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흐렸다. 인식할 수 있는 건 고막을 파고드는 소리와 뿌연 배경과 달리 선명하게 보이는 이수진의 눈 뿐이었다. 하쿠메이를 찾고 싶은 건 맞았으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묵인할 정도로 비정해질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진정 스스로 해결하고 싶다면 그만큼 강해지는 게 맞겠지. 미나즈키는 들려온 말을 이해하고 맞는 얘기라고 납득하긴 했으나 거기다 대고 길게 대꾸할 할 힘이 없었다. 공기가 몸을 짓누르는 것 같은 생소한 감각만이 있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곤 네, 하는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것 뿐이었다.
이 도서관의 문을 살펴보자면 어느 장인의 목적성이 가장 크게 들어나는 문입니다. 문 아래에는 약간의 마도를 응용하여 그 끝에서 소리를 잡아 묵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마도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꼬여 있는데 그 중에는 문에 여러 문양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흔히 우리들이 말하는 음양의 태극과, 사방으로 상징되는 오행진. 그 외에도 문에는 거대한 현무의 모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힌트 1. 마도에는 '기관'이라 부르는 요소 역시 존재하고 있다. 기관이라 함은 마도의 특정한 상징이나 물건을 통하여 특별한 효과를 발생시키는 효과를 말함이다. 힌트 2. 이 곳이 어떤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야 한다. 힌트 3. 태극은 상징적으로 음과 양, 둘이 만나 이루는 조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완전히 섞인 '공'과 반대되는 어중간한 대립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태극은 '위'를 상징하는 양과 '아래'를 상징하는 음을 가지고 있다. 힌트 4. 사방진은 위, 아래, 왼쪽, 오른쪽. 그리고 중앙을 상징한다. 힌트 5. 현무는 지식과 지혜, 올바름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럼 여기서 질문하겠습니다. 이 문이 상징하고자 하는 상징성과, 문에 남은 문양으로 하여금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해답에 성공하는 것으로 간파(F)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174 최선. 내 최선.
춘심은 겨우 부딪힌 벽을 밀어내고 일어납니다. 창을 쥔 손은 후들거리고, 망념에 흠뻑 젖어 몸은 너무나도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무시하고 지금 느끼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나를 짓누르고, 짓누르고, 짓누르는. 나를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무지함. 얼마만에 느끼는지 모를 그 알 듯 모르는 감정에 춘심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납니다. 입에 덩어리진 피를 뱉어내고 흐트러져 고통스런 턱뼈를 맞춥니다. 창을 쥐고 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던 중화제를 집어 삼킵니다.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 박동에 느끼던 고통마저 사라졌을 때. 춘심은 가닥을 잡습니다. 아하. 아하.... 아하!!!!!!!!!!!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다른 감정이 아닙니다. 내가 보았다 느낀 산을, 가볍게 넘을 수 있다 생각했던 오만함에 대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이 낯선 감정들을 천천히 끌어모아 춘심은 자신의 감정을 기억해냅니다.
이것은 슬픔입니다! 그것은 전에 느끼던 감정과는 다릅니다. 그 전에까지 느꼈던 감정들은 후회와 절망, 비통함으로 이루어진 것을 끌어모아 슬픔이라 불렀다면 이것은 순수히, 떠나지 않는 오만함에 붙일 이름입니다. 슬픔. 슬픔!! 나를, 타인과 다르게 만드는 이 강렬한 감정이여!
춘심은 창을 들어올립니다. 닿고 싶습니다. 저 거대한 나무에, 그 끝을 모를 거대한 산맥 위에, 그 너머.. 저 구름과 푸른 하늘 위에는 무엇이 있을지. 그 감정을 느끼고 싶습니다. 슬픔이 감성적인 것이라, 우울한 것이라 한..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이 감정은 고뇌.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을! 내 심장을 이렇게 뛰게 하는 것을!
춘심은 제 품에 쥐여주던 인형을 쥡니다. 그 것에는 수많은 우리들의 인연이 붙어 있습니다. 틱틱거리는 에릭과, 아름다운 하루.. 그런,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인연 속에 나를 녹아내리는, 녹아내리게 하여, 내가 모르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런.
당신.
- 사랑해.
그 인연이 춘심을 무겁게 젹신 망념을 씻어냅니다. 천천히 춘심은 창을 기울입니다. 닿아? 닿지 않아? 상관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적어도 이 감정에 솔직해지면 됩니다.
닿는다. 닿지 않는다. 그런 것을 넘어서.
한 걸음을 딛고. 하늘 높이 뛰어올라, 용이 몸을 뒤집듯 반 바퀴 돌아. 창을 끌어안아 땅을 향해 내리며. 분노를 토해내십시오.
용내림
동아리실 내부에 울리는, 거대한 충격파 속. 춘심은 일어날 힘도 없이 몸을 바르르 떱니다. 온 몸을 짓누르는 고통과 아픔. 그것들과 함께. 나를 짓누르는 슬픔에. 또 닿지 못함을 알았기에. 제 최선이 닿지 못하는 것에 눈물을 흘립니다.
" .. "
부장은 말 대신 다가와 춘심의 손을 쥡니다. 그 손으로부터, 수많은 감정과, 대답이 느껴지지만. 그런 것들은 감정의 망에 걸려 흩어지고 맙니다. 지금의 춘심은 오로지 슬픔만을 느끼고 있습니다.
" .. 그 고통의 일부나마. 나누도록 하겠다. "
춘심의 망념의 일부가 리엔에게로 향합니다. 79에 해당하는 망념이 부장을 향하고, 그는 춘심의 망념을 받아낸 채. 천천히 자세를 일으킵니다.
" 그대의 진심. 잘 보았다. "
그는 자신의 팔에 생긴, 아주 미미한 그을음을 춘심에게 보여줍니다. 이것은. 춘심이 이륙한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