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태의 어둑하게 가라앉은 암적색 눈동자가 각시탈의 말에 그쪽으로 움직였다. 이러한 상황에 놓였을 때 누군가가 구해주러 왔던 적이 있던가. 단태는 각시탈이 하는 말에 담겨있는 것을 이해했으나 납득하기 힘들었다. 어째서 저런 말을 하는걸까.
각시탈이 허공에 거꾸로 매달리는 모습에 단태는 겨누고 있던 지팡이를 아래로 늘어트리며 눈을 깜빡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타난 것은 할미탈이었고 그는 각시탈을 설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느리게 깜빡여지는 단태의 눈동자에 숲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두 짐승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단태는 말이 없었고 각시탈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연인을 끌어안고 있던 팔에 힘은 풀릴 기미가 없다.
레오는 켕! 하고 우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이리저리 굴러 털에 붙은 불을 끄기위해 움직였다. 대충 비껴나가게만 하면 충분했는데 하필 이 정도일줄은 몰랐는데. 바닥에 한참이나 몸을 비비자 불길이 잦아들었고 화끈거리기야 했지만 이 짐승의 피부는 생각보다 강인했다. 그래도 아프기야 아팠는지 레오는 절룩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어떻게 보아도 공격하려던 레오가 실수로 공격을 대신 맞는 그림이었으니 의심할 이는 없으리라.
레오는 학원의 사람들 곁에 섰다. 이 곳이 자신이 있을 곳라는 것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마법을 맞은 부위를 연신 핥아주다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금새 경계를 취하며 몸을 낮추고 으르렁댔다.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게끔, 어둠속에 몸을 낮추고 두 눈을 빛내며 이빨을 드러냈다.
대화를 하자곤 하지만 이 상태론 대화를 할 수 없는데다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목을 물어버리고 싶었다. 버니의 명령이라면 각시탈을 도와주라는 것이었지 저 녀석은 아니었으니까. 으르릉, 하고 다시 낮은 울음소리를 낸 레오는 주변을 서성였다. 처음은 이노리의 곁에 서서 주변을 돌며 보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다음은 단태와 주양의 곁을 돌며 대신 경계해주는듯 했고 마지막으로 스베타의 곁을 돌며 언제라도 공격하겠다는듯 이빨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은 곳은 진영의 중앙이었다.
또 핵꿀밤 맞고싶어?! 하고 윽박지르기는 했으나, 그것이 당신의 행동의 의도를 눈치채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중간에 공격 동선이 꼬인것이라 판단하고 평소 늘 하던 것처럼 나올 뿐이었다. 얄미운 탈에게 가하려던 공격이었기에 그 위력도 꽤 강했을테니 나름대로의 걱정도 섞여 있었다. 주영의 신경은 숙적과 탈에게서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제 연인은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는데,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으니까.
".. 우리 여보. 괜찮아? 내가 아까. 너한테 꽤 심한 짓이라도 한거야?"
숨기는거 없이 사실대로 전부 이야기해줘. 그렇게 말하는 주양의 목소리는 묘하게 침울한 느낌으로 가라앉은 상태였다. 조종을 당한 것은 어쩔수 없다고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제 애인에게 큰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기를 빌었다.
"늘 중간에서 중재하느라 수고가 많아~ 적대심이 없는 사람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으니,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지금은 상황을 정리하러 나타난 할미탈에게 신경을 기울일만한 상태가 아니기도 했고. 그래도 짧은 말 한 마디는 아끼지 않고 건네는 것이었다. 탈 몰살을 강행하게 된다면, 지금의 태도를 잔뜩 비틀어 드러내야겠지만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다.
너는 각시탈의 공격이 그대로 스베타를 향하는 것을 본다. 익숙한 광경이 겹쳐보인다. 피끓는 소리를 내며 죽어가던 너. 너는 높은 비명을 내지르며 헐레벌떡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스베타! 안 돼요, 스베타, 안 돼…… 괜찮아요? 안돼, 피가 나요? 안 돼..아무도 죽어서는 안 돼, 다쳐서도.."
너는 정신없이 상처를 살피려고 했다. 그리고 마법을 쓰려 했다. "Vulnera Sanentur." 하는 것이 치유 주문이다. 이윽고 각시탈을 휙 바라봤다. 지팡이를 겨눴을 때, 할미탈이 나타났다. 너는 그 모습을 절대 잊지 않았다. 원내에 태연하게 들어와서 수업을 하고 갔기 때문이다. 네가 주문을 쓰려던 순간 각시탈은 피묻은 두마리의 동물과 함께 사라졌다. 허망한 결과다. 죽일 수 있었는데 못 죽였기 때문이다.
"자네는 사람이 죽었는데 싸우려고 온게 아니라며 말로 하라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오?"
너는 곁에 누가 있어도 이제 상관치 않는다는 듯, 네 친구와 아주 닮은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와 함께 하던 사람이 죽었소. 이 일은 유감일세. 다만 그것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는 전혀 고려치 않고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구려. 자네 주인은 지금 악수를 두는 것이 아니!!!. 탈도, 학생도 몇이나 더 죽어나갈 지도 모르는 상황이오. 고작 학생 몇 더 죽이겠다고 남의 목숨을 쓴다고?! 갈!!!"
목에 핏대가 섰다. 사람이 죽었다. 더는 바라지 않던 것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졸업은 커녕 생존을 고려해야 한다. 이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너는 기어이 갈! 하고 외쳐 꾸짖는 것이다.
"그래, 자네 주인은 대체 무얼 바라고 이 원내에 계속 공격을 가하는 것이오? 복수요? 심상의 복잡함 때문이요? 그래서 죽였소? 양심이 있소? 혼자서만 잃었소? 누구는 위협을 가만히 받아들이고 죽어야 옳은 게요? 그러면 대체 왜? 대체 왜!! 이대로면 어느쪽이든 파멸로 갈 수밖에 없소!!! 원내의 학생을 몇 죽이는 걸 대가로 자네 주인은 모든 패를 잃어야 만족하오? 현명한 사람 아니오!!! 원내의 사람을 죽여놓고 이만하면 됐다, 저만하면 됐다!!! 경중이 가장 중한 것을 두고 깃털보다 가벼이 여기는 것이 말이 되냔 말이야-!!!"
고작 학생따위가 무엇을 아냐는 말이 나와도 괜찮다. 이미 죽음을 겪었고 위협은 사절이다. 계속 나오면 금지된 마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 아즈카반에 가기 전에 죽어버리면 되는 일이다. 너는 오늘 가면을 써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분노 때문에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군...말도 안 돼. 이딴 상황은 바라지도 않았어. 평범하게 졸업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대체 무얼 잘못한 것이라고……."
남들을 생각하기에 앞서, 나 역시 생각해야 했었는데. 간신히 신음을 삼킨 채, 스베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그대로 다시 무너진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걸. 그렇다면 이렇게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눈물이 뺨을 타고 투둑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때문에, 시야는 마치 불투명한 유리 판을 끼고 있는 것 같았을까. 잠깐 초점이 또렷해지면 자신의 주변을 돌고 있는 당신과, 절 호명하며 다가오는 선배를 본다. 치유주문을 받자 스베타는 잠시 비틀거리며 낮고 길게 신음하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