 70%를 보고 우산을 챙겨온 몇몇 아이들이 친구들을 다닥다닥 매단 채로 운동장을 가로질러가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저마다 택시를 부른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비가 그냥 가벼운 가랑비였으면 까짓것 뜨겁게 끓는 십대의 피로 맞아가면서 달릴 아이가 몇은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주룩주룩 내리는 장대비라 그것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문하는 우산을 가져온 축에 속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서, 가당찮은 우산을 썼다간 머리와 목둘레만 안 젖고 나머지는 그냥 맨몸으로 비를 맞은 것처럼 쫄딱 젖어버리는 사태가 심심찮게 일어나기에 문하가 챙기는 우산은 항상 특히 길다란 골프 우산이었다.
이제 와서 별로 그에게 다가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기에, 우산을 펼치면 넓은 우산 아래를 혼자 독점하고 귀가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하는 왠지 모르게 싫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이 봄비가 끝나면 여름이라고 불리는 계절이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은 문하에게 있어서 아무 의미도 없다. 마음을 지탱하던 것을 빼앗겨버린 문하에게 있어서는 맑은 날의 하늘이나, 비 내리는 날의 하늘이나 매한가지의 막막한 회색일 뿐이었기에.
문하는 문득 손에 쥐어있던 길다란 우산을 아무렇게나 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을 마치고 그 행동을 실행에 옮기려던 그의 눈에 보이는 게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문하의 생각을 고쳐먹게 했다. 문하는 던져버리기 위해서 거머쥐었던 우산 손잡이를 다시 고쳐쥐고는, 까마귀 날개 같은 새까만 우산을 팡 펼쳤다. 그리고는 빗속을 저벅저벅 가로질러서는, 누군가에게로 다가갔다.
>>487 😭😭😭 거리감 느꼈다가도 다시 가까워질 수 있는 게 인간관계 아닐까요...?? 아랑주 아랑이의 마음의 성장과, 주원이의 마음의 성장과, 좀 더 성장하게 된 후에 만나게 될 이벤트라는 계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 금아랑 너 뇌에 힘줘라! 주원이 울리면 용서 안해...!!! >>491 주원이는... 다가가는 타입... (메모)
>>489 앗... ()() 이 이상은 별로인가...? (정확) 안 피하는 날이 오면 해인이도 아랑이도 둘의 관계도 조금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492 해인이는 먼저 다가가는 거 좋아함... (메모)
질문을 뱉은 사하의 발랄한 목소리를 가위로 자르 듯 무정한 지구의 목소리가 흐름을 뚝 끊어버린다. 싫은 건 싫다고 말 한다고 해놓고, 왜 좋다는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거야. 지구의 고지식한 머리로는 사하의 생각회로가 이해되질 않았으므로 할 수만 있다면 뚜껑을 열고 사하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좋다는 말 또한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어서 내뱉었던 것이라면 그나마 납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자애들은.. 상냥하게 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나? 그런 걸 고려해 본 적은 없지만, 대강의 추측으로는 그러했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지구는 0점이었을까.
"..바다."
반사적으로 아이스크림이라고 대답하려 했으나 뒤에 사하가 지갑을 자랑하는 행위에 지구는 눈을 감았다. 당당해 보이는 저 태도가 묘하게 눈에 밟힌다. 그래서 차단하는 것을 택했고. 값어치로 살 수 없는 것을 뱉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지구가 그녀에게 휘둘리는 행위는 이쯤에서 멈출 수 있을까. 사하는 지구에게 직접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제게 잘해준다는데. 지구는 또 받는 것엔 미숙한 인간이라 반사적으로 경계해 버리고 만다.
제 머리 색도 가볍게 칭찬해주는 사하를 흘긋 엿보았다가, 지구는 덤덤하게 "알아."라며 그녀를 스쳐지나간다. 이제껏 시무룩해 보였던 그녀의 밝은 모습은 그제서야 그녀다워 보였지만(아마 저런 모습에서 족제비라던가..늑대라던가..) 저렇게 냉탕 온탕을 왔다갔다 하는 인물은 종잡기 어렵다. 그건 변수가 많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피곤해진 지구는 또 담을 넘어 도망치고 말겠지. 키가 줄면 고소할 거라는데, 그럼 더 귀여워 진 것이니 도리어 감사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굳이 입밖에 내진 않았다.
"응."
지구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안쪽의 제일 높은 서랍을 뒤적거리다 낱개로 포장되어 있는 억제제를 꺼내들고 사하의 머리위로 툭 가져다 주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분명했지만 지구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리곤 다른 손으로 타이레놀을 마저 꺼내며 서랍을 닫았다. 근처에 정수기에서 물을 두 컵 받아들고, 사하에게 종이 물컵을 쭉 내밀었지만 어째선지 팔은 사하의 키보다 한참 높이있다. 그리고 사하가 손을 뻗으면 금방 더 높이 올라가겠지. 지구는 무정한 얼굴로 사하를 깜박 쳐다보며 뭐하냐는 듯 시치미를 뗀다.
제 이름이지만은 항상 되묻는 것에 설명하려면은 꼭 변명하는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여물이나 려문이나 사람 이름 같지는 않지. 익숙한 제 이름이지만은 가끔 안 그래도 특이한 곽 씨 성에 뭘 더 하고 싶었는지 모를 괴랄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었으니까. 이참에 유머라도 챙겨서 꽉여물로 살아볼까 같은 신랄한 생각을 하던 도중에 난데없이 볼을 찔렸다. 엑... 찔렸, 찔렀는데. 쓰러지라고 찌른 건가. 그걸로 쓰러질 거라고는... 아니겠지.
아, 네. 선물 받은...... 어쩌고저쩌고. 마음에 든다느니 받았을 때 기뻤다느니 아무래도 좋을 말을 꺼내면서도 머릿속은 일종의 혼란 상태였다. 뭔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린 듯한 느낌, 순식간에 말려 들어가 버린 느낌. 되게 거리감 이상한 선생이라는 둥 이미 지나간 상황을 추억하듯 한가로운 생각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을 확인하고 보건실에 비치된 휴식 공간에 벌러덩 누워 버리고 싶었다. 고개를 숙여달라는 제스처에 선생님을 앞에 두고 떨떠름함을 얼굴에 고스란히 담아낼 만큼.
"그 두통이 물리적으로 머리에 가해진 건 아닌데요... 그냥 스트레스 때문에..."
어디 쟁반 노래방이라도 갔다 와 머리가 하루 동일 울리는 후유증이라도 앓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페시미즘에 절여진 사람으로서 불만이야 인생의 동반자로 매사 언제나 차고 넘친다만 선생님의 앞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고. 입을 조용히 다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고집스럽달까 위압적이라 그냥 조용히 순종적으로 고개를 내렸다.
선하가 슬 시선을 내리깔고 웃음지었다. 그래도 미인에게 듣는 칭찬은 기분 좋았다. 둘은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고, 웃음을 터뜨렸다. 선하는 시아가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좋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아의 수긍에 선하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썩 깔끔하지 못한 수긍이었음을 선하도 알고, 시아도 알테였지만 선하는 모르는 척하기로 한다. 비밀을 가지면 사이가 돈독해진다는데, 따위의 우스갯소리를 생각하며 낄낄거리는 게 다였다.
갑작스러운 시아의 자세 변화에 선하는 반응하지 못했다. 선하는 여전히 가만히 서있었고, 그 앞에 시아가 기댔을 뿐이다. 선하는 잠시 골몰하다 고개를 숙였다. 선하가 시아보다 키가 컸고, 또 시아의 몸이 약간 기울어졌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서야 시선을 맞출 수 있었다.
"뭐 어때, 아까 나도 땀범벅이 되겠다고 했는데."
마침 잘됐네. 선하가 시아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약하게 젖어있는 머리카락이 손끝에 붙었다. 물밑을 기어가는 뱀처럼 교묘하게 눈동자가 굴러간다. 머리카락이 붙은 흰 목덜미가 보였다. 선하는 혀를 굴리며 속삭였다. 선하의 숨결이 시아의 목에 닿았다. "이러면 너랑 나랑 같은 향 나겠다, 그지?" 유려한 손길이 시아의 양 팔을 쓸어내렸다.
>>521 거기서 왜 웃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진짜로 하늘이는 자신이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는 부류에게는 그다지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닌걸. 사실 정말로 싫어하면 전에 일상에서도 언급된적이 있지만 아예 말도 안 꺼내는 애라서. 그쪽에 에너지를 쏟을 바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 신경쓰고 에너지를 쏟자 타입이라서. (답이 없음) 하늘이가 좋아하는 부류? 그걸 뭐라고 정의하기가 애매하네. 딱 어느 타입이다 그런 것이 아니고 그냥 무난하겠다 싶은 상태에서 친해지다보면 좋아하게 되는 부류라서.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 -> 지인 -> 친구 -> 친한 친구 -> 베프 이런 느낌이고 친구부터 좋아한다에 가까울 수 있겠다! 지인도 좀 오래 알고 지내면 좋아하는 쪽에 속하고.
>>510 흑흑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말 넘 예쁘게 해주셔....... 제가 캐붕내면 적당히 입체감 있구나 넘어가주시길... >.0 (개후레)
>>521 오픈 마인드 ㅋㅋㅋㅋㅋ (선하 : 좋은 사람 많은데 굳이 가려 사겨야해?) 전형적인 바람둥이 발언,,, 근데 설정상 늑대인지 양인지 알기 어려워서 그냥 어쩌다 보니 통일되었...습니다... 일단 늑대든 양이든 오는 사람 안가리긴 해용 양한테 들이대는 게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