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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거리는 모습도 귀엽다. 상대가 제 생각을 읽으면 화를 내거나 부끄러워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일단, 그것도 귀여울테니 선하는 별 걱정도 고민도 없이 중얼거렸다. "너 정말 귀엽게 군다." 지나가듯 한 말이라 못 들을 수도 있겠다.
하긴, 방금 달리기가 기본 실력이라면 자신감 가지기 힘든 상황이긴 했다. 선하는 은근한 눈빛을 시아에게 보내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씁쓸한 표정을 보니 어깨라도 토닥여줘야하나 싶다. 그것마저도 불쾌해할 수 있으니 선하는 화이팅 포즈를 취했다. 일정 수준까지는 노력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테니 가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그거 정도야 쉽지. 나 말 예쁘게 포장하는 거 자신 있거든."
딱히 잘하는 것 같진 않지만, 본인은 자신 있다니 그렇다 치자. 그 다음 나온 시아의 답변에 선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긴 손가락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다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시아의 말이 마음에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표정관리가 능숙한만큼 지나치게 만족스러운 티는 내지 않았다. 대신 풋풋하고 숫기 없는 미소를 지어주고 만다. 쑥쓰럽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기도 했다.
"기쁘다. 너도 나랑 똑같은 생각 했구나?"
그렇지만, 도움은 줄게. 작게 속삭인다. 매끄럽게 깜빡이는 두 눈이 유독 느리게 보였다.
시아가 달리기 시작하자 선하의 태도가 짐짓 진중해진다. 특히 좋은 시력으로 시아의 모습을 한 눈에 담고 있었다. 마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아를 잡아 둘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집요한 시선이었다. 높이 묶은 검은 머리카락이 춤처럼 바람에 나부낀다. 긴장한 다리 근육이 팽창하고, 공기의 저항탓에 미간이 약간 찌뿌려진다. 그 모든 모습이 너무 자세히 보여서, 난생 처음 거대한 스크린을 본 사람마냥 선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못한다. 이따금씩 이런식으로 보이는 것에 넋을 잃고는 한다. 피로는 뒤늦게 잔물결처럼 찾아온다.
"...음, 몸이 약간 흔들리는 것 같아. 자세를 약간 바꿔보는게 어때?"
물론, 시아의 모습만에 집중해 기회를 허투루 날리는 일은 없었다. "방금 달린 것 처럼 서봐. 내가 고쳐볼게."
>>286 저런8.8 주말 내내 바쁘시군요.. 좋아요! 다음에 여유 될 때 언제나 찔러주세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 ᐛ )9~~ 하늘이와 선관... 지금 당장은 접점이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이것저것 생각해 본 뒤에 나중에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그 때 이야기를 꺼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쁜 주말 하늘주 화이팅 화이팅..
선하가 자꾸만 놀린 탓에, 아주 조금 심통난 목소리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시아는 결국 솔직한 감상을 들려준다. 굳이 감출 필요는 없는 감상이기도 했고, 어찌됐든 좋은 감상이 아니던가.
" 기왕이면 그 포장 속에도 예쁜 말이 들어있으면 좋겠지만요. "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선하를 짐짓 못 본 척 하던 시아는 이내 이어지는 말에 쓴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잘 꾸며진 말도 좋아하지만, 기왕이면 시아는 솔직한 말을 좋아했으니까. 솔직한 말에, 예쁜 장식이 된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아무튼 선하가 도움을 주는 것을 수락했고, 흘려보내려던 것 같은 선하의 말에 가볍게 응해주곤 선하의 말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몸을 살펴보는 선하의 시선을 느끼며 시아는 열심히 달리기 시작한다. 열심히와 결과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달리던 시아는 그저 선하의 말이 나올 때가지 열심히 달리고 달렸다. 그러다 선하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숨을 몰아쉬며 선하의 앞에 멈춰선다.
" 자세말이에요..? "
시아는 숨을 몰아쉰다. 땀에 젖어 달라붙은 셔츠가 위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고, 시아의 뺨에도 다시 홍조가 올라와 있었다. 물론 부끄러움의 홍조가 아니라 열이 오른 신호였지만.
" 알겠어요. 어.. 그러니까.. 이렇게..? "
선하의 주문대로 조심스럽게 자세를 잡은 시아가 이대로 있으면 되는 것이냐는 듯 선하를 바라본다.
세치 혀로 천냥 빚을 지게는 해봤지. 민규의 말에 속으로 중얼거린다.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속아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주식을 사고, 그렇게 빚더미에 앉았다. 별로 좋지는 않은 기억이라 고개를 살짝 흔들어 털어버리고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행복한걸 하는게 가장 정답이긴 하지. 그게 정론이니까.
" 맞아. 근데 아직 내가 무슨 일을 하고싶은지 찾지는 못했어. "
그러니까 우선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먼저 찾겠다고 결심했다. 성공만 한다면 내가 하고싶은 일들은 다 할 수 있을테니까. 누구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좋다고 하고 누구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불행하다고 한다. 나는 취미와 직업은 아예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이라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 너무 동생한테 평가가 박한거 아니야? 그래도 열심히 하면 안될건 없다고 생각해. "
늑대의 재능이 사회의 상류층을 차지하고 있다곤해도 모두가 늑대인게 아니고 그 중엔 일반인도 있고 양도 있는 법이다. 그 말인 즉슨 늑대의 재능을 늑대가 아닌 이들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이니까. 물론 이런 말을 늑대인 내가 하는게 어불성설이긴 하다.
" 우리집은 가난해서 비행기 한번 타본적이 없어. 자가용도 아마 최근에 바꾸셨을꺼야. 내가 독립해서 나와있어서 좀 여유가 생기셨나봐. "
어릴때부터 돈이 없어서 가난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가난은 지긋지긋하다. 모든게 돈이 없어서 생긴 일이니까. 그러므로 난 돈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슬혜는 주원의 뜨거움에 조심하라는 말에 그정도는 아니라며 말하지만 주원은 그것을 믿지 못했는지
"그럼 다행인데~"
하곤 괜히 뒤에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 먼저 숟가락을 들지 않는 주원을 보고 그녀는 무언가 깨달았는지 먼저 한숟갈 떠 카레 부분을 입에 가져다댄다. 곧바로 뜨거워하는 반응을 보이며 카레를 살짝 입에서 떼자 주원은
"푸하하, 그것봐. 괜찮아? 물 가져다줄게."
하곤 웃으면서도 그녀를 걱정하며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의 물통과 싱크대 근처에 컵찬장에서 뒤집어둔 컵 두 개를 꺼내어 가져와 그녀와 자신의 카레 옆에 두었다. 그리곤 그녀에게 물을 따라주고, 자신의 컵에도 물을 따른다.
슬혜는 심각한, 혹은 고민하는 표정으로 입 안의 카레를 분석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어 입안에 든 것을 삼키고 나서 요리평론가가 요리대회 참가자의 요리를 평가하듯 진지한 자세로 주원에게 감상을 들려주었다.
"응. 나, 카레는 단걸 좋아하거든. 맞아! 양파를 조금 나중에 넣었고, 마지막에 꿀을 넣고 더 끓였어. 맛만으로도 그걸 알다니 대단해! 요리만화에서 보던게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물론 주원도 단맛이 나면 설탕이나 꿀을 넣었겠거니, 신맛이 나면 레몬이나 그런걸 넣었겠거니 하는건 알긴 하지만 슬혜정도로 맛을 분석해내고 재료의 타이밍까지 알아내는건 할 수 없었으니. 그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눈을 빛냈다.
"나쁘지 않다니, 기쁜걸. 정말로."
주원은 티 없이, 숨김 없이 기쁨을 그대로 미소로 드러냈다. 나쁘지 않다는 표현은, 타인에게 있어선 보통이라는 뜻이겠지만 슬혜에겐 조금 다른, 고평가라는 것을 주원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로부터 평가를 듣고난 뒤 만족했다는듯 자신도 숟가락을 떠 카레를 먹기 시작했다. 스스로 맘에 드는지 한 입 먹곤 "맛있어어어."하곤 말하더니 허겁지겁 빠르게 그릇을 비워나갔다.
"취향차이? 혹시 별로 안 좋아하는 맛이야? 그럼 무리해서 먹을 필욘 없어."
슬혜의 취향차이라는 말에 주원은 먹던 것을 멈추고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싫어하는 음식을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마음속에서 퍼져나가 식욕도 한순간에 끊겼는지 그저 조심스레 그녀의 심기를 살폈다.
>>302 이걸 조금 늦게 봤다! 역시 주기적인 정주행은 필요해! 딜레마가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하늘이는 피아노를 상당히 즐기고 있어. 무엇보다 정말로 누구보다 위에 서고 싶어하거든. 이건 어릴 때 하늘이에게 넌 양이니까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말한 선생님에 대한 반발심도 꽤 큰 편이기도 하고.
아무튼 결론은 자기가 원해서 하는 거고, 그만큼 누구보다 위에 서고 싶어하는 욕심이 큰 편이야. 그래서 피아노를 절대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붙잡는거기도 하고. 물론 그 와중에 또 아주 재밌게 즐기고 있어.
날씨. 사하의 말을 긍정하며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가, 지구는 잠깐 생각하는 듯 천장을 바라보며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나한텐 안 하네." 생각을 마친 지구가 덤덤한 목소리로 앞에서 중얼거렸다. 말만 안했다 뿐이지 싫어할 수도 있는 거겠지만- 그랬으면 애초에 순순히 따라오지 않았을 것도 같고. 지구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그뒤로 갑자기 조용해진 것을 보니 미움 받을 것을 꽤 우려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뒤 지구의 부스스한 머리 위에 닿는 사하의 부드러운 손길은, 타이밍이 참 좋다고. 짜증을 낸 것이 무색하게 얌전해지는 지구와 또 사하의 손짓 하나에 안심되는 마음이 저 역시 바보 같다고.
"너 하는 거 봐서."
옆에 있었으면 한 대 쥐어 박았을 것 같은 대답을 하는 사하를 보며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사하가 앞으로 또 이렇게 칠칠치 못하게 굴지 않는다면..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이유는 왜인지 모르겠다. 밖으로 나섰을 때, 잠깐이었지만 흩날리는 꽃잎들에게 시선을 빼앗긴 듯한 사하의 모습은 천진해 보였던가. 사실 지구의 눈에는 어린아이 같던 사하보다 눈을 번뜩이는 늑대들의 시선이 먼저 들어왔으므로 찰나의 순간은 아쉽게 지나갔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사하를 당겨 품에 숨긴 것이고. 그렇게 담긴 사하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조그마한 평범한 여자아이다.
"... ...아냐. 어울려."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고 본관으로 들어섰을 땐 아직까지도 순진하게 있을 뿐인 사하가 있다. 지구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고 사하의 머리 색을 상상하며 색의 단어를 짧게 뱉으려다 도로 삼켜 버렸다. 남의 색을 제가 멋대로 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또 그녀를 향한 칭찬을 내뱉은 것 역시 낯설었기 때문에 지구는 사하가 정리해 준 머리를 애써 또 벅벅 긁으며 '가자.' 하고 사하의 정수리를 약하게 꾹 누르고 근처의 양호실 쪽으로 먼저 멋쩍게 성큼성큼 걸어가 버린다. 여기까지 와서 사하가 홀랑 도망가 버리진 않을 거라 믿으며 양호실 문을 거침없이 벌컥 열었다. 실례합니다, 말해 보지만 양호실 안은 창문이 활짝 열린 채 따스한 봄바람만 휘날리고, 텅 비어있다. 그럼 그렇지. 또 창문을 넘어 토끼나 구경하러 가셨을까. 지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사하에게 얼른 오라는 듯 문에서 상체를 기댄 채 그녀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