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트랄은 머리를 숙여 손에 머리를 알아서 부비며 앞발 하나를 한번 굴렀다. 이렇게 영민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 어딜 봐서 죽음일까? 다들 불길하다 하지만 외형 때문에 생기는 오해일 뿐이라고 너는 생각했다. 가면 때문에 네 표정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너는 웃고 있을까? 아마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을 지도 모른다. 미안해요! 하고 사과하는게 너였다. 너는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뭐가 옳고 그른지 가늠하기엔 늦었어요. 누군가 죽었다고 애도할 시간을 만드느니 그 시간에 하루라도 더 살 궁리를 하는게 더 좋다고 생각해서 최악의 상황에서 도망치도록 도울 기회를 만들고 있을 뿐이에요. 아무도 움직이지 않으니까. 백정도 이 학교 안에 있고 할미도 초빙교수로 왔던 상황에서 학교에서 지켜준다 해도 믿을 수 없어요. 그 안에 묘수가 있어도 본인만 아는 상황에서 언질없이 때만 기다리는 건 다른 사람에게 악수일 뿐이에요?"
상황은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너는 그 부정적인 것을 받아들였다. 몇번의 위협 끝에 기어이 사람이 죽자 초조했기 때문이다. 다음 희생자가 네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성을 지배했다. 네가 아니라 네 친구. 너는 후부키였기 때문이다. 순혈주의자를 봐도 그 사람의 선택이라며 받아들인다. 하지만 네 선택도 중요하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야만 한다. 가장 먼저, 네가 살아남아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다. 네 방에 있는 마법사 체스판은 벌써 몇번이고 수를 무르고 다시 두기를 반복한 상태다. 어떻게 해도 상대편에서 체크메이트가 되기 때문이다. 손을 들어 세스트랄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완벽하게 야생에서 살고있는 세스트랄은 이것과는 다를 것이다. 손도 대지 못하게 할 지도 모른다. 이 친구는 자주 찾아가서 쓰다듬고, 이노리도 소개시켜준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도망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는 미리 잡아둬야만 했다. 그래서 너는 애도조차 하지 않고 왔다. 전에 서술했듯 애도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차라리 내 명줄 생각하는게 더 이롭다. 돌아오기라도 하나? 누군가 죽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피가 바닥에 뿌려지는 건 한번이면 족하다.
너는 머트랩 용액을 받아들인다. 손을 뻗고 병을 쥔다. 코르크 마개를 열어 냄새도 맡지 않고 무작정 병을 기울여 손바닥 위에 용액을 몇방울 떨어뜨렸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믿어요. 이게 독이라도 이노리는 교수님 믿고 발랐을 거예요?"
아직 너는 교수를 신뢰한다. 너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수가 이 자리에서 죽인다 해도 행복한 선택이면 됐다. 그렇지만 나도 행복해야 하니 저승길 동무로 데려갈 것이다. 치료하면 좋은 사람이다. 너도 은혜를 갚을 것이다. 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고 손가락을 오므린다. 환부에 담가둘 여건이 안 되니 이렇게나마 상처를 담근다.
"교수님이 사과 할 일이 아니에요? 매구의 분풀이랬어요. 누가 감히 막았겠어요? 아끼는 도구를 잃어도 여러 다른 자의 선택을 잃게 한 원한보다는 적을 것의 경중을 재지 않는 악수에서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믿어요."
너는 그렇게 말하곤 웃음조차 뱉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면 속의 표정이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은 안봐도 뻔했다. 타인의 죄를 탓하지 않는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원론적인 것만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내재된 것은 사랑한다. 너는 그렇구나, 하고 입술을 한번 벙긋이더니 한걸음 다가오려 했다. 조금 더 가까이, 아예 옆으로. 상처를 위해 은혜를 갚을 시간이다. 하지만 네 모습으로는 신뢰가 되지 않는다.
"가면은 교수님 거예요. 이노리가 교수님 드린 거예요? 그래도 같이 갈래요. 그런데 교수님은 이노리 의심 안해요? 이노리가 가짜면 어떡해?"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윤'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 듯도 싶다. 그야, 그녀는 저 모습들이 그저 그런 척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고개까지 돌려가며 말을 더듬는 모습은 그대로가 진짜라고 해도 믿겠다. 물론 그녀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지만.
윤이 옆에 앉자 그녀도 손을 내렸다. 잡아주지 않아서 아쉬워한다던가 그런 기색은 없다. 되려 멍한 눈으로 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앉는 것도 담요를 덮어주려 하는 것도. 그녀는 어땠는가 하면, 웅크렸던 몸을 잠들었을 때처럼 늘어뜨리기는 해도 일어나려고는 하지 않았다. 윤을 향해 비스듬히 누운 채로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의무실 얘기가 나오자 그 때는 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가면 분명히 시끄럽고 귀찮아질 걸."
어떤 의미로든 귀찮아질테니 지금 그녀의 상태를 학원 측 누구에게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능한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지금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천장을 보던 그녀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나마 움직이는 오른손으로 제 왼손을 덮고, 그대로 팔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까지 다다른다. 잠시 어깨에 머무르던 손이 쇄골과 그 근처로 옮겨가자 윽,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손을 떼지 않고 누르며 그의 안색을 살피는가 싶더니, 희어진 얼굴로 웃으며 그리 말하는 것이다.
"다행이다. 전부를 공유하는 건 아니라서."
그녀의 화법은 가끔 불친절한 때가 있는데 오늘은 유독 그런 날인가보다. 그런 날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손을 다시 아래로 늘어뜨리고 말을 잇는다.
"선배. 저 사랑해요?"
투명하리만치 맑은 금빛 눈이 윤의 푸른 눈을 지그시 응시한다. 한번 깜빡 움직이고서 한마디를 더한다.
그래서 싫을 리가 있을까. 그녀에게는 내숭을 떠는 윤도 본성을 드러낸 매구도 전부 한 사람이었다. 주제넘지만 그의 전부를 사랑하겠다고 맹세해놓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짓 따윈 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샤오의 말도 윤의 의도도 그녀에게 일어난 이변도.
괜찮느냔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다. 말로 하기에는 자신이 정말로 괜찮은지 의문이 들어서다. 그러니 그가 안심할만한 표현만 해주고, 그녀의 물음에 대한 답을 기다렸다. 제 위로 몸을 수그리는 윤을 빤히 응시하던 눈이 슬며시 가늘어지더니 곧 호선을 그리며 웃음지었다.
"바보 같은 질문을 했네요. 선배는 직접 손에 피를 묻혔는데. 음."
킥킥... 하고 작게 웃으며 중얼거리고 몸을 살짝 일으킨다. 윤이 피하지 않는다면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겠지. 그리고 다시 풀석 늘어져서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하며 말할 것이다.
"샤오...할미탈의 말도 신경 쓰이긴 했지만, 물어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게 담아두고 있지 않았어요. 그런 걸 신경 쓰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조곤조곤 얘기하다가 힐끔, 장지문 쪽을 본다. 누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듯이. 방음마법이라도 쓰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않는 건 귀찮아서일까.
"깨끗하다는 건 말을 잘못 한 거였어요. 맞지 않는 비유였어. 그렇지만 흠집은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생겨버려서. 이래도 절 사랑해줄까 싶었어요."
그리고 손을 옮겨 저고리로 된 자신의 상의에 가져간다. 단정하게 매듭진 끈을 잡고 스윽 당기다가... 멈추고 조금은 장난스레 물었다.
"지금은 좀 흉할지도 모르지만 봐줬으면 하는데, 선배가 싫다면 안 보여줄게요. 어떡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