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상징하는 동물이라면 난폭할 것 같지만 제법 온순했다. 죽음 자체가 상냥할지도 모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갈기에 가면을 파묻자 시야가 어두워진다. 너는 어둠속에서 눈을 감았다. 모든 동물은 감정이 있고 영민하다. 이 존재도 그렇다. 우울한 감정을 알고 위로할 줄도 아는 존재인데 왜 누군가를 죽이고 먹게 하는걸까. 부리와 입에 피가 묻어있던 것이 떠올랐다.
"체, 고조."
너는 그 상황이 떠올라 심란했다. 그 동물은 먹이가 인간일 뿐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죽이기엔 미안하고, 살리기엔 엄두가 안난다. 비유하자면 나는 고작 2학년인데, 6학년이 배우는 수업의 어려운 시험문제를 마주한 기분이다. 배우지도 않은 건데 감으로 하자니 너무 위험한 것이다.
그렇다고 도망치기엔 이미 너무 멀리 온 기분이다. 해결하고 가지 않는다면 끝까지, 평생 쫓아올 것 같았다. 세스트랄은 귀를 한번 까딱이더니 앞발을 하나 들어 땅에 직직 긋고 위로하듯 입술을 푸르르 떤다. 피가 멎지 않던 손을 꽉 쥐고 다른 손으로 갈기를 쓸었다. 누군가 오자 세스트랄은 푸르릉 소리를 낸다. 너는 익숙한 목소리를 듣는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배신자의 것이다.
"교수님 말고 다른 인간은 마주치지 않으니까 가끔 오라고 했잖아요. 세스트랄 보고 싶어서 부르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어요?"
너는 여전히 세스트랄의 목을 안은 모습으로 우두커니 서있다 몸을 뗀다. 발을 돌리자 세스트랄은 네 주변에 한걸음 더 다가와 선다. 코와 입을 내놓던 가면은 이제 얼굴까지 덮었다. 너는 몸을 잘게 떨었다. 주먹을 꾹 쥐자 새하얀 손에서 피가 몇방울 고이다 떨어진다. 세스트랄이 걱정하듯 고개를 숙였다.
"다들 추모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노리가 이런 곳 오는건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뛰어왔어요. 다들 추모하자 하는데 해봤자 죽은 사람은 안 돌아와요."
그런걸 해봤자 아무도 안 기뻐한다. 죽은 사람도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걸 부각할 수단밖에 안 되는 것을 하고싶지 않았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는 교수를 훑어보듯 가면속의 눈을 위아래로 움직인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별궁의 방 중에서도 이런 구석방을 고른 건 단순히 조용하고 어딘가 아늑해서였지만, 어쩌면 이런 상황을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눈에 띄지 않는 방까지 찾아올 사람은 사감이거나 학생대표 중 하나일 테니까.
윤이 방으로 들어왔어도 그녀는 미동도 없이 자고 있었다. 포근한 침대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편안한지 안색에 비해 표정은 괜찮았을 것이다. 절대 열리지 않을 것처럼 감긴 눈에 일정하게 흐르는 숨까지. 그대로 담요만 덮어주고 나갔다면 그녀 역시 계속 잠을 잤겠지만, 단 한번의 부름으로 그녀는 잠에서 깨었다. 감긴 눈커풀이 움찔, 하더니, 천천히 올라가 금빛 눈으로 윤을 보게 했다.
"...선배...?"
명백히 잠 덜 깬 눈에 갓 일어나 잠긴 목소리가 윤에게 향했다. 느릿느릿 깜빡거리는 눈이 윤의 얼굴 근처를 멍하니 응시하다가 도륵 굴러가 그의 손과 들고 있는 담요를 본다. 윤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상황 파악은 할 수 있었다. 뻑뻑한 멧돌마냥 구르는 머릿속으로 판단을 마친 그녀는 두번 정도 눈을 깜빡인 후에, 몸을 움직였다. 오른팔 만으로 몸을 감싸며 둥글게 웅크리곤 여전히 잠기운이 남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고 있는 사람한테 뭘 하려고 하는 거에요... 선배, 이 변태야..."
그저 친절히 담요를 덮어주려 했던 사람에게 뜬금없는 모함을 하며 눈을 가늘게 뜬다. 웅크린 탓에 눈만 빼꼼 드러난 얼굴이라 흘겨보는 눈이 더 부각된다. 못된 사람 보듯이 윤을 흘겨보며, 웅크린 몸을 뒤척이자 흐트러진 옷매무새 사이로 흰 살갗이 무방비하게 드러난다. 목덜미나 허리, 혹은 다리 같은 곳이. 지금 제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발칙하게도 말을 이었다.
"변명은 됐으니까, 지금 같이 있어주지 않으면 비명 질러서 사감님 오게 할 거에요. 잔소리 듣게 할거야.."
그러면서 그를 잡을 듯 손을 뻗는데, 어째서인지 이번에도 오른손만 뻗는다. 왼팔 왼손은 장식마냥 늘어뜨려놓고. 잡아달라는 건지 일으켜 달라는건지 의미를 모를 한 손을 뻗어놓고서 부루퉁한 얼굴로 윤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 표정을 달리 해석하자면, 나 두고 나갈거야? 정도 되시겠다.
세스트랄은 머리를 숙여 손에 머리를 알아서 부비며 앞발 하나를 한번 굴렀다. 이렇게 영민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 어딜 봐서 죽음일까? 다들 불길하다 하지만 외형 때문에 생기는 오해일 뿐이라고 너는 생각했다. 가면 때문에 네 표정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너는 웃고 있을까? 아마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을 지도 모른다. 미안해요! 하고 사과하는게 너였다. 너는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뭐가 옳고 그른지 가늠하기엔 늦었어요. 누군가 죽었다고 애도할 시간을 만드느니 그 시간에 하루라도 더 살 궁리를 하는게 더 좋다고 생각해서 최악의 상황에서 도망치도록 도울 기회를 만들고 있을 뿐이에요. 아무도 움직이지 않으니까. 백정도 이 학교 안에 있고 할미도 초빙교수로 왔던 상황에서 학교에서 지켜준다 해도 믿을 수 없어요. 그 안에 묘수가 있어도 본인만 아는 상황에서 언질없이 때만 기다리는 건 다른 사람에게 악수일 뿐이에요?"
상황은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너는 그 부정적인 것을 받아들였다. 몇번의 위협 끝에 기어이 사람이 죽자 초조했기 때문이다. 다음 희생자가 네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성을 지배했다. 네가 아니라 네 친구. 너는 후부키였기 때문이다. 순혈주의자를 봐도 그 사람의 선택이라며 받아들인다. 하지만 네 선택도 중요하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해야만 한다. 가장 먼저, 네가 살아남아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다. 네 방에 있는 마법사 체스판은 벌써 몇번이고 수를 무르고 다시 두기를 반복한 상태다. 어떻게 해도 상대편에서 체크메이트가 되기 때문이다. 손을 들어 세스트랄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완벽하게 야생에서 살고있는 세스트랄은 이것과는 다를 것이다. 손도 대지 못하게 할 지도 모른다. 이 친구는 자주 찾아가서 쓰다듬고, 이노리도 소개시켜준 보람이 있는 것 같다. 도망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는 미리 잡아둬야만 했다. 그래서 너는 애도조차 하지 않고 왔다. 전에 서술했듯 애도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차라리 내 명줄 생각하는게 더 이롭다. 돌아오기라도 하나? 누군가 죽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피가 바닥에 뿌려지는 건 한번이면 족하다.
너는 머트랩 용액을 받아들인다. 손을 뻗고 병을 쥔다. 코르크 마개를 열어 냄새도 맡지 않고 무작정 병을 기울여 손바닥 위에 용액을 몇방울 떨어뜨렸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믿어요. 이게 독이라도 이노리는 교수님 믿고 발랐을 거예요?"
아직 너는 교수를 신뢰한다. 너는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수가 이 자리에서 죽인다 해도 행복한 선택이면 됐다. 그렇지만 나도 행복해야 하니 저승길 동무로 데려갈 것이다. 치료하면 좋은 사람이다. 너도 은혜를 갚을 것이다. 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고 손가락을 오므린다. 환부에 담가둘 여건이 안 되니 이렇게나마 상처를 담근다.
"교수님이 사과 할 일이 아니에요? 매구의 분풀이랬어요. 누가 감히 막았겠어요? 아끼는 도구를 잃어도 여러 다른 자의 선택을 잃게 한 원한보다는 적을 것의 경중을 재지 않는 악수에서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믿어요."
너는 그렇게 말하곤 웃음조차 뱉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면 속의 표정이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은 안봐도 뻔했다. 타인의 죄를 탓하지 않는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원론적인 것만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내재된 것은 사랑한다. 너는 그렇구나, 하고 입술을 한번 벙긋이더니 한걸음 다가오려 했다. 조금 더 가까이, 아예 옆으로. 상처를 위해 은혜를 갚을 시간이다. 하지만 네 모습으로는 신뢰가 되지 않는다.
"가면은 교수님 거예요. 이노리가 교수님 드린 거예요? 그래도 같이 갈래요. 그런데 교수님은 이노리 의심 안해요? 이노리가 가짜면 어떡해?"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윤'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 듯도 싶다. 그야, 그녀는 저 모습들이 그저 그런 척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고개까지 돌려가며 말을 더듬는 모습은 그대로가 진짜라고 해도 믿겠다. 물론 그녀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지만.
윤이 옆에 앉자 그녀도 손을 내렸다. 잡아주지 않아서 아쉬워한다던가 그런 기색은 없다. 되려 멍한 눈으로 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앉는 것도 담요를 덮어주려 하는 것도. 그녀는 어땠는가 하면, 웅크렸던 몸을 잠들었을 때처럼 늘어뜨리기는 해도 일어나려고는 하지 않았다. 윤을 향해 비스듬히 누운 채로 눈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의무실 얘기가 나오자 그 때는 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가면 분명히 시끄럽고 귀찮아질 걸."
어떤 의미로든 귀찮아질테니 지금 그녀의 상태를 학원 측 누구에게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가능한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지금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천장을 보던 그녀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나마 움직이는 오른손으로 제 왼손을 덮고, 그대로 팔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어깨에까지 다다른다. 잠시 어깨에 머무르던 손이 쇄골과 그 근처로 옮겨가자 윽, 하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손을 떼지 않고 누르며 그의 안색을 살피는가 싶더니, 희어진 얼굴로 웃으며 그리 말하는 것이다.
"다행이다. 전부를 공유하는 건 아니라서."
그녀의 화법은 가끔 불친절한 때가 있는데 오늘은 유독 그런 날인가보다. 그런 날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손을 다시 아래로 늘어뜨리고 말을 잇는다.
"선배. 저 사랑해요?"
투명하리만치 맑은 금빛 눈이 윤의 푸른 눈을 지그시 응시한다. 한번 깜빡 움직이고서 한마디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